조어도釣魚圖 – 초야에 묻혀 낚시로 소일하다

조어도釣魚圖
초야에 묻혀 낚시로 소일하다

낚시하는 사람을 그린 그림을 ‘조어도釣魚圖’라고 한다. 조어도의 주인공은 대개의 경우 강태공이다. 언젠가 자신이 세상에 쓰이기를 기다리며 강가에 앉아 낚시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았다는 강태공, 그는 주나라 무왕을 도와 상나라 주왕紂王을 멸망시키고 천하를 평정하였다. 그런데 조어도 중에는 간혹 후한後漢시대 엄광嚴光의 고사를 그린 그림이 있고, 한겨울 눈 내리는 강에서 낚시를 하는 경우라면 당나라 시인 유종원의 「강설江雪」을 주제로 한 그림일 수 있다. 조어도의 면면을 살펴보기로 하자.


엄광, 천 길 높은 바위 위에서 낚싯대를 드리우다


엄광嚴光(BC.39-AD.41)은 후한 시대의 은사隱士로서 자는 자릉子陵이고, 회기會 여요餘姚 사람이다. 그는 후한을 세운 광무제 유수劉秀하고 어려서부터 함께 공부하며 자란 친구였는데, 유수가 군사를 일으켰을 때 그를 도왔지만 그가 황제에 즉위하자 이름을 바꾸고 부춘산富春山에 은거했다. 광무제가 백방으로 그를 찾았는데 제나라 사람이 보고하기를 “어떤 남자가 양 가죽옷을 입고 연못에서 낚시하고 있다.”고 하자 엄광임을 알고 사신을 보내 그를 궁정으로 불러들였다. 밤에 광무제가 엄광과 함께 누웠는데 그가 광무제의 배 위에 다리를 얹은 일이 있었다. 다음날 태사太史가 상주하기를 ‘어제 밤에 객성客星이 어좌御座를 침범하였습니다.’라고 하자 광무제가 웃으며 내가 옛 벗하고 같이 누웠을 뿐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광무제는 엄광에게 간의대부諫議大夫의 벼슬을 내리고자 했지만 그는 끝내 고사하고 부춘산富春山에 들어가 은거하였다. 엄광은 절강성 동려현桐廬縣 칠리탄七里灘에서 낚시를 즐기며 일생을 마쳤다. 그의 청아한 절개는 당시의 혼탁한 세상을 바로잡았다고 평해진다. 그가 낚시질하던 곳을 후인이 엄릉뢰嚴陵瀨라고 하였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의 <부춘조어도富春釣魚圖>(도 1)는 바로 엄광의 고사를 그린 그림이다. 《고사도 10폭 병풍》 중의 한 폭인 <부춘조어도>는 바위 위 버드나무 그늘 아래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인물을 간략한 필치로 그린 그림이다. 또 동글동글한 형태의 바위를 중첩시키거나 방형의 각진 바위를 수평 혹은 수직으로 겹쳐서 언덕과 산을 묘사하였다. 수묵의 윤곽선 위주로 단순하게 묘사하고 나무와 바위산 언저리에 녹색의 담채만을 가하였다. 화면 상단에는“부춘조어富春釣魚”라는 그림 제목을 적었고, “구름 너머 높은 바위, 모든 신세 잊은 채 낚싯대를 드리웠겠지(雲端危石 兩忘身世 來揷釣魚竿)”라는 구절을 적어 넣었다. 이것은 주자朱子가 엄광에 대해 읊은 「조대 벽 사이에 어떤 사람이 적어놓은 글 뒤에 씀(書釣臺壁間何人所題)」이라는 시 중의 한 대목이다. 주자가 절강성 부춘산 엄광이 낚시하던 곳이라는 엄릉뢰에 가서 느낀 감회를 담은 시이다. 시의 주요 부분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 ‘엄부자’라고 칭한 인물은 엄광을 말한다. 시 중의 밑줄 친 부분은 앞서 보았던 그림에 적힌 제시 부분이다.

不見嚴夫子 엄부자가 보이지 않으니
寂寞富春山 부춘산은 적막한데
空留千丈危石 천 길 높은 바위만 남아
高出暮雲端 저문 구름 끝에 높이 솟았네
想象羊披了 상상컨대 양가죽 옷 헤치고
一笑兩忘身世 한번 웃으며 모든 신세 잊은 채
來揷釣魚竿 낚싯대를 드리웠겠지


<부춘조어도>(도 1)의 작자는 ‘소석초부小石樵夫’라는 인장을 쓴 인물이다. 그가 옮겨 적은 제시를 보면 위의 싯구절에서 따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유난히 높은 바위 위에 앉아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모습은 “천 길 높은 바위”라는 구절 때문일 것이다. 또 엄광은 후한의 황제가 된 벗 광무제가 누차 벼슬을 내리려 했지만 고사하고 부춘산에 은둔하였다. 따라서 엄광의 고사를 그린 그림에서 그를 초빙하려는 황제의 화려한 행차는 그려지지 않는다.
같은 제목의 그림이 개인소장의 고사도 병풍 중에도 포함되어 있다. <부춘조어도>(도 2)는 원형의 화폭에 그려진 그림인데 상단에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의 <부춘조어도>와 동일한 필치로 같은 구절이 적혀 있다. 사실 수묵 위주로 산수 배경을 그리고 화면 중앙의 바위 위에 낚싯대를 드리운 인물을 간략하게 그려 넣은 구성이나 화풍도 비슷하다. 이 그림 역시 ‘소석초부小石樵夫’라는 호를 쓰는 인물의 작품으로 두 작품은 같은 사람의 필치인 것으로 보인다. 은둔을 택한 엄광의 고결한 뜻을 소박하게 표현하였다.


강태공, 위수에서 주문왕周文王을 만나다


이들 두 작품을 제외하고는 엄광의 고사를 그린 조어도를 확인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강태공을 그린 조어도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강태공의 경우 그를 초빙하고자 하는 문왕 일행의 화려한 행렬이 함께 그려지기 때문에 뚜렷이 구분되지만 강태공이 낚시질할 때 직침을 사용했다는 ‘위수직침渭水直針’을 그린 경우 강태공만이 그려지기 때문에 이 경우는 구분이 어렵다. 예를 들어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의 <위빈군신도>(도 3)의 경우 강가의 버드나무 아래에 앉아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인물이 강태공이고 산 너머 다가오는 화려한 행차는 문왕 일행이다. 화면 상단에 “상서로운 구름이 영롱하게 피어오른다. 위수 가의 군신(祥雲玲瓏芳 渭濱君臣)”이라고 제목이 쓰여서 강태공을 그린 것임을 밝히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의 <사립옹笠翁>(도 4)은 화면 중앙에는 화조화가 펼쳐지고 화면 아래쪽에 고사도가 그려진 여섯 폭 병풍 중의 하나이다. 그림 제목이 ‘사립옹’이라고만 되어 있어 어떤 주제를 그린 것인지 확실치 않다. 이 화폭에는 상단에 오동나무와 봉황이 크게 그려져 있고 하단에는 산수배경이 펼쳐진 가운데 삿갓을 쓰고 낚싯대를 드리운 인물과 말에서 내려 그에게 다가가는 관복을 입은 인물이 그려져 있다. 따라서 자신이 세상을 위해 쓰이게 될 날을 기다렸고, 마침내 주문왕에게 등용된 강태공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눈 덮인 찬 강에서 홀로 낚싯대를 드리우다

낚시하는 사람을 노래한 널리 알려진 시 중의 하나가 당나라 시인 유종원柳宗元(773-819)의 「강설江雪」이라는 시이다. 당나라 순종順宗(805 재위) 연간에 왕숙문王叔文과 함께한 개혁이 실패하고 유종원이 호남성湖南省의 영주사마永州司馬로 좌천되었던 시기에 지어진 작품이다. 속세를 초월한 듯 자연에 파묻힌 고기잡이 늙은이의 모습에 자신의 처지를 빗대 관조적으로 노래함으로써, 정치적 실의와 고독감을 극복하려는 작가의 강한 정신력을 느끼게 하는 작품이다.


千山鳥飛絶 온 산에 새 한 마리 날지 않고
萬徑人蹤滅。 길마다 사람 발자취 끊어졌는데,
孤舟簑笠翁 외로운 배엔 도롱이에 삿갓 쓴 늙은이
獨釣寒江雪 눈 덮인 찬 강물에서 홀로 낚싯대 드리우네

한 겨울의 추위 속에 인적마저 드문데, 눈 덮인 설경 속에 낚시 하는 이의 이미지가 마치 한 폭의 산수화를 보듯 생생하게 묘사된 시이다. 양산 통도사의 명부전 외벽에는 불교 사찰 건물임에도 불구하고 민화를 볼 수 있는데, 《삼국지연의도》 중의 <삼고초려>와 <서성탄금> 외에 <한강독조도>(도 5)가 그려져 있어 눈길을 끈다. 화면 상단에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외로운 배엔 도롱이에 삿갓 쓴 늙은이, 눈 덮인 찬 강물에서 홀로 낚싯대 드리우네(孤舟笠翁 獨釣寒江雪)”라는 싯구절을 적어 넣었다. 이는 유종원 시 「강설江雪」의 3·4연이다. 오랜 세월로 인해 그림이 흐릿해지기는 했지만 수묵의 윤곽선으로 그린 중첩된 산과 언덕, 그 언저리에 가해진 흰색의 눈 표현, 그리고 강 위에 떠 있는 배 한 척에 삿갓을 쓴 한 인물이 낚시를 드리운 모습이 보인다. 대자연의 경관에 투영된 좌절과 고독이 그림에서도 묻어난다.


초야에 묻혀 낚시로 소일하다

낚시하는 인물이 그 누가 되었든 조어도는 초야에 묻혀 낚시로 소일하는 인물을 그린 것이다. 강태공은 자신의 재능이 세상을 위해 쓰이게 될 날이 올 것을 기대하며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었으니 그의 낚시는 기다림의 미학이다. 엄광은 한나라를 훔친 왕망王莽을 멸하고 세상을 바로잡고자 유수와 함께 분연히 일어섰지만 그가 황제의 위에 오르자 명리를 버리고 부춘산에 은거하였으니 그의 낚시는 무욕無慾 그리고 청아한 절개를 대변한다. <한강독조도>에 그려진 온 세상이 얼어붙은 겨울 풍광 속의 낚시는 정치적 좌절과 고독을 극복하고자 한 극기의 표현일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떨어져 낚시로 소일하게 된 계기나 의미는 다를지라도 그 안에서 찾은 성찰과 여유가 주는 즐거움이 또한 컸을 것이니 우리는 그림을 통해 이를 공유하게 된다.

글 유미나(원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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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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