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민화와 나무꼭두② 민화, 산 자의 집과 가택 신앙을 연결하다! 꼭두, 죽은 자의 집인 상여를 수호하다

▼ 까치호랑이 76 x 55cm 조선민화박물관

지난 호에도 이야기 했듯이 민화는 산 자의 집 그리고 나무꼭두는 죽은 자의 집에 쓰였습니다. 민화가 지상에서의 안녕을 위해 집 안팎에 사용되었다면, 나무꼭두는 천상에서의 안녕을 위해 죽은 자가 타는 상여에 장식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번호에는 산 자의 집을 둘러싼 가택 신앙과 민화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집에 대한 선조들의 가택 신앙

먼저 산 자의 집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그들은 자연 곳곳에 그리고 온갖 물건에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었으며 방, 마루, 마당, 우물, 장독대, 곳간, 뒷간 등 주택 공간에도 신이 깃들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테면 집 안방은 삼신, 마루는 성주신, 부엌은 조왕신, 뒤꼍은 재신이나 택지신, 출입문은 문신, 뒷간은 변소신, 우물은 용신이 지킨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이런 신앙형태는 가택신, 가신, 가신신앙, 집지킴이, 집안지킴이 등으로 다양하게 불립니다.
선조들은 집 지붕에 바래기 기와-잡귀를 막기 위해 멀리 망보며 수호하는 초자연적인 도상을 새겨 용마루, 내림마루, 귀마루 끝에 붙이는 기와-를 올려 망을 보게 하고, 대문에는 파수꾼의 역할을 하는 문신門神을 그려 붙였습니다.
또한, 집의 안방, 사랑방, 대청마루 등에는 화조도나 모란도를 붙였으며 문지방 위에는 삼적부적이나 동토부적 등을 붙였고, 그 밖의 벽, 광문, 부엌문, 다락문, 가구 등에도 각각 그 자리에 맞는 그림을 붙여 자신들을 지켜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예컨대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는, 매년 정초가 되면 해태, 닭, 개, 호랑이, 용을 그려 부엌문, 중문, 곳간문, 대문에 붙이는 풍속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지요.
물론 집에는 그림뿐만 아니라 글씨에도 꿈과 소망을 담아 써 붙이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대문에는 용龍, 호虎라는 벽사문邪文을 써 붙였는데 이는 집안에 복을 불러오고 삿된 기운을 물리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용은 주인에게 오복을 불러들이고, 호랑이는 수재, 화재, 풍재를 막아준다는 믿음이 있었지요. 또한, 문門에는 ‘문신門神이 엄히 지키고 있으니, 악귀는 들어오지 못한다’라는 글귀나, ‘사람의 목숨은 산처럼 영원하고, 집의 재운은 바다처럼 끝이 없다’라는 글귀를 써 붙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집의 기둥에도 역시 길상적인 시 구절이나 벽사적인 글을 담은 주련柱聯을 어김없이 붙여 집안을 장식했지요.

오동과봉황 97 x 44cm 조선민화박물관
까치호랑이 76 x 55cm 조선민화박물관
화훼도 84 x 33cm 조선민화박물관
황룡도, 83 x 50cm, 조선민화박물관
남해상여, 210 x 90 x 140㎝, 꼭두박물관
상여에 꽂는 인물 꼭두, 엄만섭 소장
 
꼭두가 지키고 있으니 썩 물럿거라!

상여는 우리 선조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또 하나의 집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우리 선조들은 상여를 이승의 집에서 저승으로 가는 동안에 임시로 거처하는 중간적인 집으로 여겼지요. 우리 선조들은 사람은 육신魄과 영혼魂으로 되어 있어 죽으면 분리되어 육신은 땅에 묻히고, 영혼은 저승으로 가 심판을 받은 후 그 심판에 따라 살아간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선조들은 죽어서 저승에 산다는 것은 이승의 집에서 저승의 집으로 옮겨 간다고 생각했으며, 그런 믿음아래 상여를 망자가 임시 거처하는 집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물론 망자의 집인 상여는 전체적으로 보면 가마와 비슷하지만 그 기본적인 구조는 산 자의 집과 다를 바 없습니다. 비록 시신을 운반하는 도구이지만 망자가 타고 가는 집으로 여겨 그 모양도 산사람의 집처럼 화려하게 꾸몄던 것이지요. 산 자의 집 주요 부분에 벽사적, 길상적인 그림과 글씨를 붙여 안녕을 바랐던 것처럼 상여에 나무꼭두를 꽂아 망자를 지켜주기 바랐던 것까지도 서로 같았습니다.
대개 상여 앞머리의 용수판과 함께 염라대왕, 저승사자, 동방삭, 방상씨 등을 앞세웠으며, 이와 함께 호위하고 시중들고 즐겁게 해주는 인물상과 동물상, 그리고 식물상 등 30개 내외의 지킴이를 꽂았습니다. 물론 이외에도 상여에는 온갖 물건들이 꽂아지거나 새겨졌는데 이러한 물건들은 화려함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도 있지만 대부분 액운을 쫓는 벽사의 구실을 했습니다. 예컨대 상여에 달려있는 풍경은 상두꾼이 그 풍경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평온히 운구하라는 의미도 있지만 삿된 것을 쫓는 구실도 하였습니다. 이렇듯 상여와 그 상여에 꽂은 꼭두를 비롯한 온갖 물건들은 죽은 이를 아무 탈 없이 저승까지 이를 수 있도록 보호하고 저승에서 온전하게 새로운 삶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이상과 같이 상여에는 생生의 마지막 순간이라도 호화로운 집에 모시고자 하는 유족들의 마음이 잘 담겨져 있습니다. 이승의 가정집에 민화를 붙였듯이 상여에도 나무꼭두를 꽂아 난공불락의 철옹성을 만들었으며, 이는 오늘날의 경보장치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민화는 산자를 위해 벽사적인 의미와 함께 복과 장수를 위해 쓰였을 뿐이고, 나무꼭두는 망자에 삿된 것들이 들러붙지 못하게 지키고 극락으로 인도해 주는 길잡이로 쓰였다는 것이 다를 뿐이지요. 민화의 주된 지킴이 역할처럼 상여에는 사방으로 나무꼭두 지킴이들이 잡귀들이 얼씬도 못하게 ‘잡귀야 물러가라!’ 라고 외치고 있는데, 감히 어떤 잡귀가 접근하겠습니까.

 

글 : 김용권 (문학박사/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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