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의 이념과 백성들의 열망이 고스란히 담긴 책거리

책거리는 학문을 숭상했던 조선시대 문화를 대변하는 그림 중 하나다. 18세기에 시작되어 오늘날까지도 끊임없이 사랑받을 수 있었던 책거리의 매력은 무엇인지 그 이면의 이야기를 살펴보도록 하자.


책가도冊架圖란 책가冊架안에 책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기물들을 같이 그린 그림을 말하며 순우리말로 ‘책거리’라고도 한다. 책거리란 볼거리, 길거리, 먹을거리, 일거리 등의 말처럼 명사 뒤에 붙여 사용하는 용어이다. 즉, 책가가 있는 그림은 물론이고 책과 각종 기물까지 나열하는 형식을 취한 그림까지 포괄한다. 따라서, 책거리는 단어의 본래 의미보다 더 넓게 봐도 무방할 것이다.
책거리는 소유자의 취향이나 입맛에 따라 첨가하거나 빼서 그려도 구도상 별로 어색하지 않은 장르다. 책거리에는 책을 중심으로 문방사우와 진귀한 장식품과 일상생활용품, 취미용품들을 그려 넣으며 여기에 각종 과일과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이 자유롭게 결합하며, 소재에 따라 학문정진, 출세, 장수, 부귀영화, 다산, 청빈, 부부금슬, 풍류 등 다양한 의미가 담기기도 한다.
책거리로 유명한 화원은 조선시대 최고의 책거리 화가로 일컬어지는 이형록(후에 이응록, 이택균으로 개명함)이 있다.
이형록은 할아버지 이종현, 아버지 이윤민의 뒤를 이어 3대째 책거리를 그린 화원집안 출신이다. 한편, 김홍도도 책거리 그림을 많이 그렸다고 하나 전하는 작품이 없다.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책가도 병풍은 장한종이 제작한 것으로 현재 경기도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책을 사랑한 나라 조선

책거리가 등장한 배경에는 조선의 정치적 이념의 영향이 컸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은 유교를 정치·문화·사상의 지도적 이념으로 삼았고, 학문을 숭상하는 사대부가 왕을 보좌하며 문치文治를 표방한 국가이다. 그런 조선에게 책은 지식을 습득하고 생각과 정보를 전달하는 중요 수단이었다. 따라서 국왕은 왕권을 위해서 책의 인쇄와 보급을 적절하게 통제하기도 했다.
사대부 등의 상류층 역시도 책을 몹시 사랑했다. 이들은 지식에 대한 갈증을 겪고 있었고, 17세기 중반부터 중국에 파견된 조선 사행단이 가지고 들어온 청나라 서책과 문물을 통해 이를 해소할 수 있었다. 당시 조선은 매년 세 차례에 걸쳐 중국에 사행단을 파견했으며 보통 200~300명 정도의 인원으로 구성되었다. 조선의 외교 사신들은 북경에서 책 목록이 적혀 있는 기다란 종이를 들고 서가를 기웃거리며 책을 찾고, 읽고, 필사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17세기 한 중국학자가 쓴 기록에는 조선 사신들의 책에 대한 관심이 서술되어 있다. “조선인들은 책을 가장 사랑한다. 북경에 파견 온 조선 사행단은 매일 장터에 나가 고전 및 신서, 통속소설을 비롯해 조선에 없는 모든 책에 대해 사람들에게 묻고 가격에 상관없이 사들인다. 중국 희귀본들을 조선에서 찾을 수 있다.”

책거리를 사랑한 왕, 정조

사도세자의 아들이며 영조의 손자인 정조(재위 1776~1800)는 특히 책을 사랑했다. 정조는 왕실 내에 규장각奎章閣이라는 서고를 설치하여 독서로 다듬어진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학자들을 발굴하여 왕권강화의 디딤돌로 삼는 등 책을 통해 문치文治를 구현하고자 했다.
정조는 책을 사랑하는 만큼, 책가도도 몹시 사랑했다고 한다. 그는 왕의 상징이었던 어좌 뒤의 일월오봉도를 치우고, 대신 책가도 병풍을 펼치기도 했다. 1791년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남아 있다. “정조가 어좌 뒤의 책가도를 둘러보며 대신들에게 말하기를 “이 그림에 있는 책을 경들이 어찌 진짜 책이라고 여기겠는가? 예전에 정이程頤가 이르기를 비록 책을 읽을 수 없다 하더라도 서실에 들어가 책을 어루만지다 보면 오히려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였다. 나는 이 말의 의미를 이 그림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심지어 정조는 당시의 유명 화원인 신한평과 이종현이 책거리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귀양을 보낼 정도였다.
한편, 정조는 도화서圖畫署에서 선발한 10명의 화원을 규장각에 파견 근무하게 하여 정조 자신이 직접 그림을
주문·제작하게 하는 자비령화원慈悲嶺畫員이라는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시행하였는데, 이때 궁중화원들도 정조의 명에 따라 책가도를 그렸다.

책가도에서 책거리로


책가도는 왕실과 양반사대부가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궁중화원들이 그린 책가도 병풍은 아마도 서가를 바탕으로 하는 격식 있고 서책들로만 가득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 청나라 문물이 유입되면서 책가도는 변형되기 시작한다.
당시 중국에서는 다보각경多寶各景 또는 다보격多寶格이란 장식장에 도자기나 청동기, 옥 등의 진귀한 물건들을 진열한 모습을 그린 서양화풍의 그림이 유행하였는데, 이러한 화풍은 조선의 책가도에도 영향을 주었다. 책가도에는 점점 서책이 사라지고 대신 청나라의 화려한 도자기나 시계, 안경 등의 값비싼 기물들로 가득찼고, 급기야 호피장막으로 덮힌 책거리까지도 등장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 상류층에서는 중국에서 유행한 값비싼 장식품들을 수집해 장식장에 진열해 놓고 감상하는 문화가 유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상류층에서 시작된 책거리 열풍은 점차 경제적으로 안정되어가고 있던 수·상공업자·농민의 집안을 장식하는 그림으로 인기를 얻는다. 이 과정에서 책가도의 구성은 변하기 시작한다. 궁중이나 상류층에서 각광을 받던 책가에 꽂힌 책과 기물들을 그린 책가도는 민간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책가가 더욱 줄고 대신 도자기, 꽃, 과일, 동물 등의 다른 기물들이 등장하게 된다. 즉, 기존 책가도의 틀이 깨지고 ‘책거리’라는 새로운 형식을 띠게 된 것이다. 이제 책가도에는 서가 대신 소형 탁자가 등장하며, 그 위에 책과 기물들이 쌓아있다던가, 책과 문방사우뿐 아니라 값비싼 도자기, 청동 골동품 등의 장식품과 거문고나 생황과 같은 악기를 비롯해 은장도, 남바위, 담뱃대, 부채, 복주머니, 노리개, 안경, 향로, 술병과 술잔, 바둑판과 마작과 같은 일상생활용품 등도 표현된다.
또한 포도, 오이, 가지, 수박, 석류, 복숭아, 불수감, 옥수수, 감 등과 같은 다산의 상징인 씨 많은 과일과 채소도 등장하며, 매화·난초·국화·대나무 등의 사군자와 모란, 연꽃, 장미, 수선화, 진달래, 목련, 원추리 등의 갖가지 꽃과 장수, 금전, 부부 금슬을 상징하는 잉어, 금붕어, 나비, 호랑이, 용 등 상서로운 동물들도 다양하게 등장한다. 즉, 책거리는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의 개성과 취향이 그대로 표현된 주문·제작형 그림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왕실과 양반사대부가에서 시작되어 궁중화원의 손에 의해 엄격한 형식으로 그려진 책가도가 점차 일반 백성들에게 확산되면서 그들의 원초적 욕망과 결합되어 구성이 바뀌고 마침내 책거리로 변한 것이다. 더불어 민화 책거리는 궁중 책거리에 비해 붙이는 공간이 협소한 관계로 제한된 화면에 온갖 기물들을 압축하여 그려 넣을 수 밖에 없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책거리의 크기는 점차 작아졌고, 동시에 다양하고 자유로운 구도의 시도도 이루어졌다.
한편 민화 책거리는 상징의 의미도 바뀌어서, 책은 이제 정치적 도구가 아닌 출세의 상징이 되었고, 값비싼 기물들도 진기한 골동품이 아닌 행복을 기원하는 상징이 됐다. 또한 기물들도 점차 중국 것에서 우리 것으로 바뀌었다. 이를테면 중국에서 수입한 값비싼 도자기는 조선의 청화백자와 같은 국산품으로 바뀌었고, 중국의 진귀한 기물이 행복과 사랑의 상징인 화사한 꽃과 과일로 대체됐다.

가장 많이 사랑받는 민화, 책거리

오늘날 민화작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그림 중 하나가 책거리이다. 시렁으로 구획된 책거리의 면분할과 구성은 창작하기에 좋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책거리에 나오는 각 기물들의 이름이나 사용처 등은 책거리를 표현하는데 있어 반드시 알아야 한다. 이왕이면 알고 그리는 것이 표현하기 위해서도 훨씬 그 폭과 깊이가 더할 것이다.
민화 책거리에서는 화면에 보이는 다양한 요소들을 결합시키기 위해 확대원근법과 같은 전통화법을 구사한다. 제한된 화면에 온갖 기물을 배치하여 가로로 긴 책거리를 표현하는가 하면 세로로 긴 그림도 얼마든지 제작할 수 있다.
공간을 무한대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사용되는 역원근법은 전통회화에서 오래전부터 사용한 기법이다. 표현하고자 하는 사물들을 하나씩 끼워 넣으며 응축된 공간 안에서 표현하고자 하는 길상의 상징들을 빠짐없이 부각시킬 수 있는 것이 민화 책거리의 큰 매력이다. 조선의 선배화가들이 그랬듯 옛 기물들을 빼고 그 자리에 새로운 것으로 채우면 근사한 현대 책거리가 나오는 것이다.
요 몇 년간의 대대적인 민화관련 행사는 우리 역사 속에서 자생적으로 발전한 민화에 대한 관심의 폭을 넓혀 해마다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공모전과 전시를 갖게 하고 있으며 민화인구는 이전과 비교하여 두 배나 증가하였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마주 대하기 편안한 그림, 미소 짓게 하는 그림, 못 그려도 용서되는 그림,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그림, 여럿이 함께 보면 더 좋은 그림, 행복과 즐거움을 주는 우리 그림 민화가 우리들의 손에 의해 오늘도 그려지고 있다.
이처럼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열망을 고스란히 담아내며 날로 성장하는 민화. 그 중심의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책가도는 전통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조형세계를 지니고 있어 지나간 과거뿐 아니라 현재 우리 곁에서 여전히 숨쉬고 있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사랑받을 수 있는 그림이라 하겠다.


글 금광복 (대한민국민화전승문화재, (사)한국민화협회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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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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