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소반의 아름다움 그 첫 번째, 이 작은 상에 담긴 그 많은 이야기

나전연입형일주반 조선후기, 지름 32.5cm, 높이 19cm
이 작은 상에 담긴 그 많은 이야기

우리나라 소반은 참으로 아름답다. 단어를 그대로 풀이해 ‘작은 상’이라고 정의하기엔 너무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다. 시대마다 종류별, 용도별로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우리네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화려하게 또 소박하게 삶을 빛내준 소반을 2회에 걸쳐 소개하려고 한다. 소반의 아름다움을 이해하고 그 종류까지 세세하게 살피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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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소반小盤

“소반은 작은 상이다”
이렇게 짧게 정의해 버리자니 너무 아쉽다. 그러면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해 보자. 소반은 평평한 반면盤面과 다리로 이루어진 작고 낮은 상이다. 다리가 지나치게 낮거나 없으면 소반이라기보다 쟁반이라 해야 할 것이고, 반대로 다리가 지나치게 높으면 책상이나 탁자에 가깝다고 해야 한다.
정확하게 소반의 범위를 정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우리가 말하는 이러한 범주의 소반을 그냥 쉽게 ‘밥상’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본래 조선시대에는 소반의 모양을 달리 하여 밥상 용도 이외에 잔치상 또는 아기 돌상 등 여러 용도로 사용하였으며 때로는 찻상, 술상으로도 사용하고 공고상이라 하여 요즘의 철가방처럼 음식을 상에 담아 머리에 이고 나르는 배달용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물론 주된 용도는 음식을 차려 놓고 먹기 위한 것이다. 특히 궁에서는 궐반이라 하여 민가에는 사용이 금지된 주칠과 흑칠을 하고 호화로운 조각을 하는 등 고급스러우면서도 왕실의 위엄을 간직한 훌륭한 소반이 있는가 하면, 동네 어귀에 있던 주막에서는 술과 안주가 가득한 소반의 모습을 조선시대 회화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조선시대 전통 소반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느 한 곳 모난 곳이 없이 둥글려져 있어 우리 선조들의 너그러운 마음이 그대로 배어 있는 듯하다. 때로는 다리판에 투각을 하기도 하고, 운각에 조각을 하기도 하였으며 천판에 자개를 넣기도 하는 등 멋을 부렸으나 눈에 거슬릴 만큼 화려하거나 유치하지는 않다. 때로는 박쥐, 모란, 십장생 문양 등을 새겨 넣은 소반이 있는 반면 그냥 아무 것도 없는 소박한 소반도 있다. 조선시대 소반 모두에는 우리 선조들의 건강과 평안을 바라는 염원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 소반의 역사

고대 미술사를 통해 우리의 소반에 관한 자료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우선 고구려 벽화 중 하나인 ‘안악3호분’ 동실 북벽에 묘사된 <부엌도>에는 음식상으로 여겨지는 소반의 모습이 보인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부엌 안에는 세 여인이 있는데 한 여인은 아궁이에 쭈그리고 앉아서 불을 지피고 있고, 또 한 여인은 그 아궁이가 있는 부뚜막 위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다. 나머지 한 여인은 허리를 굽혀 접시를 상위에 정리하는 모습이 보이는데 여기에 보이는 상의 형태가 사각의 천판에 4개의 다리를 부착한 것으로, 다리는 밖으로 벌어진 모습을 하고 있어 안정감이 있는 형태이며 부엌 안에서 접시를 올린 형상으로 보아 소반으로 여겨진다.
이 상을 자세히 보면 다리가 그리 높지 않은 모습이며 여인이 허리를 굽힌 각도나 여인들의 키로 비교하여 보면 우리나라 전통 소반의 높이와 비슷하게 보여 좌식생활에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무용총’ 주실에 그려진 <무용도>에도 음식을 운반하는 두 여인이 보이는데 한 여인은 다리가 있는 상에 음식을 담아 운반하고 있으며 뒤따르는 여인은 다리가 없는 쟁반에 음식을 담아 나르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그림에서 보이듯 두 여인이 그릇이 놓인 소반을 사뿐히 받쳐 들고 가는 모습과 소반(쟁반) 위에 작은 그릇을 두세 개 정도 올린 것으로 보아 이들은 얇은 판재인 천판과 다리 부분으로 짜여 있으며 여인이 쉽게 들어 나를 수 있는 작은 크기로 제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를 비교하여 보면 무용총에 그려진 음식상은 소반의 기능 중 음식을 나르는 기능과 식탁의 기능을 모두 보여주는 조선시대의 소반과 같은 개념의 것이라고 여겨진다.
또한 ‘각저총’ 현실 북벽의 <묘주부부좌상도>에는 두 여인이 앉은 상태에서 각자의 앞에 상을 받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이 또한 입식생활의 탁자라기보다는 좌식문화의 소반에 더 가깝다고 여겨진다.
고려시대에는 실질적인 소반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 어려우나 여러 문헌에 이와 유사한 기물의 사용에 대한 기록이 있어 그 짜임과 형태를 유추해 볼 수 있다. 특히 1123년 중국 송나라 사신이었던 서긍이 기록한 《고려도경》에 보면 고려의 음식문화에 대한 설명과 함께 반, 조 등 일부 소반과 같은 음식상에 대한 기술이 있다.
고려시대만 해도 일부 좌식 문화가 혼용된 입식문화로 보이며, 소반의 사용이 보편적이고 본격적으로 된 시기는 온돌문화 및 평좌생활이 주를 이루는 조선시대이다. 물론 왕실의 연회 등에서는 탁자를 많이 사용한 기록을 볼 수 있으나 평시에는 대부분이 소반을 사용했다.
조선시대 초기 기록인 《세종실록》 권128 오례, 길례, 서례의 <제기도설>에 의하면 “조는 길이 일척 팔촌, 너비 팔촌 오픈의 방형으로 다리는 곡선이며 족대를 대었고 중앙에는 흑칠을 하였으며, 양단에는 주칠을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를 통해 조선시대 초기 소반의 전형적인 형태를 유추해 볼 수 있다.

안악3호분, <부엌도>
각저총, <묘주부부좌상도>
무용총, <무용도>
 
소반의 기능과 발전
조선시대 소반행상(나주반)

▲조선시대 소반행상(나주반)

먼저 소반을 주로 사용했던 조선시대의 주택 구조에 대해 알아보자. 조선시대의 주택은 신분에 따라 크게 양반과 서민가옥으로 나눌 수 있다. 주인의 지위에 따른 경제적인 여건, 생활 형태, 지역적 풍속 등에 따라 주방의 크기와 부속 공간의 구조를 달리했다. 조선 중기 이후에 부엌은 안방과 붙여 만들었는데 이는 안주인이 부엌으로 출입하는데 편리하도록 만든 구조이다. 안방 주인이 거처하는 방에는 부엌과 대청, 다락과 벽장, 또한 찬방까지 딸린 경우도 있다. 양반집에 있었던 찬방은 부엌의 한 부분으로서 맷돌질, 지짐질 등의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며 이곳에 음식이나 살림살이를 두기도 했다.
반면 일반적인 서민들의 주택 구조는 취사와 난방을 겸하는 부엌과 방, 마루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중부 지방과 남부 지방, 산간과 평야, 도시와 농촌에 따라 조금씩 다른 구조를 보인다. 남쪽 지방의 농민 가옥인 경우 부엌과 방, 윗방의 순서로 배치된 일자형 구조이기 때문에 부엌도 다른 방과 같이 밝고 통풍도 잘 되었다. 중부 지방에서 발달한 ㄱ자 집에서도 부엌은 안방에 붙여서 지었으므로 다른 공간보다도 햇볕이 적당하게 들어오고 통풍이 잘되고 여성이 왕래하기에 편리했다.
조선시대 주택의 경우 난방용 온돌 구조 특성에 따라 부엌의 바닥면이 지표보다 낮으며 부엌에는 식사를 위한 공간이 마련되지 않았으므로 조리된 음식을 소반 위에 올려서 방으로 날라야 했다. 따라서 소반은 음식을 나르는 쟁반의 기능과 식사를 하는 식탁의 기능을 겸하여야 하기에 가볍고도 많은 양의 음식을 나를 수 있도록 독특한 구조로 발전되어 왔다. 더욱이 식기食器들이 무거운 유기鍮器나 도기陶器 재질이며 대부분 여성들이 음식상을 차리고 운반해야 했으므로 가능한 한 소반의 무게를 줄이고 혼자서 들고 나르기에 알맞은 크기가 요구되었다. 따라서 소반의 상판인 천판을 여인네의 어깨 넓이보다 약간 넓게 재단하여 들기에 편안하게 하고, 얇은 판재의 사용으로 무게를 줄였으며, 다리와 운각은 무거운 상체를 받칠 수 있도록 견고한 짜임형식을 취했다.
민가에서 일반적으로 쓰이던 소반을 살펴보면 너비가 약 40~50cm 내외이다. 이 너비는 여인네가 부엌에서 소반을 들고 마당을 지나 대청에 오르고 안방이나 사랑방으로 이동하는데 적당한 것으로 보인다. 소반의 높이도 보통 25~30cm 내외로 여인네가 몸을 심하게 구부리지 않고 팔을 움직이는데 큰 불편이 없으며, 앉은 상태에서 소반의 음식을 섭취하기 위해 팔을 움직이는데도 효율적인 높이다. 이처럼 우리 선조가 사용한 조선시대 소반이 인체공학적인 설계와 견실한 짜임이 자연적으로 적용되어 제작되고 사용되었다는 점에 새삼 우리 선조의 자연을 순조롭게 이용하는 기질과 슬기를 찾을 수 있어 매우 놀랍다.
조선시대에는 집집마다 소반을 여러 개씩 구비하고 있었다. 이는 유교이념의 영향으로 남녀유별과 남녀노소의 위계질서位階秩序가 확연하여 겸상이 아닌 독상을 차렸으므로 상차림과 운반의 횟수가 많았고 이에 따라 대가大家에서는 용도와 규모별로 상당한 숫자의 소반을 생활필수품으로 보유하고 있어야 했다. 민가에서도 최소한 2~3개는 보유하고 있었으므로 전국적으로 그 수요는 셀 수가 없을 정도이며, 장터에서 거래되는 전문 소반상은 물론 소반을 지고 다니며 파는 행상도 상당히 발달했다.

소반의 목재와 칠

소반의 목재로는 은행나무, 가래나무, 호두나무, 느티나무, 피나무, 소나무 등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이들 목재는 넓은 판재를 손쉽게 구할 수 있고 얇아도 쉽게 터지거나 비틀리지 않는 장점이 있다. 소반의 경우는 음식을 먹기 전후에 늘 물기 있는 행주로 닦아내기 때문에 목재에 좀이나 벌레가 들기 쉽고 판재가 갈라질 염려가 있다. 또 부엌에서 방으로 옮겨야 하므로 가벼우면서도 넓은 판재를 선호했다.
이들 중 우리가 보통 행자목이라 부르는 은행나무의 경우 비교적 넓은 판재를 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으며 얇은 판재를 사용해도 터지거나 잘 휘어지지 않아 소반의 판재로는 으뜸이다. 행자목에 옻칠된 소반은 두말할 것도 없이 최상품이다.
호두나무는 넓은 판재를 구할 수 있어 소반재로서 사용되기는 하나 은행나무에 비하여 단단하고 무거운 편이다. 해주반과 같이 통판을 파내어 테두리인 변죽을 구성하는 형식에서는 단단한 변죽을 얻을 수 있으며 견고하여 관리에 쉬우므로 선호하는 이도 있다.
소나무는 한옥의 기둥에서부터 실내 가구에 이르기까지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수종으로 수축팽창의 변화가 별로 없으며 우리나라 전역에 산재되어 자라고 있기 때문에 자재를 손쉽게 구할 수 있다. 나뭇결 또한 시각적으로 안정되어 보인다. 특히 촉감이 부드럽다. 습기에 강하고 단단하며 넓은 판재를 구할 수 있어 소반용 목재로 나쁘지 않다.
피나무는 강원도 산간 지방을 비롯한 우리나라 전역에서 널리 자라고 있는 수종이다. 비교적 부드럽고 온순한 재질과 넓고 두꺼운 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어 자귀나 까뀌로 속을 파내는 함지와 목물레인 갈이틀로 회전시켜 제작하는 원반 등에 사용된다.
느티나무는 동네 어귀나 쉼터에서 그늘을 만들어 쉬게 하는 정자목으로 수명이 길며 높고 굵게 잘 자라는 나무다. 나뭇결이 아름다워 가구의 판재, 상자와 함, 필통 등에 애용되는 미장재이나 다른 목재에 비하여 무겁고 비틀리는 것이 단점이라서 소반목으로는 적합지 않다. 그러나 천판의 아름다운 무결을 보고자 하는 이는 사용하기도 한다.
목재로 제작된 소반에 취색하지 않은 상태를 백골소반白骨小盤이라 부르는데, 표면에 식물성 기름이나 옻칠을 하면 소반의 표면에 흠이 생기거나 때가 묻는 것을 막고 방수의 기능도 해 준다. 또 건조된 나무에 적당한 양의 기름을 바름으로써 수명을 연장시키고 동시에 미장효과美裝效果도 얻을 수 있다. 자연색 그대로의 목재 표면에 기름칠을 하여 신선한 분위기를 얻기도 하나, 나뭇결을 잘 살리고 또 중후한 감을 주기 위해 착색한 후 칠을 입히기도 한다. 상등품 소반에는 옻칠을 여러 번 반복 칠하였는데 옻칠은 그 특성으로 인해 기물을 보호하고 충해 방지, 광택 유지 등 여러모로 다른 칠에 비해 격조 있는 고급스러움을 유지해 준다.
이렇듯 우리의 소반은 우연하게 생겨난 것이 아니라 재료 선택에서부터 크기 제작에까지 조선시대의 사회 철학, 주거 환경, 식생활 습관 등 모든 것이 반영된 종합 건축물의 축소판으로 여겨진다. 정말 좋은 조선 소반을 얻고자 한다면 직접 소반에 손을 대보고 선조들의 숨결을 느껴야 한다.

 

글 : 박주열(나락실 갤러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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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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