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궁성의 장식 미술(6), 수백 년 궁궐을 지켜온 수호신 천록天祿과 귀면鬼面

▲그림1 창덕궁 금천교(錦川橋)

수백 년 궁궐을 지켜온 수호신 천록天祿과 귀면鬼面

조선시대 각 궁궐 건축물 중에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전각은 근정전(경복궁), 인정전(창덕궁), 명정전(창경궁), 중화전(덕수궁), 숭정전(경희궁)과 같은 정전正殿이다. 정전을 궁궐의 중심 공간이라고 할 때 정문에서 이곳에 이르는 길은 과정적 공간이라 말할 수 있다. 이공간 초입에 석교가 놓여 있는데, 이 다리를 통칭하여 금천교禁川橋라 한다. 궁궐마다 있는 이 다리는 실용과 편의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권위 공간과 일상의 공간을 구분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다리에 배치된 신수神獸, 귀면鬼面 등의 벽사상은 정전을 사귀邪鬼로부터 보호하여 궁궐 전체를 상서로운 분위기로 유지하는 기능을 한다.

궁궐의 수호신, 하늘의 사슴 천록天祿

조선의 궁궐 정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금천교禁川橋다. 창덕궁 금천교錦川橋, 창경궁 옥천교玉川橋, 경복궁 영제교永濟橋가 그것이다. 경복궁의 경우를 보면 흥례문과 근정문 사이를 흐르는 명당수 위에 영제교가 놓여 있는데, 이 다리는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을 때 엉뚱하게 근정전 동쪽으로 옮겨졌다가 근래에 흥례문 권역 복원사업을 통해 원위치로 돌아온 내력을 가지고 있다. 다리 사방에 네 마리 신수神獸가 배치돼 있는데, 기이한 형상과 어구御溝를 엎드려 경계하는 자세와 표정이 압권이다. 그 모습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몸체는 물고기 비늘로 덮여 있고, 머리와
얼굴에는 가지런히 빗어 넘긴 갈기, 삼지창 모양의 외뿔, 왕방울 같은 눈과 풍성한 나선형 눈썹, 펑퍼짐한 코, 두꺼운 입술과 턱수염이 묘사되어 있다. 네 다리는 넓고 두터운 비늘로 덮여 있으며 세 개의 발가락 마다 위협적인 발톱이 나있고 네 다리에 화염각이 표현돼 있다. 한마디로 괴이하고 초현실적인 동물형상이다. 한때 이 석수가 사자로 잘못 알려진 적이 있었다. 그것은 임진왜란 때 종군한 일본인 승려 석시탁釋是琢이라는 자가 자신의 ≪조선일기朝鮮日記≫에 기록한 다음과 같은 기사 때문이다.

 

“다리(영제교) 좌우에 석사자石獅子 네 마리를 안치하여 다리를 호위케 했다. 중앙에는
깎은 돌로 여덟 자의 어도御道를 마련하고 석사자를 간손 건곤 모서리에 두었는데
모두 사사 십육 마리이다(橋之左右 安置石獅子四匹而令護橋 基中央以削石 疊垣八尺
置石獅子於艮巽乾坤隅者 四四 十六疋矣).”

그런데 이덕무李德懋의 ≪청장관전서≫ <이목구심서 4> 편을 보면 그 내용이 이와 좀 다르다.


“경복궁 어구 곁에 엎드린 석수石獸가 있다. 얼굴은 새끼 사자 같은데 이마에 뿔이 하나 나있고 온 몸에는 비늘이 있다. 새끼 사자인가 하면 뿔과 비늘이 있고, 기린인가 하면 비늘이 있는 데다 발이 범과 같아서 이름을 알 수가 없다. 후에 상고해 보니 중국 하남성 남양현 북쪽에 있는 종자宗資의 비碑 곁에 두 마리의 석수가 있는데, 그 짐승 어깨에 하나는 천록天祿이라 새겨져 있고, 다른 하나는 벽사辟邪라 새겨져 있다. 뿔과 갈기가 있으며 손바닥만 한 큰 비늘이 있으니 바로 이 짐승이 아닌가 싶다. …남별궁南別宮에도 이런 짐승이 하나 있는데 바로 경복궁에서 옮겨 온 것이다.”

여기서 남별궁이란 서울 남쪽, 지금의 회현동에 있었던 조선시대 별궁으로, 당시에는 중국 칙사를 접대하는 장소로 쓰인 곳이다. 세속에 전하기를 남별궁은 태종 조 부마駙馬 조대임의 집이라 하기도 하고, 청나라 이여송이 조선에 왔을 때 잠시 머물렀던 소공주 댁이라 하기도 한다. 한편, 이덕무가 지은 <한양풍물>이라는 장편 시 중에 경복궁에 관한 다음과 같은 대목이 있다.

▲그림6. 혀를 내민 천록(영제교 서편 북측)

▲그림6. 혀를 내민 천록(영제교 서편 북측)

“어구에 흐르는 물이끼 끼어 푸르고, 벽사 천록이 마주 꿇어앉았네(御溝流水碧於苔辟邪天祿相對跪).”(《청장관전서》 아정유고12 성시전도)

이것은 영제교 주변 석수를 두고 읊은 것으로 그 이름을 천록과 벽사라고 했다. 한편, 조선 영조 때의 선비 유득공이 쓴 <춘성유기春城遊記>에도 이 석수에 대한 내용이 보인다.


“1770년 3월 6일 경복궁에 들렀다. 궁의 남문(광화문) 안쪽에 다리가 있다. 다리 동쪽에 천록 두 마리가 있고, 다리 서쪽의 한 마리는 비늘과 갈기가 꿈틀거리는 것처럼 완연하게 잘 조각돼 있다. 남별궁 뒤뜰에 등에 구멍이 파인 천록이 있는데, 이와 똑같이 닮았다. 그런 관례가 없음에 비추어 필시 다리 서쪽의 것 하나를 옮겨 간 것이 틀림없다(又翌日入景福古宮 宮之南門內有橋。橋東有石天祿二。橋西有一鱗鬣。蜿然良刻也。
南別宮後庭有穿背天祿。與此酷肖。必移橋西之一而無掌故可證也).”(《영재집》 〈춘성유기〉)

이 내용에 의하면 유득공이 영제교를 찾았을 때는 천록이 세 마리만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은 다리 모퉁이마다 한 마리씩 모두 네 마리가 배치돼 있다. 동편 남쪽의 것은 등에 제법 큰 구멍이 나 있는데, 유득공이 남별궁에서 보았다는 바로 그 놈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유득공의 말대로라면 이 놈은 영제교 서편 북쪽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동편 남쪽에 있으니 이놈의 현 위치가 잘못된 셈이다.
이렇게 된 것은 일제강점기에 총독부청사를 지을 때 다리를 해체하여 근정전 동편으로 옮길 때 잘못된 것이 아닌가 의심이 간다.
어쨌든 영제교 주변의 석수 이름이 천록임이 밝혀졌는데, 고전古典을 통해 천록에 관한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후한서≫ <영재기>에는 “왕궁을 수리할 때 동인銅人과 황종黃鐘을 각각 네 개, 그리고 천록과 벽사를 구리로 만들었는데, 뿔 하나를 가진 것이 천록이고, 둘을 가진 것을 벽사라 한다.”고 했고, ≪십주기十州記≫에는 “취굴주에 벽사와 천록天鹿이 있다”고 했다. 이를 통해 천록의 또 다른 이름이 천록天鹿임이 확인된다. ≪한서≫ <서역전> 맹강의 주孟康注에서는 “뿔이 하나 있는 것을 천록이라 하고 뿔이 둘인 것을 벽사라 한다”고 했는데, 이것은 영제교 천록의 외형적 특징을 확인하는 근거가 된다.
천록 역시 용이나 봉황처럼 여러 동물의 신체 일부분을 본뜨고 조합해서 만든 상상의 동물이다. 온 몸을 덮은 비늘도 그런 요소 중 하나로, 수중 동물인 물고기 몸을 빌려온 것이다. 비늘을 가진 물고기는 이상할 것이 없지만 비늘 덮인 짐승은 기이한 느낌을 주고, 그러한 형상은 경외감과 공포감을 야기한다. 결국 외뿔, 물고기 비늘 등 천록이 가진 독특한 신체적 특징은 경외감과 공포감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묘책이자 수단인 셈이다.
영제교 주변의 네 마리 천록 중에서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은 혀를 길게 내밀고 있는 놈이다. 이 모습은 조선 석공의 해학 정신의 발로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으나 그 보다는 천록의 도상적 특징을 따른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왜냐하면 권위공간인 궁궐의 모든 장식들은 그것을 제작하는 장인들의 개인적 취향이나 감정을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천록을 전각과 문 앞에 세우고, 다리 위나 무덤, 사당 입구에 세운 것은 고대 한漢나라 때부터다. 그 목적은 외래 사기의 궁궐 침입을 막아 흉하고 사악한 것을 제거하며, 또한 보물 등 재화를 지키려는 데 있었다. 조선시대 궁궐의 진입 공간 초입에 놓인 금천교에 천록을 배치한 이유 역시 궁궐을 신성하고 상서로운 공간으로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사악한 무리를 경계하는 벽사의 화신, 귀면鬼面
▲그림9. 창덕궁 금천교 남측 귀면

▲그림9. 창덕궁 금천교 남측 귀면

창덕궁 금천교, 창경궁 옥천교, 경희궁 금천교양측에 귀면이 장식돼 있다. 홍예 교각 사이에 끼워 넣은 역삼각형 면석에 부조돼 있는데, 치켜 올라간 눈썹, 왕방울 같은 눈, 이빨을 드러낸 입, 머리 위로 휘날리는 갈기 등의 표현이 위협적이다.
귀면이란 말 그대로 귀鬼의 얼굴을 나타낸 것이다. ‘귀鬼’라는 글자는 ‘由(말미암을 유)’ ‘几(안석 궤)’ ‘厶(사사로울 사)’의 3자가 합쳐 만들어진 회의문자다. ‘유由’는 기괴한 얼굴을 상형한 것이고, ‘궤几’는 ‘인人’자를 변형시킨 글자이며, ‘사厶’는 ‘사私’자의 원형이다.
인간은 누구나 생生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한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사람의 모습을 추악한 모습으로 상상하기 마련이다. 다시 말하자면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상상한 것이 귀鬼인 것이다. 총각귀, 처녀귀라는 것도 처녀, 총각이 비명횡사한 귀鬼이고, 망령, 유령 또한 귀와 같은 성격의 것이다. 결국 귀鬼라는 것은 인간의 사심에 의해 구상화된 괴이한 형상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인데, 사람들은 이 귀가 자유자재한 초능력을 가진 존재로 믿어 귀에 의존하여 사귀를 물리치려는 이중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정초에 호랑이 그림이나 ‘虎’자를 쓴 종이를 대문에 붙이는 것은 호랑이의 용맹성을 빌려 벽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로 귀면을 궁궐 다리에 장착해 놓은 것은 귀신의 초능력을 빌려 금천을 건너오는 역질과 사귀를 물리치기 위한 것이다. 결코 사랑스럽다거나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귀면을 다리에 장식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림10. 경희궁 금천교 북측 귀면

▲그림10. 경희궁 금천교 북측 귀면

귀면의 눈을 왕방울처럼 크게 표현한 것은 역병을 옮기거나 사기邪氣를 퍼트려 사람을 해치는 잡귀들을 샅샅이 색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왕방울 눈으로도 부족하다 싶으면 방상씨 가면과 같이 네 개의 눈을 가진 귀면을 만들어 색출 능력을 강화하기도 한다. 또한 위협적인 표정을 짓게 하는 것은 잡귀가 귀면을 보고 놀라 달아나게 하기 위함이다. 결국 귀면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욕망과 상상력이 만들어 낸 것으로, 인간이 내면적으로 가지고 있는 또 다른 귀鬼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금천교의 귀면을 용의 정면관正面觀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실제로 용을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한 사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어좌를 뒤쪽에서 3곡으로 에워싸고 있는 곡병曲屛의 정상부, 그리고 곤룡포 전·후면에 수놓는 보補에서 정면관의 용을 볼 수 있다. 곡병에는 몇가지 형태의 용의 모습이 장식돼 있는데, 정면을 바라보는 용, 좌우 멀리 바라보는 용, 달리는 용 등이 그것이다. 이들 은 각각 상룡祥龍, 망룡望龍, 행룡行龍으로 불리는데, 정면관으로 된 상룡은 길상의 징조, 조화와 상서로움, 기쁨과 즐거움을 상징함과 동시의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

▲그림11. 곡병의 상룡, 덕수궁 중화전 어좌 곡병

▲그림11. 곡병의 상룡, 덕수궁 중화전 어좌 곡병

보補에 수놓는 용 역시 같은 상징적 의미를 가진다. 그런데 여기서 확인하고 넘어갈 것은 정면관의 용은 얼굴과 함께 몸 전체가 완전히 드러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금천교에 새겨진 상을 보면 몸은 없고 얼굴만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정면관의 용이 아니라 귀면인 것이다.

궁중에서 귀면은 생소한 존재가 아니다. 귀면은 귀면와로서 지붕 위에 올라가 있기도 하고, 역귀疫鬼를 쫓은 궁중행사인 나례儺禮 의식 때도 등장한다. 이 귀면은 역귀를 놀라게 하여 물러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귀면을 금천 다리에 새긴 목적도 정전 진입의 초입에서부터 사기의 침입을 막아 궁궐 내부 공간을 상서로운 공간으로 유지하려는 데 있는 것이다.

▲그림12. 용문 보 목판,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그림12. 용문 보 목판,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고대인들은 관념을 상징화하거나 시각화하고, 조형화된 것으로부터 다시 관념을 이끌어 내었다. 금천교의 천록과 귀면도 궁궐을 보다 안전하고 상서로운 곳으로 만들려는 길상 욕망의 구상적 표현의 하나다. 이 상을 보는 이들이 배후에 숨은 고대인의 정신세계와 욕망을 감지해 낸다면 이들은 단순한 건축 장식으로서가 아니라 살아 움직이는 길상 벽사의 첨병으로
재탄생하게 될 것이다.

 

글 : 허균(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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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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