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궁성의 장식 미술(3), 근정전의 사신과 십이지상

그림 5 흠경각
근정전의 사신과 십이지상

우주宇宙는 단어 그 자체가 이미 말해주고 있듯이 시간과 공간의 융복합체다. 공간은 상하와 사방위로 인지되고, 시간은 현상의 변화상으로 파악된다. 고대인들은 동서남북 네 방위의 구체적 인지 방법으로 청룡·백호·주작·현무의 사방신四方神을 거론했고, 북두칠성 운행을 관찰하고 천시天時의 흐름을 파악했다. 천시에 응하는 땅의 변화상을 문자로 표시한 것이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의 십이지 문자이고, 그 문자를 동물로 대체한 것이 십이생초十二生肖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경복궁 근정전 주변의 사신상과 십이지상은 지상에 구현된 우주모형이라 할 수 있다.

1. 근정전 월대의 사신상과 십이지상
그림1 근정전 월대의 사신상, 십이지상 배치도

▲그림1 근정전 월대의 사신상, 십이지상 배치도

근정전 주변에는 다양한 종류의 석조 장식이 베풀어져 있는데, 이들 중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이 사신상과 십이지상이다. 그 면모를 살펴보면, 사신四神의 청룡은 상월대上月臺 동쪽, 백호는 서쪽, 주작은 남쪽, 현무는 북쪽에 자리 잡고 있다. 한편, 십이지 동물은 월대 북쪽에 쥐, 동쪽에 토끼, 소, 뱀이 있고, 남쪽에 말, 서편에 양, 원숭이, 닭이 배치돼 있다.

사신상과 십이지 동물상이 정전 둘레에 배치된 것은 동아시아 궁궐제도가 처음 확립된 중국에서도 볼 수 없는 경복궁만의 자랑이자 특징이다. 각 십이지상은 외호外護 성격을 가진 통일신라기 왕릉의 무장형武裝形 십이지신상이나 고려와 조선의 왕릉의 수관인신형獸冠人身形 십이지신상과 달리 신비적 요소가 전혀 없는 귀엽고 순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것은 고대 중국에서 시간을 나타내는 수단으로 활용된 십이생초와 같은 모습이다. 근정전 주변의 십이지상이 벽사상이 아닌 시간 개념을 가진 십이지상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림 2. 사신상(왼쪽부터 현무, 청룡, 백호, 주작)

▲그림 2. 사신상(왼쪽부터 현무, 청룡, 백호, 주작)

 

사신상의 경우 배치에 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십이지상의 경우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구석이 없지 않다. 《궁궐지》에서는, “월대 상하층에 석난간이 있는데, 문로주 머리에 12방위에 응하는 물형을 조각했다(月臺 上下層 有石欄干 門路柱石頭 各應十二方位 以物形刻之)”라고 서술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모든 방위에 십이지상이 배치돼 있지 않다.
쥐·토끼·말·닭은 각각 북, 동, 남, 서의 제 자리를 점하고 있고, 뱀·양·원숭이도 제 방위를 지키고 있으나 개와 돼지는 보이지 않는다. 용과 호랑이도 찾을 수 없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없으나 이미 사신인 청룡과 백호가 있기 때문에 중복을 피해 그렇게 한 것으로 추측된다. 또 하나 궁금한 것은 토끼 바로 남쪽문로주 위에 앉은 소처럼 생긴 동물이다. 이것이 소라면 자리를 잘못 차지한 셈이다. 방위로 볼 때 이 자리는 십이지 용이 있어야 할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곳에 소가 배치되게 된 이유는 용을 배치하자니 사신의 청룡과 중복이 되고, 그렇다고 멀리 북서 방위의 개나 돼지를 가져올 수도 없기 때문에 동북 방위의 소를 대신 가져와 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림 30 십이지상

▲그림 3. 십이지상

 
2. 사신의 정체

세종 때의 천문학자 이순지李純之(1406~1465)가 편찬한 천문지 《천문유초天文類抄》를 보면, 하늘을 동방·서방·남방·북방과 중궁中宮으로 나누고, 각 방위의 성좌를 청룡·백호·주작·현무 형상으로 서술했다. 각 성좌는 7개의 별로 이루어졌으며 각 별의 이름은, 청룡의 경우 각角·항亢·저泗·방房·심心·미尾·기箕, 백호는 규奎·누婁·위胃·묘昴·필畢·비脾·삼參, 주작은 정井·귀鬼·유柳·성星·장張·익翼·진軫· 현무는 두斗·우牛·여女·허虛·위危·실室·벽壁 등이다. 별에 뿔[각角], 목구멍[항亢], 꼬리[미尾], 위장[위胃], 심장[심心], 지라[비脾], 날개[익翼] 등의 동물 신체 부위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고대인들이 천계 사방의 별을 보고 무엇을 상상하고 무엇을 생각했는지 알 수가 있다.
우리나라 사신상의 가장 오래된 유례는 통구 사신총을 비롯한 고구려 벽화고분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모습을 보면, 청룡은 끝이 말린 뿔과 매끈한 이마, 길게 내민 혀, 넓고 뾰족한 귀와 찢어진 눈, 몸통 굵기의 꼬리, 기다란 몸뚱이에 비늘이 붙은 파충류 비슷한 모습이고, 백호는 머리는 호랑이, 몸은 용과 흡사하며, 목과 꼬리가 가늘고 긴 파충류와 비슷한 모습이다. 그리고 주작은 수탉이 날개를 편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봉황의 형상이 수탉과 같다는 고대 관념과 무관치 않다. 끝으로 현무는 거북과 뱀이 혀를 길게 빼고 얼굴을 서로 마주하는 모습으로 묘사돼 있는데, 여기서 뱀은 수컷 곧 양을, 거북은 암컷 곧 음을 상징한다.
경복궁 근정전 상월대의 사신상은 고구려 고분의 사신상에서 볼 수 있는 신비한 요소는 전혀 볼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이 가진 방위 신으로서의 기본 성격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3. 십이지 문자의 자의字意

오랜 세월동안 십이지는 ‘자·축·인·묘…子·丑·寅·卯…’ 등의 문자로 표시돼 왔다. 그러나 십이지문자는 보통의 한자와 다른 차원에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천시天時의 흐름에 따른 지상의 음양 변화를 나타내는 상징 부호 같은 성격을 가진 문자이기 때문이다. 십이지를 주역 괘와 연결시켜 보면 십이지와 음양 변화의 관계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그림 4 참조). 이를 염두에 두고 십이지 문자가 가진 상징적 의미를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그림 4. 십이지와 역괘易卦

▲그림 4. 십이지와 역괘易卦

子 : ‘자子’는 ‘자滋’와 같은 뜻으로, ‘자滋’는 불어나거나 늘어남을 의미한다. 음력 11월(동짓달)에 해당되는데, 11월은 일양지월一陽之月이라고 하며, 양기가 미세하게 태동하기 시작하는 계절이고, 만물이 불어나려고 하는 계절이기 때문에 그 상태를 ‘자滋’와 발음이 비슷한 ‘子’라는 글자로 표기한 것이다.

丑 : ‘축丑’은 ‘유紐’ 자에서 ‘사糸’를 떼낸 글자로, ‘유紐’와 마찬가지로 ‘맨다’, ‘묶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丑’은 음력 12월(섣달)에 해당된다. 이 달은 이양지월二陽之月로서 양기가 11월보다 좀 더 강해져서 싹이 트려고 하지만 아직도 음陰의 기운이 비교적 강하게 남아 있기 때문에 음의 기운에 묶여있는 상태다. 이 상황을 ‘丑’으로써 표시한 것이다.

寅 : ‘인寅’은 ‘연演’에서 ‘수氵’를 떼 낸 글자로 ‘연演’과 같이 ‘윤택하다’, ‘이끌어 내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寅’은 음력 1월에 해당되는데, 이 달은 삼양지월三陽之月로서 양기가 강해지면서 지렁이가 꿈틀대고 만물이 살아나기 시작하는 달이다. 이 때에 ‘三陽回泰삼양회태’라고 쓴 입춘방을 대문에 붙이는 풍습이 있는데, 양기가 생동하는 봄의 시작을 축하하는 의미가 있다.

卯 : ‘卯’는 ‘묘茆’에서 ‘초艹’를 떼 낸 글자로 ‘묘茆’처럼 우거진 모양을 나타낸다. ‘묘卯’는 음력 2월에 해당되는데, 이 달은 사양지월四陽之月로서 양기가 본격적으로 강해지면서 새싹이 땅위로 솟아 나오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때문에 이 달을 ‘묘茆’자로 나타낸다.

辰 : ‘진辰’은 ‘진震’, ‘진蜄’ 또는 ‘진振’의 의미를 가진 글자로서, 각 글자에서 ‘진辰’ 부분을 취한 것이다. ‘넓게 퍼진다’는 의미가 있다. ‘진辰’은 음력 3월에 해당되는데, 이 달은 오양지월五陽之月로서 양기가 충만하여 만물이 세력을 펴면서 활기를 되찾고, 농민들은 농사를 짓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巳 : ‘사巳’는 ‘이已’와 같은 뜻을 가진 글자이며, ‘이已’는 ‘이미’의 뜻이 있다. ‘사巳’는 음력 4월에 해당되는데, 이 달은 순양지월純陽之月로서 양기가 극에 달해 그 증가하는 세력이 끝나는 시기다. 양기를 기준으로 보면 이미 그 세력이 끝난 것이기 때문에 ’이已‘의 뜻을 가진 ‘巳’로 표시하는 것이다.

午 : ‘오午’는 ‘오仵’ 또는 ‘오忤’의 뜻을 가진 글자로서 ‘짝’, ‘교차하다’, ‘거스르다’는 의미를 가진다. ‘오午’는 위의 두 글자에서 각각 ‘인亻’ 과 ‘심忄’을 떼 낸 글자다. 음력 5월에 해당되는데, 이 달은 일음지월一陰之月로서 음기가 아래로부터 태동하여 상승하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음이 양의 기운에 필적하여 양의 대세를 거스르기 시작하는 계절이다.

未 : ‘미未’는 ‘미味’ 또는 ‘매昧’를 뜻하는 글자이다. ‘미味’는 맛이고, ‘매昧’는 ‘어둡다’, ‘애매하다’는 뜻을 지닌다. ‘미未’는 위 두 글자에서 ‘구口’ 또는 ‘목目’을 떼 낸 글자다. 음력 6월에 해당되는데, 이 달은 이음지월二陰之月로서 음기가 점차로 강해지지만 아직도 양기의 세력이 더 강하여 과실이 성숙하여 맛을 내는 시기이지만 아직은 미숙한 단계이다.

申 : ‘신申’은 ‘신呻’의 뜻을 가진 글자로서 ‘신呻’은 ‘신음한다’는 의미다. ‘신申’은 ‘신呻’에서 ‘구口’를 떼 낸 글자다. 음력 7월에 해당되는데, 이 달은 삼음지월三陰之月로서 만물이 그 몸체를 다 갖추어 견고해지기 시작하는 시기다.

酉 : ‘유酉’는 ‘수秀’의 뜻으로 만물이 다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유酉’는 또한 노경老境에 들어 모든 것을 수렴하여 부족함이 없는 상태, 또는 정한定限의 극도에 이른 상태를 말한다. ‘유酉’는 음력 8월에 해당되는데, 이 달은 사음지월四陰之月로서 모든 성장이 중지되면서 완숙 단계로 들어가는 시기다.

戌 : ‘술戌’은 ‘휼恤’과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로 ‘측은하다’는 뜻과 함께 벗어나거나 떨어져 나간다는 의미를 지닌다. ‘술戌’은 음력 9월에 해당되는데, 이 달은 오음지월五陰之月로서 음기가 강하여 모든 것이 생기를 잃어 추레하고 측은한 모습을 보이는 시기다.

亥 : ‘해亥’는 ‘핵核’을 의미하는 글자로, ‘핵核’은 ‘단단한 껍질로 싸여있는 씨앗’을 말한다. ‘해亥’는 ‘핵核’에서 ‘목木’을 떼 낸 글자다. ‘해亥’는 음력 10월에 해당되며, 이 달은 순음지월純陰之月로서 음기가 극한 상태가 되면서 양기는 아래로 숨어들어 씨앗 속에 갈무리된다. 씨앗은 모든 가능성은 갖추고 땅 속에 묻혀 있으면서 곧 다가올 ‘자滋’의 시기를 준비하고 있게 된다.

4. 흠경欽敬의 정신
그림 5 흠경각

▲그림 5. 흠경각

근정전 주변의 사신상과 십이지상에서 중요한 것은 왜 그것을, 그곳에, 그런 형태로 배치해 놓았는가 하는 것이다. 그 사상적 배경은 ‘흠약호천 경수인시欽若昊天 敬授人時’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조선왕조의 역대 왕들은 천하를 다스림에 있어서 하늘을 공경하고 천지 운행의 이치에 따라 백성에게 일할 때를 알려주는 것을 군주의 중요임무로 생각했다. 그 사상적 연원은 고대 요堯임금이 보여준 흠경欽敬의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요임금은 “희씨와 화씨에게 명하시어 하늘을 삼가 따르게 하시고, 해와 달과 별들의 운행을 관찰하여 백성들에게 때를 알리도록 했다(乃命羲和 欽若昊天 曆象日月星辰 敬授人時)”(《서경》 우서 요전). 1438년, 세종이 흠경각을 경복궁 내에 설치한 것도 바로 요임금의 덕정德政을 이 땅에 재현하려는 의지의 발로였다. 흠경의 정신은 조선조 역대 왕들을 통해 계승되었는데, 지금 경복궁 교태전 서쪽에서 볼 수 있는 흠경각(1995년 복원)이 그 역사의 자취다.
세종은 흠경각이 완성되자 우승지 김돈金墩에게 명하여 ‘흠경각 기문’을 쓰게 했는데 그 내용을 통해, 흠경각 안에 황금으로 만든 해가 떠있고, 동·서·남·북 사방에 청룡·백호·주작·현무의 사신상이, 열 두 방향에 십이지신상이 배치돼 있었고, 사방에 봄·여름·가을·겨울을 상징하는 경치가 꾸며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흠경각의 십이지상과 사신상, 동물상과 인물상, 경치 등은 시간과 계절과 방위, 즉 우주의 존재 이치와 운행의 원리를 보여주는 장치였던 것이다.
근정전 동쪽 협문의 이름을 일화문日華門으로, 서쪽 협문의 이름을 월화문月華門으로 명명한 것이나, 근정전 북쪽 사정전의 동·서쪽 전각 이름을 춘春·추秋 개념을 적용한 만춘전萬春殿·천추전千秋殿으로 명명한 것도 모두 흠경의 정신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는 것들이다.
경복궁 근정전 남쪽 근정문에서는 해(일화문)와 달(월화문)이 뜨고 지며, 근정전 북쪽 만춘전과 천추전에서는 봄가을이 오고간다. 그 가운데 자리한 근정전 월대에는 사신상으로 상징되는 동서남북 공간 세계가 펼쳐 있고, 십이지신상으로 상징되는 우주 시간이 흐르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의 배경에는 하늘의 도를 지상에 구현하여 그와 지위를 나란히 하려는 천인합일 사상과 하늘의 뜻에 따라 국리민복을 추구했던 조선 왕의 흠경의 정신이 자리 잡고 있다 하겠다.

 

글 : 허균(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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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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