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궁성에 남은 천변만화의 주인공, 용

그림 1. 상룡과 행룡. 덕수궁 중화전 어좌

*그림 1. 상룡과 행룡. 덕수궁 중화전 어좌

조선 궁성의 장식 미술(1)

전설상의 동물, 용은 변화의 능력과 신기를 지녀 지극히 상서롭게 여겼다. 아무도 본 적이 없지만, 용의 종류와 모습은 꽤나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시대 왕궁에서 사용한 용의 도상을 찾아 분석해보았다. 궁중의 장식 미술에 쓰인 도상이 민화에도 많이 전래되었다. 앞으로 이처럼 조선 궁성의 곳곳을 장식한 장식 미술을 소개하고자 한다.

1. 용의 정체

용은 중국 고대 전설상의 동물로, 인충의 우두머리다. 봉황·기린·거북이와 함께 사령四靈의 하나이며, 십이지 동물 중 다섯 번째에 배속돼 있다. 용은 봄에 하늘로 올라가고 가을에 연못에 숨으며, 바람을 삼키고 구름을 토해 비를 내리게 한다. 능히 숨고 나타날 수 있으며, 길고 짧아질 수 있다. 또한 구름 속에서 학을 연모하면 봉황을 낳고, 육지에서 암말과 짝을 지으면 기린을 낳는다고 한다. 용의 천변만화의 능력과 무소불위의 신통력은 실로 끝이 없다.
《주역》에서 용은 양陽의 동물이며, 9×9, 즉 81개의 비늘이 있어, 양수 최고의 수인 9를 거듭 갖춘 양의 극치라 하고 있다. 팔괘로 따지면 진괘震卦에 해당되는데, 진은 방향으로 보면 동쪽이며, 성질로 보면 태동, 상승을 뜻한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용이 동쪽에서 승천하는 것을 지극한 상서로 여겼다. 궁궐 동문에 그려진 용이 이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큰 사이즈로 보실 수 있습니다.

2. 용의 종류

용이 가진 무한한 능력만큼 용의 종류도 다양하다. 《산해경》에서는 용은 비늘이 있는 교룡, 날개가 있는 응룡, 뿔이 있는 규룡, 뿔이 없는 이룡 등 네 종류의 용이 있다고 하며, 용생구자설龍生九子說에서는 비희, 이문, 포뢰, 폐한, 도철, 공복, 애자, 금예, 초도 등 각기 성격이 다른 아홉 종의 용이 있다고 한다. 또한 오행, 오방색과 연관된 용으로 청룡과 황룡이 있으며, 자태에 따라 수평으로 움직이는 행룡, 꼬리를 아래쪽에 둔 승룡, 반대인 강룡, 하늘을 나는 비룡, 똬리를 튼 반룡, 정면을 바라보는 상룡祥龍 등이 있다. 성질에 따라 물을 좋아하는 청룡晴龍, 불을 좋아하는 화룡도 있다.
용이 가진 신령스러운 능력은 용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부여한 것이다. 그러나 고대인들은 용의 권능을 빌려 그들의 욕망을 이루고자 했고, 군왕들은 용과 함께 함으로써 자신의 권위와 위엄을 드러내려고 했다. 용은 건축, 공예, 조각, 회화, 복식 등 여러 분야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으며, 특히 도성이나 궁궐 장식에서 용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컸고 의미는 막중했다.

3. 용의 도상

《이아爾雅》 <익翼>조에 의하면 용의 머리는 소, 뿔은 사슴, 눈은 새우, 귀는 코끼리, 목은 뱀, 비늘은 물고기, 발톱은 봉황, 발바닥은 호랑이를 닮았고, 입 주위에 수염, 턱 밑에 야광주, 목 밑에 거꾸로 된 비늘이 있고, 등에 81개의 비늘이 있어 9·9의 양수를 갖췄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입은 말, 눈은 게, 수염은 양, 뿔은 사슴, 귀는 소, 갈기는 사자, 비늘은 잉어, 몸은 뱀, 발톱은 매를 닮았다는 설이 있고, 또한 머리는 낙타, 눈은 귀신, 귀는 소, 뿔은 사슴, 목은 뱀, 배는 이무기, 비늘은 잉어, 손톱은 매, 손바닥은 호랑이를 닮았다는 설도 있다.
용은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인간에게 드러내 보여준 적이 없다. 그러나 그 모습을 그리는 화가는 멋대로 상상해서 그려서는 안 되었다. 고려의 이색이 <신룡도神龍圖>에 제한 내용을 보자.
“요즘 화가의 용 그림은 귀신 그림 같아서 방상시 머리에다 뱀 꼬리 붙여놔도 용 본 사람이 드문지라 그럴 듯이 믿고는 구름 속에 들어간 듯 몽롱하게 현혹된다. 정공政公은 분발하여 실물처럼 그리려고 비늘 하나 눈 하나에 참모습을 그려내니…. (이색 《목은시고》)” 용 그림은 아무렇게나 그려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당시 선비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조선 조정에서는 화원들에게 한 획도 틀림이 없는 용 그림을 주문했다. 특히 중국에 보내는 예물禮物 상자를 장식하는 용을 잘못 그린 경우 화원에게 응분의 책임을 물었다. 용을 그릴 때 특히 유의해야 하는 것은 발톱의 수였다. 발톱의 수가 황제, 왕, 왕족의 상하 구별을 뚜렷이 하는 부호 역할을 함과 동시에 겸양의 덕을 고양시키고 기강을 바로잡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고종 이전까지는 왕의 보補의 경우 사조룡을 사용했으나 고종 때부터 오조룡을 사용했다, 그러나 건축 장식 그림이나 장식품의 경우에는 이런 질서가 지켜지지 않았다. 예컨대 경복궁 근정전 천장의 용의 발가락은 7개로 되어 있고, 덕수궁 중화전 천장의 용의 발가락은 5개로 되어 있다.

4. 도성과 궁성 문의 용

건축적 의미에서의 문의 개념은 ‘공간 영역을 구분하는 경계와 그 영역을 드나드는 통로’로 정의할 수 있다. 문이 갖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안과 밖을 잇는 통로 역할을 함과 동시에 안과 밖 공간을 구별하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문의 바깥쪽이 정면正面이 되고 안쪽이 배면背面이 되며, 사방에 문을 냈을 때는 남쪽 문이 정문이 되고, 북쪽 문이 후문이 된다. 그러나 정조가 축성한 수원 화성의 경우에는 북문인 장안문이 정문 역할을 했다. 그 이유는 왕이 한양에서 화성으로 행차 할 때 가장 먼저 사용하게 되는 문이기 때문이었다.
대문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것이 도성문이고, 상징성이 가장 큰 문이 정문이다. 조선 태조는 한양을 도읍으로 정한 후 도성을 쌓고 사대문과 사소문을 냈다. 남쪽의 숭례문을 정문으로 하여, 흥인지문, 돈의문(현재 없음), 숙정문을 동·서·북 방위에 설치했다. 4대문 사이에 4소문을 내었는데, 동북쪽의 홍화문(현 혜화문), 동남쪽의 광희문(일명 수구문), 서남쪽의 소덕문(일명 서소문, 현재 없음), 서북쪽의 창의문이 그것이다. 이들 도성문에는 아치형 문로門路의 천장 평판에 신수神獸가 그려져 있는데, 용과 봉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그림 6. 서울 숭례문 문로 천장의 용 그림
그림 7. 서울 흥인지문 문로 천장의 용 그림
그림 8. 수원 화성 장안문의 용 그림
그림 9. 황룡 장식. 경복궁 근정전 천장 중앙
그림 10. 황룡 장식. 덕수궁 중화전
그림 11. 운룡도. 경복궁 사정전 내벽
그림 12. 경복궁 건춘문. 문로 천장의 용 그림
 

1) 한양 4대문의 용 그림

숭례문은 태조 4년(1395)에 짓기 시작하여 7년(1398)에 완성을 본 한양 도성의 남문이다. 태조 이후 세종, 성종 연간에 큰 보수 공사가 있었고 그 후로도 여러 차례 단청공사가 있었다. 해방 후에도 다섯 차례에 걸친 단청 보수공사가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세부나 색채에 변화가 어느 정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문 천장에 그려진 용의 도상과 배치 양식은 고례古例를 유지했을 것으로 믿어진다.
숭례문 문로門路 천장 평판에 황룡과 청룡, 두 마리 용이 그려져 있었다. 이 그림에서 주목되는 것은 일반적인 쌍룡 그림과 다른 구도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쌍룡 그림은 중앙의 여의주를 중심으로 두 마리 용이 그 양쪽에서 대칭 자세를 취한 형태로 그려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숭례문의 경우 두 용이 여의주 반대편을 향해 있고, 좌우가 아니라 상하로 용을 배치하고 있어 실제로 도성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청룡을 먼저 본 다음 황룡을 보게 된다. 밖으로 나가는 사람은 그 반대로 황룡을 먼저보고 나중에 청룡을 보게 된다.
그런데 동문인 흥인지문의 경우에는 천장 그림의 용의 배치가 숭례문과 다르다. 여의주를 가운데 둔 두 마리 용이 좌우에서 얼굴을 마주보고 있는 일반적 패턴으로 되어 있다. 용의 몸이 뱀이 똬리를 튼 것과 같이 굴곡이 매우 심하게 표현되어 있고, 여백이 수많은 오색구름으로 채워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수원 화성의 장안문 문로 천장에도 용이 그려져 있다. 수원 화성은 정조가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수원으로 옮기면서 축성하기 시작해서 정조 20년(1796)에 완성한 도성이다. 장안문은 수원 화성의 정문으로 사용된 문으로 숭례문보다 규모가 크다. 흥미로운 것은 용 그림 패턴이 숭례문의 것과 같다는 점이다. 즉 숭례문 용 그림처럼 좌우가 아니라 상하 대칭 구도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구도는 경복궁 건춘문에서도 볼 수 있는데, 다른 문보다 문로의 길이가 길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도성 문 천장에 그림을 그려 놓은 예를 숭례문, 흥인지문, 장안문 외에도 서울의 창의문(봉황), 홍지문(구름), 광희문(쌍룡), 혜화문(봉황), 그리고 수원 화성의 창룡문(단룡), 화서문(단룡), 풍남문(쌍봉, 주작) 등에서 찾을 있는데, 내용은 용이 주류를 이루고, 봉황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2) 궁궐의 용 장식

정전正殿 천장의 황룡

경복궁 정전인 근정전 천장에 두 마리의 황금빛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면서 승천하는 형상이 장식되어 있다. 덕수궁 정전인 중화전 천장 중앙에도 두 마리의 황룡이 조각돼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 황룡은 임금의 권위를 상징함과 동시에 사방위신(청룡·백호·주작·현무)의 중앙에 군림하면서 천지사방을 관장하고 있다.
용이 임금을 상징하게 된 것은 용 자체가 가진 무소불위의 능력, 벗겨지지 않는 신비감, 범접하기 어려운 위엄에 기인한다. 고대로부터 한 나라의 왕은 항상 그의 지위를 용과 나란히 하려 했고, 용의 힘을 빌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려 했다. 용이 지닌 상징적 의미를 활용하는 것은 말하지 않고도 왕의 능력과 권위를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역경易經》 <건괘 구오九五>에 “비룡재천飛龍在天 이견대인利見大人”이라는 설명에서 보듯이 용의 승천은 지극한 상서의 징조요, 최고의 지위에 오름을 의미한다. 용이 승천하여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려 만물을 적셔 주듯이 임금이 백성들을 보살피는 것을 용덕龍德이라 한다. 용덕을 갖춘 임금이 이 용처럼 높은 곳에 임하고 있으면 어진 신하와 백성들이 우러러보게 보게 되는 것이다.

 

사정전 운룡도

경복궁 사정전은 태조 때 창건되었고, 고종 때 중건되었다. 사정전이라는 전각 이름에는 임금이 깊이 생각하고 세밀하게 살펴 백성을 편안하게 다스린다는 뜻이 담겨있다. 사정전 내부 북벽에 비교적 큰 운룡도가 장식되어 있는데, 재현된 것이지만 두 마리 용이 구름 속에 몸을 감추기도 하고 드러내기도 하는 모습이 신령스럽다.
구름과 용의 관계에 대해 당나라 시인 한유韓愈는 이렇게 말했다. “용이 기운을 토하여 구름을 이루매 구름도 역시 영괴한 것이니, 그것은 용이 그렇게 만든 것이요, 용의 신령함은 구름이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용은 구름을 타지 않으면 그 영이靈異함을 신묘하게 할 수 없으니 그 의탁한 바는 스스로 하는 것이다.”
왕도정치의 근본은 어진 신하를 얻는 데 있다. 현명한 임금이 있음으로 해서 어진 신하가 있고, 어진 신하가 있음으로 해서 임금은 더욱 훌륭해질 수 있다. 왕은 덕과 지혜로써 신하를 다스리고, 신하는 왕이 깊이 생각하고 세밀하게 살필 수 있도록 보필한다. 신하가 충성스러운 것은 왕이 그렇게 만든 것이고, 왕이 어진 것은 신하가 그렇게 도운 것이다. 사정전 운룡도에는 왕도정치에 대한 군신의 화합과 경사스러운 만남[慶會]의 세계가 펼쳐있다.

3) 경복궁 건춘문의 용 그림

그림 13. 건춘문 문루門樓의 청룡 부조

▲그림 13. 건춘문 문루門樓의 청룡 부조

건춘문은 경복궁의 동문이다. 전통시대의 방위는 음양오행설과 관련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동쪽은 오행상 목木에, 오행색으로는 청靑에. 그리고 계절로는 봄에 해당된다. 건춘문 문루 벽에는 ‘진색가창震索駕蒼’이라는 말과 함께 용의 상이 부조浮彫되어 있고, 문로 천장에는 용 그림이 그려져 있다. 주역에서 ‘잔震’은 동방을 의미하고, 진괘震卦는 발전을 의미하는 괘이다. 그리고 ‘가창駕蒼’이란 ‘창룡蒼龍(靑龍)을 탄다’는 뜻이다. 이것은 때를 따라 발전하여 완성에 도달하는 상태가 푸른 용을 타고 하늘을 달리는 모습과 같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동쪽에는 사신四神(청룡·백호·주작·현무)의 하나인 청룡이 배속된다. 건춘문은 만물의 생성과 창조, 왕조의 무한한 발전과 용덕龍德(용이 하늘을 날아 구름을 일으키고 비를 내려 땅위의 만물을 적셔주는 것과 같이 군왕이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여 천하의 인민을 유익하게 함)을 상징하는 문이다.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건춘문에 그려진 용 그림이다.

profile. 허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허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편수연구원
– 우리문화연구원장
–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 국립문화재연구소 외부용역과제 평가자문위원
– 現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글 : 허균(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저자에 관하여

월간 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