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ì§€ì‹ì¸ë“¤ì˜ 서화 ì´ì•¼ê¸° ⑳ ë¶í•™íŒŒ, ë°•ì œê°€ì˜ ì„œí™” ì´ì•¼ê¸°

ë„1 명문징명우여춘수축明文徵明雨餘春樹軸, 1507ë…„, 94.3×33.3ãŽ, ìžìœ ì¤‘êµ­ 국립고ê¶ë°•ë¬¼ì› ì†Œìž¥
– 봄비가 내린 í›„ì˜ ì´ˆëª©ê³¼ ê·¸ 사ì´ë¥¼ 문ì¸ë“¤ì´ 유유히 í•œê°€ë¡œì´ ê±·ê±°ë‚˜ ì´ì•¼ê¸°í•˜ë©° ìƒ˜ë¬¼ì„ ë°”ë¼ë³´ê³  있다.
ì´ ê·¸ë¦¼ì€ ë¬¸ì§•ëª…ì´ 1507ë…„ì— ì¹œêµ¬ë“¤ì˜ í–¥ìˆ˜ë¥¼ 풀어 주기 위해 ê³ í–¥ì˜ í’ê²½ì„ ë¬˜ì‚¬í•œ 것ì´ë¼ê³  한다.

현재와 ì‹¤ìš©ì„ ì¤‘ì‹œí•˜ë‹¤â…¡

지난 ì‹œê°„ì— ì´ì–´ ë°•ì œê°€ì˜ ì„œí™” ì´ì•¼ê¸°ë¥¼ 전한다. ì‹¤í•™ì˜ ëŒ€í‘œìž ë°•ì œê°€(朴齊家, 1750~1805)는 뛰어난 실력으로 ì •ì¡°(正祖, 재위 1776~1800) 때 ì´ë•무(æŽå¾·æ‡‹, 1741~1793), 유ë“ê³µ(柳得æ­, 1748~1807) 등과 함께 검서관檢書官으로 ë°œíƒë˜ì—ˆê³ , 1778년부터 1801ë…„ì— ì´ë¥´ëŠ” 기간 ë™ì•ˆ ìƒì•  한 ë²ˆë„ ê°€ê¸° 어려운 ì²­ë‚˜ë¼ ì—°ê²½ç‡•äº¬ì„ ë„¤ 번ì´ë‚˜ 다녀왔다. 청나ë¼ì—서 ë³´ê³  ë“¤ì€ ê²ƒì„ ì •ë¦¬í•˜ì—¬ 펴낸 《ë¶í•™ì˜åŒ—學議》는 ê²½ì œì  ë…¼ë¦¬ì™€ 현실 ì§ì‹œë¥¼ 강조한 ì‹¤í•™ì˜ ëŒ€í‘œì  ì €ìˆ ì´ì—ˆë‹¤. 박제가는 당시 ì§€ì‹ì¸ìœ¼ë¡œì„œ 시·그림·글씨ì—ë„ ë›°ì–´ë‚œ ìž¬ì§ˆì„ ë³´ì˜€ë‹¤.

글 ìž„ìƒì„  (ë™ë¶ì•„역사재단 명예연구위ì›)


ë„2 하창묵죽ë„ì¶•å¤æ˜¶å¢¨ç«¹åœ–軸, 지본紙本,
116×52.3ãŽ, 중국 ê³ ê¶ë°•ë¬¼ì› ì†Œìž¥

– 그림 중간 ì˜¤ë¥¸ìª½ì— â€˜ì˜í’迎風’ì´ë¼ëŠ” 화제가 있고, 줄ì„
바꾸어 ‘ë™í˜¸í•˜ì°½í•„æ±æ˜Šå¤æ˜¶ç­†â€™ì´ë¼ë©° ìž‘ìžë¥¼ ë°í˜”다.

ë°•ì œê°€ì˜ ì„œí™”ê´€

박제가는 서화가 선비들ì—게 필요하며, ê·¸ë¦¼ì„ ë³¼ 때는 ‘화ì˜ç•«æ„’를 ì½ì–´ì•¼ 한다고 ìƒê°í–ˆë‹¤.

글씨와 ê·¸ë¦¼ì€ ì§„ì‹¤ë¡œ 기예 중ì—ì„œë„ ìž‘ì€ ê²ƒì´ë‹¤. 그렇다고 선비가 ì´ê²ƒì„ 버려ë‘ê³  ë§í•˜ì§€ 않는 것 ë˜í•œ 잘못ì´ë‹¤. 지금 사람 중ì—는 ì˜†ëª¨ìŠµì„ ê·¸ë¦° ì¸ë¬¼í™”를 보면서 나머지 í•œìª½ì˜ ê·€ë¥¼ 찾는 ìžê°€ 있다.
-《정유ê°ì§‘》 하권, 문집2, 〈제문형산화첩후발題文衡山畫帖後跋〉

서화가 ìž‘ì€ ê¸°ì˜ˆì§€ë§Œ ì´ê²ƒì„ 알지 못하면 ì¸ë¬¼í™”를 ë³´ê³  나머지 한쪽 귀를 찾는 ìˆ˜ì¤€ì— ë¨¸ë¬¸ë‹¤ê³  여겼다. 그러나 박제가는 문징명(文徵明, 1470~1559)ì˜ í™”ì²©ì— ìžˆëŠ” 〈산간정춘수ë„山澗亭春水圖〉와 ê±°ê¸°ì— ë¶™ì€ ì œë°œì„ ë³´ë©° 가슴ì†ìœ¼ë¡œ ì–¸ë•ê³¼ 골짜기, ê·¸ê³³ì˜ í’ê²½ì„ ìƒìƒí•˜ë©° 그림 ì†ì˜ 주ì¸ê³µì„ 만나고파 했다(ë„1).

í•˜ì°½ì˜ ë¬µì£½ë„

ëª…ëŒ€ì˜ ë¬¸ì¸ì´ìž ë¬µì£½ì˜ ëŒ€ê°€ì˜€ë˜ í•˜ì°½(夿˜¶, 1388~1470)ì˜ ã€ˆë¬µì£½ë„墨竹圖〉를 ë³´ê³  ìŠì€ 시ì—는 ë°•ì œê°€ì˜ ë†’ì€ ê°ì‹ì•ˆì´ 잘 드러나 있다(ë„2).

그림 ì† ëŒ€ë‚˜ë¬´ë¥¼ ë³´ì§€ 않고야
ë°”ëžŒì´ ë¶ˆì–´ì˜¤ëŠ” ê³³ì„ ì–´ì´ ì•Œë¦¬ì˜¤.
여울물 왼편ì—서 튀어 오르니
ìŸê¸€ìŸê¸€ 물소리 고요치 않네.
(중략)
한 줄기는 그림ìžë¡œ ë‹´ë°•í•¨ì„ ê²¨ë£¨ê³ 
한 줄기는 웃는 ë“¯ì´ ê·¸ 줄기 여리구나.
ë‹´ê·¼ ì˜¤ì– ë„ìš´ 참외 목마름 못 ì´ê¸°ë‚˜
ì´ ê·¸ë¦¼ ë°”ë¼ë³´ë©° 찌는 ë”위 ì‹ížŒë‹¤ë„¤.

(후략)

-《정유ê°ì§‘》 중권, 시집3, 〈하태ìƒë¬µì£½ê°€å¤å¤ªå¸¸å¢¨ç«¹æ­Œã€‰

〈묵죽ë„ã€‰ì˜ ì •ê²½ì´ ëˆˆì— ë³´ì´ë“¯ 잘 묘사ë˜ì–´ 있다. 박제가는 í•˜ì°½ì˜ ã€ˆë¬µì£½ë„〉 ëª…ì„±ì´ í˜¸ì£¼æ¹–å·ž, 즉 ë¶ì†¡ì˜ 묵죽화가로 ì´ë¦„난 문ë™(æ–‡åŒ, 1018~1079)ì— ë’¤ì§€ì§€ 않는다고 í‰í•˜ì˜€ë‹¤. ì²­ë‚˜ë¼ ì„œì‹¬(徿², 1626~1683ï¼‰ì´ ì§€ì€ ëª…ë‚˜ë¼ 870ì—¬ ëª…ì˜ í™”ê°€ ì—´ì „ì— ì˜í•˜ë©´, í•˜ì°½ì€ ì´ë¦„ì„ íƒœìƒå¤ªå¸¸ì´ë¼ê³ ë„ 하고, ìžëŠ” 중소仲昭, 호는 ìžìž¬ê±°ì‚¬è‡ªåœ¨å±…士, 강소江蘇 ê³¤ì‚°ì¸æ˜†å±±äººì´ë¼ 하였다. í•´ì„œæ¥·æ›¸ì— ëŠ¥í–ˆê³ , 대나무 ê·¸ë¦¼ì€ ë‹¹ì‹œ ì œì¼ë¡œ 칭송ë˜ë©° ê·¸ì˜ í•œ 줄기 대나무는 금 ì—´ ë©ì´ ê°’ì´ë¼ëŠ” ì†Œë¬¸ì´ ìžˆì„ ì •ë„였다. ã€Šëª…í™”ë¡æ˜Žç•µéŒ„》 ê¶Œ7, 묵죽墨竹, ã€ˆí•˜ì°½å¤æ˜¶ã€‰
나아가 ì„ì–‘ê³µìžçŸ³é™½å…¬å­(ì´ì •æŽéœ†, 1554~1626)와 수운峀雲(유ë•장柳德章, 1675~1756)ì—게 í•˜ì°½ì˜ ë¬µì£½ë„를 그리게 하면, ë¶“ 벼루를 불태우고 ì†ê°€ë½ì„ êº¾ì„ ê²ƒì´ë¼ 했다. 박제가는 ì¡°ì„ ì˜ 3대 묵죽화가로 ì¼ì»¬ì–´ì§€ëŠ” ì´ì •ê³¼ 유ë•ìž¥ë„ í•˜ì°½ì—게는 미치지 못한다고 여긴 것ì´ë‹¤.

ë„3 ì´ì¸ë¬¸ì˜ ê°•ì‚°ë¬´ì§„ë„æ±Ÿå±±ç„¡ç›¡åœ–, 보물, 견본絹本,43.9×856ãŽ,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5ê°œì˜ ë¹„ë‹¨ì„ ìž‡ëŒ„ 바탕 ìœ„ì— ëì—†ì´ íŽ¼ì³ì§„ ê°•ê³¼ ì‚°, 다양한 ì‚¬ëžŒë“¤ì˜ ëª¨ìŠµë“¤ì´ ê·¸ë ¤ì ¸ 있다.
ë†’ì€ ê³³ì—서 멀리 내려다보는 듯한 시ì ìœ¼ë¡œ ì‚°ìˆ˜ì˜ ë³€í™”ë¬´ìŒí•¨ì„ 장대하게 재구성하였다.
화면 ì•žë’¤ì— â€˜ì¶”ì‚¬ç§‹å²â€™ì™€ ‘추사진장秋å²çè—’ì´ë¼ëŠ” ë„ìž¥ì´ ìžˆì–´ 김정í¬(金正喜, 1786~1856)ì˜
소장품ì´ì—ˆìŒì„ 알 수 있다.

ì´ì¸ë¬¸ì˜ 그림

박제가는 ì£¼ë³€ì— ìžˆëŠ” 서화 ìž‘í’ˆì— ëŒ€í•´ì„œë„ í’ˆí‰ì„ 남겼다. ë„화서 í™”ì›ì´ì—ˆë˜ ì´ì¸ë¬¸(æŽå¯…æ–‡, 1745~1824 ì´í›„)ì€ ë‹¤ì–‘í•œ ë¶„ì•¼ì˜ íšŒí™”ì— ëŠ¥í–ˆê³ , 특히 ì‚°ìˆ˜í™”ì— íƒì›”했다(ë„3). ê°™ì€ í™”ì›ì¸ ê¹€í™ë„(金弘é“, 1745~1806?)와 절친한 사ì´ì´ê³  í™”ê²©ç•µæ ¼ë„ ëŒ€ë“±í•˜ê²Œ í‰ê°€ë°›ì•˜ì„ ì •ë„였다. 비슷한 ì—°ë°°ì˜€ë˜ ë°•ì œê°€ë„ ê²€ì„œê´€ìœ¼ë¡œ 활ë™í•˜ë©° 서로 알고 지냈다.

ì‚°ì—는 ìžì¤ë¹› 무리 가로 어렸고 íƒ‘ì˜ í° ëª¨ì„œë¦¬ 드러났으니,
분명히 ì„ì–‘ ë¬´ë µì˜ ê´‘ê²½ì´ë ·ë‹¤.

ë¨¹ë¬¼ì„ ì‚´ì§ ë¬»í˜€ ì‚°ì„ ê·¸ë ¸ê³  ë¨¹ë¬¼ì„ ë“¬ë¿ ë¬»í˜€ 나무를 ì  ì°ì—ˆìœ¼ë‹ˆ,
명암과 í–¥ë°°ì˜ ë¬˜ì²´ë¥¼ 얻었ë„다.

(중략)

고송유수ë„ì¸ì´ 사는 ì§‘ì´ë‹ˆ, ë¬¸ì„¤ì£¼ì— ì—´ 길 ë…¸ì„ ê°€ë¡œ 서렸네.
í™©í˜¼ì„ ê·¸ë¦¬ë ¤ë„ ê·¸ë¦´ ë° ì—†ì–´, 새 한 마리 마른 등걸 먼저 앉혔네.
물ì´ìƒˆì˜ ëˆˆê¸¸ì€ ë¬¼ì†ì— 있고 ì—°ê½ƒì— ìžˆì§€ 않다네. 쯧쯧!
ì´ ë•…ì—는 ê°ì‹ì•ˆì´ 없는 것ì¸ê°€? 나는 그를 만나고 싶네.

(후략)

-《정유ê°ì§‘》 하권, 문집 5, 〈고송유수ë„ì¸ìž¡í™”ì œí‰å¤æ¾æµæ°´é“人è¥èŠ±é¡Œè©•ã€‰

위 ê¸€ì€ ë°•ì œê°€ê°€ ì´ì¸ë¬¸ì˜ 여러 그림, í˜¹ì€ ì¼ì¢…ì˜ í™”ì²©ì„ ë³´ê³  ì§€ì—ˆì„ ê²ƒì´ë‹¤. ì œëª©ì˜ â€˜ê³ ì†¡ìœ ìˆ˜ë„ì¸â€™ì€ ì´ì¸ë¬¸ì˜ ìží˜¸ì´ê³ , ‘잡화’는 ‘잡화雜花’ì´ë‹¤. ì´ì¸ë¬¸ì´ 여러 꽃 ê·¸ë¦¼ì„ ë³´ê³  ì“´ ê¸€ìž„ì„ ì•Œ 수 있다. 현재 ì„œìš¸ëŒ€í•™êµ ë°•ë¬¼ê´€ ì†Œìž¥ì˜ ì´ì¸ë¬¸ ìž‘ 〈연화ë„蓮花圖〉 (23.6×28ãŽ)ì— â€˜ì–´ì‘지안魚鷹之眼 재수저在水底 부재하화ä¸åœ¨è·èб ëŒëŒå’„咄’(물ì´ìƒˆì˜ ëˆˆê¸¸ì€ ë¬¼ì†ì— 있고 ì—°ê½ƒì— ìžˆì§€ 않다네. 쯧쯧)’ì´ëž€ ë¬¸ìž¥ì´ ë³´ì¸ë‹¤. â€˜ì´ ë•…ì—는 ê°ì‹ì•ˆì´ 없는 것ì¸ê°€? 나는 그를 만나고 싶네’는 마ìŒì— 드는 ìž‘í’ˆì„ ë³´ê³  ìž‘ìžë¥¼ 만나려는 í¬ë§ì˜ 글ì´ë‹¤. ì´ëŸ° ì ì—서 잡화 í‰ì—는 ë°•ì œê°€ì˜ ì œë°œ ë¿ ì•„ë‹ˆë¼, ì´ì¸ë¬¸ 스스로 작성한 ê¸€ë„ í¬í•¨ë˜ì–´ 있ìŒì„ ì§ìž‘í•  수 있다.

ë„4 복헌 ê¹€ì‘환 í•„ 강안청ì ë„復軒 金應煥 ç­† 江岸è½ç¬›åœ–, 지본紙本, 담채淡彩,
20.6×67. 6ãŽ,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화제는 소나무 아래ì—서 쉬는 선비가 ê°• 저편 갈대 ì‚¬ì´ ë°° 위ì—서 한 ì‚¬ëžŒì´ ë¶€ëŠ” 피리를 듣는
ì •ê²½ì„ í‘œí˜„í•˜ê³  있다. í™”ë©´ì€ ì˜¤ë¥¸ìª½ì— ëŠ™ì€ ì†Œë‚˜ë¬´ì˜ íž˜ì°¬ 굴곡과 부벽준斧劈皴으로 처리한
바위가 강하게 ìžë¦¬ìž¡ê³ , ì™¼íŽ¸ì€ ê°ˆëŒ€ì™€ ë›ë‹¨ë°°ë¡œ ì—¬ë°±ì˜ ê¹Šì´ë¥¼ 확산해 가는 구ë„를 ë³´ì´ê³  있다.

ê¹€ì‘í™˜ì˜ ê·¸ë¦¼

박제가는 ë„í™”ì„œì˜ í™”ì›ì¸ ê¹€ì‘환(金應煥, 1742~1789)ì˜ ê·¸ë¦¼ì—ë„ í™”ê¸°ç•µè¨˜ë¥¼ 남겼다.

먼 ì‚°ì—” 사람 없고 ë¬¼ì— ë¬¼ê²° 없으니
ì´ ë°”ë¡œ ê°€ì„ë‚  í•´ 저물려 하는 때ë¼.
안개 서리 지척ì´ë¼ ëŒì•„가지 못한 채
온 시내 ë¶‰ì€ ìžŽì´ ìˆ˜ë ˆë°”í€´ 막아서네.
-《정유ê°ì§‘》 ìƒê¶Œ, 시집 2, 〈김ì‘환화金應煥畫 2수二首〉

ê¹€ì‘í™˜ì˜ ê·¸ë¦¼ 중 내용으로 미루어 ì‚°ìˆ˜í™”ì— ëŒ€í•œ ê°ìƒí‰ì¸ 듯하다. ê¹€ì‘í™˜ì€ 1759ë…„ ì´ì „부터 í™”ì›ì´ ë˜ì–´ 사ë§í•  때까지 활ë™í•˜ì˜€ê³ , 박제가는 1779ë…„ì— ê²€ì„œê´€ì´ ë˜ì—ˆìœ¼ë‹ˆ ë§ë…„ 10ì—¬ ë…„ê°„ì€ ì„œë¡œ êµë¥˜ê°€ ìžˆì—ˆì„ ê²ƒì´ë‹¤. 유재건(劉在建, 1793~1880)ì´ ì¤‘ì¸ä¸­äºº 출신 ì¸ìž¬ë“¤ì˜ í–‰ì ì„ 정리하여 1862ë…„ì— íŽ¸ì°¬í•œ 《ì´í–¥ê²¬ë¬¸ë¡é‡Œé„•見èžéŒ„ã€‹ì— ê¹€ì‘í™˜ì´ ë“±ìž¥í•œë‹¤. 1788ë…„ ì •ì¡°ì˜ ëª…ì„ ë°›ê³  ë‹¨ì› ê¹€í™ë„와 여행한 ê¸ˆê°•ì‚°ì„ ê·¸ë¦¼ìœ¼ë¡œ 그려 바쳤고, 1789ë…„ì—ë„ ì˜ë‚¨å¶ºå— ì§€ë°©ì˜ ì´ë¦„난 ì‚°ì„ ë‘루 다니며 만든 í™”ì²©ì´ ëŒ€ê¶ì— 비치ë˜ì–´ 있었다. ê¹€ì‘í™˜ì˜ ì‚°ìˆ˜í™”ëŠ” 단ì›ë³´ë‹¤ 낫다고 í•  ì •ë„였다고 í‰í•˜ê³  있다(ë„4). 《ì´í–¥ê²¬ë¬¸ë¡ã€‹ ê¶Œ8, 〈김복헌ì‘환金復軒應煥〉

ë„5 태í‰ì„±ì‹œë„太平城市圖, 견본, 113.6×49.1ãŽ,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박제가 ë“±ì´ ì‹œë¡œ 묘사한 〈성시전ë„〉를 ì—°ìƒì‹œí‚¤ëŠ” ìž‘ìž ë¯¸ìƒì˜ 작품ì´ë‹¤.
성으로 둘러 ì‹¸ì¸ ë„시ì—서 ìƒí™œí•˜ëŠ” ì‚¬ëžŒë“¤ì˜ ë‹¤ì–‘í•œ ëª¨ìŠµì´ ê·¸ë ¤ì ¸ 있는 대형 8í­ ë³‘í’ì´ë‹¤.
그림ì—는 약 2,120명 ì •ë„ì˜ ì‚¬ëžŒë“¤ì´ ë“±ìž¥í•˜ë©°, ì´ë“¤ì€ ì§‘ 안ì—서 ìƒí™œí•˜ê±°ë‚˜ 행렬ì´ë‚˜ 무리를
지어 êµ¬ê²½í•˜ê¸°ë„ í•˜ê³  ìƒì—…ì„ ë¹„ë¡¯í•œ 수공업, 건설, ë†ê²½, 군사 등 ê°ì¢… ì§ì—…ì— ì¢…ì‚¬í•˜ê³  있다. ì´ëŸ°
형ì‹ì€ ë¶ì†¡åŒ—宋 장íƒë‹¨(張擇端, 1085~1145)ì˜ ã€ˆì²­ëª…ìƒí•˜ë„淸明上河圖〉ì—서 ê·¸ ì—°ì›ì„ ì°¾ì„ ìˆ˜ 있다.

성시전ë„

1792ë…„ 4ì›” 24ì¼, 정조는 초계문신과 ê²€ì„œê´€ì˜ ì‹œí—˜ 성ì ì´ 실ë§ìŠ¤ëŸ¬ì›Œ ì´ë“¤ì„ 대ìƒìœ¼ë¡œ 다시 “성시전ë„城市全圖â€ë¥¼ 제목으로 한 시를 다시 ì§“ë„ë¡ í–ˆë‹¤. 여기서 6ëª…ì„ ë½‘ê³ , 4ì›” 29ì¼ì— ì´ë“¤ 6명ì—게 〈금강ì¼ë§Œì´ì²œë´‰é‡‘剛一è¬äºŒåƒå³¯ã€‰ ì œëª©ì˜ ì‹œ, 윤 4ì›” 1ì¼ì—는 3차로 〈유하정행æµéœžäº­è¡Œã€‰ ì œëª©ì˜ ì¹ ì–¸ 고시로 시험하였다. 《고운당필기å¤èŠ¸å ‚ç­†è¨˜ã€‹ ì œ3ê¶Œ, 〈제진고시배율製進å¤è©©æŽ’律〉 박제가는 유ë“ê³µ, ì´ë•무 ë“±ì˜ ë™ë£Œ 검서관과 함께 6ëª…ì˜ í•œ 명으로 뽑혀 금강산과 ìœ í•˜ì •ì— ëŒ€í•œ 시 짓기ì—ë„ ì°¸ê°€í•˜ì˜€ë‹¤.

그대 보지 못했나
í•œì–‘ì˜ ê¶ê¶ì´ 하늘ì—서 솟아나
층층 ì„±ì— ë‘˜ë¦¬ì–´ 40리나 ë»—ì€ ê²ƒì„.

(중략)

ë™ìª½ì€ í™í™”ë¬¸ì— ë‚¨ìª½ì€ ëˆí™”문
그림 ì½ê¸° ìš°ì„  먼저 ê¶ê¶ì—서 시작하네.
ì°½ë•ê¶ê³¼ 창경ê¶ì´ 나누어 열리ë”니
건양문 하나가 ì¤‘ê°„ì— ì†Ÿì•˜êµ¬ë‚˜.

(중략)

한 í­ ìœ„ì— ëŒ€ë„íšŒì˜ ëª¨ìŠµì´ íŽ¼ì³ì§€ë‹ˆ
세태와 ì¸ì •까지 여기 ëª¨ë‘ ë‹´ê²¼êµ¬ë‚˜.
태í‰í•œ ë¬¸ë¬¼ì´ ì¤‘í™”ì™€ 맞겨루니
백성 길러 4백년간 제사를 ì´ì–´ 왔네.

(하략)
-《정유ê°ì§‘》 중권, 시집 3, 〈성시전ë„ì‘령城市全圖應令〉

1792ë…„ 4ì›” 24ì¼, 정조는 초계문신과 ê²€ì„œê´€ì˜ ì‹œí—˜ 성ì ì´ 실ë§ìŠ¤ëŸ¬ì›Œ ì´ë“¤ì„ 대ìƒìœ¼ë¡œ 다시 “성시전ë„城市全圖â€ë¥¼ 제목으로 한 시를 다시 ì§“ë„ë¡ í–ˆë‹¤. 여기서 6ëª…ì„ ë½‘ê³ , 4ì›” 29ì¼ì— ì´ë“¤ 6명ì—게 〈금강ì¼ë§Œì´ì²œë´‰é‡‘剛一 è¬äºŒåƒå³¯ã€‰ ì œëª©ì˜ ì‹œ, 윤 4ì›” 1ì¼ì—는 3차로 〈유하정행æµéœžäº­è¡Œã€‰ ì œëª©ì˜ ì¹ ì–¸ 고시로 시험하였다. 《고운당필기å¤èŠ¸å ‚ç­†è¨˜ã€‹ ì œ3ê¶Œ, 〈제진고시배율製進å¤è©©æŽ’律〉 박제가는 유ë“ê³µ, ì´ë•무 ë“±ì˜ ë™ë£Œ 검서관과 함께 6ëª…ì˜ í•œ 명으로 뽑혀 금강산과 ìœ í•˜ì •ì— ëŒ€í•œ 시 짓기ì—ë„ ì°¸ê°€í•˜ì˜€ë‹¤.

[참고문헌]
박제가 ì§€ìŒ, 정민·ì´ìŠ¹ìˆ˜Â·ë°•ìˆ˜ë°€ 외 옮김, 《정유ê°ì§‘貞蕤閣集》 ìƒÂ·ì¤‘·하, ëŒë² ê°œ, 2010.
정유ê°ì§‘貞㽔閣集 (한국문집ì´ê°„)
ì´í–¥ê²¬ë¬¸ë¡é‡Œé„•見èžéŒ„ (규장ê°)
임하필기林下筆記 (고전번역서)
ì´ëª…ì§€, 〈楚亭 æœ´é½Šå®¶ì˜ ç¹ªç•µè§€ê³¼ 創作活動〉, í™ìµëŒ€ 미술사학과 ì„사학위논문, 2019.
林明男, <楚亭 朴齊家 è—è¡“è«– ç¡ç©¶>, 성균관대 ë™ì–‘철학과 예술철학 ì „ê³µ 박사학위논문, 2022.

ìž„ìƒì„  | ë™ë¶ì•„역사재단 명예연구위ì›
í•œêµ­í•™ì¤‘ì•™ì—°êµ¬ì› í•œêµ­í•™ëŒ€í•™ì›ì—서 ì„·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시립미술관,
ì„œìš¸ì—­ì‚¬ë°•ë¬¼ê´€ì„ ê±°ì³ ë™ë¶ì•„ 역사재단 연구위ì›ìœ¼ë¡œ 재ì§í–ˆìœ¼ë©°
현재 ë™ë¶ì•„역사 재단 명예연구위ì›, ëŒ€êµ¬ëŒ€í•™êµ ì—°êµ¬êµìˆ˜ì´ë‹¤.
저서로 ã€Šì¡°ì„ ì˜ ì—­ì‚¬ 전문 외êµê´€, 유ë“공》 《발해사 바로ì½ê¸°ã€‹
《ë™ì•„ì‹œì•„ì˜ ì—­ì‚¬ ë¶„ìŸã€‹ ë“±ì´ ìžˆ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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