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지식인들의 서화 이야기 ⑫
《서화잡지書畫雜識》의 저자, 성해응 Ⅱ

뛰어난 서화는 마음을 선善에 나아가게 한다 Ⅱ

18세기 문예 부흥의 시기, 서화는 조선의 선비들에게 필요한 교양이었고, 서화 제발題跋만으로 이루어진 단독 권卷이 출현할 정도였다. 남공철(南公轍, 1760~1840)의 《서화발미書畵跋尾》가 중국 작품 위주의 제발인 것과 달리 성해응(成海應, 1760~1839)의 《서화잡지書畵雜誌》는 일본을 비롯해 조선의 작품에 대한 제발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조선의 서화 작품과 인물에 대한 성해응의 서화 이야기를 살펴본다.

글 임상선 (동북아역사재단 명예연구위원)



도5 정수영, 한임강명승도권漢臨江名勝圖卷, 지본채색, 24.8×157.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정수영이 1796~1797년에 걸쳐 한강과 임진강 일대를 유람하면서 본 26개 경치를 그린 전체 1,575.6㎝에 달하는 긴 두루마리이다. 위 그림은 뱃길이 한양 영역을 벗어나기 시작하는 양수리 부근의 용당龍堂에서 한양 쪽을 바라보며 그린 장면이다. 수락水落, 도봉道峯, 삼각三角 세 개의 산을 배경으로 미호渼湖에서부터 물길이 크게 굽이쳐 용당 모퉁이까지 이어지는 수활한 경치가 펼쳐진다.


단원 김홍도의 화조도

성해응의 집에는 김홍도(金弘道, 1745~?)의 화조도 8폭 병풍이 있었다. 성해응의 선친인 성대중(成大中, 1732∼1809)이 직접 쓴 글이 화폭마다 있었다고 하니 성대중이 직접 김홍도에게 받은 것으로 짐작된다. 성해응은 이 병풍을 자손들이 귀히 보관하여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했으나 현재 그 소재를 알 수 없다.

이것은 단원 화사의 화조도이다. 생각건대 한 때 붓을 내려놓고 깊이 마음을 들인 것이 아니다. 그러나 빼어난 기운의 물결이 이어지니, 진실로 가품佳品이다.
–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 속집續集 책16, 서화잡지書畵雜識, <제김홍도팔첩병후題金弘道八疊屛後>

성해응은 당시 최고의 화가로 김홍도를 지목했다(도1). 화조도 8폭 병풍이 김홍도의 득의의 작품은 아니지만 생동하는 기운이 뿜어져 나오는 듯했다. 김홍도가 처음에는 현재玄齋 심사정(沈思貞, 1707∼1769)에게 배웠고 그동안 또 겸재謙齋 정선(鄭㪨, 1676∼1759)의 화법을 섭렵하여 물체를 묘사한 것이 더욱 기묘하다고 평하였다. 《연경재전집》 속집 책16, 서화잡지, <제단원김홍도화후題檀園金弘道畵後>


도1 김홍도필 화조영모도金弘道筆花鳥翎毛圖 중의 토끼, 견본채색, 87.6×38.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화조영모도는 모두 8폭이며 까치, 원숭이, 원앙, ê¿©, 토끼, 연꽃 등이 그려져 있다.


겸재 정선의 그림

성해응이 본 겸재의 그림은 기이하고 웅장했다(도2). 두공부의 “원기元氣가 줄줄 흘러 병풍이 젖은 듯하다”라는 시는 겸재의 그림을 표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두공부, 즉 당나라 두보(杜甫, 712~770)가 유단(劉單, 710?~771)이 그린 산수 병풍이 “원기가 줄줄 흘러 병풍이 젖은 듯하고, 조물주가 하소연하니 하늘이 응하여 운다”고 원기임리장유습元氣淋漓障猶濕,진재상소천응읍真宰上訴天應泣, 《고문진보古文眞寶》 전집前集 제9권, 가류歌類, <유소부화산수장가劉小府畵山水障歌> 칭송했는데, 성해응이 본 겸재의 그림이 바로 그러했다. 큰 바람에 솔숲이 펄럭이고 계곡의 시냇물이 세차게 흐르는 모양의 그림이었다. 《연경재전집》 속집 책16, 서화잡지, <제겸재화후題謙齋畵後>
또 다른 한 폭의 그림도 매우 기이하고 절묘했다. 큰 비가 내려 계곡 나무들이 어두컴컴한데 한 사람이 옷을 걷고 물을 건너려 하면서도 선뜻 나서지 못하는 모습이 실감 나게 그려져 있었다.


(좌) 도2 정선, 《겸현신품첩》 중 <만폭동도>, 견본채색, 33.2×22㎝,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 《겸현신품첩》에는 겸재 정선과 현재 심사정의 그림이 함께 실려 있다. 금강산 내금강 <만폭동도>는 진경산수화의 대가 정선의 농익은 화풍이 잘 드러나 있다. 오른편 위쪽에 “천개의 바위 봉우리가 아름다움을 겨루고, 만개 골짜기 물은 다투듯 흐른다. 초목이 울창한 위로 구름이 일고 놀이 끼었다[千岩競秀萬壑爭流 草木蒙籠上若雲興霞蔚]”라는 고개지顧愷之의 글이 화제로 쓰여있다.


(우) 도4 유덕장 필 묵죽도, 통죽筒竹, 지본, 178×77.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자하 신위와 수운 유덕장의 묵죽도

성해응이 친하게 지낸 신위(申緯, 1769~1847)는 자가 한수漢叟, 호가 자하紫霞이며, 서예와 함께 묵죽화墨竹畵에 뛰어났다(도3). 정조 때 글씨로 유명한 황운조(黃運祚, 1730~1800)가 글씨를 구하는 내각內閣 관리의 요청을 매정하게 거절하는 것과 달리 신위는 대신들과 동료들이 부채에 ‘묵죽’을 청하자 모두 흔쾌히 그려주었다. 성해응은 신위의 ‘묵죽’이 세속을 초월한 정취가 좋아할 만하다며 근래 화가 중 최고라고 품평하였다. 《연경재전집》 속집 책16, 서화잡지, <제신자하묵죽題申紫霞墨竹>
성해응이 묵죽으로 이름났다며 쓴 또 하나의 제발이 수운峀雲 유덕장(柳德章, 1675~1756)의 묵죽도에 대한 것이다(도4). 그가 그린 족자를 눈 내린 곳에 걸어 두자 참새가 날아들 정도로 신묘했다. 성해응은 자신의 집에 있는 유덕장의 묵죽도는 솜씨가 무르익은 일흔 이후 득의의 작품이라는 제발을 남겼다. 《연경재전집》 속집 채16, 서화잡지, <유수운묵죽발柳峀雲墨竹跋> 유덕장, 신위, 그리고 이정(李霆, 1554∼1626)을 조선시대의 3대 묵죽화가라고 한다.


(좌) 도6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고려 광종 13년,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문로2가 48-19 소재, 국유, 철 당간에 새겨진 명문이 있는 부분
(우) 도7 이광사가 쓴 오언시, 지본, 105.4×56.3㎝,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이광사가 남송의 시인 육유(陸游, 1125~1210)의 <산록山麓>을 빠르고 힘 있는 붓놀림으로 쓴 대자 행서[草合路如線, 偶隨樵子行。林間遇磐石,小憩看春畊]이다.


지우재 정수영의 그림

정수영(鄭遂榮, 1743~1831)의 자는 군방君芳, 호는 지우재之又齋, 지우자之又子 혹은 만계蔓溪이며, 지리학자 정상기(鄭尙驥, 1678~1752)의 증손자이다. 정상기가 완성한 <동국지도東國地圖>의 전사傳寫와 교정 작업을 하며 여행 중의 풍경을 즐겨 그렸다. 성해응은 정수영의 그림에는 세속을 초월한 정취가 있어 폭포와 매화, 대나무, 파초 그림이 매우 기묘하며, 물체를 묘사하는 데 능하다고 평했다(도5). 《연경재전집》 속집 책16, 서화잡지, <제만계화후題蔓溪畵後>

용두사지 철당간 명문

오늘날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에 있는 고려 시대 철로 제작된 당간을 보고 쓴 제발이 있다. 청주 읍성邑城에 높이가 7, 8장丈 정도 되는 쇠로 만든 돛대에 ‘준풍峻豊’ 두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청주의 옛 이름이 아닌가 짐작했다. 읍성의 돛대란 다름 아닌 국보인 청주 용두사지龍頭寺址 철당간鐵幢竿이다(도6). 원통 모양의 철통 20개를 위아래로 물려 이어지게 만들었고, 아래로부터 세 번째 철통에 393여 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성해응은 ‘유준풍삼년태세임술삼월이십구일주성維峻豊三年太歲壬戌三月二十九日鑄成’이라는 명문을 보고, ‘준풍’이 고려 광종 11년(960)부터 사용한 연호임을 모르고 청주의 옛 이름인가 추정했다. 준풍 3년, 즉 962년에 건립된 것이었다. 성해응은 준풍이라는 의미는 알지 못했지만, 당간을 돛대라 여겨 땅 기운을 누른다는 속설은 황당무계하다며 실학적 면모를 보여준다. 《연경재전집》 속집 책16, 서화잡지, <준풍발峻豊跋>


도3 신위, <묵죽도>, 1830년, 지본, 194.2×443㎝,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 묵죽화로 손꼽히는 신위가 62세에 그린 묵죽도 10첩 병풍이다. 각 폭마다 6언 시구를 적고 ‘자하紫霞’라는 붉은색 방인을 찍었다. 왼쪽의 마지막 폭에 7언 시구와 함께 ‘자하육십이수紫霞六十二叟’라 서명하였다.


원교 이광사의 글씨

시·서·화에 능하고 특히 한석봉(한호韓濩, 1543~1605) 이후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원교체圓嶠體)를 완성한 인물로 원교圓嶠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있다(도7).

원교 이광사는 어려서 백하白下 윤순(尹淳, 1680~1741)에게 글씨를 배웠으나 격식과 힘은 그보다 뛰어났다. 집안의 화에 연좌되어 북쪽 변방으로 유배되었다가, 또 남해의 섬으로 옮겨졌다. 원교는 재주는 기이하고 특이했으나 침울하고 좌절하여 그 불평스러운 기운이 한결같이 글씨에 드러났기 때문에 지나치게 기이하고 험하다.
-《연경재전집》 속집 책16, 서화잡지, <제원교필적후題圓嶠筆蹟後>

성해응은 이광사의 글씨가 격조와 필력은 윤순보다 뛰어나지만, 곤궁한 유배 생활이 글씨에 드러나 지나치게 기이하고 험하다고 보았다. 그럼에도 남쪽 사람들이 이광사의 서법을 모방한 사람이 많은데, 그 이유가 첩에게 준 많은 글씨가 그의 사후 세상에 널리 전해졌기 때문이라 이야기하고 있다. 〈제원교필적후> 성해응은 글씨를 배우는 사람은 옛 사람의 온전한 선본善本으로 익혀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지 않으면 글씨가 번번이 번지르르하게 되는 것이 마치 실력 없는 선생에게 어린 아이가 잘못된 음과 뜻으로 글씨를 배우는 것과 같다고 생각했다. 《연경재전집》 속집 책16, 서화잡지, <제동방화찬題東方畵贊後>

[참고문헌]
성해응, 《연경재전집硏經齋全集》
孫惠莉, 〈18-19세기 초반 문인들의 서화감상과 비평에 관한 연구 – 成海應의 「書畵雜誌」와 南公轍의 「書畵跋尾」를 중심으로 -〉, 《漢文學報》제19집, 우리한문학회, 2008
朴晶愛, 〈硏經齋成海應의 書畵趣味와 書畵觀연구 – 「書畵雜識」를 중심으로 -〉, 《震檀學報》제115호, 진단학회, 2012
박정애, 〈「書畵雜識」를 통해 본 成海應의 繪畵鑑評 양상과 의의〉, 《溫知論叢》제33집, 온지학회, 2013
성해응 지음, 손혜리 옮김, 《낮은 자리 높은 마음》, 태학사, 2015
성해응 지음, 손혜리·지금완 옮김, 《서화잡지》, 휴머니스트, 2016


임상선 | 동북아역사재단 명예연구위원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역사박물관을 거쳐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으로 재직했으며
현재 동북아역사재단 명예연구위원, 대구대학교 연구교수이다.
저서로 《조선의 역사 전문 외교관, 유득공》 《발해사 바로읽기》 《동아시아의 역사 분쟁》
등이 있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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