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발화기구 – 부시

이번 달에는 국내에 성냥이 들어오기 전까지 사용됐던 ‘부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지면에 소개되는 부시는 필자가 오랫동안 수집한 소장품으로, 흥미로운 유물만을 골라 독자들께 공개하고자 한다.


부시란 부싯돌을 쳐서 불을 일으키는 쇳조각이다. 부싯돌은 옥수와 석영石英으로 만들어진 차고 단단한 암석으로 차돌이라고 한다. 또는 수석燧石, 화석火石이라고도 하며 회색, 갈색, 흑색 등 여러 가지 빛깔이 있으며 반투명 또는 불투명하다.
부싯깃을 놓고 강철로 된 부시로 치면 섬화閃火가 잘 일어나므로 그 위에 부시로 쳐서 불을 일으키는데 사용한다. 부싯깃은 수리취, 쑥잎 등을 불에 볶아 곱게 비벼서 만들고 또 솜이나 백지 따위를 잿물에 여러 번 묻혀 사용한다. 보통 강철을 그대로 사용하지만 손잡이를 가죽으로 싸고
백동 장식을 한 고급스러운 것도 있다. 이에 부싯돌과 부싯깃은 필수적으로 따르며 부시쌈지나 부시통도 갖춰야한다.
부시는 1880년 국내에 성냥이 들어오기 이전까지 사용하던 기구로, 청동기시대와 초기 철기시대 주거지에서 발화석이 출토됐다는 점과 고려시대 발화기구로써 청동수화경을 사용했다는 사실로 볼 때(월간<민화>5월호 참고) 고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우리 생활 속에서 늘 사용된 생활필수품 중 하나였다. 그러나 성냥이 보급되면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꽃문양부터 산수화문양까지

사실 문양이 있는 부시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우선, 물고기 모양 부시의 경우 어로 활동이 활발한 지역에서 즐겨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유물 출토 지역은 바다나 강 근처인 강릉, 울산, 충남 서산, 부산 등으로 추정된다.
다음으로 화분 위 꽃넝쿨 문양과 잎이 그려진 부시의 문양을 살펴보자. 끝이 뾰족뾰족해 마치 태양을 연상시키는 이 꽃문양은 향일화向日花, 즉 해바라기로 추정되며 잎사귀의 모양도 실제 해바라기의 잎과 매우 흡사하다. 조선후기 가객歌客이자 시조작가인 김수장金壽長(1690년~?)이 엮은 가곡집인 《해동가요》에는 ‘모란牧丹은 화중왕花中王이요 향일화向日花는 충신忠臣이로다’라는 구절이 등장한다. 또한 조선 세조때 문신인 강희안姜希顔이 원예서인 《양화소록養花小錄》에서는 사람처럼 꽃에도 품계를 나누고 해바라기는 9품으로 기록한 바 있다.
당시에도 국내에 해바라기가 있었으며 언제나 해를 향하는 해바리기의 속성을 충신으로 빗대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일정한 간격으로 배치된 세 송이의 해바라기와 널찍한 잎사귀, 꽃넝쿨이 맨 밑 화분에서부터 하늘을 향해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힘차게 뻗어 올라가는 모습에서 일종의 운율감마저 느껴진다. 특히 꽃문양을 상감象嵌 기법으로 별색 처리한 고도의 기술력이 놀랍다.
바로 옆에 놓인 부시에는 나뭇잎 한 장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앞서 설명한 부시 속 나뭇잎과 비교했을 때 잎의 외곽선 모양이 더욱 직선적인 점을 고려할 때 별개의 나뭇잎으로 보이며 그 가운데서도 조선시대 즐겨 그려졌던 파초잎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파초는 장구長久와 기사회생起死回生을 상징한다. 당시에도 기술자들 사이에 미니멀리즘의 감성이 있었던 것일까? 잎사귀 한 장만을 단독으로, 대담하게 표현한 구성이 파격적이다.
마지막으로 산수문이 그려진 부시를 보도록 한다. 상단에는 첩첩산중의 풍경이 그려져 있는데 앞쪽의 봉우리는 굵고 긴 선으로, 뒤쪽의 봉우리는 얇고 짧은 선으로 간략히 표현됐다. 산 아래에는 풀이 무성하고 나무 두 그루가 서있으며 앞쪽으로 물결문으로 추측되는 곡선이 겹겹이 새겨졌다. 무심한 듯 질박하게 표현한 필치가 흥미로우며 이러한 점에서 자유분방한 민화 산수화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자연회귀나 선비정신을 담은 진경산수화가 유행했던 조선시대에 민화 산수화는 풍경의 상징적인 면만을 골라 일상 속 소박한 바람을 표현했듯 부시 속 산수 문양에도 사용자의 개인적인 염원이나 흥취가 담긴 듯하다. 선조들은 문양이 새겨진 이 부싯돌을 내리치며 소망의 불꽃을 피우지 않았을까.


참고자료
임영주, 《한국의 전통문양》 (대원사, 2004)



글·사진 정하근(고은당 대표, 한국고미술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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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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