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보를 활용한 바느질 콜라주 작가 제미영

<가화만사성(家花萬事成)>, 2014, 천에 바느질 콜라주, 비즈, 40×120㎝


제미영 작가는 지난 5월 4일부터 6월 30일까지 열린 겸재정선미술관 10주년 기념 특별전 <와유금강>에서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그녀는 천으로 된 집의 풍경과 길상의 이미지들을 한지나 캔버스 위에 바느질 콜라주로 작업해온 예술가다. 그녀의 창작방식은 면분할 특징과 천이 지닌 입체성을 통해 작품과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민화를 모티프로 현실세계와 간절한 염원을 작품에 담아낼 수 있는 원동력이 궁금했다.


“위대한 시인이란 스타일을 내세우지 않으며, 스스로를 자유로이 드러내는 사람이다.”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Walt Whitman, 1819~1892)이 19세기 이후 예술의 새로운 양식의 등장에 대해 ‘스타일’ 운운하는 것을 부정하며 한 말이다. 제미영 작가의 바느질 콜라주(collage)는 독특하고 새로운 표현 기법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전통적인 조각보 혹은 패치워크(patchwork) 같은 수공예를 화면을 구성하는 조형 요소로 차용한 것이다. 그녀는 휘트먼의 말처럼 스타일을 내세우지 않고 자신의 주제를 자유롭게 구현해내는 사람이었다.
지난 5월 4일부터 6월 30일까지 겸재정선미술관에서 열린 <와유금강(臥遊金剛)> 1부에 전시된 작품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조각천으로 여러 도상과 소재를 이어서 화면을 가득 채우던 기존과 다르게, 천과 천이 만나면서 생기는 고유의 질감과 색감을 표현해냈기 때문. 10주년 기념 특별전에서는 제미영 작가를 비롯해 작년에 <新 경교명승첩> 전시를 치른 겸재정선미술관 ‘내일의 작가’ 10명이 참여해 정선의 금강산도를 개성적으로 풀어냈다.

<가화(家花)>, 2014, 캔버스에 바느질 콜라주, 비즈, 52.5×73㎝

(좌)<길상(吉祥)-소망꽃>, 2014, 천에 바느질 콜라주, 비즈, 90×54㎝
(우)<물고기와 꽃>, 2015, 캔버스에 바느질 콜라주, 비즈, 91×60㎝

바느질 콜라주만의 매력에 빠지다

제미영 작가는 2010년부터 <조각조각 색깔풍경> 전시 등을 통해 바느질 콜라주로 집이 있는 골목 풍경이라든가 민화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을 제작해왔다. 바느질 콜라주 기법은 캔버스나 한지 위에 천을 엮어 화면을 구성하는 것으로, 우리네 조각보를 만드는 방식과 비슷하다.
“남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한 땀도 의도해서 표현해요. 붓질도 마찬가지로 바느질에도 고유의 성격과 독창성이 드러납니다. 바느질을 할 때 무아지경에 빠지곤 하는데, 완성된 작품에는 정성을 들인 시간과 함께 제 자신이 기록되어 있다고 봐요.”
그녀는 이번 전시에 <해산정>과 <사선정> 2점을 출품했다. 바느질로 그려낸 강과 호수, 산, 바다의 풍경은 스스로에게 남다른 감동을 주었다고. 특히 수묵화가 지닌 ‘여백의 미’를 천과 바느질로 살려내는 작업은 처음 해보는 일이라 적지 않게 부담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음새의 연결을 과감히 줄이고, 자투리가 아닌 넓은 면적의 천을 바탕재로 사용하면서 천을 물들이는 방법도 연구하게 되었다. 깎아지른 산, 완만한 산, 부드러운 언덕, 잔잔한 물결, 소박하게 모인 색색의 집들. 면과 색이 각 소재를 경계로 분할되면서 비대칭적으로 일어났던 신호들이 모스부호처럼 명확한 의미를 전달하는 듯했다.
제미영 작가는 동아대학교 예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한 후 홍익대학교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다. 서양화와 동양화를 모두 배운 그녀가 어째서 바느질 콜라주에 빠져들었을까.
“대학원을 늦게 간 편이라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할 수밖에 없었어요. 남은 인생을 걸만한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석사논문을 준비하면서 단색화 거장 김환기 작가의 반복적인 붓질이나 1세대 여성화가인 박래현 작가의 면 분할 태피스트리(tapestry)를 바느질과 연결시켜 보았습니다. 현대회화에 조각보를 접목해보려고 다양한 시도를 했죠.”

<가화(家花)-집과 꽃에 깃든 소망>, 2016, 캔버스에 아크릴, 바느질 콜라주, 비즈, 130×195㎝

작가적 정체성, ‘가화家花’로 찾다

지금은 바느질 콜라주 작가로 입지를 굳힌 제미영 작가도 첫 개인전을 한 때에는 작가적 정체성에 대한 의구심이 들었다. 동서양의 재료를 섞어 믹스매치로부터 영감을 받고, 무엇으로 자신을 보여줄 수 있을지를 고민하면서 작가의 길을 모색했다.

<밤의 길목>, 2017, 캔버스에 아크릴, 바느질 콜라주, 91×60㎝

초창기엔 꽃집을 운영하는 부모님의 영향 때문인지 꽃 그림을 주로 제작했다. 그러나 결혼 생활은 꽃이 눈에 들어오는 삶이 아니었다. 이사를 자주 다니면서 안락한 보금자리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고, 이런 저런 집이 모인 거리나 골목도 수없이 걸어 다녔다. 그렇게 마음에 각인된 풍경을 사진과 스케치를 토대로 화면에 묘사했고, 김춘수 시인의 시 <꽃>처럼 좋은 시 구절이나 단어를 점자로 넣기도 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집과 꽃이 혼합된 ‘가화家花’ 시리즈의 초기작이 탄생했다.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살면서 내 집 한 칸을 마련하기가 정말 어렵더라고요. 집을 갖고 싶은 염원, 행복한 집에 대한 꿈을 표현하기 위해 민화 속 꽃들을 더했습니다.”
제미영 작가는 민화의 화병도나 연화도를 모티프로 하여 2014년부터는 ‘길상吉祥’ 시리즈를 만들었다. 그녀에게 집과 꽃은 각각 현실과 비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 매개체다. 현실과 비현실이 뒤엉킨 풍경에는 집보다 큰 꽃들이 사방에 피어나고, 하늘 위나 물 속 그 어디든 상관없이 집이 지어져있다.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그린 풍경을 통해 그녀가 줄곧 이야기하는 것은 다섯 글자, ‘가화만사성家花萬事成’이다. 잘 알려진 고사성어인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의 ‘화和’를 ‘화花’로 바꾼 언어유희는 작품에서 길상의 의미를 담은 꽃으로 그려진다. 그 후 가장 완숙된 경지의 <가화(家花)>로 2016년에 제18회 단원미술제 대상을 수상했다.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진화하다

최근 제미영 작가는 데님을 캔버스 삼아 청바지 브랜드인 리바이스(Levi’s)와 콜라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어떤 천을 사용하든 간에 자신을 매력을 드러낼 수 있음을 또 한 번 입증했다. 옛 사람들의 예술양식에서 자기에게 맞는 것을 찾아 현실을 직시하는 것, 그것이 창작의 원동력이 아닐까.
가정이 편해야 만사가 잘 풀린다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진리다. 앞으로 작품의 주제를 확장시켜 개인전을 열 계획이라는 그녀는 본지의 기획전 <책거리Today>를 통해 또 하나의 전환점을 준비하고 있다. 전시는 7월 3일부터 9일까지 서울 종로구의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열린다.


글 강미숙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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