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원주 세계 고판화 문화제

복제의 속성을 지닌 판화. 정교한 기술력도 놀랍지만, 불경의 진리부터 대다수가 향유하는 문화까지 당대를 대표하는 콘텐츠가 녹아들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가치 또한 뛰어나다.
이 보물 같은 고판화古版畵 6,000여점을 수집, 소장하고 있는 명주사 고판화 박물관이 한국고판화학회와 함께 지난 9월 27일과 28일 양일간 <제 10회 원주 세계 고판화 문화제>를 개최했다.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판화란 인쇄물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삽화의 형식으로 등장한 ‘인쇄문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판화는 유구한 인쇄문화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 오랜 역사를 지닐 만큼 문화적 보편성을 지니고 있지요. 드넓은 지역을 아우르며 수집 활동을 이어가고, 여기까지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입니다.”
명주사 고판화박물관과 한국 고판화학회가 공동 주최한 <제10회 원주 세계 고판화 문화제> 개막식에서 한선학 고판화박물관장이 감격의 소회를 전했다. “작은 규모의 행사이지만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키는 축제”라는 그의 말처럼 원주 세계 고판화 문화제는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전 세계를 통틀어 유일한 고판화 축제로서 중국 북경대 및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교에서 벤치마킹할 정도의 파급력을 지녔으며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동아시아 고판화 연구 부문에도 큰 기여를 했기 때문. 그 공로를 인정받아 한선학 관장은 올해 원주시의 지역명사로 선정됐을 뿐 아니라, 문화재청이 주최하는 ‘2019 문화재 생생사업’ 후원 기관에 고판화박물관이 지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판화 화조도로 감상하는 동아시아 문화

원주 세계 고판화 문화제의 대표 행사로는 전시와 국제 학술대회를 손꼽을 수 있다. 원주 명주사 고판화박물관에서 열린 <판화로 보는 동아시아 화조도의 세계> 특별전에서는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4개국의 화조도 판화를 비롯해 화조도를 그릴 때 미술 교과서로 활용되었던 명, 청 시대의 화조도 관련 화보류와 화조도의 교본이 되었던 《십죽재화보》 등 화보류를 찍었던 판목을 중심으로 70여점의 작품을 공개했다. 전시장에서는 과거 중국인들의 신방新房에 장식했던 모란 화병도를 시작으로 지역별, 시대별 다양한 고판화가 펼쳐졌다. 그중 국화를 ‘山在居士(산재거사)’라 빗대어 세밀히 묘사한 대형 화조도 초본의 경우 동일 판본으로 추정되는 작품이 과거 일본의 《이조민화》 도록이나 기메박물관 소장품에서 한국 민화로 소개됐으나 고판화박물관 소장 작품에서 양류청 공방이란 낙인이 발견됐다는 점에서 해당 작품이 중국 연화임을 밝혀 주목받았다. 또한 고판화박물관과 교류협정을 체결한 소주공예기술학원(미술대학)의 도화 오목판연구소에서는 이번 전시회를 위해 소주 도화오 지역의 유명 화조도를 복각한 목판화 5점을 기증함으로써 지역 특유의 전통미와 뛰어난 판화실력을 선보였다. 그 외 명나라 때 만들어진 《목본화조보》를 일본에서 18세기 초에 복각한 《목본화조보》 목판 원판, 화보류의 완결판으로 일컬어지는 《개자원화전》 2집(1706년) 등은 동아시아에서 두루 발전한 출판문화의 기술력을 증명했다.

한국 화조도 판화의 경우 조선시대에 목판을 조각해 종이에 먹선을 찍은 뒤 붓으로 채색하는 형식이 주를 이뤘다. 민화로도 많이 그려진 <목단화병도>를 비롯해 달과 토끼를 그린 판화, 일제강점기 때 독일 석판화 기법을 받아들인 일본의 영향으로 석판화로 밑그림을 찍은 후 색깔을 입힌 <경기도 민화 6폭 병풍> 등이 공개됐다.
베트남 판화 역시 한국처럼 테두리를 찍은 후 붓으로 채색하는 방식으로 제작됐으며 특유의 선명하고 화려한 색감이 특징이다. 베트남에서는 중국 연화의 영향을 받아 연초에 판화를 사서 붙이는 풍습이 생겼는데 현재에도 그 풍습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 판화로는 우키요에의 거장 호쿠사이, 히로시게, 우타마로의 화조도 작품이 소개됐으며 오늘날에도 현대적인 감각을 느낄 수 있는 색감, 구도, 정밀한 기술력 등이 관람객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해외 전문 연구진들과 함께하는 국제학술대회

국제학술대회는 10주년을 맞이한 문화제를 기념해 고판화박물관 소장 판화에 대해 심도 있게 분석한 발표가 연이었다. 발표자들 면면이 각 분야의 전문가일 뿐더러 국비 지원을 받을 만큼 공신력을 갖춘 해외 연구원들도 참여해 국제적으로 드높은 고판화박물관의 위상을 실감케 했다.
첫날에는 남권희 경북대학교 교수가 ‘고판화박물관이 소장한 한국 고판화의 수집과 성과 연구’, 주심혜 북경수도도서관 부관장의 ‘한국 명주사 고판화박물관에 대한 인상’, 이리구치 아쓰시 일본 국문학연구자료관 교수의 ‘고판화박물관과의 연구교류와 ê·¸ 성과’, 신광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강사가 고판화박물관이 소장한 오백나한도 목판을 분석한 ‘나한 도상의 계승과 확산: ê³ ë ¤ 오백나한도의 목판화 연구’, 강언문 천진미술학원 예술 & 인문학원 강사가 ‘고대 목판과 진귀한 판본 – 한국고판화박물관 소장 중국연화 개술’에 대해 발표했으며 둘째날에는 가네코 다카아키 리츠메이칸 대학교 아트리서치 센터 연구원이 ‘한국 고판화박물관 소장 판목의 조사와 아트리서치센터의 역할’, 왕아여 연구원이 강언문 강사와 공동연구한 ‘북미 소장 중국연화 조사 보고’ 내용에 대해 발표했다. 고판화박물관은 이들의 발표를 엮은 학술집과 더불어 올해 초 병환으로 별세한 보송니엔 중국 중앙미술학원 교수의 추모 논문집을 발간해 중국 송대 회화 및 민간연화 연구에 심혈을 기울인 그의 업적을 기렸다.

시대, 국경을 초월한 고판화의 힘

문화제 이튿날인 28일에는 고판화박물관이 주최하는 제7회 원주전통판화공모전(전통판화 인출경연대회)이 개최됐다. 올해 최초로 열린 인출경연대회는 전통판화의 명맥을 잇기 위한 절실함에서 비롯됐다. 국내에는 목판에 글씨를 새기는 각자장刻字匠만 한 명 있을 뿐, 인출장은 단 한 명도 없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이와 비교해 일본은 에도시대 이래 현재까지 도제식으로 훈련된 각수가 30여명, 인출장 60여명이 현역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중국의 경우 최근 지역별 연화를 복원하기 위한 운동과 더불어 지역별로 인쇄박물관이 속속 설립되는 것은 물론 한국의 인간문화재와 비슷한 제도인 민간미술대사제도를 통해 많은 전통각수와 인출장을 배출한다고.
경연대회에는 총 10명의 참가자가 참여, 각자장 이수자인 이맹호 씨가 대상인 문화재청장상을 수상했다. 고판화박물관은 내년부터 문화재청장상 수상 및 대회에 2회 이상 참가한 수상자에게 고판화박물관 인증 인출장의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고판화 문화제에서 전통명인 자격의 시연회 등 다양한 발판을 마련할 예정이다. 한선학 관장은 “국가나 지역적 차원에서 인출장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할 필요가 있기에 우선 고판화박물관에서 인출장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인간문화재 인출장 제도 기틀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의 대미를 장식한 마지막 목적지는 명주사 고판화박물관 초청전 <인쇄문화의 꽃 : 동아시아 고판화의 아름다움>이 열리는 청주고인쇄박물관이다. 전시는 10월 1일부터 개최되나 고판화 축제 기간을 기념해 청주고인쇄박물관이 사전 공개한 특별코스였다. 근현대인쇄전시관에서 열린 이번 전시에서는 초기 판화의 주요한 축을 이루는 불교 판화, 중국 간행 화보류 등 동아시아 삽화 판화부터 한국의 민화, 중국 청대 소주 연화, 일본 우키요에 및 에도시대 희귀작품으로 손꼽히는 대형 <오백나한도 목판화> 등 명품판화를 대대적으로 공개했다. 특별전을 관람한 뒤 한선학 관장은 답사 일행을 이끌고 <청주의 보물 도서展>이 진행되는 본관 기획전시실로 이동, 박물관 폐관 시간인 6시까지 기획전을 관람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로써 10회차 문화제를 성료한 원주 고판화박물관은 다시 한 번 탄탄한 콘텐츠의 저력을 입증하며 새로운 도약을 예고했다.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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