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진 진채연구소와 함께 하는 석채특집 ① 주사朱沙 사용하기

최근 민화의 재료가 다양화되면서 석채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천연안료인 석채는 광석의 종류에 따라 특성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안료를 다루는 방법은 색상별로 천차만별. 입문자의 눈높이에서 석채 사용법을 설명하기 위해 석채를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월간<민화> 문지혜 기자가 직접 석채 사용법을 배워보았다. 석채특집 첫 시간은 ‘주사’이다.
지도 정해진 (정해진 진채연구소 대표) 정리 및 시연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진채란?

진채眞彩란 한마디로 ‘동아시아에서 고대부터 그려온 비단채색화’이다. 한반도에서는 고려 불화나 조선시대 초상화와 같이 선명하고 강렬한 색감의 그림을 지칭한다. 진채에서 사용하는 안료들은 주변의 여러 곳에서 구한 것으로, 그 종류와 특성이 제각각이다.
우선 안료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면 크게 유기와 무기 성분으로 나눌 수 있다. 유기 성분의 안료는 쪽, 코치닐, 등황 등 동식물에서 추출된 것으로 입자 크기가 매우 작다. 유기물이기 때문에 직사광선에 노출되거나 긴 시간이 지나면 변색되는 특징이 있다. 무기성분의 안료는 광물로부터 추출한 것으로 색감이 강렬하고 시간이 지나도 변색되지 않는다. 대표적인 예로 주사, 석록, 석청 등 석채로 통칭하는 안료를 들 수 있다. 무기, 유기 안료는 각각의 성질과 입자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에 원하는 색감을 만드는 과정이 쉽지 않다. 이 때문에 각 안료의 특성을 올바로 이해하고 사용해야 한다.


주사의 특성

붉은 색을 띤 주사朱沙는 황과 수은이 결합하여 굳어진 암석을 곱게 갈아 만든 안료이다. ‘진사辰沙’라고도 한다. 고려불화나 초상화, 화려한 궁중장식화는 물론 부적, 인감에도 많이 사용됐다. 주사의 주성분은 황화수은이다. 황화수은은 독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각별히 유의하여 사용해야 한다. 채색하는 정도론 문제가 되지 않지만 오랜 기간 사용하는 것을 고려해 가루를 마시거나 몸에 직접 닿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또한 수은은 녹는점이 다른 금속들에 비해 낮은 편이다. 350℃에서 기화하기 때문에 수은 증기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왼쪽) 주사원석 / (오른쪽) 다양한 색상의 주사


주사 개기

준비물




1. 주사는 독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인체에 닿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주사를 개기 전 가운데 손가락에 골무를 낀다.


2. 접시에 주사를 담는다.


3. 아교수를 넣은 뒤(시연에서는 10% 농도) 손가락으로 갠다.


4. 입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충분한 시간을 들여 주사를 갠다.


5. 물이 거의 말랐다싶을 정도로 안료가 꾸덕꾸덕한 상태가 되면 접시를
바닥에 놓고, 물을 한 방울 떨어뜨린 다음 붓으로 휘젓는다.
주사를 갠 물감의 농도가 자작하다 싶을 정도가 돼야 추후 안료의 농도를
조절하기가 편하다. 골무에 묻은 주사까지 알뜰히 사용하기 위해 손가락을
접시 위에 놓고 물을 떨어뜨려 주사를 씻어낸 뒤 골무를 뺀다.

tip 압력과 온도 활용하기
주사를 잘 개가 위해서는 압력과 온도가 필요하다.
손이 아닌 다른 도구로 주사를 갤 경우 주사에 가해지는 온도가 없기 때문에 개는데 시간이 더 걸린다.
주사를 더욱 빨리 개고 싶다면 온도가 높은 아교수(체온보다 높은 온도인 40℃ 정도)를 사용해도 좋다.

층 분리하기


6. 주사를 갠 접시를 살펴보면 맨 아래의 빨간 층과 위의 주황색 층이
분리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색상들을 분리해야 원하는 색을 고르게 칠할 수 있으므로 접시를
기울여 층을 분리한다. 이러한 과정을 ‘수비水飛’라고 한다.

(왼쪽부터) 삼주, 이주 일주

7. 주사는 크게 3개의 층으로 분리되는데 제일 위에 뜨는 맑은 물과
중간 층, 바닥에 가라앉은 층으로 구분할 수 있다.
각 층을 구분할 때는 진하기에 따라 가장 연한 색부터 차례로
‘일주’, ‘이주’, ‘삼주’라고 일컫는다.

tip 충분히 수비하기
– 주사를 ê°  물에서는 층분리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색이 무엇인지 파악한 뒤
  시간을 들여 수비 작업을 확실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 시간이 조금 지나고 나면 맨 밑에 삼주가 가라앉고, 이주와 일주가 합쳐진 층이 위로 떠오른 것을 ë³¼ 수 있다.
  삼주를 분리시키기 위해 접시를 기울여 이주와 일주가 합쳐진 층을 분리한다.
– 이주와 일주가 합쳐진 접시에 아교수를 넣고 접시를 기울여 두 층을 분리한다.
  여기서 일주를 뽑아내는데 약 24시간이 걸린다.
  일주가 미립자이기 때문에 분리되는데 상당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가장 밝은 색의 일주를 사용하고 싶다면 일주를 모아 만든 ‘주표’를 별도로 구매해서 사용해도 좋다.

채색하기


8. 장갑을 낀다. 비단 바탕에 손기름이 묻을 경우 채색이 잘 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비단은 귀한 재료이기 때문에 정갈한 마음으로
채색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9. 접시를 기울여 위쪽을 파레트 삼아 붓에 주사 입자를 고루 담는다는
느낌으로 물감을 휘젓는다. 접시를 기울이는 이유는 삼주와 일·이주가
섞이지 않도록 층을 분리하여 원하는 색만 사용하기 위함이다.
접시를 기울이지 않고 일·이·삼주를 모두 휘저어 채색하면 색이 마르고
난 뒤 해당 면적에 얼룩이 질 수 있다.


10. 이주1로 왼쪽 석류를 채색한다.


11. 붓에 남아 있는 주사도 다시 활용할 수 있도록 접시 위에 붓을
놓은 뒤 스포이드로 물을 떨어뜨려 붓 속의 주사를 접시에 담는다.


12. 삼주로 앞쪽의 석류를 칠한다.

tip 물을 고르게 끌어와 채색하기
붓을 세워 원하는 면적을 칠하되 물을 끌어온다는 느낌으로 채색한다.
물은 안료가 바탕재에 침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물
이 없다면 안료의 거친 입자들이 비단 구멍으로 고루 들어가기 어려울 것이다.
안료가 비단에 고르게 칠해져야 물이 말랐을 때 색감이 얼룩지지 않는다.


13. 일주로 석류 알맹이와 꼭지를 칠한다.


14. 이주2로 오른쪽 석류를 칠한다.


15. 맨 처음 칠한 석류 부분이 마르고 나면 삼주로 같은 부분을
다시 칠한다. 두 번째로 칠한 뒤 석류의 색감이 더욱 선명해지고
처음에 생긴 얼룩까지도 없어진 것을 관찰할 수 있다.


16. 삼주로 석류 껍질에 흠집이 난 부분을 표현한다.


출교하기


17. 주사는 광물질이기 때문에 아교를 빼낸 뒤 얼마든지 다시 쓸 수 있다.
주사를 갠 접시에 뜨거운 물을 넣은 뒤 못 쓰는 붓으로 휘젓는다.
접시를 잠시 놓아두면 무거운 입자가 가라앉고 접착제 역할을 했던
아교물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윗물을 버리고 다시 뜨거운 물을 넣는 과정을
2번 정도 반복해 아교수를 빼낸 뒤 접시를 말리면 삼주만 남는다.

tip 주사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출교 후 말린 접시에 남은 삼주는 다음에 아교수를 넣어 사용하면 된다.
일주는 입자가 너무 작기 때문에 출교 작업이 어려우므로
주사를 쓸 때는 일주를 모은 색인 주표를 함께 사용하면 편리하다.



정해진 | 정해진 진채연구소 대표

한성대학교 전통진채화 전공 석사, 동국대학교 미술학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한국전통문화대학 겸임교수 등 다수의 교육, 연구기관에서 근무했으며
현재 진채연구소 대표. 고려대학교 디자인 조형학부 겸임교수이다.


문 기자의 소감
‘주사’라는 하나의 안료에서 이렇게 다양한 색상을 추출할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마치 가시돋힌 장미를 다루는 느낌이랄까요? 주사는 독극물을 지니고 있다고 하니
한편으론 겁도 조금 났지만, 예쁜 색상을 보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작업했답니다.
붓 쥐는 게 서툴러서 얼룩도 많았지만, 석채를 거듭 올리며 색상이 선명해지고
얼룩도 차츰 없어지는 모습을 보니 어렵게만 느껴졌던 석채가 점점 친근하게 느껴졌습니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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