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학진 작가의 괴석 이야기 – 있는 그대로의 아름다움

괴석. 기이한 이름처럼 여느 사람들에겐 그저 돌덩이에 불과하지만 정학진 작가에겐 번뜩이는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애정어린 시선으로 괴석을 바라보고, 그려내는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보자.(편집자주)


어여쁜 색감을 지닌 민화부채의 아름다움에 취해 무작정 시작한 민화. 붓을 든 지도 10년을 넘어서며 ‘괴석’의 매력에 빠져든 스스로를 발견했다. 시작은 2011년 10폭짜리 모란도 병풍을 그릴 때였다. 모란과 함께 놓인 여러 괴석들을 그리며 괴석의 질박한 조형미에 서서히 매료되었다. 자연 그대로의 투박한 아름다움을 따라 붓을 놀리며 마음이 편해졌고, 그리기도 어렵지 않았다. 이후 마음이 이끄는 대로 괴석이 들어간 작품들을 많이 그리기 시작했다.

자연이 빚어낸 투박한 조형미

조선시대 괴석도는 중국에서 전래된 만큼, 중국에서도 아주 오래전부터 필자처럼 괴이하게 생긴 돌에 대해 특별하다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송왕조(A.D.960~1270)에 들어서 괴석에 대해 ‘공석供石’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하는데 여기서 ‘공’은 정신을 뜻하고 ‘석’은 돌을 뜻한다. 의미를 헤아려보면 ‘정신의 돌’이라는 것이고 이는 아시아의 미학적 용어로 졸박미拙撲美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노자에 나오는 ‘대교약졸大巧若拙’이 뜻하듯 가장 훌륭한 기교는 잔재주를 부리지 않는 것이란 내용과 통하는 부분이다. 흔한 말로 ‘무기교의 기교’라거나 일본의 보물인 한국의 막사발처럼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원초적인 미라고 말할 수 있다.
최근 그리는 작품들의 제목을 <심원心源의 정원庭園>시리즈라 이름 붙였다. 요즘처럼 복잡하고 난리통인 세상 속에서 나이를 먹어가면서 필요한 것은 화려하고 농익은 치장보다는 오히려 원초적이고 질박한 자연스러움이 아닌가 생각한다. 바깥의 세상과 나의 내면이 이루는 균형과 원초적인 돌산같은 단단함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바위의 거친 느낌을 살리기 위해 배경으로 모시를 사용했으며(도1, 도2) 수묵할 때 사용하는 크고 긴 붓으로 초를 떴다. 또한 수묵화를 그릴 때의 터치를 괴석에 응용하여 문인화의 느낌을 가미해 보았다. 돼지털로 만든 짧은 붓으로 괴석을 툭툭 두들기듯 표현해 바위의 표면을 표현해보기도 했다.(도3) 괴석 옆에는 사마귀나 거미 등 곤충도 그려 넣어보았다. 사람들이 즐겨 그리는 소재는 아니지만 기존의 화려한 모란괴석도의 형식을 탈피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진리는 그림에서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화면을 가득 채우기보다 어떻게 보면 그리다만 듯 여백을 남겨 완성했다. 이처럼 다양한 붓, 바탕재, 채색 기법을 시도하며 나만의 돌들을 그려보기 위해 실험을 거듭하는 중이다.

신비로운 절경

<기암괴석과 구름 위를 걷다> 시리즈(도4, 도5)는 2017년 겨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개최한 <창덕궁 희정당 벽화> 특별전에서 조선화의 대표적 걸작인 해강 김규진의 <금강산만물초승경도>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아 그린 그림이다. 한 마리의 새가 되어 날아다니며 첩첩이 포개진 날카로운 봉우리와 울창한 산림, 그리고 그 속에 들어앉은 골짜기들 사이를 굽어본 듯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구도도 흥미로웠지만 구름이 기암괴석을 휘감은 신비스러운 절경에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장엄한 절경에 감탄하고 한 사람의 손으로 이처럼 아름다운 풍광을 표현한 것에 대해 또 한 번 감탄했다. 작품의 규모가 큰 편이라 모두 그릴 엄두는 내지 못하고, 일부분이라도 그려본다면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붓을 들었다.
미숙한 실력이지만 이 작품을 그리며 필자 역시 구름 위를 거닐 듯 기암괴석들이 만들어낸 생경한 판타지 세계를 유람하며 해강 김규진의 마음을 따라가 보았다. 이 작품에서도 수묵을 그릴 때 사용하는 큰 붓을 사용해 선의 느낌을 살리는데 주력했다. <기암괴석과 구름 위를 걷다2>의 경우 첫 번째보다 안정적인 구도의 그림인데, 첫 번째 그림을 하며 어느 정도 익숙해진 덕분에 선이 한층 정리된 것 같다.

나만의 그림 위해 도전 거듭할 것

필자는 그림을 그릴수록 ‘민화는 예술’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그 순간만큼은 어떠한 제약에 얽매이기보단 자유롭고 싶다. 현재 다양한 도전을 통해 많은 것을 그려보고 시도하며 스스로와 걸맞는 작품의 길이 어디인지 차츰차츰 좁혀 들어가려 한다.
언젠가 전시장에 걸려있는 나의 그림 앞에서 누군가의 눈길이, 또 마음이 머무를 수 있다면 더없이 기쁠 것이다. 그러한 날이 오길 고대하며 오늘도 붓을 잡는다.


글, 그림 정학진 작가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