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은수 작가 – 마음의 풍경을 그리다

그림에 있어서 어떤 기교나 재료보다 중요한 것이 ‘진심’ 아닐까. 정은수 작가에게 꿈의 길잡이가 되어준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이었다. 내면의 목소리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다보니 자연스레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기 때문. 스스로에게 가장 솔직한 그림을 통해 감동을 그려내는 정은수 작가를 만나보았다.


‘기억의 풍경화’. 정은수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가리켜 말했듯 그의 작품 속에는 추억, 고향, 그리고 사랑이 깃들었다. 화면을 야물게 채운 따스한 색감과 과감한 필치, 담대한 구도 등 수준급의 필력을 가진 그는 놀랍게도 ‘비전공자’다. “대학교에서 의상을 전공했지만, 사실 어릴 때부터 꿈은 화가였어요. 부모님께서 미대에 가는 것을 반대하셔서 하는 수없이 의상학과를 선택했죠. 이후 대학원에 가보려고도 했지만, 천편일률적인 수업방식이 맞질 않아서 관뒀어요. 두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학비를 마련하기도 부담스러운데 차라리 잘됐죠.(웃음) ‘내 마음대로 그려보자’고 나아가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사실 정은수 작가는 학창시절 미술부로 선발돼 사생대회에 나갈 때마다 상을 휩쓸 정도로 재능이 남달랐다. “그때 그리던 소재가 주변에 피어난 들꽃, 집, 산, 저수지, 닭이나 강아지… 이런 것인데 어떤 제약도 없이 편하게 그렸어요. 너무 행복했죠.”

화폭에 스민 어머니의 사랑

충남 서산 출신인 그에겐 시골마을에서 겪었던 모든 일들이 작품의 영감靈感이 된다. 꽃밭에서 친구들과 뛰놀던 기억, 마을 사람들이 장례식날 상여를 나르고 베옷 입으며 곡하는 모습, 결혼식날 다 같이 모여 국수 먹던 순간, 무엇보다 8남매를 억척같이 키워낸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을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작품 곳곳에서 아이를 업거나 소쿠리를 둘러멘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으며 화폭을 가득 채운 자수문양, 나아가 화사한 색채에서도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묻어난다. “힘들게 인내하시며 자식들을 키우시는 어머니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신의 내리사랑이 바로 저런 모습일까 싶을 정도로 존경스러웠습니다.”
막내였던 정은수 작가는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다. 중학교 시절, 남매 중 유일하게 미술학원을 다니기도 했다. 정 작가가 그의 어머니께 ‘미술학원에 보내주신 덕분에 그림을 잘 그리게 된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면 ‘너의 언니한텐 비밀’이라며 미소로 답하셨다고. “어머니의 손재주가 무척 뛰어나셨죠. 베갯모 등에 자수를 많이 놓으셨는데, 수놓인 모란 문양이 마치 보석 같이 아름다웠죠. 미술 부문의 감각이 어머니를 닮은 것 같아요.”

자유로운 붓질에서 피어난 행복

정은수 작가의 그림들은 선명하고, 화사하다. 유화나 분채를 능수능란히 활용한 기술은 차치하고 자신의 목소리에 오롯이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리라. 과거 그림을 배우던 시절, 사실적인 묘사나 기술적인 규제가 그저 갑갑하게만 느껴졌던 그는 어릴 때 자유롭게 붓질하던 기쁨을 곱씹었다. ‘틀려도 괜찮아.’ 용기를 낸 그는 아이처럼 서투를지라도 자유로운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저는 제 마음대로 그려요. 작은 들꽃이 더 중요한 소재라면 들꽃을 크게, 사람을 작게 그리죠. 풍경화의 경우에도 꿈 속을 거니는 풍경을 그리듯 듯 한옥집이 생각나면 한옥집을 그리고 그 옆의 교회가 생각나면 교회를 그려요. 낙서하듯이 그린다고나 할까요?”
작품 활동 초창기에는 지인들이 그림을 팔라고 하여 비싸지 않은 가격에 한두 점씩 팔기 시작했고, 2014년 무렵 그린 ‘소녀와 청마’ 시리즈로는 의도치 않게 동화책을 내기도 했다. 그는 현재까지 11회의 개인전을 진행했으며 올해 수덕사 선미술관 초대전 <기억의 콜라쥬>, 인사동 아리수 갤러리 초대전 <용수나 노올자> 등 10회의 전시는 모두 초대전으로 치를 만큼 세간의 호평을 받았다.
스스로에게 솔직했기에 물 흐르듯 자연스레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것. “그림을 보면 고향이 떠오른다”는 관람객들의 평처럼, 그가 온 마음으로 그린 추억이기에 보는 이에게도 행복의 여운이 그대로 전해졌을 것이다.

소중한 추억으로 빚은 예술

그는 최근에서야 자신의 작품에 민화적인 요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갤러리현대와 예술의전당에서 개최한 민화전시를 보러 갔는데 이름을 알 수 없는 들꽃을 기하학적으로 배치해 그린 작품들을 발견했어요. 저 역시 다양한 꽃으로 패턴화한 작품을 그리곤 하는데 너무 닮은 부분이 있어서 놀라웠죠.”
전통문화에 관심이 많은 작가의 취향 또한 작품에 자연스레 민화를 녹여낸 계기가 됐다. 실제로 화실 곳곳에서 상자 그득이 쌓인 조각보, 꼭두, 상여 장식품 등 그간 틈틈이 모아놓은 수집품들을 볼 수 있으며 연초에는 민화를 그리기 위해 불화장으로부터 아교포수 및 분채 채색법을 배우기도 했다. 이처럼 규방공예, 민화, 한복 등의 전통미술은 그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해주며 훌륭한 오브제가 되기도 한다. 정은수 작가의 전통자수와 천연염색실력 또한 예사롭지 않다. 직접 수를 놓은 자수나, 손수 염색한 천으로 꼴라쥬 작업에도 적극적이다. “제가 호기심이 많아서 궁금하면 꼭 해보거든요.(웃음) 자수를 배우며 새삼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을 깨달았죠. 전통자수와 민화도 닮은 데가 많은 것 같아요. 옛날 기억을 한땀 한땀 누비며 작품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여태껏 걸어온 길이 그렇듯, 앞으로도 정은수 작가는 화폭에 추억을 펼치며 소신껏 한 발짝씩 내딛을 것이다.
“붓을 쥐면서부터 제 역할에 대해 깨닫게 됐어요. 저만의 기억, 동시에 가장 한국적인 그림들을 통해 우리나라 고유의 정서와 아름다움을 담은 작품들을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 더욱 좋은 작품들을 그려낼 수 있길 소망해봅니다.”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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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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