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각 동화작가 – 전통의 얼, 동심으로 그려내다

아이들은 미래의 희망이다. 그렇기에 정승각 작가는 그림책을 통해 아이들의 소중한 가슴에 단순히 ‘예쁜’ 그림이 아닌 ‘지켜내야 할 가치’를 심는다. 수천년의 한국 역사를 토대로 꿈과 희망의 그림을 그리는 정승각 작가를 만나보았다.


무한한 세계에 눈뜨다

‘그림책’하면 으레 아이들이 보는 동화라며 가볍게 넘길 수 있지만 단순해 보이는 이 컨텐츠야말로 우리의 동심, 나아가 본성을 어루만진다는 점에서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특히 30여년 동안 그림책 분야에 몸담은 정승각 작가는 한국적이면서도 독창적인 화풍을 선보이는 것으로 유명한데, 바로 이 지점에서 오늘날 민화 화단이 추구하는 부분과 공통된 지점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오랜 역사, 즉 선조들의 문화를 오늘날의 눈높이에 맞게 재창조한다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정승각 작가는 서양화과 출신이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우리 고유의 문화에 대해 갈증을 느꼈다고 한다. 학부 과정에서 배우는 일련의 교육들이 외국 그림을 표면적으로 다루기에만 급급하다고 느꼈기 때문. 회의감에 절던 그가 정신이 번뜩 든 것도 바로 아이들을 만나면서부터다. “대학교 4학년 시절 공부방에서 미술 자원봉사를 할 때였어요. 아이들은 대상에 매이지 않고 사물을 보고 느끼는 바를 쏟아 내더군요. 충격이었죠. 나도 저렇게 순수한 때가 있었을 텐데…허탈하기도 했고요.” 정승각 작가는 대학교를 졸업하며 2가지 목표를 세웠다. 하나는 수천년 동안 맥을 이어온 우리 미술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기, 또 하나는 아이들과 그림 작업을 계속하며 아이들 그림을 다시 공부하는 것이었다.
자원봉사 활동을 꾸준히 해오던 그에게 부천 상계동 철거민 아이들과의 벽화 프로그램 의뢰가 들어왔다. 작업을 의뢰한 사람은 사회봉사 활동을 하던 국내 대형 출판사의 아트디렉터였다. 벽화작업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그 인연으로 정승각 작가는 90년 1월부터 외주 형태로 해당 출판사의 도서 작업까지 진행하게 된다. ‘네 마음껏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는 아트디렉터의 주문에 정승각 작가는 3~4세용 그림책인 《장난꾸러기 도깨비》를 목판화로 작업했다. “우리나라가 목판, 그리고 출판 대국입니다. 공부를 하다 보니 관련 자료만도 어마어마하더군요. 일례로 삼강오륜 속 그림이나 고려시대 목판화를 보면 화면 구성 자체가 시간의 흐름과 전통 문양을 담아낸 훌륭한 출판미술이에요. 아이들에게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을 녹여낸 그림을 선보이고 싶었습니다.” 그간 아기자기한 그림에 익숙했던 관련 실무자는 정 작가의 그림을 민중목판화로 오인했는지 ‘왜 굳이 아이들에게 목판화를 보여주려 하느냐’며 작업을 중단시키려고도 했으나 의견을 굽히지 않는 그의 뚝심에 못이겨 출판을 허락했다. 결과물을 접한 아트디렉터는 그의 작업물에 감동해 곧바로 회사에서 발행하는 월간지의 표지화를 맡겼고 틈만 나면 주변에 정승각 작가를 적극적으로 추천했다. 정 작가 역시 첫 작품을 통해 스스로의 방향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인고의 시간과 용기를 꿰어 만든 책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무일푼에 가정을 꾸렸지만, 적은 인세로는 생활조차 쉽지 않았고 포트폴리오를 들고 출판사 여러 곳을 찾아다녔지만 ‘아이들 그림은 이렇게 하면 안된다’며 퇴짜맞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날 삽살개를 천연기념물로 등재하기 위해 사비를 들여 연구하는 경북대학교 유전공학과 하지홍 교수의 기사가 눈에 띄었다. 너무나도 감동해 그길로 하 교수를 찾아간 정 작가는 ‘삽살개로 무엇인가 하고 싶다’는 마음을 비췄고, 하 교수로부터 관련 시각 자료와 문헌자료를 듬뿍 얻을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도륙된 삽살개지만 옛 문헌이나 그림에서 자주 등장할 만큼 우리 민족에게 친숙하다는 점, 해를 먹는 개로 알려진 불개 설화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정승각 작가는 이러한 소스를 토대로 아이들에게 우리나라 개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들려주리라 마음먹었다. 때마침 1993년 국내 최초로 어린이책 전문서점 ‘초방책방’이 신촌에 문을 열었고, 저작권 환경이 열악한 작가들을 적극 지원했다. 정 작가 역시 초방책방의 후원에 힘입어 서점의 지하에서 그림책 원화전原畫展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를 개최했다. 전시와 더불어 신작 출판사들을 불러모아 ‘나 이런 책을 출판하고 싶습니다’는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인데, 당시로는 파격적인 시도였다. 4개의 출판사 간 경합 끝에 최종 출판사가 선정됐지만 책을 내는 과정은 험난하기만 했다. 별색 처리와 절단선 등 작업 과정이 까다롭고 어려워 대부분의 업체들이 인쇄를 꺼렸기 때문. 다행히 유명 인쇄소가 포트폴리오 삼아 해주겠다고 하여 간신히 인쇄를 시작했지만 5,000부를 찍어 놓고 보니 별색 처리가 매끄럽게 되어있질 않아 새로이 경비를 들여 인쇄할 수밖에 없었다. 힘든 고비들을 거듭 넘긴 뒤 94년 5월에 출간된 그의 첫 단행본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는 지금 48쇄에 이를 만큼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다. 이후 정승각 작가는 국내 그림책 최초로 100만부를 돌파한 권정생 작가의 《강아지똥》, 일본 유명 출판사 후쿠인칸의 60주년을 기념해 의뢰 받아 작업한 《금강산 호랑이》, 한중일 작가 및 출판사와 작업해 펴낸 평화 그림책 시리즈 중 《춘희는 아기란다》 등 굵직굵직한 작품들을 도맡으며 그림책 분야의 중진으로 자리잡게 된다.

온 몸으로 완성한 작품들

그렇다면 그의 책이 오랜 기간 많은 이들로부터 사랑받는 비결은 무엇일까? 우선 첫 원화전 당시 정승각 작가가 진행했던 강연 ‘뿌리 있는 그림책이 왜 필요한가’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서양 그림책이 홍수처럼 밀려들어도 우리 정서가 담긴 그림책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전통문화가 낯설게 느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우리 것을 보여주자는 것이지요. 강연 참석자들 중엔 지방에서 올라온 사람들도 적지 않았어요. 그만큼 우리것에 대한 갈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승각 작가는 전통 문화를 공부하기 위해 도서관, 박물관 등에서 독학은 물론 그의 말마따나 발동냥, 귀동냥, 눈동냥에 온 힘을 기울였다. “속담 중 ‘활이 있으면 화살이 생긴다’고 하지요. 제가 무엇인가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면 그것이 곧 활이 되고, 화살은 제게 오든지 제가 화살이 있는 곳으로 가게 되더군요.” 삽살개 정보를 제공한 하지홍 교수나 작업을 도운 초방책방, 그가 몸담은 시민미술단체에서 정 작가에게 천의 표면처리를 알려준 스님 등이 ‘화살’의 좋은 예다. 그는 단 한 권의 책이라 할지라도 혼자의 힘으로는 결코 만들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승각 작가는 그림의 표현 방식도 치밀하게 연구한다. 일례로 《까막나라에서 온 삽사리》의 경우 전통 불화 방식에 착안해 부조 방식으로 제작하되 모시천, 금니, 지점토 등 다양한 재료를 자유로이 활용했다. “누군가는 책의 지면이 평면인데 뭐하러 작품을 입체적으로 준비하느냐고 물을 수 있겠지만 그림책의 원화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중요한 부분을 도드라지게 표현할 수도 있을뿐더러 원화 전시를 할 때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요. 아이들의 눈썰미가 어찌나 좋은지…남다른 부분은 용케 찾아내죠.” 그에겐 전통 유물 모두가 소중한 보물이다.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며 장장 17년에 걸쳐 완성한 《금강산 호랑이》에서는 나무젓가락으로 먹선을 표현하고, 꼴라쥬 기법으로 고서古書를 활용했으며 인물을 그리기 위해 당사주첩까지 참고했다.

이처럼 정승각 작가는 그림책과 관련해 정보는 물론 표현기법에 이르기까지 정성을 아끼지 않지만, 무엇보다 온몸으로 그림을 그린다. 이를 체득한 것은 권정생 작가의 《강아지똥》을 통해서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저자의 수필집 《오물덩이처럼 딩굴면서》를 읽었는데, 그분의 치열하고도 고달픈 삶이 곧 동화라는 것을 알 수 있었어요. 저도 대상을 묘사하는 것에만 그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가 곧 강아지똥’이라는 절실한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는 강아지똥이 비를 맞고 땅 속으로 스며들었다는 장면을 그리기 위해 비오는 날 쭈그려 앉아 비를 흠뻑 맞아보기도 했다. 온몸에 김이 날 정도로 오들오들 떨렸지만, 붓을 잡기 무섭게 영감이 퍼뜩 떠올랐고 그때서야 깨달았다고 한다. 그림을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는 사물을 단순히 대상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전통으로 여는 새로운 미래

작가뿐 아니라 어린이도서연구회 자문위원, 공동육아 협동조합 전문위원으로서 아이들과 벽화작업하랴 강연하랴 바쁜 일정을 보내는 요즘이지만, 그는 여태껏 그래왔듯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사실 20여년 전 충주로 이사 올 때부터 ‘어린이 그림책 미술관’을 세우리라 마음 먹었던 그다. 철마다 다양한 그림책 원화를 선보이고 독자들과 체험 프로그램을 함께 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것. 전통 한지의 보드라움을 머금은 수제 그림책도 펴내고 싶다고. “기성 교육에서 아이들이 제대로 된 한지를 언제 만져볼 수 있을까요? 요즘 전통 한지 공방에서 대를 이을 사람이 없다고 하는데 아이들이 촉감이라도 알아야 언젠가 관련 일을 하더라도 하겠지요. 그림책 캐릭터 상품을 한지로 만들 수도 있어요. 관련 프로그램들을 성공적으로 운영한다면 한지 공방을 살릴 수 있겠죠.”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정승각 작가의 관심은 단순히 그림책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림의 뿌리인 우리의 문화가 발전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 “문화라는 건 모름지기 교류의 성격을 갖고 있어요. 해외교류가 많아질수록 우리나라만의 그림 양식을 구축할 필요가 있습니다. 선조가 남긴 소중한 유산을 어떻게 전개시켜 나가느냐가 앞으로의 과제 같아요. 그 길을 열어간다는 생각으로 나아가려 합니다.”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이주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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