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모 교수의 명품 민화 순례⑨ 김세종 소장 <관동팔경도>

대관령 동쪽의 빼어난 여덟 경치. 우리는 이를 ‘관동팔경關東八景’이라고 부른다. 그 원류를 따지자면, 중국 소상팔경에 맞닿아 있다. 하지만 다른 점도 적지 않다. 우선 스케일이 다르다. 소상팔경도는 한반도와 크기와 비슷한 호남성 전역에 걸친 거대한 지역에 걸쳐있는 경치지만, 관동팔경은 대관령 동쪽 해금강부터 경상북도 울진에 이르는 강원도와 경상도 일부 지역의 경치다. 또한 소상팔경은 내륙의 풍경이지만, 관동팔경은 바닷가 풍경이다. 소상팔경은 호남성湖南省의 대동맥에 해당하는 상강湘江과 등뼈와 다름없는 형산衡山, 그리고 심장에 해당하는 동정호洞庭湖 주변에 펼쳐지고, 관동팔경은 해금강에서 시작하여 동해안을 따라 이어진다.

– 글 정병모(경주대학교 문화재학과 교수)


스토리와 히스토리가 있는 풍경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경치 모두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 그것은 스토리와 히스토리가 있다는 점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 수많은 문인과 화가들이 이 두 풍경을 읊고 찬탄한 바 있다. 현재 호남성의 자연 관광으로 소상팔경을 가는 이는 별로 없다. 2007년 한국에서는 최초로 내가 이곳을 답사했고, 그 지역의 방송에서는 오히려 나의 여행에 관심을 갖고 소상팔경이 관광자원으로서 가치가 있는지를 인터뷰했을 정도였다. 최근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찾는 호남성의 절경은 구채구와 원채구다. 하지만 이들 경치는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아 소상팔경과 같이 오랜 역사를 갖고 있지 못하다. 소상팔경의 경우, 당나라 두보로부터 시작하여 근대의 모택동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쟁쟁한 시인묵객과 정치가들이 앞다투어 이들 경치를 찬탄했고 그 역사가 매우 오래다. 관동팔경도 마찬가지다. 이미 신라시대부터 신라의 사선四仙으로 불리는 영랑을 비롯하여 술랑, 낭랑, 안상의 화랑들이 금강산과 관동팔경 지역의 절경을 찾기 시작했다. 그 인연으로 금강산에는 영랑의 이름을 딴 영랑재가 있고, 속초에는 영랑호가 있다. 고려시대에는 강원도 존무사이자 문인이었던 안축의 관동팔경, 조선시대에는 강원도 관찰사이자 가사문학의 대가인 송강 정철의 관동팔경 등 수많은 시가가 세상에 알려졌다. 이것이 인문학적 역사를 가진 자연의 가치다.
김세중 소장 <관동팔경도>를 보면, 민화임에도 불구하고 서양회화에서 보는 듯한 현대적 감성이 물씬 풍긴다. 더욱이 몇 장면은 과연 가보고 그린 것인지 의심이 든다.

실제 경치와 달리 과장하거나 다른 요소를 첨가했기 때문이다. <청간정淸澗亭>(도1)을 처음 보았을 때, 전혀 생뚱맞은 그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정선이나 김홍도의 <청간정>을 보면, 만경대를 중심으로 왼쪽에 청간정을 두고 그곳에서 향한 바다 풍경을 초점으로 삼았는데, 이 민화는 바다가 아니라 개울이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장을 방문하고 나서는 이런 그림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해결의 실마리는 정자 이름에 있다. 청간정은 맑은 시냇가의 정자라는 뜻이다. 신선봉에서 흘러내린 시냇물과 바다가 만나는 지점에 청간정을 지었다. 정선과 김홍도가 바다를 바라보았다면, 이름을 알 수 없는 민화가는 청간정의 의미를 살려 시냇물을 화면 중앙에 두었다. 여기서 시내 위에 설치된 다리에서는 탐승객 두 사람이 우연히 만나고, 어떤 이는 정자의 기둥에 기대어 앉아 개울을 건너는 나룻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왠지 인간적이고 낭만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풍경이다.
정선이나 김홍도가 그린 <청간정>(도2)을 보면, 웬일인지 청간정이 주인공이 아니고 화면 중앙에 만경대가 보이며, 오른쪽 옆에 청간정이 있다. 만경대가 이곳의 뛰어난 경치이고 청간정은 그곳이 바라다보이는 포토존이기 때문에 청간정을 비켜 그린 것이다. 총석정도 마찬가지다. 특이하게 돌기둥들이 불쑥불쑥 솟아있는 경치가 압권이라 늘 총석정이 화면의 중심을 차지하고 그것이 바라다 보이는 환선정은 뒤에 놓은 것이다. 현재 만경대는 군부대에 편입되어 쉽게 볼 수 없다.

이쪽에는 산 풍경, 저쪽에는 바다 풍경

관동팔경도는 크게 두 앵글로 나눠 그려졌다. 정자를 기점으로 ‘바다 풍경’을 바라보는 앵글과 뒤돌아서 ‘산 풍경’을 바라보는 앵글이 바로 그것이다. 바다 풍경은 속을 뻥 뚫어주는 시원한 시야에다 강한 에너지를 뿜어내는 일출 광경을 볼 수 있는 한편, 산 풍경에서는 금강산, 설악산 등 뛰어난 경치가 즐비하게 발견된다. 내가 화가라면, 관동팔경의 앵글 중 어느 앵글을 선택해야 할지 매우 고민이 되었을 것이다. 정자가 두 선택의 기로에 해당하는 셈이다. 그건 취향이나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1746년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화가가 그린 <관동팔경도>(도3, 서울대 규장각 소장)는 바다 풍경의 앵글을 선택했다. 이 그림은 단순히 사실적인 묘사를 넘어 동해에 대한 신비한 인식을 표현하면서 풍경을 관념화했다. 바다 풍경과 더불어 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해 뜨는 광경과 너른 바다를 당시로서는 비현실적인 시점으로 그렸다. 이 화가는 사실적이고 합리적인 표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오직 동해 바다에 관한 신앙과 신비를 표현하는 데 애썼다. 그는 관동팔경을 통해 동해가 에너지의 원천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강하게 시사하고 있다. 그런 탓에 이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영향은 매우 강력하다. 이 화가가 누군지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양에서 활동한 궁중 화원은 아닐 것이고 지방에 산 민화가일 가능성이 높다. 사실적이기보다는 표현적이고 현실적이기보다는 관념적으로 나타냈기 때문이다. 이것은 민화가들만이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상상이다.

민화에서 산 풍경을 택한 대표적인 작품으로 김세중 소장 <경포대>(도4)가 있다. 이 역시 경포대의 호수와 정자, 주변의 산과 나무들을 화폭으로 옮겨왔지만 그것을 구성하는 방식은 매우 자유롭고 관념적이다. 배경의 산이 세 봉우리다. 이 병풍의 다른 그림에서는 다섯 봉우리도 등장한다. 세 봉우리는 삼산三山의 개념이고, 다섯 봉우리는 오악五岳의 개념이다. 한자로 메 산山자를 세 봉우리로 나타내듯이 삼산은 산의 가장 오래되고 기본적인 구성이다. 오악은 일월오봉도처럼 오행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경포대는 전통적인 역원근법을 적용하여 뒤로 갈수록 넓어지고 키 큰 소나무가 일산처럼 커다란 정자를 감싸며, 이 나무 위에는 암컷 학 한 마리가 잠들어 있다. 호수 반대편에는 키가 우뚝한 소나무에 수컷 학이 이를 바라보고 있다. 호수 한가운데에 떠 있는 나룻배에서는 선비가 정자의 선비를 물끄러미 보고 있고, 그 밑에는 오리들이 짝을 지어 헤엄치고 있다. 뭔가 애틋한 이야기가 펼쳐지는 풍경이다. 김시습이 지은 〈관동에서 질탕하게 노닌 기록 뒤에 쓰다 宕遊關東錄志後〉에서 경포대를 이렇게 읊었다.
“강릉 동쪽에 있는 경포의 누대와 한송寒松의 물가는 바로 국선國仙들이 일찍이 노닐며 즐거워하던 곳이다. 마침 내가 가는 날에 구름을 걷히고 바람을 자게 되어, 하늘은 맑고 바다는 깨끗하여 거울같이 빈 것이 한이 없었다. 해가 떠오르는 모퉁이를 끝까지 바라보아 마음과 눈의 유람을 호연하게 함으로써, 내 몸을 정히 소동파가 이른바 ‘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천지간에 붙이니, 창해의 좁쌀 한 톨과 같구나!’라고 한 데 견주어 보았다.(번역: 박영주, 「문화적 경계와 상징으로서의 대관령」, 『대관령, 높은 고갯길 하늘과 맞닿아』, 강릉시오죽헌시립박물관, 2017, p. 120)
신선들이 노닌 곳답게 민화작가는 상상의 드론을 띄워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이야기가 깃든 따뜻한 풍경을 그려내었다. 이것은 사실성에 얽매어 있었던 궁중화원들로서는 접근하기 힘든 세계다. 관념적이면서 인간적인 풍경화, 그것이 민화 관동팔경도다.

관념 속에 자리 잡은 풍경

죽서루는 관동팔경 가운데 유일하게 바다가 아니라 오십천이란 개울을 끼고 있다. 주변의 경치도 아름답지만, 죽서루란 정자와 그 정자가 자리 잡은 오십천 절벽의 풍광이 화룡점정이다. 정선의 <죽서루>(도5, 간송미술관 소장)를 보면, 이 정자를 중심으로 펼쳐진 주변의 산과 오십천을 안정된 구도 속에 담았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죽서루와 오십천 절벽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하지만 민화작가의 해석은 다르다.(도6) 죽서루와 오십천 절벽은 구름이 피어올라가듯 솟구쳐 오르고, 오십천은 폭포처럼 내리꽂히고 있다. 정선이나 김홍도를 비롯한 이전의 많은 작가들이 선택한 수평구도와 전혀 다른 면모다. 여기에 덧붙여 죽서루 뒤의 관청과 성곽도 자세히 나타내었다. 민화 작가들은 다른 화가들과 달리 에너지를 감지하는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는 모양이다. 강하게 혹은 과장되게 나타낸 이미지에서 그 역동성을 느낄 수 있다. 이런 것이 바로 민화에 나타난 표현주의적 성향이 아닌가.
정선과 같은 사대부화가나 김홍도와 같은 궁중화원은 기본적으로 사실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특히 정조의 명에 따라 관동팔경의 경치를 화폭에 담은 김홍도의 경우 지금의 사진기처럼 털끝 하나 틀림없이 세밀하게 표현했다. 이러한 이미지는 사실성에서는 뛰어나지만, 표현성에서는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다. 민화가들은 실제와 똑같이 묘사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관동팔경의 경치를 얼마나 흥미롭고 극적으로 표현할까에 주력했다. 북송대 화가이자 이론가인 곽희는 『임천고치 林泉高致』에서 “푸른 안개와 하얀 길을 보면 그곳으로 가고 싶은 생각이 나고, 넓은 냇가에 노을이 비치는 것을 보면 바라보고 싶은 생각이 나고, 세상을 버리고 숨어 사는 사람이나 산으로 돌아다니는 나그네가 있는 그림을 보면 그들과 함께 살고 싶은 생각이 나고, 커다란 암혈이나 샘과 돌을 보면 거기서 놀고 싶은 생각이 난다.’고 했다.(허영환 역주, 『임천고치』, 열화당, 1989, p. 29) 산수화를 그리는 큰 뜻은 그림 속 주인공과 그것을 감상하는 나를 동일시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민화 관동팔경도는 이렇게 비유될 수 있으리라. 정선과 김홍도의 관동팔경도가 다큐멘터리 속을 실제로 걷는 듯한 느낌이라면, 민화가의 관동팔경도는 드라마 속을 꿈결처럼 거니는 느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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