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모 교수의 명품 민화 순례② – <약방아 찧는 옥토끼> 달의 상상력

정병모 교수의 명품 민화 순례②
<약방아 찧는 옥토끼> 달의 상상력

달이 지구와 가장 가까워지는 날 2016년 11월 14일 밤, 68년 만에 슈퍼문Super Moon이 떴다.
어느 때보다 크고 밝은 달이 우리에게 다가왔다. 예전 같으면 금세 옥토끼가 방아 찧는 장면을 떠올리겠지만, 달의 얼룩이 산과 크레이터로 이루어진 황량한 돌밭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는 터라 점점 멀어져 가는 이야기로 여길 수 있다.
그래도 달은 여전히 우리에게 있어서 꿈과 상상의 원천이다. 계수나무 아래 옥토끼가 불사약을 찧고 있는 신화적인 판타지다.

달의 신화가 새겨진 수막새 기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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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신화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표현한 유물이 있다. 통일신라시대 섬토문수막새(국립중앙박물관 소장)다. 평평한 수막새 위에 설화의 이미지들이 깊이 있고 입체적으로 표현되었다. 무엇보다 뒤로 갈수록 적어지는 원근법이 확연하게 적용되었다. 2차원의 평면에 3차원의 세계를 그린 기법도 놀랍지만, 이들 동물을 드라마틱하게 엮어낸 스토리텔링의 역량은 더욱 볼만하다. 두 손을 벌리고 있는 두꺼비나 토끼의 자세는 우리에게 강렬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아마 두꺼비는 불사약을 빼앗아 간 탐욕의 모습이라면, 토끼는 정성껏 찧은 불사약을 훔쳐가는 두꺼비에 놀라 비명을 지르는 모습일 게다. 그 이야기는 이러하다. 중국 하나라 때 예羿라는 명사수가 있다. 어느 날 하늘에 해가 열 개가 동시에 뜨는 이변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해의 뜨거운 열기와 그로 인한 굶주림과 목마름에 괴로워했다. 예는 열 개의 해 가운데 하나만 남겨두고 아홉개를 활로 쏘아서 떨어뜨렸다. 아울러 천하에 해악을 끼치는 흉악한 괴물들도 화살로 퇴치했다. 무엇보다 활로 쏘아서 해를 떨어뜨렸으니,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우주적인 명사수인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그의 아내인 항아姮娥가 일을 저질렀다. 예가 서왕모에게 불사약을 청했지만 가져오지 않자, 항아가 몰래 훔쳐 먹고 달로 도망간 것이다.(東漢 高誘 『淮南子注』: “恒娥,羿妻。羿请不死之药于西王母,未及服之,恒娥盗食之,得仙,奔入月中,为月精也。) 불사약은 토끼가 달에서 사시사철 방아에 찧는 것으로 말 그대로 영원히 죽지 않는 약이다. 아니 이를 먹으면, 신선이 되는 신통한 약이다. 항아는 불사약을 훔친 벌로 몸이 두꺼비로 변하고 홀로 달을 지키게 되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달 안에 두꺼비가
가득 그려진 것은 그러한 사연 때문이다.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두 마리

천여 년 뒤, 토끼가 방아를 찧는 그림이 민화에 등장한다. 8폭 화조화 중 한 그림인 <약방아 찧는 옥토끼>(개인소장)는 민화다운 단순함이 무엇이고 한국적인 소박함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정확히 보여준다. 구성은 계수나무 아래 토끼들이 방아 찧는 장면으로 간결하다. 나무 아래 동물을 배치하는 구성은 조선시대 화가들이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다. 검박한 것을 지향하는 유교의 이념 때문인지 간결한 구성이 조선시대 화조화에 대거 유행했다. 이 작품은 화려한 기교를 발휘하거나 강한 이미지를 추구하지 않고 소박하기에 오히려 우리의 순수한 감정선을 자극한다. 민화연구가 김호연은 그것을 ‘앳된 동심의 세계’라고 보았다. 이 작품에 대한 그의 평은 이렇게 시작한다.


“달밤에 토끼가 절구를 찧고 해 뜨는 아침에 사슴이 나들이를 한다. 어쩌면 이토록 앳된 동심의 세계를 펼쳐놓을 수 있었을까? 처음으로 이 그림을 대하였을 때, 나는 언제 어디선가 반드시 만나지리라 기대했던 그러한 상황을 느끼면서 옛날의 순수했던 생활감정을 그리워했다.”
(김호연,「민화걸작선」 2, 『북한』 9, 북한연구소, 19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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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연은 여러 매체를 통해서 이 작품의 가치를 국내외에 알렸다. 같은 시기에 활동한 민화연구가인 조자용이 까치호랑이를 통해 ‘해학’을 드러내 보였다면, 그는 이 작품에서 ‘동심’이란 가치를 찾아낸 것이다. 그 덕분에 1980년에는 체신청에서 찍은 민화시리즈 우표에 이 그림이 채택되기도 했다. 아무튼 두 연구가 덕분에 해학과 동심이 민화의 대표적인 매력으로 부각되었다.
사실 이 그림은 동심에 주목하기 앞서 장수의 염원이 서려있다. 항아처럼 옥토끼가 찧고 있는 불사약을 훔치지는 않더라도 보는 것만으로 오래 살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이 병풍의 다른 그림인 <소나무 숲에서 나오는 사슴>도 마찬가지다. 십장생 가운데 사슴, 불로초, 소나무, 구름, 해의 다섯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달의 토끼 그림과 해의 사슴 그림이 대응을 이루는데, 둘 다 장수의 상징이다. 다만 그러한 상징을 동심이 일어나게끔 소박하고 천진난만하게 그려진 것이다.
소박하고 차분한 이미지이지만, 오히려 환상의 세계로 이끄는 마력이 있다. 그이유가 뭔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고 손쉽게 넘나드는 상상력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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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달 안에 있어야할 계수나무와 토끼가 꿈과 같은 달에서 벗어나 현실 속으로 나오는 것이다. 만일 이들이 달 속에만 머물렀다면 단지 꿈의 세계일뿐이지만, 이를 현실로 끌어옴으로써 꿈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하다. 아니 꿈과 현실 사이에 모순관계가 설정된 것이다. 꿈을 꿈속에만 머물게 하지 않고 꿈과 현실을 함께 포용하는 총체적인 인식이 민화에 펼쳐진 세계관인 것이다.
토끼가 방아 찧는 달의 세계는 유교문자도 가운데 맨 끝 자인 치恥자에서도 단골처럼 볼 수 있다. 부끄러움을 알아야 된다는 교훈의 문자인 치자에 맑고 깨끗한 청절의 상징인 백이숙제의 행적과 청절을 대표하는 자연인 매화와 달을 조합시켜 나타내었다. 대개 그 문자 위아래에 “천추청절 수양매월千秋淸節首陽梅月”이라는 제시를 적어 놓는다. 그 의미는 “오랜 세월 청절은 수양산의 매화와 달이라”라는 뜻이다. 은유법을 썼지만, 주나라 무왕에 의해서 은나라가 망하자 은나라 고주국의 왕자로써 의리를 지키기 위해 수양산에서 고사리만 먹다가 굶어 죽은 백이숙제의 청절을 가리키는 것이다. 굶어죽을지언정 부끄러운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 담긴 문자도다. 그림 속에서는 백이숙제의 청절비가 있고 그 위에 달이 떠있는데, 그 달 속에는 옥토끼가 약방아를 찧고 있는 것이다. 청절이란 덕목과 장수를 상징하는 옥토끼는 아무 상관없다. 하지만 민화작가는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청절이란 유교 덕목에 장수를 상징하고 동심을 나타내는 옥토끼를 살짝 넣어서 그 의미를 증폭시켰다.

꿈과 현실을 넘나드는 세계

달의 상상력은 민화뿐만 아니라 서민들의 생활 곳곳에서 발견된다. 김홍도가 그린 <베짜기>(국립중앙박물관 소장)를 보자. 이 작품은 단순한
길쌈만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고부 간의 갈등이 깔려있다. 베틀에서 북질을 하는 여인의 뒤에서 손자를 등에 업고
있는 인물이 바로 시어머니가 아닌가. 얼굴표정이 못마땅한 것을 보면, 곧 참견할 태세다. 며느리의 등 뒤에는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서려있다.
조선시대 여인들에게 시집가 살면서 가장 힘든것이 고부간의 갈등이다. 오죽하면 ‘시집살이 노래’가 불렀을까? ‘베짜기 노래’도 마찬가지다. 이노래를 통해 부녀자들은 길쌈하는 고단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월궁에 노든선녀 옥황님께 죄를짓고
인간으로 귀양와서 좌우산천 둘러보니
하실일이 전혀없어 금사한필 짜자하고
월궁으로 치치달아 달가운데 계수나무
동편으로 뻗은가지 은도끼로 찍어내어
앞집이라 김대목아 뒷집이라 이대목아
……
베틀놓세 베틀놓세 옥난간에 베틀놓세
앞다릴랑 도두놓고 뒤다릴랑 낮게놓고
구름에도 잉아걸고 안개속에 꾸리삶아
앉을개에 앉은선녀 양귀비의 넋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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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궁의 선녀가 옥황상제께 죄를 짓고 지상으로 내려와 베를 짠다는 이야기는 팩트가 아니라 판타지다. 그러나 그 판타지는 현실을 위한 것이
다. 여기서도 우리는 현실과 꿈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를 읽어낼 수 있다. 베를 짜는 여인은 월궁선녀이고, “구름에다 잉아걸고 안개 속에 꾸리
삶아” 짠 베는 천상의 옷감이다. 여기서 월궁은 항아가 사는 광한궁廣寒宮이다. 인간사회에서 커다랗게만 보이는 갈등도 하늘의 관점으로 보면 소소한 일에 불과할 뿐이다. 힘겨운 현실을 달의 상상력으로 이겨나가려 했으니, 조선 여인들의 현명한 지혜에 감탄할 따름이다. 이처럼 꿈에 젖어 있는 며느리인지라 아무리 등 뒤에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가 버티고 서있어도 표정이 밝을 수밖에 없다. “베틀에 앉아 있는 동안엔 내가 선녀인데…” 토끼가 방아를 찧는 그림도 마찬가지다. 꿈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하나로 표현하는 것은 이러한 판타지의 효과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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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토끼는 지금도 약방아를 찧고 있다

“달은 이제 죽었어!” 1969년 7월 29일 <반달>이란 동요를 작사, 작곡한 윤극영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달나라에 우주선을 보낸다는 소식을 듣고 그렇게 탄식했다. 누구보다 “푸른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가 살고 있는 달이라고 믿었던 그에게 과학문명이 서정적인 상상력을 앗아갈지 모른다는 불안한 마음의 표현이다.
그러나 달은 죽지 않는다. 달 속에는 우리의 오랜 이야기와 판타지가 서려있다. 달의 신화를 무시하고 팩트만 따진다면, 우리의 삶이 얼마나 삭막할까? 민화에 꿈과 현실을 포용하는 ‘현실 속 꿈의 세계’가 펼쳐져 있듯이, 우리도 꿈과 현실을 아우르는 지혜가 필요하다. 꿈은 우리의 삶을 넉넉하고 윤택하게 하지 않았던가? 이천여 년 전 중국 전한시대 학자유향劉向이 들려주는 토끼의 이야기는 지금도 유효하다.
“달 가운데 한 마리 토끼가 있으니, 이를 ‘옥토끼’라 한다. 밤이 되어 달빛이 넓은 천공을 비치면, 토끼는 공이를 들고 부지런히 약을 찧는다. 세상 사람에게 행복이 내리는 것은 이 토끼가 애써 약을 찧기 때문이다. 옥토끼는 밤새껏 애써 약을 찧고 낮이면 피곤해 까닥까닥 졸고 있다. 그러다가 해가 질 때면 다시 일어나 또 약을 찧기 시작한다.” – 『오경통의五經通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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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병모(경주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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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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