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산수화를 뛰어넘은 주제와 매력 민화산수화 (民畵山水畵)

도 2. 소상팔경도(8폭병풍) 원포귀범(좌) 송하문동(우) 19세기 말, 종이에 채색, 73.4×32.4cm, 개인(김세종)소장

‘민화산수화民畵山水畵’로 분류되는 조선후기 및 근대기의 산수화들은 전통 산수화에 그 기반을 두고 전개됐다. 민화산수화와 전통 산수화들이 보여주는 연관성은 내용뿐 아니라 기법면에서도 그러하여, 민화산수화는 수묵水墨으로 그려지곤 했다. 때문에 ‘민화’의 일반적 특성으로 지목되는 화려한 채색彩色의 기법이나 복을 부르고 악을 내치는 벽사邪의 기능성이 아무래도 민화산수화에서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민화산수화의 속성과 특성을 전통 산수화의 추종적 측면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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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산수화 vs 민화산수화

조선시대 산수화 주제를 보면, 아름답고 평화로운 풍경으로 동경하던 중국 강남江南의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류의 상상경관, 조선시대 학자들이 존경한 대학자 주자朱子 선생이 머물렀던 계곡을 옮긴 ‘무이구곡도武夷九曲圖’나 조선학자의 공간 등 훌륭한 인물에 관련된 의미를 가진 산수경관, 그리고 우리나라 산천에서 우리의 이목을 호쾌하게 해주는 절경 ‘금강산도金剛山圖’, ‘관동팔경關東八景’ 및 명승의 그림 등이었다. 조선후기에는 옛 대가의 필법과 양식으로 그리는 산수경이 유행했는데, 이 역시 고고한 정신의 산수경을 지향했던 전통에 상통한다. 당나라 시인의 망천輞川이나 송나라 은자의 서호西湖, 유명 시문에 등장하는 산수경, 우리나라 각 지역 팔경, 십경, 지도와 습합하여 지역의 정보를 알려주거나 풍수명당의 개념을 적용하여 복된 지역으로 그린 그림들이 모두 위의 범주에 포함된다.
‘민화산수화民畵山水畵’로 분류되는 조선후기 및 근대기의 산수화들은 이러한 전통의 ‘산수화’ 에 그 기반을 두고 전개되었다. 민화산수화로 유행한 그림이 다름 아닌 ‘소상팔경’, ‘무이구곡’, ‘금강산’, ‘관동팔경’ 및 지역팔경 등이며, 지도식 회화류나 명당표현의 풍수식 산수경도 적지 않다. 민화산수화와 전통적인 산수화들이 보여주는 연관성은 그림의 내용뿐 아니라 기법의 면에서도 그러하여 민화산수화는 수묵水墨으로 그려진 것이 많다. 이러한 까닭으로 ‘민화’의 일반적 특성으로 지목되는 화려한 채색彩色의 기법이나 복을 부르고 악을 내치는 벽사辟邪의 기능성이 아무래도 민화산수화에서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민화산수화의 속성과 특성을 전통 산수화의 추종적 측면에서 이해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왜냐면 ‘민화산수화’가 겨냥한 내용은 사실상 그러한 전통의 내용을 훌쩍 벗어나는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통쾌하게 혹은 오묘하게, 전통의 산수 테마가 지향한 정신적 영역을 섭렵하여 즐기면서 혁신적 변화를 도모하는 데에 민화산수화의 주제와 매력이 드러난다. 한 폭의 산수화를 펼쳐놓고 옛 양식에 부합하는가를 따져 문인화인가 민화인가를 가늠하는 단계에서 한 걸음 나아간다면, 민화산수화가 보여주는 전통의 산수화 주제들이 다양하게 아니 기상천외하게 변화하는 현장으로 성큼 들어서게 된다.

이 땅에서 피어난 상상, 소상팔경

고려시대부터 제작된 한반도의 소상팔경도는 소상강 유역인 중국 동정호洞庭湖 일대의 실경을 그리기보다는 그곳을 상상한 한국인의 시정詩情을 표현하였다. 소상팔경에 담긴 한국의 시정은 중국 강남의 너른 물가의 평화로움을 동경憧憬으로 한 상상이었고,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 산수를 기반으로 하는 토속적 상상이 더해져 전개되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소상팔경도의 전개양상은 민화산수화를 만나면서 급진적이고도 혁신적인 변화의 묘를 창출하게 된다. 민화산수화의 다양한 영역 가운데 소상팔경도는 산수풍경에 상상을 가장 마음껏 부풀어 오르게 하는 주제였다.
조선민화박물관에 《소상십경》으로 전하는 10폭 병풍 중 <동정추월洞庭秋月>을 보면(도 1) 화면의 상단에 가을 달이 또렷하고 짙은 선으로 강조되어 있으며 그 아래로 기러기 떼들이 구름 속을 가로질러 평사낙안으로 날아가는 듯하다. 이 그림의 특성은 산봉우리와 언덕을 그린 선율의 율동이다. 말리는 듯한 곡선들을 나란히 반복하며 굵기를 조절하였다. 대담한 곡선의 조형은 보는 이의 내면에 즐거움과 동시에 평안을 준다. 소상팔경을 펼쳐 누리던 강남에의 상상과 평화로움에의 동경은 이 그림에서 증폭되어, 부드러운 곡선의 과감한 반복으로 즐거운 평화와 흥분을 동시에 느끼게 해준다. 혹은, 옛 산수화의 이상적 공간들을 소상팔경과 함께 그려, 소상팔경의 경관을 이상경으로 만들었다. 개인이 소장한 8경 병풍을 펼치면, 소상팔경의 <소상야우>와 <원포귀범遠浦歸帆>의 좌우로 <향행화촌向杏花村>과 <송하문동松下問童>이 붙어 있다(도 2). 이들은 모두 연결되는 장소인 양 유사한 붓질과 형태로 하나의 병풍에 나란히 공존한다. 당나라 시에 등장하는 은자의 공간이나 소상야우에서 비 뿌리는 공간이 당시 사람들의 상상 속에 어우러져 존재했음을 이 병풍은 보란 듯이 보여준다. 하나의 병풍 속 소상팔경과 여타 산수경의 유사점은 산과 구름이 혼연한 풍경에서 찾을 수 있다. 혹은 소상팔경과 다른 이야기 속 산수경과의 습합이 하나의 화면에서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이외에 현전하는 수많은 채색의 민화소상팔경에 나타나는 다양성과 그 표현의 용기는 양상을 이루고 있다. 민화소상팔경은 소상이란 특정장소의 제약을 완전히 벗어나서 상상 속의 다른 아름다운 환상과 의미를 조합해낸 창조적 산수이미지로 존재하게 되었다.

절경도 구경하고 사찰도 둘러보는, 금강산도

금강산 그림이 조선시대 크게 인기를 얻은 것은 18세기였다. 18세기 내내 문인들은 유행처럼 산수유람을 즐기며 기행시문을 남기곤 했다. 그 열기에 부응하여 전개된 그림문화가 금강산도였다. 19세기 금강산 유람의 열기는 더하여졌고 이는 민화금강산도로 그려지면서 훨씬 많은 양이, 그리고 더욱더 거대한 병풍이 제작되는 활기를 더했다. 민화금강산도에서 눈에 띄는 양상은 거대한 규모이다. 금강산병풍 10폭을 하나의 화면으로 삼아 대형화면의 산수화를 그려냈다. 이는 사람들의 구경 열망을 반영한다. 18세기 사대부 문인 위주로 향유된 금강산도는 유가적 학자들의 문화적 행위가 반영되어 있었다면, 19세기 이후로 제작된 민화금강산도에는 불교 신앙의 측면이 한결 자유롭게 표현되는 차이를 보여준다.
거대한 규모의 좋은 예는 ‘삼성 리움’에 전하고 있는 금강산도 10폭 병풍이다. 10폭의 연폭에 금강산이 그려져 있어 화면의 세로가 123cm에 가로는 6m에 달한다. 이렇게 거대한 금강산 화면은 진경산수화가 부상한 18세기에도 구상하지 못했던 규모다. 그림은 수묵으로 그려져 있고 산봉우리와 사찰의 이름들은 붉은색으로 정갈하게 적혀져 있어 금강산 내부 곳곳에 대한 정보가 매우 상세하게 나타나 있다. 이 그림은 많은 봉우리들이 사람처럼 서거나 앉은 듯 의인화擬人化의 특성을 보여준다. 19세기 민화금강산의 보편적 특성 중 하나가 산석의 의인화이다. 또 다른 거대 규모의 금강산도에는 금박으로 장엄을 더한다(도 3). 이 그림의 장안사 위로 선 많은 산봉우리들은 모두 스님들이 서 있는 모습인 양 더욱 장중하다.
금강산도에 불가적 요소가 자유롭게 표현된 경우의 예로 온양박물관에 소장된 금강산 8폭 병을 들 수 있다. 펼치면 유난히 커다랗고 또렷한 불상이 눈에 띈다(도 4). 이 불상은 묘길상妙吉像이다. 마치 예배를 받으실 양 우리를 쳐다보는 불상의 정면상. 불상의 크기는 그림 속 나무보다 크고 암자보다 크고, 산봉우리만큼 크다. 그 아래 석등과 불타암도 유난히 선명하게 강조되어 있다.

우리나라 팔경들, 멋있고 복福이 많다

관동팔경 외에도 관서팔경, 평양팔경, 해주팔경, 제주 등등 곳곳의 팔경이 민화산수화의 주제가 되었다. 우리 팔경을 찾아다니는 민화의 표현들은 실제의 그곳보다 완벽한 행복한 성격으로 그려지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민화적 상상 속의 완벽과 행복이었다.
부산박물관에 소장된 《관동팔경》 병풍 중 <경포대>는 경포鏡浦의 의미가 온전하게 동그란 거울 경鏡의 거울 모양 호수가 세워져 있다(도5). 그곳은 거울처럼 맑아 마음까지 비추는 완벽한 경포대이다. 그 위로 추억이 상상으로 펼쳐진다. 그것은 소상팔경 중 평사낙안에서 내려앉은 기러기의 기억이다. 중국의 따뜻한 강남땅에 내려앉은 기러기는 평화와 안식을 느끼도록 하는 기억이 있었다. 맑고도 평화로운 완벽한 경포대가 이 민화에 그려진 셈이다.
온양박물관의 <진주촉석루>에는 촉석루矗石樓(도 6) 앞으로는 상서로운 기운을 내뿜고 가는 거북이 한 마리 그려져 있다. 거북 단독상은 민화화조화에서 주요 주제 중 하나이다. 계명대학교에 소장된 《관동팔경》의 <총석정>(도 7)에도 배만큼이나 커다란 거북이가 능청스럽게 헤엄쳐 가고 있다. 총석정 바위들의 좌우로 크고 작은 소나무가 약속이나 한 듯 자라 있고 그 아래 넘실대는 물결 위로 거북 한 마리가 헤엄을 쳐서 뭍 쪽으로 가고 있는 양 그려져 있다. 영험한 거북의 기운이 산수경을 완전하게 해주는 그림의 이른 예로 규장각 소장의 《관동십경》을 들 수 있다. 규장각의 이 그림은 전통적 풍수의 개념이 진채색으로 표현된 명승지 그림이다. 민화산수화의 풍수명당표현(도 8)과 연관이 깊다. 유명한 우리 산천이 보기 좋고 살기 좋은 곳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며, 기원이었다.

명시구와 문인화법으로 문인을 능가하노라

민화산수화는 중국 역대 유명한 문인들의 시구名詩가 적혀 있고 문인산수화의 기본적 화법인 피마준披麻皴(선을 나란히 그어 산의 부드러운 질감을 표현하는 기법)이나 미점米點(먹으로 점을 찍는 법) 등을 수반하는 수묵법이 표현된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그림에 적혀 있는 시문의 서예는 대개 행초行草로 멋이 든 글자체로 간혹 터무니없이 잘못된 글자가 적혀있는 경우들이 발견되어 문식의 격이 높은 문인의 글을 받은 것이 아니라 손재주 있는 화가들의 서체였음을 알려준다.
산수8폭병(동아대박물관 소장)을 보면(도 9), 주로 명明나라 시인들의 시가 적혀있고 옅은 채색을 화사하게 베푼 산수경이 그려져 있다. 그중 한 폭에 유명한 왕사정王士禎의 시 한 수가 화면 상단에 큼지막하게 적혀 있다. 내용은 “강가에는 어부들의 집이 많고, 버드나무의 둑과 마름이 있는 못은 일대가 성글다. 좋을 때는 해 지고 바람 잦은 후, 강 반쯤 붉은 나무에서 농어를 파는구나.” 시에 걸맞게 화면에는 낚시하는 어부가 떠있고 가옥이 즐비한 어촌이 그려져 있다. 집들이 반듯하고 즐비하여 전통적 산수화 속 어촌의 소박한 이미지는 표현되지 않았다. 시에서 읊은 붉은 나무가 중앙에 그려져 있으나 계절의 정취를 보여주는 시구 속 버드나무는 그림에 포착하지 못하였다. 결과적으로 시에서 노래한 봄날 어부촌은 그림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이 그림은 왕사정의 시를 화면 상단에 드리우고 수묵의 산석에는 피마준이 착실하고 먼 산에는 푸른 선염에 소나무들을 문인화 스타일로 하여, 문인화적 풍모의 수묵담채화에 화사한 색조를 가미하였다.
이러한 민화산수화들은 빠지거나 틀린 글자가 크게 문제되지 않는 향유공간에 펼쳐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다소 어눌한 필치도 문제되지 않았을 것이다. 화면의 시와 수묵담채의 분위기가 문인들의 그것이다. 이들이 이 그림을 이용, 문인다운 공간을 장식하였다면 그림의 기능은 무엇이었을까. 문인들의 높은 관직과 녹봉, 학식의 세계에 대한 소망이 아니었을까.

민화산수화들은 대개 문인들의 세계를 흡수하고 재현하면서 문인들의 향유법까지 누려보고자 하였던 꿈을 마음대로 보여준다. 그것은 현실을 벗어난 은거의 세계에 대한 문인들의 상투적 노래가 아닌 은거를 꿈꾸던 문인들의 현실을 꿈꾸어본 이들의 환상이었다. 만약 이러한 민화산수화들이 문인사대부의 공간에 펼쳐졌다면, 오랜 지식의 규제에서 해방되는 즐거움을 맛보게 해주었을 것이다. 소상팔경인 듯 하지만 맹호연이 나귀를 타고 가고 상산사호가 바둑을 두고 강태공이 낚시를 하는 산수경, 그것은 민화산수화가 그릴 수 있는 별세계였다(도 10). 아늑한 동화 같은 산수화 속에 병과 나무가 있는데, 곁에 쓰인 글을 보면 도연명 선생의 오류촌에 고송나무 아래 술병이 그의 ‘음주’용 술병임을 알 수 있다. 그 아래 평택관아가 그려져 있으니, 상상 속 동진 도연명의 산천인데 우리 시골 어디쯤 되는 듯 친근해 보인다. 볼수록 재미있는 민화산수화의 세계는 전통 산수화의 그것을 아우르고 능가한다고 가히 말할 수 있겠다.

 

글 : 고연희(이화여자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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