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민화의 현대화 모색 – 빛나는 민화의 씨앗을 움틔우려면

빠른 속도로 발전해가는 세상 속에서 오랜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문화, 나아가 민화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통문화가 가진 정신적 토대 위에 현시대의 생활과 작가의 영혼까지도 작품에 담아내야 할 것이다. 작가라면 관습, 고정관념, 편견에 맞서 그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해 나가보자.


민화가 조선후기에 유행했던 것은 반복, 재생되어 그려진 이유도 있겠지만 풍부하고 폭넓은 소재가 들어가면서도 생활과 밀접한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민화 속에는 하늘, 땅, 인간에 대한 사랑이 담겨 있으며 산신, 용신, 비, 해, 나무, 돌, 새, 번개, 바람, 사방신, 오방신, 십이지신 등 관념적인 신의 모습도 담겨 있다. 그뿐 아니라 민화는 화조, 산수, 민속 등 모든 종류의 소재들을 행복하게, 자연처럼 순박하게 그려내어 현세에서의 수복壽福을 지상의 영화로 믿고 살아가는 한국인의 인생관과 생활양식을 반영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이끌어준다. 출세와 부귀영화, 무병장수를 꿈꾸었을 그 시대 사람들의 염원이 고스란히 그림에 표현되어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위로는 임금의 어좌에서부터 아래로는 서민들의 생활 속까지 깊숙이 파고들어 그려졌던 민화가 오늘날 다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이미 훨씬 오래전 우리 선조들에 의해서 민화가 대중화됐고 200년이 지난 오늘날 다시 우리 민화가 대유행을 하고 있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던가! 역사 속에는 과거와 현재를 끊임없이 이어주는 매개체가 있어야 한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주는 영매 없이 역사와 전통은 이어지지 않는다. 전통회화인 민화에서 그 영매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그림의 소재 선택과 함께 재료와 채색, 그리고 기법까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무작정 옛 기법만을 고수한다든가 전통재료만 사용한다면 과거에 안착하여 현재의 삶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을 것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다. 역사를 바로 알아야 지나간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으며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역사의 연속적, 영속적 속성은 시간과 공간을 포함한다. 그 속에서 생활풍속과 습속, 관습, 문화 등이 어우러져 그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을 생성하여 이끌어 간다.

외형만이 아닌 본질을 고민해야

아프리카 파푸아뉴기니에는 악어를 숭배하는 원주민이 있다. 이 원주민에게 악어는 공포의 대상인 동시에 숭배의 대상이기도 하다. 악어사냥으로 인한 불가피한 인명피해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도 이 전통을 지키고 있다. 이들은 악어머리뼈로 집안을 장식하며 악어와 같은 용맹함을 갖기를 기원한다. 아시아 고원지대에 살던 스키타이 민족은 금관에 순록의 뿔을 조각하였다. 끊임없이 자라나는 순록의 뿔처럼 민족이 영원히 번창하기를 기원하며 순록의 뼈를 신성시한 것이다. 이처럼 사의寫意란 대상의 외형만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숨겨져 있는 정신까지도 그려내는 것이다. 대상안의 정신세계도 모른 채 외형만을 그린다면 이것은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하다. 마치 화물신앙과 같은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중 미군, 일본군이 군수물자를 싣고 마크로네시아, 멜라네시아의 섬에 상륙하여 군사기지를 건설하게 된다. 이곳은 수천 년간 문명이 들어가지 않은 남태평양에 위치한 섬이다. 주둔군은 이곳에 비행장과 전망대를 만든다. 원주민들이 가만히 살펴보니 비행기가 이·착륙하면서 이곳에 사람들이 출입하고 통조림같이 먹을 것도 나올 뿐 아니라 바다에는 커다란 배가 와서 집(전망대)을 짓고는 안경(망원경)을 쓰고 깃발로 수신호를 보내면 거대한 새(비행기)가 날고 내려앉는 게 아닌가! 전쟁이 끝나고 주둔군들이 본국으로 돌아가자 더 이상 혜택을 누릴 수 없게 된 원주민은 주둔군이 하던 것처럼 활주로를 만들고 항구를 만들어 항공기 유도신호를 보내거나 등대에서 불빛을 쏘아 보내며 기원하기 시작하였다. 언젠가는 커다란 새(비행기)가 와서 먹을 것을 줄 것이라고 믿으며…. 외지인들이 들고 온 물건은 이들에게 풍요 그 자체였던 것이다. 이렇게 생겨난 것이 바로 화물신앙이다. 이처럼 본질을 모르면 아무리 문제를 빨리 풀어도 나무비행기를 만들어 날지 못하는 것과 같고 허공에 대고 공허함에 지나지 않는 수신호를 보내는 것과 같다.
파푸아뉴기니 원주민의 악어숭배, 스키타이의 순록 숭배사상이 외형적인 것뿐 아니라 내면적인 정신까지도 그려내야 한다지만 이런 전통적 가치관이 시대와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그 사회나 집단에서 추구하는 최고의 선은 바뀐다는 것이다.

그림 속에 정신의 기개와 영혼을

한 사람이 대중을 이끌던 시대는 가고 현대는 대중이 대중을 한 시대로 이끌어가는 시대로 발전하고 있다. 세계 어디서나 사물 인터넷으로 인공지능 시대를 가속화시키고 있으며 4차 산업혁명으로 사회 전반에 파급될 엄청난 변화는 가늠하기조차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다. 역사 속에서 전통이 머무르는 시간이 점점 빠르게 지나가 언젠가는 전통이 마치 유행처럼 잠깐 왔다가 이내 사라질 지도 모른다.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 무의미해질 정도로 전통을 지킬 시간조차도 없을지 모른다. 초고속, 광속의 개념은 인터넷 세상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급격히 변화하는 세상에서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킨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역사와 민속, 풍속에 존재했던 민화가 전통 속에서 발현되어 현시대의 생활상과 정신까지도 담아내려면 우리의 마음 속 별은 저 하늘의 별보다 더 많아야 할 것이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한계를 넘어서야 자신의 존재를 확장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올바르게 제대로 가고 있는지 내가 가는 길을 독수리눈으로 매섭게 쳐다보라. 자기 자신을 가까운 곳에서 보는 것은 객관성을 잃는 위험한 일이기에 멀리 높은 곳에서 지켜봐야 할 것이다. 현실에 없는 정신의 세계, 신화와 꿈을, 그리고 기개와 영혼을 그림 속에 담아내야 할 것이다. 습관, 관습,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편견에 맞서서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가보자.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

얼마 전 유명 드라마 작가가 인터뷰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창작의 고통을 이겨내는 특별한 방법에 대해 알려달라는 질문에 그는 주저 없이 ‘죄책감’이라고 답했다. 죄책감이야말로 창작의 원동력이라는 것이다. 드라마 작가나 그림을 그리는 화가나 새로운 것에 대한 끝없는 탐구심과 집요한 도전의식이라는 고통이 있어야만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전통에 대한 지식과 관습, 규칙과의 조화가 마치 창작의 순수함과 거리감을 갖게 할 거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다. 전통이란 예로부터 전해지는 원칙 속에 시대마다 만들어진 규칙이다. 안타깝게도 규칙을 배우기도 전에 그것을 깨는 데 급급해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규칙을 깨는 행위 자체만을 위한 예술은 전통도 현대 민화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저 불쌍한 미숙함의 상징일 뿐이다.
요즘 현대 민화를 그리는 작가들 중에 민화적 소재와 기능성만 강조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회화는 시각적인 예술로서 조형성 즉 예술성이 있어야 한다. 현대적으로 표현된 민화라면 더욱 그러하다. 문화는 형상을 지니거나 바람처럼 머물러 있지도 않으나 느낄 수 있고 보여줄 수 있고 이어갈 수도 확인시켜줄 수도 있다.

더 건강한 전통을 만들기 위해

‘비바람에도 꺾이지 않고 눈보라에도 고개 숙이지 않는 빛나는 씨앗 한 톨 어두운 땅속에서 움텄다가 줄기에 잎무성해지는 계절이 오면 기다리던 꽃 한 송이 피어 날 텐데…’ 라는 윤고방 시인의 시처럼 문화는 우리 정체성 속깊이 살아서 꽃이 되어 이어지고 발전시켜 우리의 삶 속에서 한 줄기 힘으로 서 있어야 한다. 민화 역시 그래야만 하고 또 그렇게 해야 할 의무가 현시대의 민화가들에게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 민화작가들은 전통 민화를 재현, 전승하는데 그치지 않고 오늘날의 시대가 반영된 민화를 통해 상처를 치유함과 아울러 더욱 더 건강한 전통을 만드는 방법론을 모색하여야 할 것이다.


글 금광복 (민화작가, (사)한국민화협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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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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