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미술 속의 해와 달

해와 달은 옛 조상들에게 매우 중요한 상징으로 일월오악도 등의 왕실그림부터 불화와 무화, 사대부의 묘비석 등 다양한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삼족오나 달토끼 등 다양한 설화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통미술 속에서 해와 달이 어떻게 형상화되었는지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우리 민족의 생활상과 철학 등을 알아보도록 하자. (편집자 주)


고대인들은 창천蒼天에 걸린 해, 달, 별을 함께 일러 삼광三光이라 했다. 그들에게 삼광은 하나의 천체이기 전에 천하가 어지러울 때 함께 빛을 잃고, 군주가 덕치를 베풀면 다시 세상을 밝게 해주는 영적 존재였다. 일월은 또한 ‘밝음’의 상징이었고, 안 비추는 곳이 없다 해서 ‘편조遍照’의 상징이 되었다. 한편, 별은 높은 곳에서 인간의 생사에 관여하고 화복禍福과 교훈을 내리는 신체神體로서 군림했다. 이처럼 천체를 인간 중심적으로 해석하는 인문적 천문관은 고분의 일·월상도와 궁궐의 일월오악도, 그리고 비석의 화관석 등 전통미술 전반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었다.


1. 그림 속의 해와 달


일·월상이 그림에 처음 나타난 것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부터다. 고구려인들은 해를 동쪽에, 달을 서쪽에 배치했는데, 이는 음양관의 소산이다. 해는 양, 달은 음의 상징이고, 동쪽은 시생始生의 방위로서 양, 서쪽은 그 반대인 음에 해당한다. 이에 따라 해를 동(좌), 달을 서(우)에 배치한 것이다.
음양사상을 기초로 한 일·월 배치체계는 고려시대 선사禪師의 탑비의 일·월상도를 거쳐 조선시대 왕실 소용의 일월오악도, 그리고 사대부 묘비, 무속 신앙 대상인 무화巫畵, 때로 불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전개되었다.

일월의 상징적 의미는 시대와 계층, 처한 입장과 상황에 따라 다르다. 궁궐의 대표적 장식화인 일월오악도의 핵심 소재인 일월은 음양 상징이자 ‘밝음’과 ‘편조遍照’의 상징이다. 이것은 지배층의 유교적 천문관에 의한 것으로, 《맹자》의 <진심상盡心上>에 나온 “일월은 밝음의 덩어리라, 빛을 받아들일 만한 곳은 반드시 모두 비춰 준다[日月有明 容光必照焉]”라고 한 말에서 영향 받은 바 크다. 조선의 실학자 성호 이익(1681~1763)이 저술한 《성호사설》의 <미수허선생 신도비명병서〉에도 “천도는 강건함이 특징이고, 일월은 밝음이 특징이다[天道尙剛 日月尙明]”라고 나온다. 한편 유학자에게 일월은 하늘의 두 눈, 즉 아래의 땅을 살펴 선악을 판단하여 화를 주고 복을 내리는 천신의 두 눈이기도 했다.
일·월상은 무화巫畵에도 등장한다. 무교에서의 일·월은 집안의 모든 사소한 문제를 찾아 해결해 주는 광영光榮의 신체神體다. 일월의 신격은 추상적인 것이어서 경배 대상으로는 현실성이 부족하고 모호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환상 속에서 본 일·월신의 모습을 인격화, 의인화하고 그에게 직접 호소하는 방법을 택했다.
일·월상은 불화에도 등장한다. 김해 은하사 대웅전의 <아미타내영도>(도3)에서 그 예를 찾을 수 있는데,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하는 상단 불화지만 영가단靈駕壇에 봉안돼 있다. 망자를 극락 왕생시키기 위한 사자의례용死者儀禮用으로 제작되었기 때문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주존을 중심으로 좌우에 관음, 대세지, 지장, 인로왕보살의 네 보살이 배치돼 있고 화면 상단 좌우에 붉은 해와 흰 달이 떠있다.
이 일·월상은 무화의 일월신과 유사한 성격을 가지는 해와 달이다. 불교의 궁극적 목표는 중생들을 지혜의 세계로 인도하는 것이지만, 중생들이 항상 고민하는 생사 문제를 먼저 해결할 필요가 있다. 불화에 해와 달이 등장한 이유다.
회암사 <약사삼존도>(도4)에는 중생을 모든 병고와 고통에서 구제해 준다는 약사여래와 두 협시보살이 그려져있다. 각 보살의 보관寶冠에 일상과 월상이 나타나 있는데, 방아 찧는 토끼가 그려진 것이 달, 삼족오가 있는 것이 해다. 따라서 왼쪽이 월광보살, 오른쪽이 일광보살이 되는 셈인데, 원래는 주존 왼쪽에 일광보살, 오른쪽에 월광보살을 배치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처럼 두 보살의 위치가 바뀐 이유가 무엇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다.

2. 비석의 해와 달

일·월상은 고려 선승의 탑비와 조선 사대부의 묘비에도 나타난다. 유형은 해와 달을 비석 전면에 병렬로 배치한 것, 해를 전면에 달을 후면에 배치한 것 등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전자의 대표적 유례로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비의 일상과 월상(도5)이 있다. 탑비 전면 비액碑額 윗부분에 산, 나무, 상운祥雲, 비천 등과 함께 일·월상이 치밀하고 정세하게 묘사돼있다. 해와 달을 좌·우에 각각 배치하고 그 안에 삼족오와 토끼를 새겨 넣은 이 패턴은 고구려 고분의 장송葬送 미술 전통을 충실히 계승한 것이다.
일·월상은 조선시대 묘비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주로 사대부 묘비에서 발견되는데, 대체적으로 해를 화관석花冠石 전면에, 달을 배면에 배치하는 ‘전일배월前日背月’ 형식을 따랐다. 대표적 유례 가운데 하나로 남양주 와부읍 소재 박운(1493~1562) 묘비(도6)가 있다. 화관석 전면에 다리가 셋 달린 까마귀를 표현한 해를, 배면에 방아 찧는 토끼 모습이 담긴 달을 새겼는데, 표현 기법이 소박하고 순정적이어서 민화적 느낌이 강하다. 이 밖에 남양주시 진건면 용정리에 있는 변안렬(1334~1390) 신도비(도7),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에 있는 정미수(1456∼1512) 묘비(도8), 분당 율동에 있는 한사개(1453~1521) 묘비, 분당 판교동에 있는 이곤(1462∼1524) 묘비 등에서도 일상과 월상을 찾아 볼 수 있다.
일·월상도는 묘비뿐만 아니라 기념 비석에도 나타난다. 순천 벌교에 있는 홍교 부근에 세워진 석비는 조선 영조 때 다리가 큰물에 끊겨 중수한 내력을 기록한 것인데, ‘단교비명斷橋碑銘’이란 글씨가 새겨져 있고(도9) 화관석 양면에 일상과 월상이 표현돼 있다. 둘 다 원상으로만 되어 있어 얼른 봐서는 어느 것이 해인지 달인지 구별이 쉽지 않다. 그러나 전양배음前陽背陰의 배치 체계를 대입하면 앞의 것이 일상, 뒤의 것이 월상임을 알게 된다. 또한 동적인 방사선 빛살 무늬와 정적인 수평선 무늬도 양의 상징인 해와 음의 상징인 달을 구별하는 근거가 된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전통 미술에 나타난 일·월상은 음양 조화와 우주 운행의 이치, 그리고 밝음과 편조, 광영光榮의 신체神體로서 존재한다. 표현에 있어서는 삼족오와 토끼, 원형과 반원형, 혹은 동動과 정靜의 이미지로 상징화한 수법을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3. 삼족오, 토끼와 두꺼비

1) 다리 셋 달린 검은 새
일상日象에 나타난 검은 새의 정체는 무엇이고, 다리는 왜 셋일까? 이 의문에 대한 답이 여러 고전 속에서 간취된다. 《춘추》의 〈원명포〉에 기록된 “해 안에 삼족오가 있다[日中有三足烏]”와 《논형論衡》의 〈설일說日〉 중에 “해 속에 삼족오가 있고, 달 속에는 토끼와 두꺼비가 있다[日中有三足烏 月中有兔 蟾蜍]”, 《회남자淮南子》의 “해 가운데 준오踆烏가 있다[日中有踆烏]” 등이 그것이다. ‘烏(오)’는 ‘검다’는 뜻도 있지만 《설문해자》에서 ‘孝鳥也(효조야)’라고 했으므로 까마귀로 봐도 무리가 없다. 효조는 까마귀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어 보은한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다음은 태양 관련 신화 중 《산해경》 〈대황동경〉에 소개된 ‘열 개 태양[十日]’과 신수神樹에 관한 신화 내용 중의 한 대목이다. “탕곡에 부상나무가 있다. 열 개의 해가 목욕하는 곳으로 흑치국黑齒國 북쪽에 있다. 물 가운데에 커다란 나무가 있는데 아홉 개의 해는 아래 가지에 있고, 하나의 해는 윗가지에 있다[湯谷上有扶桑 十日所浴 在黑齒北 有大木 九日居 下枝 一日上枝]” 같은 장章에 이런 내용도 보인다. “탕곡에 부목扶木(부상扶桑을 가리킨다)이 있는데, 하나의 해가 이르면 하나의 해가 나가는데 모두 까마귀를 싣고 있다[湯谷上有扶木 一日方至 一日方出 皆載于烏]”
한편, 해와 까마귀에 얽힌 이야기가 중국 오제五帝 신화 중 하나인 <십일신화十日神話>에도 나오는데, 줄거리는 대강 이러하다. 천제 제준帝俊의 아내 희화羲和가 열 개의 태양을 낳았다. 동쪽 탕곡이라는 곳에서 매일 아침 열 아들(태양) 가운데 하나를 뽑아 마차에 태워 하늘로 올려 보냈다. 순서를 기다리는 것이 불만이었던 아들들은 어느 날 반란을 일으켜 한꺼번에 하늘로 치솟아 오르고 말았다. 때문에 천지는 불바다가 되고 맹수들은 숲 속에서 뛰쳐나와 사람들을 해쳤다. 백성들이 혼란에 빠진 것을 안타깝게 여긴 요堯 임금이 천제에게 구원을 청하니 천제가 신궁 예羿를 불러 태양을 겁주어 제자리로 돌아가게 하도록 명했다. 그런데 태양들이 자신을 얕보자 화가 난 예는 아홉 개 태양을 활로 쏴 떨어뜨렸다. 화살을 맞고 땅에 떨어진 태양을 보니 모두 세 발 달린 까마귀였다는 얘기다.
까마귀의 다리가 셋인 이유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다. 태양숭배와 새 토템이 연합한 우주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형구, 《고구려의 삼족오 신앙에 대하여-고고학적 측면에서 본 조류숭배사상의 기원 문제》)라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천지인 삼원三元사상의 표상물(민경진, 《한국선도의 ‘삼족오’ 표상에 나타난 조천사상》)이라거나, ‘삼신’, 즉 환인 환웅 단군을 상징화한 것(신용하, 《고조선문명권의 삼족오 태양상징과 조양 원태자袁太子 벽화묘의 삼족오 태양》)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 이밖에 태양 흑점설이 있는데, 고대인들이 태양 흑점을 보고 검은 새를 상상했고, 그 새를 보통의 새와 구별키 위해 다리를 셋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또한 태양의 새는 양의 성질을 가졌으므로 다리를 완전한 양수인 3과 연관시켰다는 주장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반드시 살피고 넘어가야 할 것이 인도신화다. 인도신화는 인도는 물론 고대 동아시아 정신사에 큰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리그베다〉는 고대 인도의 브라만교 성전聖典 가운데 하나로 신을 찬미하는 운문형식의 찬가 모음집으로, 인도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종교문헌이자 인도 사상의 원천이다. 다음은 〈리그베다〉에 나오는 〈태양신의 찬가〉 중 한 대목이다.

“비슈누는 제 힘으로 찬미하고 무서운 짐승 같이 높은 산에 올라 마음대로 뛰논다. 세 번의 큰 발걸음 속에 만물이 편안히 머물고 있나니. 소리 높은 이 찬가를 그곳에 이르게 하라. 저 높은 산에 살아 활보하는 비슈누, 그는 아득한 이 세계를 측량할 때에 세 걸음으로 헤아렸나니…”(정태혁, 《인도철학》, p34-35)

만물이 비슈누(viṣṇu)의 세 걸음 큰 발속에 편히 머문다거나, 세 걸음으로 이 세상을 헤아렸다고 한 것은 일출日出, 충천冲天, 일몰日沒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삼족오의 3이라는 수가 태양의 운행 속성을 상징하는 것이 아닌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현대인들의 입장에서 삼족오는 고대인 당사자들끼리만 아는 약속 부호와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고대인들의 정신세계와 욕망, 우주관과 세계관, 그리고 그들의 신화적 상상력 등을 완벽히 이해하고 공유한다면 그 신비한 비밀은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을 것이다.

2) 토끼와 두꺼비
고구려 벽화 고분의 월상이나 중국 한대漢代 화상석의 월상에 두꺼비 또는 토끼가 나타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중국에서는 이 둘이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드문데 비해 우리나라 경우에는 평남 대동 덕화리 제2호분의 월상도(도12)에서 보는 것처럼 토끼와 두꺼비가 함께 나타나는 사례가 적지 않다.
토끼가 달의 정령으로 인식된 것은 항아분월姮娥奔月 신화와 관련이 있다. 이 신화는 앞서 언급한 <십일신화> 내용의 일부를 구성한 것으로, 줄거리를 요약해 보면 대강 이러하다.
<십일신화>에서 신궁 예羿가 아홉 개 태양을 활로 쏴 떨어뜨려 환란을 막았지만 결과적으로 천제 제준帝俊의 아홉 아들을 죽인 셈이 돼버렸다. 화가 난 제준은 예를 그의 아내 항아와 함께 인간세상으로 추방했다. 신선계에서 쫓겨난 예와 항아는 영원히 살 수 없는 운명에 빠진 것을 깨닫게 되자 불사약을 구하러 곤륜산 서왕모를 찾아간다. 서왕모가 불사약을 만들어 주면서, “길일吉日에 부부가 함께 먹어야 효험이 있다”고 했지만 항아는 욕심을 부려 남편 몰래 불사약을 먹어버렸다. 전거典據에 따라서는 불사약을 먹은 항아가 몸이 가벼워지면서 둥둥 떠올라 달에 이르게 되었다고도 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스스로 달로 도망쳤다고도 한다.
달에 도착한 후 항아가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도 구구하다. 《후한서》의 〈천문〉에는 달의 궁전인 광한전에 들어가 숨을 때 갑자기 두꺼비로 변했다는 얘기가 있고, 《회남자》 〈남명훈〉에는 선녀가 되어 잘 살았다는 얘기가 있다. 이 외에도 계속 과부로 지냈다는 설화도 있다. 한편, 한유의 《모영전毛穎傳》에 인용된 신화에서는 중산中山의 토끼가 신선술을 얻어 항아와 함께 두꺼비를 타고 달로 갔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달에 있다는 두꺼비는 항아와 토끼의 탈것이 되는 셈이다.
이런 이야기도 있다. 천년 수행 끝에 신선이 된 한 쌍의 토끼가 슬하에 네 딸을 두고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이 옥황상제의 초청을 받아 천궁에 가게 되었다. 하늘 남문에 당도했을 때 항아가 어디론가 끌려가는 모습을 목격했다. 혼자 달에 유배된다는 것을 직감한 토끼는 불쌍한 생각이 들어 네 딸 중 하나를 딸려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딸은 부모 곁을 떠나기 싫었으나 아버지 뜻을 따라 항아와 함께 달로 갔다. 달에 있는 토끼는 항아를 수행해서 간 바로 그 토끼 신선이라는 것이다. 신화적 사유는 이처럼 환상적이고 자유분방하다.
월중토月中兎에 관한 이야기는 불교의 석존 본생담本生譚에도 나온다. 바라문으로 변신한 제석천이 먹을 것을 구하러 숲으로 내려왔다. 이때 수달은 물고기를, 원숭이는 과일을, 여우는 고기 조각을 물어다 대접했다. 그런데 토끼는 줄 것이 없음을 한탄하다가 나뭇가지로 불을 지피고 그 속에 제 몸을 던져 제석천더러 자신을 먹으라 했다. 이에 감동한 제석천은 그 마음씨를 만인이 잊지 않게 하기 위해 달에다 토끼 모습을 새겼다는 것이다. 사찰 법당 문짝이나 승복에 장식된 토끼문양이 이 이야기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환상적인 월궁에 대한 동경심을 지상에 구현한 것이 남원 광한루원이다. 정문에 걸인 ‘청허부淸虛府’ 편액, 누각 안에 있는 ‘계관桂觀’, ‘광한루廣寒樓’ 현판은 모두 달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청허부는 달나라 궁궐에 속한 관청을 가리키고, 계관은 달에 있다는 계수나무로 지은 도관道觀이라는 뜻이고, 광한루는 달 속에 있다는 궁전-광한전廣寒殿을 의미한다. 이 모두가 생활공간을 달과 같은 선계로 조성하기 위한 묘책이다. 선계 지향 의지는 궁궐 도처에도 숨어 있다. 창덕궁 연경당 입구 석분의 두꺼비, 경복궁 아미산 석분의 두꺼비, 창덕궁 대조전 후원 굴뚝의 토끼(도14) 등이 그것이다. 규모는 작으나 이들 장식물들은 한 공간을 선계仙界로 탈바꿈 시키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지금까지 살펴 본 여러 부문의 현실 상황을 놓고 볼 때 전통 미술 속의 해와 달에 대한 이해는 우리 민족의 생활감정과 철학과 욕구,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유지되어 온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것과 같은 의미와 가치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


글 허균(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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