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미술의 겉과 속⑦ – 부감俯瞰과 역원근逆遠近

전통미술의 겉과 속⑦
부감俯瞰과 역원근逆遠近

서양 사람들은 항상 자기중심적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화가들은 육안으로 관찰한 3차원 세계를 2차원의 캔버스에 실제처럼 재현키 위해 투시원근법을 창안했다. 서양화의 소실점이 대개 사람의 눈높이와 같기 때문에 그림은 실제와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와 달리 동양화에는 소실점이라는 개념이 없다. 대상을 주객의 관계로 보지 않고 그와 일체되는 체험을 통해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사유하기 때문이다. 대상을 내가 아닌 제2, 제3의 시야로 바라보는 이러한 관물觀物 태도가 각각 역원근법과 부감법을 낳았다.


보이는 것과 있는 것

한자에 ‘시視’와 ‘見견, 현’이 있다. 흔히 ‘본다’는 뜻으로 이해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두 글자가 뜻하는 바가 서로
다르다. ‘시視’는 육안으로 보는 것을 의미한다. 이에 대해, ‘견見’은 ‘드러내다’, ‘드러나 있다’는 뜻이 있다. 서양화는 기본적으로 ‘시視’, 즉 보는 행위를 기준으로 해서 이루어진다. 화가들은 만상을 객체로 보고, 눈에 보이는 모습을 냉철히 분석하여 화폭에 재현한다. 이런 관물태도와 화의 意로 볼 때 원근법, 소실점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은 하등 이상할 것이 없다.
이에 대해 동양화는 ‘결見’의 의미와 관련이 깊다. 동양인은 대상을 주관적 기준으로 파악하지 않고 주객이 합치된 경지에서 인식하는 태도를 취한다. ‘흉중성죽胸中成竹’이니 ‘심중구학心中丘壑’이니 하는 말들이 모두 이런 관물태도를 말해주는 것이다. 내가 주체가 되어 대나무나 산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와 일체 된 상태에서 대나무와 산수를 인식한다. 주객이 하나 된 상태, 즉 대립적 거리감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본다’는 행위가 성립될 리가 없다. 동양화에 소실점은 물론 근대원소近大遠小 개념조차 모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양의 화가는 어떤 대상을 그림으로 그릴 때 그 대상의 본연자태를 그리는 데 관심을 둔다. 대상 자체의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주관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그래서 동양의 화가는 제2, 제3의 시야에서 대상을 관조하는 방법을 취하는 것이다. 제2, 제3의 시야로 대상의 진면목을 파악하려는 이러한 관물태도가 역원근법과 부감법의 발전을 가져왔다.
두 화법은 이름은 서로 다르지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그린다는 점에서는 같다.


3인칭의 시야-부감법

부감법은 가상의 높은 위치에서 지상의 모든 것들을 굽어보는 것처럼 묘사하는 화법이다. 실제로 화가가 그 위치에 오른 적이 없으므로 부감법이 적용된 그림은 3인칭 시점의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부감법으로 그려진 그림은 화가가 풍광 전체를 직접 보면서 그린 것이 아니므로 상상화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체험을 통해 파악하고 인식한 것을 재구성한 것이므로 허구라 말할 수는 없다. 사진 찍듯이 한정된 시야에 보이는 것만 그리는 사생화보다 어떤점에서는 오히려 더 종합적이고 진실에 가까운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동궐도>, <서궐도> 등 궁중 기록화가 오늘날에 민화로 취급되는 상황을 선뜻 이해하기 곤란한 점도 있지만 어쨌든 이 부류의 그림들은 부감 화법의 특징을 확실히 보여 주는 사례 중 하나다. 이런 그림을 그리는 화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궁궐을 구성하는 여러 전각과 경물들이 어떤 모습으로, 어느 위치에 있는가를 꼼꼼히 따져 그 실제적 전모를 종합적으로 그려내는 일이다.
<동궐도>(그림1, 왼쪽)의 화가가 하늘 높은 곳에 올라 궁궐 전체를 조망한 적은 없지만, 수많은 전각과 경물들을 실제처럼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은 사전에 전각과 전각 사이를 누비며 상태나 규모, 형태적 특징, 그리고 지형·지세 등 제반 상황을 살펴 궁궐 전반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안견의 <몽유도원도>는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주제로 한 산수화 일종이다. <도화원기>(도연명)를 보면, 도원이 사방이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세상과 격리된 공간으로 묘사돼 있다. 안견은 도원을 실제로 본적도 가본적도 없지만 그 모습을 핍진하게 그려놓았다.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평소에 그가 <도화원기>를 읽거나 그 이야기를 들어서 도원에 대해 본 것 이상으로 잘 알고 있었고, 부감법이라는 3인칭의 표현기법을 능숙하게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인칭의 시야-역원근법

민화에 나타난 육면체 또는 방형의 물건의 형상을 보면 가까운 쪽이 작게, 먼 쪽이 크게 묘사되어 있는 것을 알 수가 있는데, 이런 표현법을 보통 역원근법이라 부른다. 그런데 역원근법이라는 명칭은 서양화의 원근법과 비교했을 때 그와 반대되는 표현법이라는 점 때문에 편의상 붙여진 이름에 불과한 것이다. ‘원근’이라는 말이 들어 있지만 이것은 민화의 묘법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원근은 어떤 대상을 육안, 그것도 두눈으로 봤을 때 확인되는 것인데, 앞서 말했듯이 동양의 그림에서는 ‘본다’는 행위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역원근법을 구사하는 회화전통은 고구려 벽화로부터 시작하여 조선 후기 민화에 이르기까지 2,00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정체성을 유지해 왔다. 역원근법은 예컨대 민화 <문방도>류의 서가, 서안, 서책, 그리고 초상화 속의 족좌대 등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이 화법의 배경에는 내가 아닌 대상의 시점으로 그의 진면목을 드러내려는 화의 가 숨어있다.
<문방도>(그림2)에서 서책이나 서가 또는 기물 등에 역원근법을 적용한 것은 대상의 실존 양상을 종합적으로 드러내기 위한 묘책이다. 고정된 1인칭 시점으로 서책이나 서가를 육안으로 보면 대상 전체가 아닌 일부분만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 관찰자 중심의 시야가 아닌 2인칭 시야로 대상을 본다면 눈에 보이는 것이든 보이지 않는 것이든 그 전모가 스스로 드러나게 된다.
우리가 어떤 물건에 대해 알고 싶을 때 위와 아래, 앞과 뒤, 좌우 양쪽을 두루 살핀다. 여러 시점으로 봐야 그 물건의 진면목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2인칭 시야로 대상 자체를 보는 것 역시 이와 같은 의미와 효과를 가진다. 다시 말하지만 역원근법 뒤에 이처럼 사물의 본연과 실태를 파악하려는 동양인의 관물태도가 숨어있는 것이다.


서양은 분석적이고 동양은 직관적이며, 서양인은 나의 눈으로 나무 하나하나를 보고, 동양인은 숲이 되어 그 전체를 인식한다. 동양의 화가는 나의 시점이 아닌 제2, 제3의 시점으로 대상을 본다. 동양이 화가들이 기나 긴 역사를 통해 부감법과 역원근법을 화법으로 사용해 온 것은 이것이 객체의 진실을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일부 연구자가 <문방도>의 서가, 서책에 보이는 묘법을 두고 서양화의 화법이 습합, 변형된 현상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읽은 적 있지만, 그것은 겉만 보고 속을 보지 못한 사견에 불과한 것이다. 동양의 화가는 결코 ‘나’의 시선과 ‘나’라는 주체를 그림 속에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글 허균(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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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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