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권 교수의 ‘짧은 글 긴 생각’ ⑭ – 근대기 민화 제작 방향에 영향을 미친 화승畵僧·단청장丹靑匠 무화巫畵 제작자들Ⅱ

김용권 교수의 ‘짧은 글 긴 생각’ ⑭
근대기 민화 제작 방향에 영향을 미친 화승畵僧·단청장丹靑匠 무화巫畵 제작자들Ⅱ

근대기의 화승·단청장·무화 제작자들도, 앞서 살펴보았던 채색표현주의 작가들 못지않게 직간접적으로 민화 제작 방향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의 화승·단청장·무화 제작자들은 민화 작가와 큰 구분 없이 시대의 요구에 따라 서로 장르를 넘나들면서 활동하였다. 화승이나 단청장은 불화는 물론 무화와 민화를 자연스럽게 제작했으며, 무화, 민화 제작자들 역시 민화, 불화, 무화 등을 자연스럽게 넘나들면서 제작했다.
이는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진다. 왜냐하면 애초부터 민화, 불화, 무화 등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화를 비롯한 불화, 무화 등은 초草라 부르는 ‘밑그림’에 똑같이 의존하고 있으며, 화면의 조화를 이끄는 구도, 현란한 형태, 화려한 색채 등의 조형성이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동시에 산, 나무, 물결, 구름, 동물 등의 소재들과 인간이 누리고자 하는 여러 요구가 서로 상통하며, 모두가 낙원樂園을 지향하는 그림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간에서 유행한 민화의 제재가, 화승이나 단청장 그리고 무화 제작자들에게 채택되어 그려질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반대로 사찰 명부전冥府殿 의식용儀式用이나 신당神堂 의식용인 산수, 화조, 모란 등이 민화 작가들에게 자연스럽게 선택되어 그려질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무화도 마찬가지로 불화를 전문으로 그리는 스님과 무명의 민화 작가들이 선택하여 그려낼 수 있었다.
이렇듯 애초부터 민화·불화·무화는 조형성, 상징성, 쓰임새 등이 거의 비슷해 모든 제작자들이 자연스럽게 넘나들면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었다. 조선후기 사찰 안팎의 단청과 별화別畵 그리고 내부의 봉안용 탱화 그리고 신당의 무화 가운데는 민화와 별반 다르지 않은 제재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불교의 ‘감로탱甘露幀’ 하단下段에는 대부분 생전의 인간들의 어리석고 잘못된 여러 모습을 반영한 각종 위난危難 장면과 생활 속의 풍경들이 표현되는데 이는 일반 민화와 별반 다르지 않다.
근대기에는 그 어떤 장르보다도 민화가 큰 인기를 끌었다. 이에 민화 작가들뿐 아니라 화승·단청장·무화 제작자들도 자연스럽게 민화 제작에 참여해 대중들의 소망과 취향에 맞는 그림을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당시의 화승·단청장·무화 제작자들은 민간과의 소통을 위해 사찰이나 사당에 민화적 요소를 그려 넣었을 뿐 아니라, 별 어려움 없이 대중들의 주문을 받아들여 민화를 제작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글 김용권(문학박사 / 경희대학교 교육대학원 교수)

저자에 관하여

월간 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