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정혜 작가의 자연을 담은 민화 – 우리 안의 색을 찾아 무심無心을 그리다

천연염색한 화폭 위에서 꽃과 나비, 온갖 기물이 부드러운 선율로 다가 온다.
잔잔한 목소리로 소박한 노래를 부르듯 민화를 그리는 전정혜 작가.
그녀는 식물에서 배어나온 색이 그림에 물들도록 바람결에 풀어 놓고,
아련한 그리움을 먼 곳으로 흘려버린다. (편집자주)


건강이 나빠질 무렵 마음도 종종 아팠다. 그때 나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질문은 ‘지금이라도 뭔가를 잘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였다. 그렇게 마음을 추스르려 서울 인사동 거리를 배회하던 나에게 세상은 민화라는 선물을 안겨 주었다. 민화를 그릴 때면 온갖 걱정과 상념. 화가 가슴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기분을 느껴 수행이 따로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윤인수 작가를 통해 민화에 입문한 나는 부산에서 김재춘 작가를 사사했고, 바탕지에 천연염색을 시도하는 등 나름의 화법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민화를 그린 지 10년이 지나서야 비로소 오래된 질문에 스스로 답할 수 있게 됐다.
전통민화의 재현에 치중해오면서 간혹이기는 했지만 창작민화를 그렸다. <만화방창>(도1)은 일본민예관에서 본 도자기들을 한국에 돌아와서도 내내 가슴에서 내려놓지 못하다가 그린 작품이다. 만화방창萬化方暢은 따뜻한 봄이 되어 천지 만물이 힘차게 자라나는 것을 의미한다. 항아리 속에 갇혀 있던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 나비의 형상으로 마음껏 날아오를 수 있기를 바라며,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된 달항아리를 토대로 표면 얼룩까지 묘사했다.

내면의 빛깔을 민화에 입히다

책거리는 오래도록 그리고 싶은 민화의 화목 중 하나인데, <책거리>(도2)는 봉채를 주로 사용해서 그린 작품이다. 부산대학교 정정대 교수님의 산다(S&A) 연구실에서 3년간 배운 천연염색 기법을 살려 오리목과 옻으로 바탕염색을 했다. ‘이게 내가 좋아하는 자연스러운 빛깔이구나!’ 그림이 완성되고 보니, 전통 배색 원리를 담은 간색으로 나만의 미감을 자아냈다. 민화를 그리고 또 그렸다. 매일이 색을 내면에서 끄집어내는 무아지경의 시간이었다. <책거리>(도3)는 2015년 <재현과 창작 민화 대작전>에 출품한 작품으로, 노란 휘장을 친 원본의 외형을 충실히 재현하면서 세부적인 문양 표현에는 화조도, 장생도의 도상을 응용해 변화를 주었다.

현실을 반영해 희망을 주는 그림

털 치기가 중요한 호랑이 그림은 민화 작가들에게 일종의 숙제 같기도 하다. 최근작인 <치(治)-다스리다>(도4)에는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앉은 호랑이와 황토에 연한 먹을 맑게 여러 번 올린 모란괴석도를 함께 그려 넣었다. 무서운 표정이 아닌 호랑이는 마치 백성의 말에 귀 기울이는 임금의 모습을 닮았다. 제목에도 나타나있듯, 요즘의 어지러운 사태를 바로잡아 줄 현군賢君이 나타나길 바라며 한 올 한 올 섬세하게 털을 쳤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호랑이의 눈빛이 보는 이를 따라왔다. 사찰 벽화로 그려진 백의관음白衣觀音의 눈이 사람의 동선을 쫓는 것처럼.
나는 아직 그려보고 싶은 민화가 많다. 재현인들 어떠하며 창작인들 어떠하리. 우리네 서민들의 기발함과 아름다움에 심취해 민화를 그리다가 노고라지면, 창작을 위해 쉴 새 없이 붓을 놀릴 게다.



글, 그림 전정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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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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