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민화와 창작민화의 개념 바로 알기

주봉희, 이야기

* 주봉희, 이야기

재현민화와 창작민화의 개념 바로 알기

‘창작민화’가 민화 화단에 제자리를 잡기 위해서 ‘재현민화’가 반듯하게 서야 한다. 그래야만 창작민화도 민화로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창작민화론’이라는 제목을 쓰면서도 가장 먼저 재현민화의 개념을 바로 잡고 창작민화로 넘어가야 하는 이유다. ‘재현’은 무엇이며, ‘창작’은 무엇일까?

우리의 재현을 화육법에 가두지 마라!

창작민화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재현민화’에 대해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창작민화’가 민화 화단에 제 자리를 잡기 위해서라도 재현민화가 반듯하게 선 모습이 꼭 필요하다. 그래야만 창작민화도 민화로서의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창작민화는 그저 조금 이상한 모습의 한국화(또는 동양화)로만 여겨지고 말 것이다. 만약에 당시 민화 화단의 입지가 분명하게 서 있었더라면 박생광의 작품이나 김기창의 바보산수 같이 민화의 특성을 시작으로 만들어진 작품들까지 민화로서 더 깊게 끌어안을 수 있었겠고, 따라서 그저 민화로 시작하여 동양화에 흡수된 그림 정도로만 여겨지게는 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재현’이라 함은 과거 산물의 어떠함을 그대로 모사한 내용을 오늘의 관람자 안목에 효과적으로 이어줌으로써 그들의 삶에 예술적 유익 창출을 제공하는 예술 방식을 뜻한다.
여기서 ‘재현再現’이란, 동양회화의 전통 학습 방법이었던 모模, 임臨, 방倣 과정 중의 전이모사轉移模寫 단계를 뜻하는 게 아니다.
우리는 사혁謝赫의 화육법畵六法을 너무 맹신한다. 그건 아마도 서양식 논리에 깊게 길든 우리이기에, 서양예술 초보교육 논리 또한 사혁의 것과 비슷하다는데서 기인하는 것 같다. 우리는 우리의 재현을 사혁의 전이모사 뜻·범위·한계에 판단을 멈춤으로써 ‘재현再現’의 또 다른 유익 창출의 가능성을 막고 있다. 제작 의도와 목적 자체가 재현이고, 그 재현 작업의 필요가 현대적 삶의 예술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라면, 그것을 교육 과정 중의 하나로 봐서는 안 된다. 재현 작품으로서 사혁의 전이모사 개념과는 또 다른 분명한 유익효과를 발휘할 개연성이 충분한 것이므로, 과거의 모양 그대로를 모사해서 내놓는다고 해서 그 방법 자체가 어떤 흠결 요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재현작업이 오늘날 현대인의 정서에 지대한 효율성을 보인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실용미술로서의 재현 작업 자체는 작업 목적상 마지막 완성일 뿐, 현재의 작업이 창작 능력으로 발전되길 바라지는 않는 것이다.
이런 개념의 이름을 ‘전통傳統’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으나 전통은 미래를 향한 소통communication까지를 포함한 뜻으로 과거로부터의 맥脈이 오늘을 이어 미래로 향하는 여정을 뜻하는 개념어이다. 같은 논리에 의해 ‘창작민화’ 역시도 ‘전통’인 것이다. 다시 말해, 위의 ‘재현’은 그 목적과 쓰임을 보아 그저 ‘재현’일 뿐이다. <전통의 사전적인 뜻= 계통을 받아 전함 : 이응백 감수, 국어대사전, 교육도서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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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에 없는 우리만의 개념으로 보라!

위에서 말했듯이 서양식 개념으로도 우리의 재현이 이해가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의 클래식 곡 연주가 우리의 재현과 비슷한 모습을 보이기는 해도 우리의 재현은 음악이든지 미술이든지 대부분 민중을 파고드는 실용예술이라는 점에서 그 작업의도도 쓰임도 매우 다르다. 따라서 서양식 개념만 가지고는 ‘재현민화’의 진정한 가치를 보지 못한다.
그러나 만약 ‘재현’이 ‘창작’을 위한 준비 단계의 한 과정쯤인 것으로 낙인찍어 버린다면, 다음과 같은 오류가 발생한다. 현재 우리 민화화단에서 꾸준히 발표되고 있는 수많은 재현민화는 아직 창작 능력의 수준에 이르지 못한 화가 지망생들의 수업을 위한 과제물 정도밖에는 안 된다는 것인데, 이런 편견적 논리를 따르면 현재 민화 화단의 극히 일부 창작민화가를 제외한 거의 모든 민화가는 이제 겨우 ‘아마추어 연습생 수준의 집단’이 되어버리고 말 위기에 놓이게 된다. 설령 그 논리가 사실이라고 할지라도 쉽게 따르기는 힘든 부분이며, 사실 전혀 그렇지 않다. 그건 우리네 미술환경을 잘 알지 못하는 오해로 빚어진 잘못된 논리일 뿐임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엄연히 동양적 가치 관념과 전통적 개념이 있는 바에야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두면 안 되겠다! 단지 서양식 논리에 치우치거나 사혁의 말에 대한 지나친 편견에 우리의 고결한 전통을 그대로 엎어버릴 수는 없다! 다만, 현재의 민화 화단에서 전시회를 통해 발표되는 작품들에는 재현으로서의 생명성(혼魂)을 놓친, 키치kitsch적 모조품imitation 그림들이 너무 많아 걱정이기는 하다.

옛 작품 그대로 옮기는 전통과 민화의 장점

우리의 유구한 전통 예술 속에는 서양에 없는 한 가지의 개념이 또 있다. 전통음악이나 무용극 등을 포함한 모든 예술 분야에서 스승의 작품을, 아니면 옛 작품을 제자(후진)가 원 모습 그대로 옮겨서 발표할 때 그 작품은 제자의 것으로서 품격이 인정되었다. 물론, 이 경우 제자의 독자적 개성은 전혀 들어가지 않은 채 스승의 작품을 있는 그대로 옮기면서 거기에다가 다만 자신의 열정과 혼을 불어넣는 게 옳다. 인위적인 변조는 금기사항이다. 스승님의 엄중함을 훼손하는 것은 심히 불경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게만 할지라도 제자의 개성적 분위기는 모사된 작품 속에서 은연중 풍기게 된다. 물론, 이때의 발표 작품은 분명히 그 제자의 완성된 예술품으로 인정되었다.
이 부분은 우리의 전통예술 중에서 개념적 이해가 한걸음 앞선 우리나라 전통음악의 ‘창’이나 ‘민요’ 같은 예술세계의 도제식 교육 제도 속에서 칭해지고 있는 분류 이름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그들은 스승의 작품을 그대로 모사 표현하는 것을 발표자의 작품으로 존중하며 또, 국악이라는 호칭 안에 재현(?)국악과 창작국악을 함께 둔다. 우리도 이 시스템을 적용한다면 좋을 것 같다. 또한, 명실공히 민화가 우리나라 미술을 대표하는 회화로 나서기 위해 이론 및 실기적 노력에도 총력을 기울여야겠다.

서양의 현대미술은 1950년대 이후 현재까지 우리의 미술에서 주인 행세를 해오고 있으며 어느 사이엔가 우리는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서양미술을 주인으로 떠받들면서 반세기를 지나왔고 은연중에 그들의 판단 기준에 퍽 익숙해져 있다. 더욱이 최근의 변화를 통해 볼 때 우리는 현대화의 한복판 속에서 훨씬 급속하고 전면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서양미술과 접촉하고 있는 상황을 맞고 있다. 새롭게 밀려드는 서양미술을 피해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며 그렇다고 어쩔 수 없이 모방해야 하는 것은 더욱 아니라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철저하게 서양미술을 이해하고 (중략) 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일이 필요한 일이다.
(H. H. 애너슨 저, 현대미술의 역사/이영철 외 역/I.A.D 간행, 들어가는 말 중에서)

그렇다. 서양미술을 이해하고 그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일이 우리 민화에 더없이 중요하고 다급하다. 그렇다고 서양미술을 적군으로 여기라는 말은 아니다. 이미 서양미술이 선점하고 있는 세계 미술시장을 향해 지혜롭게 서양미술의 속성을 잘 살피면서 지피지기 정신으로 파고들어, 우위를 확보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민화는 본질에서 서양미술이 될 수 없는 전혀 독자적인 미술양식으로서의 특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도 구태여 서양미술적인 구도법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도 하고, 설채법 역시 서양의 보색 개념을 우리의 대비색 개념보다 더 높은 가치를 매겨 사용하는 등 지나친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현상은 이미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 민화 구도 속에 구체적인 투시도적 원근법 사용으로 들어오는가 하면, 나뭇잎 하나까지도 자연을 눈에 보이는 그대로 모방해내려는 화풍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방법은 이전 시대의 민화가 비합리적 구도법을 사용했던 특징을 점차 사라지게 한다. 수원의 경기대학교 박물관 소장품 중 특히 화조도 같은 작품들을 살피면 이러한 점들을 여러 작품에서 잘 볼 수 있다.
반면에 필요 이상의 서양미술에 대한 적대심도 다른 의미에서 역시 그에 사로잡혀 자유롭지 못한 것이며, 그 또한 우리 민화 발전에 손해를 끼치게 된다.

서양 현대미술사의 흐름과 민화 열풍

우리 민화가 어떻게 요즘처럼 이렇게 큰 관심과 기대심을 얻는 자리까지 오게 되었나? 이 점에 대하여 서양 현대미술사의 발전 과정이 적잖게 도움을 주었음은 숨길 수가 없다. 필자와 다른 관점을 가진 이들도 있겠으나 그 또한 옳을 수 있으며, 이런 각자의 관점들이 민화 발전에 다각적인 면에서의 도움으로 작용하여 줄 것으로 믿는 마음이 크다.
이 점을 살펴보려면 우선 서양 현대미술사를 더듬어 보아야 할 것 같다.
미술 속에 투시도적 원근법이 생긴 것은 르네상스 시대라고 한다. 원근법은 비록 고대에서도 알려졌기는 했으나 르네상스에 와서야 ‘자연의 모방’, 즉 감상자에게 물감으로 뒤덮인 화면이 아니라 사람, 정물, 풍경을 실제로 보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게 하는 시각적 환영으로서의 회화를 창조하기 위한 수단이 되었다. 그림이 실제 사물과 똑같아 보인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보다 비교할 수 없이 큰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자연에 안기고 싶어 하는 간절한 인간 욕구에 다름 아니리라. 이것은 자연스러움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에 대한 인간의 심각한 불안감을 반증한다. 이게 바로 눈의 위력이다. 성경 속에서조차 사탄이 인간의 이 욕구를 이용하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다. 인류의 첫 사람인 아담의 범죄가, 그의 눈에 ‘보암직도 했다’는 데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서양 현대미술가들이 그 매혹적인 원근법을 포기했다는 것은 가히 위대한 혁명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대미술가들에 의해 회화가 어떤 보이는 것의 모방이 아니라 그 회화 자체가 ‘실재’가 되기에 이르렀다. 즉 회화가 스스로 독자적인 법칙과 존재 이유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것은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야수파, 큐비즘 등의 화가들이 시도했던 선구적인 실험들을 끝으로 모방에 대한 더 이상의 논리적 진전은 없었다.
(H. H. 애너슨/현대미술의 역사, 부분인용)

역사 속에서 현대미술로 간주하는 시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논의되고 있지만, 그중 가장 흔하게 거론되는 것은 아무래도 에두아르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을 선보인 낙선전이 열렸던 1863년일 것이다. 그전의 1855년 귀스타브 쿠르베가 <화가의 작업실>을 선보였던 때로 보거나 아니면 그보다 앞서는 때들이 두어 개 더 거론되기도 하지만, 여하튼 19세기 후반에 시작된 서양의 현대미술은 그 후 급한 변동을 거치며 일종의 모반 역사를 거듭해온다. 즉 길어 봤자 10년, 짧게는 놀랍게도 1년 정도 만에도 그 이름을 바꾸며 인상파로, 야수파로, 다다로, 신조형주의로, 초현실파로, 추상주의 등등으로 이름을 바꿀 때마다 선배 세대 화풍을 완전하게 거부하고 자신들이 내세우는 색다른 화풍에 최고의 정설적 가치를 매겨 새로운 미술운동의 이름으로 내놓았다. 마치 아버지의 주장을 아들이 반발하고 그 아들의 주장은 곧이어 다음 세대에게 배반당하면서 내려온 어쩌면 배반의 역사라고도 할 만큼 계속 신개념의 주장이 선구적 자리를 차지하며 그 역사를 이어왔다. 이렇게 발전(?)해오던 미술은 결국 ‘자연 모방적’ 회화에서 완전하게 벗어나서 드디어 최소주의minimalism라고 하는, 이른바 ‘미술을 위한 미술’을 증명해내려는 목적을 띠는 각각의 양식으로 온 세계를 거의 다 뒤덮어 버리는 시대를 만들어 놓았다. 그때부터 화가들의 예술 행위는 민중들에겐 이해하기 힘들게 되어 자기네들, 즉 예술가들만의 전유물로 여겨지기에 이른다. 그럼으로써 결국 미술관과 미술은 대중적 인기로부터 저만큼 멀어지고 만 것이다. (계속)

 

글 : 정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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