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현과 창작의 민화, 창작민화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보다

김명삼 <유쾌한 이야기>
창작민화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보다

민중은 스스로 민중을 위한 미술을 만들어 내야 하며, 이미 그렇게 해왔음을 역사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민화가 세계인들의 시선을 끄는 이유는 권위주의적이고 귀족적인, 소수만을 위한 미술이 아닌,  민중 속에 들어가 그들의 삶을 이해해주고, 사랑해주고, 격려해주는 민중의 친구로서의 미술이기 때문이다. 창작민화의 방향성이 가리켜야 할 지향점이기도 하다.

귀족적 권위미술에 함몰된 미니멀리즘

현대미술이 사상 초유일 권위적 미술로서의 위상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이전 시대의 자연에 대한 모방주의Mimesis에서 벗어나, 보다 더 이성적理性的으로 미술의 본질을 규명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며 미니멀리즘Minimalism으로 옷 갈아입었기에 가능했다. 우리나라 예술가 중에도 그 대열에 들어 세계적 명성을 얻은 이가 몇 분 있다. 그럴지라도 그건 일부 애호가들의 추종에 기반을 둔 것일 뿐, 민중으로부터는 멀어져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그 이유는 그들의 첨예한 엘리트 정신이 민생의 근본적 입장과는 거리가 먼, 자신들의 논리 즉, ‘미술만을 위한 미술’에만 입각한 개념 표현에 천착하기 때문이다. 이 미니멀리즘 미술은 개념미술이라고도 불린다.
한편, 이러한 문제에 대한 심각성을 해결해내려는 듯한 경향의 미술운동도 생겼었다. 현대미술의 한 단면이었던 순수추상표현주의에 반발하여, 앤디 워홀Andy Warhol(1928~1987) 등을 중심으로 생성된 ‘팝아트Pop-art’라는 또 다른 개념의 미술운동이다. 그러나 그조차도 민중의 삶에 대한 본질과 동행하기보다는 다른 미니멀리즘 화가들과 똑같이 귀족적 권위미술에 함몰돼 버리고 만다. 팝아트는 앤디 워홀이 대중적 인기스타인 마릴린 먼로 등의 이미지를 그대로 옮기거나,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이 만화의 한 장면을 확대한 그림을 그대로 작품화하는 것 등에서 보는 바와 같이 대중문화주의 미술운동인 것은 분명한데, 그 또한 대중문화를 모티브로만 썼을 뿐 미술로 인한 민중의 혜택에 대해선 조금도 배려하지 않았다. 하긴 팝아트 역시 겉모양만 바꾼 미니멀리즘의 논리를 따르는 개념미술이니 그들 작품의 주제가 대중적 삶의 모습이라 해서 대중미술이 될 줄로 기대하는 건 애당초 번지수를 잘못 짚은 것이긴 하다.

팝아트는 1950년대 초 영국에서 그 전조를 보였으나, 1950년대 중후반경 미국에서 추상표현주의의 주관적 엄숙성에 반대하고 대중 매체와 광고 등 대중문화적 시각이미지를 미술의 영역 속에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던 구상미술의 한 경향을 말한다. 팝아트는 사회 비판적 의도를 내포하고 있으며 기존의 규범이나 관습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점에서 다다이즘1)과의 근친성을 보이기도 한다. 1950년대 미국과 영국 등지에서는 대량생산과 소비가 절정에 달하게 된다. 자연 대신에 광고판과 대중 매체를 통해 넘쳐나는 각종 이미지가 ‘자연’이자 ‘환경’으로 받아들여지기 시작하였다. 추상표현주의에 싫증 난 화가들이 경쾌하고 가벼운 대중문화의 이미지들을 그림에 등장시켰다는 것은 현대미술 입장에서 당시 시대적 배경을 놓고 볼 때 매우 타당한 이유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민화인의 관점으로 볼때 민화는 전통적으로 현실비판용이지 않으며 오히려 현실을 격려하는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팝아트와 다르다.

이렇듯 민중이 현대미술로부터 얻는 소외감은 날이 갈수록 계속 커져만 갔다. 그렇다면, 민중은 민중을 위한 미술을 스스로 만들어 내야만 하는 걸까? 필자는 그렇다고 믿는다. 아니, 어떤 의미에서는 역사 속의 민중들이 이미 그렇게 해왔다. 그 단서를 찾아봄으로써 창작민화가 과연 이 시대에 어떤 모습을 해야 하는지 알 수도 있을 것이니, 좀 딱딱한 내용이긴 해도 살펴보도록 하자. 그건 민화가 오늘날처럼 세계적 관심의 중심에 서게 된 배경의 역사적 흐름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은 우리의 민화가들이 반면교사로 삼아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실용미술인 민화 역시 귀족주의적 예술로의 길을 택하려 한다면 단언컨대 그 앞길이 밝지 못할 것이다. 일반 화단에 민화의 특징을 순수미술로 만들어 보려는 화가는 이미 셀 수 없이 많다. 민화는 민중 속에 들어가 그들의 삶을 이해해주고, 사랑해주고, 격려해주는 민중의 친구로서의 미술로 자리 잡아야 한다.

1) 다다이즘dadaism : 다다이즘으로 불리게 된 것은 1916년 취리히의 볼테르 카바레에서 모임을 가졌던 젊은 예술가와 반전주의자들이 우연히 사전에서 ‘다다dada’라는 단어를 발견하면서부터이다. 그들은 이 단어가 정통주의 미학에 반기를 든 자신들의 예술활동과 반전운동을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여겼다. 다다이즘의 선구자이자 대표적인 작가는 마르셀 뒤샹이다. 미국에서는 뉴욕 화랑 ‘291’ 등을 중심으로 이 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다. 1917년에는 베를린에 전파되어 좀 더 정치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제1회 국제 다다 박람회가 1920년 6월 베를린에서 열렸다. 파리의 다다이즘 운동은 미술보다 문학에 역점을 두었다. 이 운동은 1922년부터 시들기 시작하여 20세기의 초현실주의자들과 추상적 표현주의자들에게 계승되었다.

권위와 결별한 포스트모더니즘

미니멀리즘적 현대미술을 향한 일반의 폭넓은 불만은 화단에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이라는 새로운 풍조를 불러들이게 되었다. 사실, 이 철학사상은 사회, 문화, 정치,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었으나, 본 글에서는 미술의 한 단면 중에서 민화 창작을 위해 직접 도움이 될 만한 극히 일부분만 더듬어보려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1979년 프랑스 철학자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가 《포스트모던의 조건The Postmodern Condition》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명시적으로 사용함으로써 하나의 사상적 사조로 분류되기 시작했다. 결과만을 놓고 이야기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권위적인 모더니즘이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시대의 이성적인 문화 법칙을 만들어내려 했던 것’과 달리 다양성과 탈이성, 탈권위적인 것을 추구한다. 모더니즘을 규칙성이라 하고, 포스트모더니즘은 비규칙성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맞지 않을까 싶다.
포스트모더니즘이란, 모더니즘이 내포하고 있는 이성 중심주의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드러내는 사상적 경향의 총칭이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은 이전의 미술운동들이 선배 세대 미술양식에 대해 배반의 역사를 만들어왔던 것과는 좀 다른 양상을 띤다. 선배 세대인 모더니즘을 비판하는 건 맞지만, 또 달리 그 모더니즘까지를 품으면서 이른바 ‘한편의 문화 확장과 다른 한편으로의 반발’이라는 점에서 보이듯, 다중적多重的 구조를 가지는 것이다.
역사 속에는 이러한 포스트적 요인의 흔적들이 이미 전 사회적, 특히 문화적으로 수없이 많이 있었지만, 80년대 이전까지 일련의 관련 사상가들은 그런 것들을 그냥 ‘후기 구조주의Post-structuralism 현상’으로 뭉뚱그려 구분하고 있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을 이해하기 위해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은 모더니즘의 핵심 철학인 ‘구조주의’를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기 위해 나왔다는 것이다.

김명삼 <유쾌한 이야기>
조동희 <봄밤>
김명삼 <해태등장에 깜놀>
포스트모더니즘의 핵심이 되는 ‘후기 구조주의’ 철학은, 던져지는 메시지와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생각한 메시지의 뜻이 다를 수가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확실한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어떠한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게 된다. 여러 사람에 의해 공통된 두 개의 이야기가 거론되는 것 자체인 ‘담론’을 중요시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하튼 이러한 사상은 이전의 일획주의식 엘리트 사상 중심으로 전개되던 양상보다는 엘리트적이지 않은 것, 중심적인 것보다 지역적이거나 주변적인 것, 잘난 것보다는 어리숙한 것, 특히 주인공보다 부주인공적인 것(엑스트라적인 것)의 중요함에 관심의 초점을 맞춘다. 이전의 엘리트 문화의식 속에서 볼 수 없었던 보통 사람의 개성 존중이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 덕분에 우리나라에서도 한동안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이 인기를 끌기도 했고, 각종 광고 속에서는 ‘나는 나이기 때문에 최고다!’라는 식의 보통 사람의 개성 존중 방식이 설득력 있는 호소로 받아들여지는 사회적 분위기로 자리를 잡아 오늘까지 이른다.
오늘날은 경제, 문화의 중심에서 벗어난 주변국 또는 지역들의 문화적 특성을 대하는 담론들이 다른 어떤 것보다 더 인기를 차지하는 시대가 되었다. 유럽이나 미주 지역을 현대문화의 중심지라고 한다면 주변적인 나라 중에서도 주변적인, 극동아시아의 한쪽 귀퉁이에 있는 조그만 나라 ‘코리아’에 쏟아지는 관심도 그만큼 커졌다. 그 덕분에 우리나라 민화가 과거의 주변적이고 키치Kitsch2)적인 미술이라는 평가의 억울한 오명을 벗고 매우 독특하고 위대한 회화양식으로 받아들여지는, 참으로 놀랄만한 역사의 아이러니를 맛보게 된 것이다. 이것은 우리 민화가 세계 선진 미술문화 대열에 나서서 어깨를 겨누며 우월한 예술성을 뽐낼 절호의 기회가 저절로 찾아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오리지널 골동품 민화라면 또 몰라도 우리가 지금 제작하고 있는 모든 현대민화가 우월한 예술성을 갖추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므로 거듭 강조할 것은, 세계적 문화 흐름의 시대적 요구 성찰이 무엇보다 더 시급한 과제라는 것이다.

2) 키치Kitsch : 독일어로 천박하고 저속한 모조품 또는 대량 생산된 싸구려 상품을 이르는 말

해체를 통한 파격적 변용, 효제 문자도

이번 호의 원고는 너무 딱딱한 내용으로만 흐르는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위치의 종적(역사적) 입장과 횡적(통시적) 입장을 수박 겉핥기 정도라도 파악하고 있어야만 창작자의 작업이 시대적 중심점을 파고드는 데 주효하겠기에, 읽는 사람이 힘들 줄 알면서도 계속하는 것을 양해해주길 바란다. 필자가 과거에 민화를 어렵게 배울 때 이 같은 조언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에 더 이러는지도 모르겠다. 미안하지만 조금만 참고 더 들어주길 바란다.
우리 민화 중에는 전 세계인의 인기를 한몸에 받는 효제 문자도孝悌文字圖가 있다. 이 문자도는 이미 알듯이 조선의 사대부가 민중을 교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창작한 것이 유포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던 유교적 이념을 가진 그림이다. 그런데 그 그림의 변화사가 포스트모더니즘에 적응하는 데 중요한 한가지 단서를 우리에게 귀띔한다.
문자도는 조선의 영·정조 시대(1724~1800) 지배계층의 정치적 이데올로기 강화정책에 따라 생겨났고, 당시 탄생할 때만 해도 한자의 의미를 조형적인 미감으로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그림일 뿐이었다. 사실 18세기 사회 변동 속에서 나타나는 신분계층의 변화와 상업, 공업, 수공업의 경제 상승에 따른 화폐 경제 발달은 봉건사회에서 성장한 새로운 요호饒戶의 여염집에 의해 주도됐다. 특기할 점은 그들 민중은 이미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 등의 경험으로 지배계층의 지도력에 대해 크게 실망했고, 당연히 적잖은 불만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속에서 문자도는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이유 있는 양식변천을 해온다.
유교적 이념을 반영했던 문자도가 시대를 거듭하면서 화가의 개성이나 지역적 특성, 재료에 따른 변형 및 축약과 함께 해학이나 장식적인 요소를 반복적으로 담아내게 되었고, 조선 후기에 접어들자 서민들은 자각적으로 권위적인 유교적 이념에 반反하여 권위적인 화폭에서 벗어난 열린 개념으로써 자신들의 염원을 점차 그려 넣었다. 그 작품들은 글자의 의미 전달보다는 화면의 장식적 효과에 더 치중한다. 그런데, 유독 그 변형된 문자도들이 초기의 문자도보다 더 큰 공감적 반향을 불러왔으며, 그 감상용 회화가 돼 버린 문자도의 인기가 오늘날에도 상대적으로 오히려 크다는 것은 우리 창작민화인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것은 효제 문자도의 상징적 소재를 해체해 식물, 새, 동물 등의 현실적 소재와의 융·복합적으로 재구조화하며 변화해 왔다.
민중을 교화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된 문자도가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문자의 내용과는 무관하게 ‘도상을 왜곡하고 확정 짓지 않는 현상들을 작품의 해체를 통한 파격적 변용 방식으로 다시 보기’하는 형식이다.
‘포스트(후기) 구조주의’는 1960년대에 해체주의解體主義Deconstruction3) 학설을 선도적 입장에서 구체적으로 제시했던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1930~2004, 1983년 프랑스 국제철학학교 창설)를 중심으로 태동한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을 의미하는데, 물론 예술양식에 근거한 미국적 포스트모더니즘과는 구별되지만, 우리 민화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범세계적 안목으로 더듬어 짐작해보는 잣대로 쓰기에 유효하다. 여기서 ‘해체’라는 말은 ‘분해’나 ‘파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하여 많은 텍스트를 산출하고 재구축한다는 의미이다. 우리 문자도의 변천된 모습을 그대로 설명하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또 그는 구조의 붕괴는 외부가 아니라 내부로부터의 작용과 ‘희생’임을 강조한다. 데리다는 구조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구조’, ‘기호’의 의미는 고정된 의미의 중심, 즉 근원, 진리, 목적, 절대적 가치가 아닌 환상, 자취, 대체물이라고 반기를 들었다. 또한, 해체를 통해 이성 중심주의, 로고스 중심주의 사상에서 벗어날 것을 강조하며 문자화된 활자 곁에 있는 숨어있는 가장자리로서 텍스트에 주목하고 비非결정성과 반反진리의 논리를 주장했다. 이 이론은 새로운 시대적, 철학적, 사상적 이론을 탐색하고 있던 미국의 사상가들에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김성찬, 효제문자도의 해체적 성향 디자인 연구, 서울 과기대 NID융합기술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6, 및 위키백과 부분참조와 인용)

각설하고, 위의 후기 구조주의 학자들의 이론을 살필 때 우리 민화가 본래 품었던, 어디에도 구애됨 없고, 끝 간 데 없는 자유의지적 표현 특성들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창작민화로서의 미술적 요소들이라는 걸 말하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나부터도) 민화를 그리면서도 서양 미술의 유혹에서 헤어나질 못하고 서양 미론美論으로 충만한 그림을 그려내고 있다. (계속)

 

글 : 정하정

 

저자에 관하여

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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