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료기법서 《한국화의 재료와 기법》 펴낸 정종미 전 고려대 교수

정종미 –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고 뉴욕 파슨스 디자인스쿨과
디와 도네 페이퍼 메이킹 스튜디오 등에서 수학했다. 고려대학교 디자인조형학부 교수 및 색채연구소장을
역임했다. 국내외 에서 26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초대기획전을 성료했으며 제13회 이중섭 미술상, 제13회
이인성 미술상을 수상했다. 현재 전통문화대 특임교수이 며 북촌에 위치한 정종미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정종미 전 고려대 교수가 정년퇴임 후 본업 작가로 돌아가며 그간의 연구결과를 집대성한 《한국화의 재료와 기법》을 발간했다. 재료학을 통해 문화적 정체성과 소명을 깨달았다는 그는 우리의 전통재료에서 전세계 사람들, 나아가 자연과의 조화로운 미래를 위한 ‘K-미술’, ‘웰빙미술’에 대한 힌트를 찾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글 문지혜 기자 사진 우인재 기자


“군인이 전쟁터에 나가려면 총 사용법을 알아야 하듯 그림을 그리는 작가가 재료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누군가를 감동시키긴 불가능합니다. 미술사에서도 양식성에만 치우친 나머지 재료기법사에 대한 언급을 찾기조차 어려운데, 이런 불균형은 회화에 대한 관점을 좁게 만들죠. 미술은 물성과 다양한 표현기법을 통해 비로소 완전해질 수 있어요.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재료학을 알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정종미 전 고려대 디자인조형학부 교수가 15년 간의 교수 생활을 마치고 그간의 재료학 연구를 집대성하여 《한국화의 재료와 기법》을 발간했다. 정 교수는 콩즙, 들기름, 삼베, 모시 등 전통재료를 사용한 작품으로 한국화의 지평을 넓히고 현대화를 모색한 공로로 2001년 제13회 이중섭 미술상, 2013년 제13회 이인성 미술상을 수상한 40여 년 경력의 중진 작가이기도 하다. 오는 10월 싱가포르에 위치한 더컬럼스 갤러리에서 27회째 개인전과 파리 아트페어 를 앞두고 있다. 작가와 연구자의 영역을 오가며 세계 각국의 미술현장을 누빈 그가 일평생 천착해온 ‘재료학’에 대해 듣기 위해 북촌에 위치한 그의 갤러리를 방문했다.

문화의 정체성 담긴 재료학

정 교수가 애초 재료학에 관심을 가진 연유도 더 좋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는 채색 작업에 대한 정당성과도 직결됐다. ‘고구려벽화도 채색화인데, 채색화를 왜 금하는 걸까?’ 동양화를 배우던 학부시절, 채색은 곧 왜색이라며 교수들이 만류하는 분위기 속에서 채색 작업에 대한 근거를 찾는 것은 그의 오랜 화두였다. 그러던 중, 남편의 미국 연수에 동행하여 청강한 뉴욕 파슨스 디자인 스쿨과 종이공방인 디외 도네 페이퍼메이킹 스튜디오에서 해답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각국의 전통 미술재료를 접하며 재료에 기반한 동서양 미술의 특성, 나아가 ‘한국인 작가’로서의 정체성을 성찰하는 계기가 된 것. 전세계의 종이를 접하며 한지의 특질을 이해한 것을 시작으로 동양미술 전문 갤러리인 워싱턴 D.C. 프리어 갤러리, 미국 국회의사당 도서관 등에서 동아시아권 표구/고서화 관련 자료들을 수집하며 자연스레 재료학에 빠져들었다. 특히 관련 내용이 일목요연하게 분류·정리된 일본 측 자료에 깊은 인상을 받고, 수도 없이 일본을 오가며 연구를 이어갔다. 자국의 역사는 짧지만 타문화를 탄력적으로 수용해가는 미국의 문화 인프라와 거액의 기부금을 지속적으로 쾌척하여 자국문화를 적극 확산해가는 일본의 저력을 몸소 경험하는 동안 자신의 소명도 또렷이 깨닫게 됐다.
“당시 많은 작가들이 서양화를 흉내 내는 시점에서 한국미술이 세계적인 위치를 점하기 위해서는 전통문화에 뿌리를 둔 문화를 꽃피워야한다고 생각했어요. 운이 좋게도 보물과도 같은 자료들을 손에 넣을 수 있었지만, 혼자만 알기엔 너무 아까운 정보였어요. 관련 인프라부터 구축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선 연구·수집한 자료들을 책으로나마 공유해야겠다고 결심했죠.”


《한국화의 재료과 기법》
미진사
28,000원

귀국한 그는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틈틈이 연구·수집한 자료와 번역한 데이터 등을 모아 2001년 재료기법서 《우리 그림의 색과 칠》을 발간했다. 이후 연구 자료 등을 대폭 보강하여 22년 만에 신간 《한국화의 재료와 기법》을 펴냈다. 책의 핵심 목적은 전통 채색 재료와 기법을 재조명하여 문화 자긍심을 회복하는 것이다.
“재료학은 벽화로부터 견화, 지화로 이어지는 한국 미술의 역사와 정서를 이해하고 독창적인 한국 미학의 초석이 된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근대화 과정을 겪는 동안 우리 미술의 정체성을 올바로 세우지 못한 채 서구의 표면만을 쫓기에 급급했어요. 재료학을 토대로 그간의 모순과 결핍을 메우다보면 한국미술이 건강하게 발전하리라 믿습니다.”

전남 해남 지역에서 캔 황토를 수비해 만든 <몽유도원도> (2007)

전통채색안료는 한정식, 튜브물감은 햄버거

책에서는 안료에 대한 미시적 분석과 전색제展色材에 따른 물감의 종류별 특성, 사용법 등에 대해 설명하면서도 산업혁명 전후의 재료기법사까지 더해 입체적 관점에서 재료학을 다룬다. 특히 산업혁명으로 인해 상실된 자연성을 회복하여 문명과 자연 간 조화의 길을 제시하는 대목은 눈여겨봐야 할 지점이다. 이는 자연환경뿐 아니라 작가들의 건강과도 직결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최근 작가들이 서양의 합성물질이나 신소재를 갖고 작업을 많이 하죠. 재료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으면 이런 소재들이 화가의 생명을 단축시킬 수 있어요. 미술 쪽의 안전불감증은 심각한 수준입니다. 일례로, 아크릴 물감에 들어있는 아크릴수지는 호흡기에 좋지 않아요. 유화의 희석제인 테레핀은 독성을 띠어 외국에선 사용하지 않습니다. 자연성을 회복해야 해요. ‘웰빙미술’에 대한 해답을 선조들의 전통재료에서 찾을 수 있어요.”
정종미 교수는 전통안료를 사용한 채색기법을 한정식, 튜브물감을 사용한 채색 기법을 햄버거와 같은 정크푸드로 비유했다. 회화도 하나의 생명체여서 건강과 미감, 수명을 위해서라도 건강한 채색기법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초미립자인 튜브물감 안료의 경우 빛의 굴절 현상으로 인한 난반사로 색을 거듭 칠할수록 탁해지는 것과 달리 대립자 원자로 구성된 전통채색 안료로는 중층으로 쌓아 채색함으로써 더욱 맑고 깊은 공간감을 만들어낼 수 있다. 보존 면에서도 수준이 뛰어나다. 사용하기에 다소 번거롭거나 불편하더라도 전통안료를 활용한 기법을 계승해야하는 이유다.

기획전 <한국화의 재료와 기법>이 열리고 있는 갤러리 전시장 전경

《한국화의 재료와 기법》 연계 전시 & 세미나 진행

현재 북촌에 위치한 정종미 갤러리에서는 책에 등장하는 오방색 안료를 비롯해 작품 원화 등을 선보인다. 전통 재료와 기법을 적용한 그림의 실제 미감을 실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귀한 자리다. 주요작 <미인도>(2007)의 경우 일본 아스카 역사 공원에 위치한 다카마쓰 고분 벽화 내 염료 색감에 착안하여 완성한 작품이다. 고구려 유민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벽화에는 색동 주름치마를 입고 있는 여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당시의 뛰어난 염료 기술을 보여준다. 정 교수는 튜브물감으로 인해 사라지다시피 한 염료를 부활시키고자 벽화에 사용된 소목을 작업에 활용했다. 모시를 소목으로 염색하여 화판에 부착한 뒤 채색층을 올려 독창적인 적색을 창조해냈다. 또 다른 주요작 <몽유도원도>(2007)에서는 전라남도 해남 지역에서 캔 황토를 수비해 만든 흙안료로 푸근한 배경색을 연출했다. 수만 년을 안정된 상태에 있었던 황토의 분자구조 상 색감도 영구적이고, 보는 이를 본능적으로 즐겁고, 편안하게 해준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정 교수는 내년 3월부터 갤러리카페에서 정기적으로 재료학 강좌도 진행할 예정이다.


정종미 갤러리 기획전 <한국화의 재료와 기법>
7월 14일(금)~10월 15일(일)
정종미 갤러리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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