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식’과 ‘길상’의 경계, 책가도冊架圖 이야기

도 5. 책거리, 19세기, 삼성미술관 Leeum

구한말 서울의 광통교廣通橋에 들어선 그림 시장에는 다양한 그림이 팔리고 있었다. 병풍용 장식그림과 단 폭 짜리 민화도 나와 있었다. 당시에 매물로 나온 그림들은 몇몇 문헌에 기록되었다. 그런데 유독 이들 문헌에 언급되지 않는 그림이 하나 있다. 바로 책거리 그림이다. 기록에는 잡히지 않지만, 시전市廛에서 인기 높은 품목으로 거래되었음이 분명하다. 특히 책거리는 궁중양식과 민화의 관계를 설명해 주는 흥미로운 주제이다. 이와 관련된 몇 가지 논점을 시장에서 책거리를 구입해간 사람들이 소유한 그림을 통해 살펴보면 어떨까? 구한말의 흑백사진 속에 등장한 책거리 그림이 그 단서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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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부 사진> 속의 책가도

여기에 20세기 초에 촬영한 두 장의 사진을 소개한다. 두 사진의 공통점은 배경에 책거리 그림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그림 위주의 사진은 아니지만, 사진 속에 들어 있는 그림은 민화와 관련된 몇 가지 단상을 떠올리게 한다.
두 사진은 어느 부부의 기념사진과 가옥의 실내를 촬영한 것이다. <부부 사진>(도 1) 속에는 책가도 병풍이 놓였고, <가옥실내 사진>(도 2)에는 단 폭의 책거리 그림이 대청과 연결된 방문에 붙어 있다. 두 장의 사진은 19세기 말 혹은 20세기 초의 책거리 그림이 대중들에 의해 어떻게 소비되고 유통되었는가를 적시해 주고 있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먼저 부부의 기념사진에는 아무 기록이나 정보가 없다. 그런데 사진 속의 남편이 신부에 비해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인다. 무언가 사연이 있어 보이지만, 필자의 관심은 사람이 아닌 10폭 병풍에 있다. 이처럼 마당에 나와서 기념사진을 촬영한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실내에서는 어두워서 사진이 찍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마당에서 사진을 촬영하려면 배경을 잘 정해야 하는데, 뒤를 큼직하게 가릴 수 있는 병풍이 가장 제격이다. 아무 배경이 없는 상태로 사진을 찍게 되면, 어수선한 분위기에 기념사진의 특색도 살지 않는다.
그런데 10폭 병풍은 여러 가지 점에서 만만치 않다. 병풍의 값도 비싸지만, 이를 펼쳐놓을 공간이 있어야만 한다. 병풍을 펼쳐두고 여유 있게 감상하려면 집의 평수가 넓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병풍의 크기는 곧 소유자의 계층을 짐작하게 하는 단서가 된다.

한응숙韓應淑의 책가도

다시 <부부 사진>으로 돌아와서, 이 사진 속의 책가도와 비슷한 그림을 찾아보았다. 유사한 작품들을 확보한 뒤, 그 안에서 단서를 찾고, 연결고리를 만들어 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기에 부합하는 한 작품이 눈에 띄었다. 한응숙韓應淑이 그린 <책가도>(도 3) 10폭 병풍이다. 이 병풍은 E. Black과 W. Wagner 교수의 논문에 흑백 사진으로 소개되었다1). 하지만 실물의 소장처는 확인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작가를 알 수 있는 책거리 그림이어서 특별히 다룰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한응숙이 그린 <책거리> 10폭 병풍은 서가 없이 책과 기물로만 배열되어 있다. 화면의 구성은 궁중양식만큼 복잡하지 않고, 그림의 밀도도 약간 감소해 보인다. 한응숙의 <책가도>와 <부부 사진> 속의 책가도를 비교할 연결고리가 필요하다. 한응숙 그림의 두 번째 폭(도 3-1)과 <부부 사진> 속 병풍의 맨 왼쪽 폭(도 1-1)을 비교해 보자. 두 병풍 가운데 가장 비슷해 보이는 부분이다. 두 점 모두 병풍의 세로를 기준으로 삼단 구성을 취하였는데, 가운데에 시계와 향로가 놓인 부분을 보면, 두 그림의 구성이 매우 유사하다. 그 아래에 책과 도자기가 놓인 부분도 대체로 비슷한 특징을 보인다. 상단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부부 사진>에는 수선화를 그렸으나 한응숙의 <책가도>에는 책과 작은 삽병揷屛이 그려져 있다. 원본의 그림을 통해 자세한 디테일을 확인할 수 없지만, 기물의 배열과 화풍은 매우 유사하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유사성은 <부부 사진> 속의 책가도 병풍이 한응숙과 같은 화가에 의해 그려졌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말해준다. 한응숙과 그의 그림에 관한 더욱 분석적인 고찰이 필요하다.

1) Kay E. Black with W. Wagner, Court Style Chaekkori, Hopes and Aspiration(Asian Art Museum of San Francisco, 1998), p. 30.

한응숙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한응숙은 누구인가? 한응숙의 <책가도>에는 그의 이름이 새겨진 인장이 그려져 있다.(도 3-2) 그의 작품임을 확증할 수 있는 단서다. 책가의 기물은 약간 성글게 나열해 그렸지만, 비교적 완성도가 높다. W. Wagner 교수는 한응숙을 책가도의 일인자인 이형록李亨祿(1808~?)에게서 화법을 전수 받은 화가라고 소개했다. 화풍에 근거한 의견이기에 설득력이 있다. 한응숙의 활동 시기는 이형록의 나이 60대 이후인 1870년대로 추정된다. 이때는 이형록이 ‘이택균李宅均’이라는 이름으로 개명하여 활동하던 시기였다. 통도사 성보박물관 소장의 <책가도>(도 4) 10폭 병풍이 이 시기 이택균의 대표작이다.
한응숙의 이름은 조선 말기의 의궤나 차비대령화원差備待令畵員의 명단에서 찾았지만 끝내 확인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그림을 그리기보다 익명의 민간화가로 활동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추측된다.
그렇다면, <부부 사진> 속의 책가도는 궁중양식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민화로 봐야할까? 선뜻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궁중회화와 민화의 경계는 칼로 자르듯 명확히 구분하기 어렵다. 따라서 그 경계에는 중간 단계에 해당하는 그림들이 하나의 군을 이루었다고 하겠다. <부부 사진> 속의 책가도가 그런 예에 속한다. 만약 민화의 정의를 아마추어 서민화가의 그림으로 보아야 한다면, 민간화가들에게 이 정도의 솜씨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되면 <부부 사진> 속의 책가도는 민화의 범위에 들일 수 없는 그림이 된다.

궁중양식을 모방한 민간화가들

19세기 후반기에는 한응숙처럼 궁중양식을 모방하며 활동했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이 상당히 많았던 것으로 추측된다. 민화를 그린 화가는 기존의 아마추어 화가뿐만 아니라 약간의 정통화법을 익혔거나 최소한의 기본기를 갖춘 화가로 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다. 민화의 주요 소비층이 신흥부유층이라면, 서민화가라는 화가군畵家群만으로 그들의 수요에 응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한응숙과 같은 화가군에 들 수 있는 화가들은 누구일까? 아마도 도화서圖畵署 시험에 낙방한 화가들, 화원畵員을 꿈꾸며 생도生徒로 도화서에 들어갔지만 중도에 퇴출당한 화가들, 약간의 정통화법의 지도를 받은 화가들, 유명 화원들의 그림을 모방하며 화법을 익힌 화가 등 다양한 화가들이 있을 수 있다. 한응숙도 이형록에게 그림을 배웠다면 이러한 범주의 중심에 놓일 수 있다. 이들은 대부분 그림을 생계의 방편으로 삼았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민화를 그린 화가의 범위를 폭넓게 잡는다면, 필자는 한응숙의 <책거리>가 민화에 포함될 수 있다고 본다. 이때의 ‘민民’은 서민이 아니라 중인층을 포함한 광의의 ‘민’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부부 사진> 속의 책가도는 신흥 부유층이 소유한 그림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문배그림 책가도

두 번째로 소개한 어느 평민층의 <가옥내부 사진>을 보자. 대청에서 들어가는 여닫이 방문에 책거리 한 폭이 붙어 있다.(도 2) 평민층의 집으로 볼 수 있는 가옥이다. 여기에 붙어 있는 문배 책거리는 평민층에서 구매하여 집안을 장식한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그림의 특징은 길상吉祥의 의미를 지닌 소재가 들어가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책가와 더불어 다산多産과 출세를 상징하는 과일이나 기물 등이 함께 그려진 형태이다. 가장 비슷한 사례가 삼성미술관 Leeum 소장의 <책가도>(도 5)이다.
궁중양식으로 출발한 초기의 책가도는 이러한 길상의 모티프와 관계가 없었다. 그러나 평민층으로 전이되어간 책가도에는 소박한 길상의 요소가 등장한다. 재액災厄을 떨치거나 자손의 번성함을 의미하는 도상들이 점차 폭넓게 그려지는 현상을 보인다. 즉 행복과 풍요를 원하는 바람과 염원이 책가도에 길상의 상징물로 그려지게 된 것이다.

장식민화와 길상민화

한응숙의 <책거리>가 민화에 포함된다 하더라도 이를 단 폭짜리 책거리 그림과 함께 분류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따라서 <부부 사진>의 책가와 <가옥내부 사진> 속의 책거리를 민화라는 범주에 두더라도 분류를 다르게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필자는 한응숙의 <책거리>처럼 궁중양식을 모방한 그림을 ‘장식민화裝飾民畵’라 하고, <가옥내부 사진>의 것과 같은 민간화가의 책거리를 ‘길상민화吉祥民畵’로 구분한다면 민화의 성격이 더욱 분명히 드러날 것으로 생각한다.
‘장식민화’는 민화의 범주에 들지만, 궁중양식으로부터 민간화民間化 과정을 거쳐 온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한응숙의 <책거리>는 궁중 화원들의 책거리에 연원을 두지만, 그것과 층위를 달리하는 그림이 된다. 평민층에서 소유한 책가도는 길상성이 강조된 ‘길상민화’로 볼 수 있다. 반면에 신흥부유층에서 소유한 책가도는 ‘장식민화’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민화에 길상의 소재가 들어가는 것은 시장의 속성을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구매자의 눈길을 끌자면 그림이 주는 상징과 의미가 상당한 호소력을 지녀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구매자의 취향을 읽고, 그것에 맞는 길상의 모티프를 그려 넣을 때 ‘길상민화’로서의 영역은 확고해질 수 있다.

민간화가가 궁중양식을 모방한 그림은 여러 층위로 나뉜다. 그 중에서도 단 폭짜리와 병풍은 그 수준이 확연히 갈린다. 따라서 단 폭은 민화로, 병풍은 궁중양식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이 양자의 사이에는 민화도 아니고 궁중회화도 아닌 명확하지 못한 중간지대가 존재한다. 확실한 궁중 화원들이 그린 궁중회화를 제외한 나머지 그림들을 모두 민화라고 부른다 하더라도 그 전체를 평등한 민화로 다룰 수는 없다. 민화 안에서도 다양한 단계를 두어 이를 분류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민화를 서민 취향의 그림을 일컫는 명칭으로 본다면, 중인층이 소유한 수준 높은 채색화는 민화라는 이름을 받아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처지에 놓인다.
앞서 살펴본 이 두 장의 사진은 궁중양식과 민화에 관하여 기록으로 메우지 못한 공백과 간극을 무난하게 보완해 준다. 그리고 궁중회화와 순수 민화 사이에는 중간지대가 존재한다는 점도 환기시켜준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으로 들어오기 전, 민간에서 공간을 장식하던 사진 속의 책가도는 궁중회화와 민화에 걸친 흥미로운 논의를 가능하게 하는 단서가 된다.

 

글 : 윤진영(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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