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는 인물상 – 오수도午睡圖, 인생이 한바탕 꿈임을 알다

잠자는 인물상
오수도午睡圖, 인생이 한바탕 꿈임을 알다

잠이란 피로를 풀어주는 보약과 같아서 사람으로 하여금 다시 에너지를 충전하여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준다. 즉, 육신의 휴식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잠이 든 시간 동안 우리의 정신은 계속 활동하여 꿈을 꾸기도 한다. 따라서 잠은 단순히 육신의 휴식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차원의 정신적 활동을 선사해 주기도 한다. 민화 중에는 다양한 환경에서 다양한 포즈로 잠들어 있는 인물 그림이 등장한다. 이들은 누구를 그린 것이고 그들의 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아보기로 한다.


장자의 꿈 이야기를 들어봤을 것이다. 『장자』 제물론편에 나오는 나비의 꿈 이야기 말이다.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니 유쾌했지만 자기가 장자인지 알지 못했고, 꿈을 깨니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었는지 나비가 꿈에 장자로 되었던 것인지 분간 못 하겠더라고 하였다. 무엇이 실체이고 무엇이 허상인지 깨닫지도 못한 채우리 인간은 이 한 세상을 아등바등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민화속에는 여러 상황 속에서 잠들어 있는 인물이 등장하곤 한다. 그들은 누구이며 또 그 잠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초당에서 자는 잠, 은일과 탈속의 표상

제갈량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蜀漢의 정치가이자 전략가였던 인물이다.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유비劉備가 제갈량을 군사軍師로 초빙하고자 융중隆中에 있는 그의 초당을 세 번이나 찾아갔던 삼고초려三顧草廬의 고사를 모두들 알고 있을 것이다. 유비가 찾아갈 때마다 제갈량은 출타 중이었는데 세 번째 방문 때에는 초당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유비는 제갈량에 대한 존숭을 표하기 위해 수 리 밖에서부터 말에서 내려 걸어갔고, 그가 낮잠을 자고 있다는
동자의 말을 듣고는 관우와 장비를 사립문 밖에서 기다리게 하고 자신은 초당 댓돌 아래에서 그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다. 『삼국지연의』에는 이때 제갈량이 읊었다는 시가 있다.


大夢誰先覺 큰 꿈을 누가 먼저 깨었는고,
平生我自知 평생을 나 자신이 스스로 알지.
草堂春睡足 초당의 봄 잠이 넉넉하니,
窓外日遲遲 창문 밖에 햇볕이 더디고 더디네.

여기서 제갈량이 말한 꿈은 『장자』, 「제물론」에 나오는 꿈이라고 조선후기의 학자 성호 이익李瀷은 분석하였다. “꿈속에서 술을 마시며 즐거워하던 자도 아침이 되면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고, 꿈속에서 통곡하며 눈물을 흘리던 자도 아침이 되면 즐겁게 사냥하러 나간다. 우리가 한창 꿈을 꾸고 있을 때는 그것이 꿈인 줄을 모른다. 그리고는 꿈속에서 다시 꿈을 점치기도 하다가, 꿈을 깨고 난 뒤에야 그것이 꿈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니 큰 깨달음을 얻은 뒤에야 우리 인생이 하나의 큰 꿈 속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인간의 영욕도 희비도 모두 한바탕꿈과 같으니 제갈량은 부질없이 세상에 나가 무엇을 이루고자 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게 있어 잠은 세상을 등진 은일자로서 누리는 여유요 즐거움이었던 것이다. 제갈량은 후한 말의 정치적 혼란과 이어지는 전란 속에 출사의 뜻을 접고 은둔 중이었는데, 삼고초려를 행한 유비의 성심에 감복하여 출사를 결심하게 되었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의 《고사인물도》 10폭 병풍 중의 하나인 <초당춘수도>(도 1)를 보면 초당에 가로누워 낮잠을 자고 있는 제갈량이 보인다. 동자가 건물 밖에 서 있고, 학 두 마리가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은자의 소박한 거처에 학 두 마리는 집 주인의 청빈하고 고아한 격조를 상징한다. 화면 상단에 “초당의 봄잠이 넉넉하니, 창문 밖에 햇볕이 더디고 더디네(草堂春睡足 窓外日遲遲)”라는 제갈량의 시 구절이 적혀있다. 같은 본을 토대로 그린 것으로 보이는 개인소장의 <초당춘수도>(도 2)는 채색이 좀 더 강하게 사용되었다.
초옥에 누워 잠자는 은자를 그린 그림 중에는 송나라 때의 시인 임포林逋를 주제로 한 경우도 있다. <서호처사도西湖處士圖>(도 3)에서 임포는 초옥에 누워 잠을 자고 있다. 임포는 서호西湖의 고산孤山에 은거하여 20년 동안 도성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는 인물로 매화와 학을 기르며 소일하였다. 그의 자는 군복君復이고, 시호는 인종이 내린 화정선생和靖先生이다. 그는 또 ‘서호처사西湖處士’라고 불리었는데, 이는 소식蘇軾이 지은 「진태허의 매화에 화답하다(和秦太虛梅花)」라는 시에서 유래되었다. 이 시에서 소식은 “서호처사 뼈는 이미 바싹 말랐지만, 다만 이 시가 그대를 압도하네(西湖處士骨應槁 只有此詩君壓倒)”라고 하고, “고산 아래 술에 취해 잠든 곳(孤山山下醉眠處)”이라 하였기 때문에 임포의 잠자는 모습이 모티프로 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초당에 드러누워 잠자는 모습의 제갈량과 임포, 이들은 초야에 묻혀 숨어 지내는 은일자의 초탈한 삶의 태도를 대변하는 것이리라.


이백이 술에 취해서 자는 잠, 현실을 초월한 시선詩仙의 경지

술상을 앞에 놓고 사모관대를 한 채 자고 있는 인물 그림은 당나라 때의 시인 이백李白을 주제로 한 것이다. 이백은 오늘날까지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수많은 명시를 지어 시선詩仙이라고 칭해졌던 시인이다. 당나라 현종의 아낌을 받아 한림원 공봉을 지냈으므로 관복을 착용한 모습으로 그려졌다. 호방한 성격으로 자유분방한 일탈의 일화를 많이 남기고 있는데, 현종이 이백에게 시를 짓기를 청하고자 찾으면 저자 술집에서 술에 취해 잠자고 있기 일쑤였다. 그러나 이백은 “한 말 술에 시 백편을” 지어내던 충천하는 예술혼의 소유자였으니 두보杜甫가 그를 ‘음중팔선飮中八仙’의 하나로 노래한 데에는 이백에게 있어 술과 잠이 단순한 현실 도피를 위한 출구가 아닌 정신의 해방과 예술 창작의 수단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취태백도>(도 4)는 화폭에 제목이나 제발이 없지만, 사모관대를 착용하고 술상을 앞에 두고 있어, 술에 취해 잠자고 있는 이백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첩첩이 이어진 산 능선을 배경으로 화사한 꽃이 핀 언덕이 있고, 그 곳에 왼팔을 괴고 가로누워있는 이백의 모습이 자리하였다. 이백이 술에 취해서 자는 잠, 그것은 현실을 초월한 시선詩仙의 경지를 대변하는 것이다.

진단의 잠, 정신과 육신을 수양하는 도교적 수양의 방편

산 속의 동굴 앞에서 책상에 기대거나 엎드려서 자고 있는 인물을 그린 것은 오대五代의 혼란기를 거쳐 북송시대까지 살았던 역학자이자 도사道士였던 진단(872-989)을 그린 그림이다. 진단의 자는 도남圖南, 호는 부요자扶搖子이고, 백운선생白雲先生 혹은 희이선생希夷先生이라 불리었다. 그는 무당산武當山 구석암九石岩에 은거했다가 이후에는 화산華山 운대관雲臺觀에 은거하여 복식호흡과 단식 등 신선술을 닦으면서 많은 저술을 남긴 인물이다.
진단은 무엇이든 한 번 읽기만 하면 암기가 되었는데, 후당後唐 장흥長興(930-933)연간의 진사시에서 낙제하였고 이후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은거를 택하였다. 식사는 낮에 술을 몇 잔 마실 뿐이었고, 한 번 잠을 자면 백일 이상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 때 진단의 잠은 정말로 자는 것이 아니고 자면서 은둔하는 것이요 내양內養을 수련하는 것으로서 ‘수공睡功’이라 하였다. 진단은 후주後周의 세종과 북송의 태종에게도 초빙을 받았지만 고사하였는데, 조정의 부름을 피하기 위해 잠을 잤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기대학교 박물관의 <진단수은도>(도 5)는 기괴한 형상의 바위산을 배경으로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는 진단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책상에는 각종 도교 경전과 지필묵이 놓여 있다(도 6). 조선민화박물관의 <진단수은도>(도 7) 역시 동굴 앞에서 책상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는 인물이 그려졌다. 이는 진단의 은거처였던 무당산 구석암 혹은 화산 운대관을 표현한 것으로 짐작된다. 진관의 잠은 정신과 육신을 수양하는 도교적 수양의 방편이었다.


장자도 나비도 곧 하나라는 깨달음

이상 제갈량과 임포가 추구했던 은일과 탈속의 경지, 예술혼을 불태운 이백의 현실 초월의 경지, 진단의 도교적 도道 체득의 경지 등 잠으로 대변되는 이상적 경지를 살펴보았다. 이들의 잠이 다양한 경지를 드러낸 것 같지만 따지고 보면 모두 하나의 깨달음에 기반을 둔 것이다. 즉, 나 자신이 스스로를 안다는 자아의 깨달음과 장자도 나비도 곧 하나라는 사실이다.
이제 우리가 무엇을 위해 애쓰고 욕심을 부리고 있는 것인지 돌아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글 유미나(원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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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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