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말하는 나의 그림이야기] 정필연 작가

도1 정필연, <묘책>, 2023, 아르시지 과슈, 85×70㎝



그림을 그리며 살아온 지난날을 돌아보면 그림은 나의 삶을 한층 더 풍요롭게 만들었으며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존재다. 그림은 늘 너무도 당연한 내 일상의 한 부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정작 그림을 왜 그리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다. 이에 최근, 나의 그림에 대해 돌아보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글·그림 정필연 작가


나는 정해진 길을 따라 그림을 그려왔다. 하지만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였을 때 비로소 내 생각이 오롯이 드러난, 나만의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지천명知天命을 넘기면서 내가 과연 언제까지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들었지만,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지금 하자는 결심만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도2 정필연, <신세기1, 2>, 2020, 석채, 송연, 토채, 57×41㎝


민화, 그리고 책가도와의 만남

내가 처음 민화를 만난 건 국립민속박물관에서다. 그곳에서 책가도를 처음 봤을 때 느껴진 것은 묵직함과 세련됨이었다. 그림이 물리적으로 무겁다는 의미가 아니라 책가도가 뿜어내는 웅장함과 고급스러움이 묵직한 감정으로 와닿았다. 내가 그동안 그려왔던 그림들이 이 책가도 앞에서는 보잘것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부끄러운 마음이었다. ‘이런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이런 그림을 그려야지!’ 그렇게 생각하고 그림을 그린 지도 어언 20년이 흘렀다.
디자인을 전공한 나에게 책가도는 흥미로운 대상이었다. 책가도는 정조가 정책적으로 궁중을 장식하게 한 그림이자 사대부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그림이다. 양반을 흉내 내고자 했던 서민들에게도 유행했다. 책가도는 방의 주인공으로서 그 존재감이 매우 두드러진다. 나는 이러한 책가도의 느낌을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재료를 찾다 석채를 발견하게 되었다. 석채는 사용하는 기법이 까다로운 데다 몇 번씩 채색을 올려야만 내가 원하는 느낌을 얻을 수 있는 재료다. 석채만이 자아낼 수 있는 색의 풍부함, 밀도, 깊이 등으로 진채 느낌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다.
그 무게감과 고급스러움을 포기할 수 없어 석채로 궁중장식화를 모사하는 등의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도3 정필연, <책가도>, 2022, 장지, 석채, 120×140㎝



도4 정필연, <화각책가도>, 2021, 석채, 토채, 110×100㎝


책가도의 가치가 오래도록 빛나길

책가도는 책을 비롯한 많은 기물을 응집해 그리기 때문에 보통 평면 작업으로 진행된다. 이에 눈으로 보이는 색채나 형태 등 물리적인 요소가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석채로 그린 책가도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그 자체를 넘어 촉감을 비롯한 오감을 눈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궁중화에 등장하는 화려한 기물들을 석채를 사용해 진채로 표현하면 그 질감을 시각적으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또한 석채는 같은 색이라도 입자의 굵기에 따라 빛의 파장이 달라지기 때문에 입자의 크기를 적절히 바꿔 사용하면 거칠고 힘있게 표현할 수 있으며, 때로는 비단처럼 부드러운 느낌을 자아낼 수도 있다. 1만년이 넘는 긴 세월을 선명한 빛깔로 거뜬히 버틸 수 있는 안료인 석채는 책가도의 매력과 가치가 오래도록 전승되었으면 하는 나에게 무척이나 매력적인 재료다.
그저 창의적인 것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전통을 지키는 것 또한 예술이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난 우리 민족의 화려했던 취향이 깃든 우리 문화유산이 대중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는 데 부단히 애쓰고 노력하고 싶다. 때때로 매너리즘에 빠져 방향을 잃었다는 생각이 들면 초심으로 돌아가 집요하게 드로잉을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익숙함 속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기도 한다. 또 가끔 한없이 나만의 깊은 굴을 파고 들어가다 보면 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 낯섦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도 한다.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림을 그려온 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내 사유의 피조물들이 깨어있기를 바라고, 그것들을 나의 그림에 담을 수 있도록 늘 나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이후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모르지만, 깊은 고민의 수렁에서 가뿐히 벗어날 수 있을 때까지 당분간 숨 참으며 견디는 고행의 시간을 보내야겠다.


도5 정필연, <책거리와 서수>, 2019, 석채, 토채, 송연, 각 88×35㎝


정필연

현재 (사)한국민화협회 이사이며, 청주대학교 평생교육원과
현대백화점 충청점 문화센터에서 민화를 가르치고 있다.

개인전
2021 기기묘묘 변주-갤러리정스
2021 기기묘묘ll-갤러리공간35
2019 기기묘묘-한국공예관

단체전
2023.1 월간민화 특별 세화전-동덕아트갤러리
2022.8 월간민화 & 동덕아트갤러리 기획전 영모화 Today-동덕아트갤러리
2022.8 청주민미협정기전-한국교원대학교
2022.6 예인회 13회 정기전-길가온갤러리
2022.4 뷰티인그레이스전-롯데월드타워
2020.10 한국의 민화 초대전-강진 한국민화뮤지엄
2020.10 호텔아트페어 민화만-이비스 스타일 엠버서더
2020.4 월간민화 창간 6주년 기념전 전통민화41인 초대전-동덕아트갤러리
2019.11 민화바람의 외출-호주 키도고갤러리 아트하우스
2019.10 충북미술페스티벌-청주시립미술관 오창관

기획전
2022.11 re connect art festival-관아골갤러리
2022.11 삼각구도로 공간을 짓다-숲속갤러리
2022.10 퍼스널 스페이스-온몸문화공간
2022.10 소셜 디지로그 미술 페스티벌-한국공예관
2021.06 일상을 넘 노닐다-청주 민족예술제 기획전
2021.06 청주를 기록하다-문화제조창
2019.11 충북문화재단기획 명심보감-구루물광장설치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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