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품은 빛깔, 조선시대의 전통안료⑤ 단청채색의 시작과 끝 황색, 백·흑색 안료

석자황 원석
황색, 백·흑색 안료

황색안료는 단청색상의 중심이라 할 수 있으며, 백색과 흑색은 채화를 완성하는 중요한 색깔이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궁궐건축단청에 지속적으로 사용된 황색계열은 석자황·석웅황·동황 등이며, 백색과 흑색계열은 진분(당분, 향분)·정분·진묵·당묵·송연 등이 포함된다.

황색계열 안료

오방색의 중심이 되는 황색안료는 단청색상의 꽃이라 할 수 있다. 단청채화에서 황색은 많이 사용되지는 않지만, 밝고 화사한 미감을 연출하며, 황금색을 대신하기도 한다. 특히 꽃을 그리거나 머리초에서 주문양을 감싸는 황색 띠의 채화에 사용되어 핵심적인 조화를 이루는 색이 곧 황색이다. 조선시대에 궁궐건축단청에 지속적으로 사용된 황색계열은 석자황·석웅황·동황 등이 확인된다. 안료별로 그 특성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① 석자황石紫黃

석자황 원석

▲석자황 원석

석자황은 유황과 비소의 천연광물성 화합물로 ‘자황雌黃’이라고도 한다. 곱고 누런 빛깔을 띠는 석자황은 조선시대 영건단청에 석웅황과 더불어 많이 사용되었다. 『본초本草』에 “정精하고 밝은 것이 웅황이다” 하였고, 『의학입문醫學入門』에 “산의 양지에서 나온 것은 웅황이고 산의 음지에서 나온 것은 자황인데, 붉기가 계관鷄冠과 같고 맑아 속까지 들여다보이는 것이 좋다”하였다.
석자황은 국내에서 산출되기도 하였으나 양이 부족하여 중국에서 들여오기도 했다. 『광해군일기』 광해군10년(1618년) 기사에 “…석자황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를 않으므로 시장이나 화원·역관 등에게서 사들이려 해도 모두 많이 얻을 수가 없으니, 부득이 중국에서 무역해 와야만 계속해서 쓸 수가 있겠습니다.…도감에서 석자황의 대금을 그에게 지급하여 넉넉하게 무역해 오게 함으로써 제때에 구워낼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다만 석자황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화원이 아니면 구별하기 어려우니 일을 아는 화원 한 사람을 그와 함께 들여보내야 할 것입니다.…”라는 내용이 주목된다. 이것은 영건도감에서 황와黃瓦를 만드는데 소요되는 석자황이 부족하여 중국에서 무역해오는 일에 관한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그러나 위의 내용과 같이 석자황의 국내 산출이 전무한 것은 아니다. 석자황의 국내산지를 파악할 수 있는 문헌사료가 전한다. 『세조실록』 세조14년(1468년) 기사에 승정원에서 전지를 받들어 전라도 관찰사 이윤인李尹仁에게 치서하기를, “도내의 진산珍山에서 산출하는 석자황은 더 채취하지 말게 하라”는 내용이다.
또한 『신동국여지승람』에도 전라도 진산군珍山郡 사음동舍音洞에서 석자황이 산출된다고 기록되었다. 이상은 조선시대 석자황의 국내 산출을 확인할 수 있는 기사이다. 석자황은 국내 산출량도 귀하고 국외에서 비싼 가격에 수입되었음으로 가격이 당연히 비쌌다. 『화성성역의궤』에 기록된 석자황의 소요량은 2근7냥6전이며, 가격은 근당 5냥의 고가高價로 확인된다.

② 석웅황石雄黃

석웅황

▲석웅황

삼산화비소 성분의 광물성 천연안료로서 ‘석황石黃’·‘웅황雄黃’이라고도 한다. 석자황의 색깔보다 약간 붉은 기가 강한 석웅황은 조선시대 궁궐단청에 사용된 황색계열 안료이다. 석웅황은 계관석鷄冠石·휘안석輝安石·석영 등과 함께 광맥을 이루거나, 금, 은, 구리의 금속광맥 속에서 산출된다. 빛깔이 곱고 광택이 좋은 것은 장신구로 사용되었으며, 약재로도 널리 쓰였다.
『청전관전서』에 웅황은 최상 품질이 통명계관황通明鷄冠黃이란 것으로 수비하는 법은 주사와 같다고 기록하고 있다. 문헌사료에는 석웅황의 약효에 대한 기사가 상당 수 전한다. 『명종실록』 명종3년(1548) 기사에는 “전교하기를, 평안도 삼등三登 등의 고을에 전염병이 크게 성하고 있다. 석웅황石雄黃을 쓰면 전염되지 않는다고 하니, 이 약을 보내도록 하라”는 내용이 있다. 또한 『산림경제』 3권 구급救急편에는 “…기단氣短하거나 기허氣虛하거나 구토 설사하거나 혼수昏睡 상태거나 의식이 없거나 엄엄奄奄히 죽어가는 것 같은 패증敗症이 함께 나타나는 자에게는 마땅히 사성회천탕四聖回天湯인 인삼人蔘·황기黃·당귀當歸 각 2전을 달여 석웅황石雄黃을 수비水飛한 가루 2전을 먹일 때에 타서 먹인다”라고 기록하였다. 이상의 내용은 약재로서 석웅황의 효능을 파악할 수 있는 기사이다.
석웅황의 국내산지를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이른 문헌사료는 『세종실록』 세종22년(1440년)의 기사이다. 전라도 금산 사람 윤성대尹成大이 와서 아뢰기를, “본 군과 용담현龍潭縣에 금·은·구리·납·철이 생산되고, 또 진천鎭川에도 역시 은광석銀鑛石이 산출되므로, 신이 일찍이 채굴하여 철을 제련하여서 시험하였사옵니다”하고, 또 석웅황石雄黃을 바치면서 아뢰기를, “본 군의 승려 혜오惠悟의 집 북쪽에서 생산되는데, 혜오가 말하기를, ‘이것이 주홍朱紅이다’고 하였습니다”하니, 임금이 명하여 윤성대와 은공銀工을 역마에 태워서 전라도·충청도로 보내게 하고, 인하여 양도 관찰사에게 전지하기를, “윤성대의 말을 듣고 채취하여 시험하고, 품질이 좋은 것을 가려서 보내라. 그 금·은·구리·납·석웅황의 산출이 많고 적음과 역사役事하기가 어렵고 쉬운 것을 아울러 아뢰고, 다른 사람은 채취하지 못하게 하라”하였다. 이상의 내용에서 충청도 진천에서 석웅황이 산출되었을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만기요람』에는 “해미, 서산의 평신진平薪鎭·안민곶安眠串은 작은 봉우리가 둘러섰고 계곡이 매우 많다. 바닷물이 드나드는 곳엔 경치가 매우 아름답고 금모래가 있으며, 석웅황石雄黃·청등靑藤이 생산된다.”라고 기록되었다. 이와 같이 미약하지만 조선시대 석웅황의 국내산지는 충청도 해미 서산 평신진 안민곶과 진천 등지로 확인된다.
중국의 석웅황 산지를 확인할 수 있는 문헌사료도 전한다. 1656년(효종 7)에 청나라 연경에 다녀온 이민수李民樹가 쓴 『연도기행』에는 “…청석령靑石嶺 밑에 이르렀다. 고개 오른편에 암혈巖穴이 있고, 나무 사다리가 있어서 의지하여 내려가게 되어 있으니, 이는 바로 석웅황石雄黃을 캐는 곳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만주 요동지역에 있는 청석령은 바위와 절벽으로 험준한 산세를 이룬 곳으로 조선시대에는 중국으로 통하는 관문이었다.

③ 동황同黃

동황분

▲동황분

동황은 조선시대 건축단청에 사용된 황색계열 채색가운데 가장 많이 사용된 안료이다. 1647년 『창덕궁수리도감의궤』을 시작으로 1906년 『중화전영건도감의궤』에 이르기까지 궁궐건축단청의 모든 영건도감의궤에 기록되었다. 이것은 조선시대 동황 안료의 품질이 석자황과 석웅황에 비해 우수하고, 공급 또한 매우 양호하였음을 판단할 수 있는 기록이다.
조선후기 이학규李學逵가 쓴 『명물고』에 “동황은 수두황과 같으며, 화가가 사용하는 것으로 자황보다 진하다”라는 기록이 있다. 동황의 성분이나 제조법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자황보다 진한 색임은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다. 동황의 국내산지나 생산에 대한 문헌사료는 전무하다. 『승정원일기』 인조4년(1626)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전한다. “이번 동지사와 성절사 두 행차에 연례적으로 사 오는 상의원의 각종 당물唐物 중에 황금·수은·주홍·삼청·이청·동황·심중청·하엽·삼록 및 내의원의 약재로 사오는 용뇌龍腦, 수은 등의 물건이 모두 본조本曹에 비축된 수량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오지 않겠습니다. 감히 아룁니다”하니, 알았다고 전교하였다는 내용이다. 다른 주요 안료와 함께 동황 역시 삼절사를 통해 연례적으로 중국에서 무역해 온 안료인 것이다. 이것은 동황이 중국에서 수입된 안료임을 알 수 있는 사료이다. 18세기 말 수원 화성의 축성 시 건축단청에 사용되었던 동황의 소요량은 총 2근14냥6전이었다. 가격은 근당 5냥으로 최상급 가격이었음을 알 수 있다.

흑·백색계열 안료

단청에서 백색과 흙색은 채화를 완성하는 중요한 색깔들이다. 채화도상의 형태윤곽을 분선分線과 묵선墨線의 철선묘법으로 계화界畵함으로서 단청채화가 완료된다. 또한 다양한 빛깔을 조색할 때에 명도를 조절하기 위하여 섞어서 만드는 등 감초 역할을 한다. 오방의 서방과 북방을 상징하는 백색과 흙색은 인류가 사용한 가장 오래된 안료이기도 하다. 조선시대 궁궐건축단청에 주로 사용되었던 백색과 흑색계열은 진분(당분, 향분)·정분·진묵·당묵·송연 등이 확인된다. 문헌사료에 기록된 각 안료별 특성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① 진분眞粉, 당분唐粉, 향분鄕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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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분은 조선시대 건축단청뿐만 아니라 각종 채화제작에 사용된 백색계열 안료이다. 중국산을 ‘당분唐粉’이라 하고 국내산은 ‘향분鄕粉’이라고도 했다. 『연산군일기』 연산군9년(1503년) 기사에 전교하기를 “당분唐粉 50근을 대궐로 들이라. 또 향분鄕粉을 당분에 의하여 제조해서 들이되 빛이 푸르게 하지 말라” 하였다. 이상의 내용에서 당분과 향분의 명칭유래와 차이점을 파악할 수 있다.
진분은 흰 빛깔이 선명하고, 착색성이 우수하기 때문에 그림을 그릴 때 반드시 필요한 안료이다. 특히 궁중화나 불화 등 세밀한 필선이 요구되는 기화起畵의 철선을 그릴 때에는 반드시 진분이 사용되었다. 진분의 한자표기에 ‘참 진眞’자를 사용한 점도 백색 안료로서 진분의 특성이 우수했기 때문임을 추정할 수 있다. 현전하는 조선시대 단청유구의 진분에 대한 성분조사결과 납 성분이 다분히 검출되고 있다. 따라서 진분의 주성분은 염기성탄산연으로 귀결된다. ‘염기성탄산연鹽基性炭酸鉛’이란 납을 가공하여 얻어지는 흰 결정 물질로서 입자가 고운 백색분말을 만드는데, 이를 달리 ‘연분鉛粉’·‘연백鉛白’이라고도 한다. 『경국대전』에는 호조 소속의 관청 내자시內資寺에 분장粉匠(분을 만드는 장인) 2인을 두었다는 기록이 확인된다. 예로부터 연분은 약재와 화장품으로 널리 사용되어 쓰임이 많았기 때문이다.
18세기의 실학자 이덕무가 저술한 『청장관전서』에는 진분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부분傅粉은 옛사람들이 으레 합분蛤粉을 사용해 왔다. 즉 조개껍질을 불에 태워 가루로 만들어서 수비水飛한 것이다. 지금에는 화가들 거의가 연분鉛粉을 사용한다” 이상의 내용에서 부분에 사용된 것이 곧 연분이며, 연분을 사용하기 이전에는 합분蛤粉을 사용했었음 알 수 있다. 그런데 곧 『청장관전서』의 내용이 화가가 사용하는 것임으로 이것이 곧 진분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이어지는 기사에서 종유석을 갈아 부분傅粉으로 사용하는 내용이 소개되고 있다. “종유석을 미세하게 가루로 찧어서 묽은 교수가 든 사기그릇에 넣고 손가락으로 자꾸 문질러서 건조되면 다시 교수를 친다. 이렇게 십여 차례 문질러서 떡 조각처럼 만들어 햇볕에 말린다. 사용 시에는 끓는(흐르는) 물그릇에 담그고, 재차 맑아지면 묽은 교수 몇 방울을 쳐서 가라앉으면, 흔들어 위에 것은 사용하고, 밑에 가라앉은 것은 씻어버린다” 이상의 내용은 부분傅粉에 종유석가루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종유석은 탄산칼슘이 주성분인 합분과 동일한 성분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한편 1596년에 명나라 이시진이 저술한 『본초강목』에는 연분의 제조법들이 기록되고 있다. 명나라 말기의 송응성宋應星이 지은 기술서 『천공개물』에도 납을 원료로 하는 호분의 제조법이 상세히 기술되었다. 그 중 한 가지를 소개하자면 “납덩어리를 술항아리 안에 매달고 49일 동안 봉하였다가 열어 보면 분이 된다. 희지 않게 변한 것은 볶아서 황단을 만든다”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에서 연분을 ‘호분胡粉’이라 한 것이 또 하나 주목되는 점이다. 오늘날 조개나 굴의 껍질을 원료로 하여 제조한 백색안료를 호분으로 부르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문헌사료에서 ‘호분’이라는 전통안료의 명칭은 출전이 전무하다. 상기한 바와 같이 국내 사료인 『천장관전서』에는 조개껍질을 불에 태워 가루로 만들어서 수비한 것을 합분蛤粉으로 기록하고 있다. 호분이라 함은 『천공개물』의 기록과 같이 납을 이용하여 제조한 연분의 명칭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패각을 원료로 제조한 백분白粉을 호분이라 부르는 것은 잘못 전이된 것이며 ‘합분蛤粉’이라 함이 타당한 명칭이라 하겠다. 화성성역의궤에 기록된 진분의 사용량은 총 81근5량8전이며, 근당 1냥6전이다. 근당 2전5푼의 정분에 비해 훨씬 비싼 가격이었다.

② 정분丁粉

정분

▲정분

정분은 조선시대 영건단청에 사용된 백색계열 안료이다. 정분은 진분과 함께 조선시대 영건도감의궤에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은 사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단청채화에 빼놓을 수 없는 안료였다.
진분은 그림을 그릴 때나 기화起畵의 세밀한 철선을 그릴 때 사용하는 반면 정분은 주로 바탕칠이나 가칠용 또는 채료를 조색할 때 체질용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건축단청에 사용된 정분은 뇌록 및 주토와 더불어 가장 많은 양이 소요된 안료인 것이다. 『화성성역의궤』의 건축단청에 사용된 정분의 소요량은 무려 1487근 5냥(근당 2전5푼)이었다. 다른 안료에 비해 엄청난 양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단청에도 다양한 혼색을 만들 때 반드시 섞어야할 안료가 곧 탄산칼슘(CaCO3)이 주성분인 호분이다. 탄산칼슘은 대리석·방해석·선석霰石·석회석·백악·빙주석氷洲石·조개껍데기·달걀껍데기·산호 등 다양하게 산출된다. 조선시대 정분의 산지가 다양한 문헌사료에서 확인된다. 『세종지리지』 황해도 풍천군 장련현 편에는 “정분丁粉이 현의 서쪽 확이곶確伊串에서 난다”고 기록하고 있다. 『신동국여지승람』 경상도 장기현 편에는 토산품 중의 하나인 정분이 동을배곶出冬乙背에서 난다는 기사가 있다. 또한 같은 책 황해도 장련현 편에는 정분이 방아곶에서 생산된다 하였다. 『승정원일기』 인조12년(1634년)의 기사에는 “정분丁粉은 우리나라에서 은율殷栗에서만 생산되므로…”라는 내용도 확인된다. 이상과 같이 조선시대 정분의 산지는 황해도 풍천군 장련현의 확이곶 및 방아곶, 황해도 은율, 경상도 장기현 동을배곶出冬乙背 등이다. 그런데 정분의 산출지역이 모두 해안가이었다는 점에 주목된다.
조선시대 정분의 산지가 모두 해안가였다는 점은 그것의 원료가 곧 백악白堊이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백악chalk은 석회질 암석의 하나로, 백색 또는 회백색 세립의 연한 석회암이다. 수중의 유공충이나 패각류의 석회질 껍질이 쌓여서 형성된 세립질의 흰색 내지 담회색을 띠는 해성 석회암을 말한다. 백악기에 형성된 영국해협의 양 옆 절벽에 노출된 흰색의 백악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백악의 최대산지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해안가에서 산출된 정분은 탄산석회가 주성분인 백악의 일종으로 사료된다.

③ 진묵眞墨

진묵은 식물성 기름을 태워 얻은 그을음과 아교를 섞어 만든다. 우리말로 ‘참먹’이라고 한다. 건축단청에서 진묵은 주로 문양의 묵선기화를 그릴 때 사용되며, 조색 시에 혼합하기도 한다. 따라서 진묵은 단청채화에서 없어서는 안 될 안료가운데 하나이다.
조선시대 국내산 진묵의 우수한 품질이 널리 중국에까지 알려졌음을 파악할 수 있는 다음의 기사가 전한다. 『숙종실록』 숙종19년(1693년) 기사 가운데 “(청나라에 간)사신이 사사로이 바치는 것은 미안하지만, 들으니, 황태자가 우리나라의 진묵을 좋아한다고 하기 때문에 일행 중의 유매묵油煤墨 50정을 바치고 왔습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상의 내용을 통하여 진묵의 우수한 품질과 진묵이 곧 유매묵임을 확인할 수 있다. 『화성성역의궤』의 건축단청에 사용된 진묵의 소요량은 47동이었으며, 개당 2량의 고가였다. 반면 품질이 떨어지는 상묵常墨의 소요량은 56동이었으며, 개당 5전이었다. 진묵이 상묵에 비해 5배 비싼 가격이다. 『산림경제』 잡방雜方의 조묵造墨편에는 청마유淸麻油(참기름)를 이용한 진묵의 제조법이 상세히 전해진다.

④ 당묵唐墨

당묵唐墨은 중국에서 들여온 참먹을 말한다. 당묵은 국내산 진묵眞墨 및 상묵常墨과 함께 건축단청 및 각종 채화의 기화起畵에 사용되었다. 그런데 건축단청에는 거의 국내산 진묵이 사용된 반면 당묵은 어진과 같은 그림을 그릴 때에 사용된 것으로 확인된다.
현재까지 파악된 당묵의 출전에 관한 가장 이른 시기의 문헌사료는 1713년에 기록된 『숙종어용도사도감의궤肅宗御容圖寫都監儀軌』이다. 이 책은 당시 생존하는 임금의 어진을 모사한 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기사가운데 묵에 관련된 내용은 “당묵 2정을 호조呼祖에서 들여왔고, 대절상묵大節常墨 13정, 진묵 2정을 호조에서 들여왔다”는 기록이다. 대절상묵은 큰 굵기에 주로 인출에 사용된 보통 품질의 먹이다. 이후로 20세기 초에 이르기 까지 각종 의궤에 2백건이 넘는 당묵의 기사가 확인된다.
당묵이 조선시대 궁궐건축단청에 사용된 사례는 1900년 경복궁 선원전 증건 시에 기록한 『선원전증건도감의궤璿源殿增建都監儀軌』의 내용에서 확인할 수 있다. 진묵(16정반)과 함께 사용된 당묵(2정)의 기록으로 보아 진묵의 부족한 부분을 채웠던 것으로 판단된다. 구한말 격동기에 국내산 진묵의 생산량이 감소하자 그 부족분을 중국산 당묵이 대용 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⑤ 송연松烟

송연분

▲송연분

송연은 소나무를 태워서 얻은 그을음을 말한다. 송연에 아교를 섞어서 송연묵松烟墨을 만든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송연묵의 품질이 우수하여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송연은 조선시대 영건도감의궤의 단청재료로서 사용되었던 기록이 지속적으로 확인된다. 또한 송연松烟은 주로 칠장漆匠과 소목장의 재료로 사용되었다. 종묘와 산릉 재실의 탁자를 칠하는데 아교로 개어서 칠감으로 사용했던 기록이 전한다.
송연칠과 관련하여 『세종실록』 세종12년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예조에서 건원릉·재릉 등도 송연으로 칠하게 할 것을 건의하다. 예조에서 봉상시奉常寺의 첩정牒呈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앞서 종묘의 육실六室과 덕릉·안릉·지릉·숙릉·의릉·순릉·정릉·화릉·건원릉·제릉에 찬품饌品을 올리는 탁자에는 주토朱土와 송연松烟으로 칠하고, 문소전·광효전·후릉·헌릉의 탁자에는 주홍朱紅으로 전부 칠을 하였사온데, 이제 살피오니 문소전과 광효전은 모두 평상시를 모방하였기 때문에 전과 같이 주홍빛으로 전부 칠한 것이오니, 건원릉과 제릉·헌릉의 탁자는 종묘 육실과 모든 산릉의 예에 따라 송연으로 칠을 올리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이상의 내용에서 송연칠의 사례를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천공개물』 먹 편에는 소나무를 태워 그을음(송연)을 얻는 방법을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글·사진 : 곽동해(한서대학교 문화재보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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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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