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품은 빛깔, 조선시대의 전통안료③ 자연의 색을 건축물에 입히다

녹색안료의 원광석-공작석-Malachite
녹색계열 안료

녹색안료는 붉은색 다음으로 단청에 많이 소모되는 안료이다. 상록하단의 배색원리와 같이 녹색은 기둥 상부의 공포에서 처마에까지 두루 칠해진다. 강건한 느낌의 적색 기둥 위에 마치 가득 피어난 듯 무성한 초록빛 나뭇잎의 배색효과를 연출하여 자연의 색깔을 그대로 건축에 반영하는 것이다.

조선시대 영건단청에 주로 사용된 녹색계열 안료들은 석록·삼록·대록·뇌록·하엽(향하엽)·당하엽·양록 등이다. 이 가운데 삼록·뇌록·하엽 등 3종은 궁궐단청에 지속적으로 사용된 안료이다. 안료별로 그 특성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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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석록

석록은 공작석을 주원료로 하는 천연광물안료이다. 사료에서 ‘녹’자의 한자표기는 ‘’과 ‘’으로 표시되었는데 후자가 훨씬 많다.
석록은 공작석孔/Malachite을 미세하게 갈아서 수비하여 제조한다. 북송시대의 『영조법식』에는 석록을 미세하게 갈고 수비하여 4단계 명도의 네 가지 색을 만든 기사가 전한다.
조선시대의 『청장관전서』에 “석록은 청개구리의 등처럼 생긴 색깔이 가장 좋은데, 수비하여 두록·이록·삼록의 세 종류로 만들었다”는 내용이 확인된다. 이것은 비록 석록의 국내산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해도 공작석을 들여와서 국내에서 가공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내용이다.
석록이 천연광물의 안료이긴 하나 그 색상의 특성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석록의 일종인 삼록이 단청에 가장 많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삼록과 유사한 색상으로 추정할 수 있지만 양자는 분명 다른 것임을 사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화성성역의궤』의 단확 기록에는 석록 7량2전, 삼록 3백8근의 소요량이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삼록의 양에 비해 석록은 아주 소량에 지나지 않는다. 석록의 가격은 1냥당 5전이었다. 조선시대의 일반적인 도량형을 기준으로 환산하면 1근(16냥)당 8냥에 해당되는 최고가 수준의 비싼 안료였다. 근당 2냥의 삼록에 비해 무려 4배나 비싼 가격이다.

② 삼록

녹색안료 가운데 조선시대 단청에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이 곧 삼록이다. 삼록의 한자는 ‘’과 ‘’으로 병기되었다.
삼록의 원광석은 공작석Malachite이다. 공작석은 구리광석이 돌로 산화되어 형성된 천연광석으로 짙고 선명한 녹색바탕에 뚜렷한 줄무늬가 아름다운 공작날개를 연상시켜 붙여진 이름이다.
송나라 때 『영조법식』에는 석록을 미세하게 갈아서 수비하여 녹화·삼록·이록·대록 등 네 가지 색을 조제한 기록이 전한다. 녹화의 입자가 가장 미세하고 가장 밝으며, 대청은 입자가 굵고 가장 어두운 색이다.
『승정원일기』 인조4년(1626년)의 기사에는 명나라에서 삼청을 무역해온 유래를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이번 동지사와 성절사 두 행차에 연례적으로 사 오는 상의원의 각종 당물 중에 황금·수은·주홍·삼청·이청·동황·심중청·하엽·삼록 및 내의원의 약재로 사오는 용뇌, 수은 등의 물건이 모두 본조에 비축된 수량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오지 않겠습니다. 즉 삼청은 명에 파견한 조선의 삼절사를 통해 정기적으로 무역해온 물품의 하나였던 것이다.
『화성성역의궤』에 기록된 삼록은 308근이 사용되었고, 가격은 근당 2냥이었다. 장기에서 사온 뇌록보다 10배 이상 비싼 값이다. 삼록은 오늘날 양록으로 대체되어 사용되고 있다.

③ 대록

m1509202대록은 석록을 미세하게 분쇄하고 수비하여 만든 가장 짙은 녹색안료이다. ‘녹’자 한자표기는 ‘’과 ‘’으로 쓰였는데 후자의 사례가 더 많다.
전술한 바와 같이 북송시대의 『영조법식』에는 석록을 미세하게 갈아 수비하여 녹화·삼록·이록·대록 등 4단계 명도의 4종 안료를 제조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대록은 중국에서 수입되었으며, 국내 산출에 대한 문헌사료는 전무하다. 『광해군일기』 광해군10년(1618년) 기사에는 영건도감에서 대록 등 부족한 안료를 중국에서 무역해오는 내용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창경궁에서 쓰다 남은 채색은 어디에다 썼는지 자세히 살펴 아뢰라. 그리고 이청·삼청·대청·하엽·대록 등 채색도 부족할 듯하니, 천추사 행차 때 이를 아울러 참작해서 가외로 더 무역해 오도록 하라…”
대록은 단청보다는 궁중의 화조도나 병풍그림 등 주로 기화의 안료로 더 많이 사용되었다.
『명종실록』 명종17년(1562년) 기사에 “천대청·천이청·천삼청·과 대록 등을 안으로 들여오라. 이것은 모두 물감이다. 이때 바야흐로 화사 10여 인을 궐내에 모아놓고 새나 벌레 초목 등을 그리게 하였기 때문에 이런 명이 있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광해군일기』 광해군 10년(1618년) 4월28일 기사에 “화원 이득의와 역관 박인후가 대록 5근을 비롯한 각종 안료를 바치므로, 궁궐의 여러 전당을 단청하는데 비싼 당채(중국산 안료)는 계속 대기 어려우니 부득불 받아쓰겠다”는 내용이 전한다. 이것은 대록이 단청에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 또한 『남별전중건청의궤』(1667년), 『진전중수도감의궤』(1748년) 등의 영건도감의궤에서도 단청안료로 사용된 대록의 기록이 확인된다.

④ 뇌록

뇌록은 조선시대에 단청에 주로 사용된 회록색 안료이다. 단청안료로서 조선시대 각종 『영건도감의궤』에 기록되지 않은 사례를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이 사용된 안료이다. 뇌록은 중국과 일본에는 나지 않는 순수 국내산 안료이다. 조선시대 고문헌에서 그 산지를 확인할 수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의 ‘경상도 장기현, 황해도 풍천군’ 및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평안도 가산군’에서 뇌록 산출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다. 그 가운데 경상도 장기현 뇌성산에서 산출된 뇌록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다.
근자에 뇌록에 대한 몇 건의 연구논문이 발표되었다. 그 내용에 따르면 경북 포항시 장기면 뇌성산에서 출토되는 뇌록은 제4기 현무암질 화산쇄설암 내에 맥상 또는 공극충진상으로 산출되며, 주 구성광물은 셀라도나이트Celadonite로 소량의 녹니석/스멕타이트 혼합층광물과 모데나이트 및 단백석이 함유되어 있다.
단청에서 뇌록은 바탕칠감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소요량이 가장 많다. 화성축성 건축단청에서도 뇌록은 총 2189근2냥9전으로 가장 많은 양이 소요되었다. 그 중 780근은 근당 1전7푼6리의 가격으로 장기에서 사왔고, 1409근1냥9전은 근당 4전의 가격으로 한양에서 사온 것으로 기록되었다.
아울러 조뇌록 1백1십7근(매근가 전1전)의 기록이 추기되었다. 조뇌록이란 뇌록의 인공안료를 말하는 것으로 이미 당시에도 뇌록을 조색하여 사용했음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다. 현재 단청에 사용되는 뇌록은 전량 조뇌록을 사용한다. 따라서 단청장의 기호에 따라서 색상이 조금씩 다름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⑤ 하엽, 향하엽

하엽은 연잎 빛깔이 나는 안료로, ‘하엽록’을 말한다. ‘하엽’이란 그 빛깔이 마치 크게 자란 연잎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향하엽이란 국내산 하엽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엽은 조선시대 건축단청에 주로 사용되었으며, 왕실의 가례 시 각종 기물이나, 경모궁악기조성청에서 각종 악기의 제작 시에도 가칠용으로 사용되었다.
하엽의 국내산지는 황해도 해주지역으로 확인된다. 『세종실록 세종지리지』 황해도 해주목 기사에 “하엽록이 주의 동쪽 20리 청태암에서 난다”고 기록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제43권 황해도편에도 동일한 내용이 실렸다. 하엽을 만든 장인과 그 품질을 알 수 있는 사료도 확인된다. 『태종실록』 태종3년(1403년)의 “최인계가 하엽록을 처음 만들어 받쳤는데, 중국에서 나는 것과 다름이 없었다.” 『세종실록』 세종13년(1431년)의 “전 사정司正 최의가 수안에서 나는 심중청과 해주에서 나는 하엽록을 채취하여 올리니, 도화원에 명하여 이를 시험한바 오직 하엽록이 쓸 만했다.” 이상의 기사내용에서 국내산 하엽록이 중국산에 비견될 만큼 양호한 색상의 품질이었음을 알 수 있다.
『경국대전』에는 경공장京으로 상의원과 제용감에 하엽록장 각 2인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하엽록의 국내 산출과 조제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기사이다.
조선시대 영건단청에 사용된 하엽은 주로 당하엽이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저승전의궤』(1648년) 및 『영영전수개도감의궤』(1667년) 등의 영건도감의궤에서는 단청안료로서 당하엽과 향하엽이 동시에 사용된 내용도 확인된다. 화성의 건축단청에 사용된 하엽은 총 59근 14냥 8전이었으며, 근당 2냥 7전으로 비싼 가격이었다.

⑥ 당하엽

당하엽은 중국에서 들여온 연잎빛깔의 안료이다. 조선시대 각종 『영건도감의궤』에 기록된 단청안료 중에는 국내산 향하엽보다 당하엽의 사용이 훨씬 많다. 『문종실록』 문종1년(1451년)의 기사에 “황금과 하엽록은 불상조성과 진관사 단청에 모두 소비하여 남은 것이 부족하고, 이것들은 본국에서 나는 것이 아니니, 만약 쓸 곳이 있으면 장차 어떻게 하겠습니까?”라는 기사가 있다. 또한 『광해군일기』 광해군10년(1618년)의 기사에서 창경궁 단청 시에 남은 채색을 살피고, 하엽 등의 채색이 부족하니, 천추사행차(명나라에 파견한 정례사행) 때에 사오도록 한 내용이 있다. 이와 같은 기사는 조선시대 영건단청에 중국산 당하엽이 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이다.
화성성역의 건축단청에 사용된 하엽은 총 59근14량8전이며, 근당 2냥7전의 가격이었다. 근당 2냥의 삼록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곧 중국산 당하엽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⑦ 양록

공작석양록은 19세기 말에 국내에 들어온 서양산 화학성분의 녹색안료이다. ‘양록洋綠’이란 서양에서 들어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양록의 성분은 Cu(C2H3O2)2.3Cu(ASO2)3로서 탄산소다의 수용액에 아비산을 첨가하여 제조하는 무기화합물의 일종이다.
합성안료인 양록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시기는 대략 19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1890년에 간행된 『신정왕후국장도감의궤』의 기사에 단청안료로서 양록이 처음 기록되었다. 그 후 20세기 전반까지 궁궐과 산릉의 각종 영건단청에 사용되었음이 사료를 통하여 확인된다.
양록의 색감은 눈이 부실 정도로 고채도의 특성을 보여준다. 또한, 천연 삼록보다 빛깔이 선명하고 무엇보다도 착색력과 은폐력이 양호하다. 천연삼록에 비해 가격도 매우 저렴했다. 이러한 특성으로 건축단청의 채화에 용이하기 때문에 유입 이후부터 양록은 천연 삼록을 대체하는 안료로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양록이 본격적으로 유입되어 단청에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전통단청색감의 변화를 가져왔다. 중후한 느낌의 삼록에 비해 양록은 지나치게 화사한 채도의 특성이 있다. 따라서 양록 사용은 조선시대 단청의 조화로운 색상대비를 호사난상으로 변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글·사진제공 : 곽동해(한서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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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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