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위하는 부모의 마음 – 칠성도 초본 七星圖 草本

예로부터 우리네 사람들은 삶의 길흉과 화복을 북두칠성, 즉 칠성七星이 주관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칠성에 대한 신앙은 무속과 불교에서도 그 영향을 찾아볼 수 있으나, 특히 민간신앙으로서 크게 인기를 얻었다.
이번 시간에는 조선후기 민간에 퍼진 칠성신앙을 보여주는 칠성도 초본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칠성도 초본에는 앞줄에는 4명, 뒷줄에는 3명의 인물이 서 있는 구도로 7명의 인물이 그려져 있다.
모든 인물은 같은 모양의 관모와 관복을 입고, 손에는 홀笏(관복과 함께 손에 드는 도구)을 들고 있으며, 인자한 미소를 띠고 있다. 인물 주변에는 꽃구름이 그려져 있는데, 배경에는 물론이고 앞줄과 뒷줄의 인물 사이에도 꽃구름이 그려져 있다.
초본 속 도상들은 목탄으로 옅게 그려져 있고, 그 위로 먹선이 깔끔하게 그려져 있다. 특이한 점은 인물들의 옷과 관모, 구름 부분에는 목탄의 흔적이 남아있는 반면, 얼굴선과 이목구비는 먹선으로만 그려져 있다는 점이다. 얼굴 표정을 묘사한 선이 깔끔하고 막힘없는 것으로 보아 이 초본을 그린 인물은 연륜 있는 화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인물의 의상 표현에는 채색명도 함께 쓰여 있는데, 관복 부분에는 먹, 관모 부분에는 붓이 아닌 다른 필기구를 사용하여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초본이 그려졌음을 유추할 수 있다. 또 초본에는 가로로 3줄, 세로로 1줄로 접었다 편 자국을 확인할 수 있어 접어서 보관해왔음을 알 수 있다.

칠성신은 누구인가

이 초본은 민간신앙의 대표적인 신격인 칠성신을 그린 칠성도 초본이다. 칠성신은 신격화된 북두칠성의 일곱별을 일컫는 말로, 각각 이름이 있고 관장하는 분야가 다르다. 그러나 각 신격의 이름을 따로 부르기보다는 ‘칠성신’이라고 통칭하며 하나의 신격처럼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민간신앙뿐 아니라 칠성각과 산신각을 통해 불교와 도교에서도 북두칠성을 신격화하여 모시고 있으며, 종교에 따라 신격의 모습이 조금씩 다르게 표현된다.
칠성신이 관장하는 분야를 크게 구분하면 비를 내리는 역할, 수명을 관장하는 역할, 재물과 재능을 관장하는 역할로 나눌 수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은 수명壽命, 특히 어린 아이의 수명을 관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네 어머니들은 자식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 때면 어김없이 칠성신에게 기도를 드려왔다. 민간신앙에서 칠성신을 모실 때는 대개 정화수를 떠놓고 비손(‘손을 비빈다’는 의미로, 간소한 상을 차리고 손을 비비며 소원을 비는 의식)을 하는 형태로 모신다. 칠성신은 자식의 무사안녕을 기원할 수 있는 존재 중에서 모시는 것이 어렵지 않은 신격이었고, 그것이 민간에서 유독 칠성신을 많이 모신 까닭일 것이다. 신당에서는 우리 민족의 모든 신앙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칠성신을 그린 그림이 많이 필요했고, 칠성도 초본이 현재까지 남아 전해질 정도로 많은 수의 칠성도가 그려졌다.
예전에는 부모가 자녀를 위해 칠성신에게 치성을 드리는 일은 흔했다. 지금은 정화수를 떠놓고 치성을 드리는 일이 드물지만 자식을 걱정하는 부모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기술과 의학의 발달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일들이 가득한 지금, 칠성도를 마주한 듯 부모들의 마음이 잠시나마 평안하기를 기원해본다.

글 이다정(가회민화박물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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