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주 관장의 한국문양사 ⑬ 화각공예

삼국시대 이래로 꾸준히 발전해 온 우리나라 칠화공예(漆畵工藝, 옻칠그림 공예), 그 가운데서도 화각 의장기법에서는 조선시대 후기의 풍토성, 민족적 기질 등을 엿볼 수 있다. 화각공예품은 주로 여성용 소품 가구류가 주류를 이루고 있어서 나전칠기와는 또 다른 의장적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으나, 장식 무늬의 안배와 구성적 효과는 나전칠기와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다.
글 임영주 (한-명품미술관 관장)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도2 복채기법이 사용된 이집트 미이라 목관 부분, 기원전 3000천년 경



고려시대 나전칠기 상자에 부분적으로 쓰인 복채伏彩 기법은 자개나 거북등갑龜甲 등을 거의 투명하고 얇게 만든 것에 채색이나 먹선 등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림이 그려진 면을 밑으로 하고 보석 따위 등을 기물에 붙여 장식하는 기법을 일컫는다. 세필로 그려낸 다양한 선과 이면단필채법(裏面單筆彩法, 뒷면에 그리는 기법)이라는 독특한 채색법이 특징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화각공예는 우리나라 전통 각질공예角質工藝 중 하나로 쇠뿔과 뼈를 가공하여 가구 등의 표면에 붙여 꾸민 것이다. 요즘 시각으로 보자면 폐품을 활용하고자 하는 지혜가 엿보인다. 화각의 한자 표기는 ‘畫角’, ‘華角’, ‘火角’, ‘花角’등 다양하다. 그리고 그러한 기법이나 기물을 가리켜 화각장畫角粧이라 지칭하기도 했다.
이른바 복채색화법 혹은 이면화법의 시원은 고대 이집트로 본다. 미라 목관木棺의 표면장식이나 가면에는 대모玳瑁, 호박琥珀, 수정水晶 등 투명 또는 반투명 물체를 첨부하여 그 뒷면에 광물성 안료로 그림을 그려서 앞면에 그림이 나타나게 하는 장식기법이 쓰였다. 중국 당나라 때 실크로드를 통해 서방 유럽문화가 들어오면서 이러한 장식기법이 전해진 것으로 보이는데,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경의 유물에서 화각장기법을 엿볼 수 있다. 신라시대에 일본으로 전해진 것으로 짐작되는 작품 중에 바느질자[針尺]를 비롯하여 일본 고대 왕실보고王室寶庫인 쇼소원[正倉院]에 전해 내려오는 비파琵琶 등에서 그러한 의장기법을 볼 수 있다.
표면에 칠을 하지 않은 상태의 목가구를 ‘백골白骨’이라 하고, 단청하지 않은 상태의 집을 ‘백골집’이라 한다. 마찬가지로 목가구에 칠을 하지 않은 백골 상태에 화각을 장식하여 꾸민 것이 화각공예이다. 화각공예에서는 나이가 세 살 정도 된 어린 소의 뿔을 주재료로 하고 그밖에 쇠뼈 혹은 짐승의 뼈나 상아象牙, 대모, 나무, 자개, 금속박金屬箔 등을 사용하기도 하며 단청채색, 옻칠 기법 등도 적용한다. 거북 등갑으로 된 대모 등 희귀한 재료는 당시 중국으로부터 들여오는 수입품이 분명하며, 새로운 재료를 찾고, 그 이용 범위를 확대하여 나전칠기의 영역까지 확장하려 했던 점에서 한국인만의 고유 양식을 지닌 독창적 공예라 할 수 있다.

(위) 도3 <화각 버선코빼기>, 조선시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아래) 도4 <화각 실패>, 조선시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상류층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던 화각공예품

조선시대의 문헌 중 서유구徐有榘의 《임원경제지林園經濟誌》 <해생우각법解生牛角法>에 의하면 ‘쇠뿔을 종이송판 같이 얇게 만든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또한 <염골각법染骨角法>에 따르면 오색의 염료로 골각에 염색하는 장식기법이 전해오고 있어서 화각기법의 시원과 역사적 배경을 엿볼 수 있다. 대모 장식을 사용하였다는 문헌 사료로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권33 제2 <색복조色服條>, <차기기용실사조車騎器用室舍條>에서 각각 찾을 수 있다. 당시 왕족인 성골계급聖骨階級 이외에는 대모 등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였던 사실로 보아서 아무나 사용할 수 없었던 매우 희귀한 기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 민속에 화려한 채색을 써서 장식하는 공예품으로는 궁중 의례와 사찰 의례에 사용되는 기물, 그리고 주로 궁중이나 사대부가에서만 사용될 수 있었던 자수품과 매듭, 나전칠기, 혼례나 장례에 사용되는 의기儀器로 일반적인 민속공예품과는 다르다. 화각공예품 역시 민간에서 사용되기보다는 상류사회에서나 사용할 수 있었던 희귀 공예품이었다. 갓끈 장식, 안경집 등 남성용 공예품도 있긴 하지만 대체로 여성용품이 많다. 보석함을 비롯하여 경대, 반짇고리, 실패, 바느질 자[尺], 참빗, 장도, 혼수함, 필통, 지통, 필봉筆鋒, 선초扇貂 등 소품과 장롱, 사방탁자, 머릿장, 버선장 등 비교적 큰 기물에서도 쓰였다.

도5 화각에 쓰이는 재료(소뿔 및 소뼈의 가공)

화려한 색상으로 생활에 활력 불어넣어

을 써서 매우 화사하고 영롱하다. 그 의장은 생활 기물에서 순색純色을 주로 사용하던 것과 비교하면 드문 예다. 한 외국인은 이에 대하여 ‘한국 민족은 담소한 중간색中間色이나 백색에 대한 집념이 강하면서도 화각장華角匠의 순정적純情的인 고운 색채로 대담하게 그 균형을 깨뜨렸음을 보여준다. 이들의 생활을 보면 실내에서 의복에 이르기까지 백색이 주조主調를 이루고 있다. 그 중에 작은 기물이긴 하지만 화각장의 채색과 자수의 채색이 배합되었을 때 생기가 돌게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화각의 주제 무늬는 인습적 주제가 반복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종교와 복합적 민간 신앙의 조형화, 민속 설화說話 등이다. 화각의 의장무늬는 이러한 주제와 기법의 특성에 걸맞은 소재로 한국적인 표현이 돋보인다. 이 무늬가 당시 도자기, 목칠木漆을 비롯하여 각종 민속공예의 의장 문양 요소와 일치하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화각공예를 전문으로 하는 장인을 ‘화각장華角匠’이라 한다. 조선시대의 화각공예품은 주로 목공품으로 만들어지는데 백골에는 주로 홍송紅松, 적송赤松이 많이 쓰였으며 그밖에 잣나무, 오동나무, 은행나무, 호두나무, 자작나무, 피나무, 자작나무 등이 쓰였다. 화각의 주 재료인 수소의 뿔로는 약 3년생이 되는 쇠뿔이나 중각을 주로 썼다. 흔히 고추뿔이라 불리는, 곧게 뻗고 통이 굵은 것을 사용했다. 어린 쇠뿔 즉, 애각〔兒角〕은 흰 반점이 있고 늙은 쇠뿔인 노각老角은 굵은 심대가 있어서 사용되지 못한다. 화각공예품을 제작하는 방법과 순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위) 도6 쇠뿔을 얇고 투명하게 만든 각지판(왼쪽), 채화 그림이 그려진 각지판(오른쪽)
(아래) 도7 화각공예에 사용되는 각종 도구들

각지판角紙板 만들기

① 쇠뿔의 끝을 평톱으로 자른다.
② 배를 탄 뿔의 속을 뽑아낸다. 속을 뽑아내기 위해 주위에 3-4개의 쐐기를 박아서 속을 뽑아낸다.
③ 속이 빈 쇠뿔 속에다 숯불을 넣은 원뿔 모양의 용기를 넣고 가늘게 만든 철로 만든 대롱,
    즉 불대를 대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어 불을 피우면서 뿔 속에 남아있는 지방질을 제거한다.
④ 평톱으로 뿔 끝부분과 뿌리 부분을 잘라내 통형을 만든 다음 그것을 배를 갈라낸다.
    이 작업을 ‘배 탄다’고 한다.
⑤ 뿔 속을 익힌 뒤에 속 도리칼로 뿔 속을 두루 깎아낸다.
⑥ 과귀로 뿔 안 거죽에 붙어있는 더깨를 깎아낸다.
⑦ 깎아낸 뿔을 냉수 속에 넣어 3-4시간 불린 다음, 이를 숯불로 삶는다.
⑧ 삶은 뿔을 황새집게로 집어 숯불에 구워 부드럽게 만든다.
⑨ 뿔 속에 박달나무로 만든 목척木尺을 넣고 움직이지 않게 목척을 오른발로 밟는다.
⑩ 배 탄 부분을 위로 올라오게 한 다음 뿔 좌우를 황새집게로 잡고 뿔을 편다.
⑪ 넓게 편 뿔판을 소요되는 규격으로 마름질한다.
⑫ 마름질한 뿔판을 다시 과귀로 고루 깎아낸다.
⑬ 뿔판을 좀 더 고르게 만들기 위해서 검환(검환이란 강철로 만든 줄의 일종)으로 바로잡는다.
⑭ 바로잡은 뿔판을 곱창톱으로 쓰고자 하는 크기, 즉 약 10~18cm 크기, 두께 약 0.6mm로 잘라낸다.
⑮ 잘라낸 뿔판을 다시 검환으로 안팎을 깎아낸다.
⑯ 약 0.6mm의 뿔판을 갈기질 하여 다시 약 0.4mm 뿔판으로 깎아 각지판角紙板을 만든다.

화각판에 문양 그리기

화각공예에 사용하는 물감은 광물성 안료顔料로 당채唐彩, 진채眞彩, 화채畵彩, 암채岩彩, 석채石彩 등이 있으며, 접착제로는 아교阿膠, 어교魚膠를 배합해 그린다. 그리는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 각지판에 밑그림을 그린다. 밑그림은 묵선墨線으로 가늘게 그린다.
② 묵선 위에 분선粉線과 흰색 부분을 채색한다.
③ 밝은 색 부분부터 차례로 채색해 넣는다.
④ 설채設彩(색 메우기)가 끝난 후 채색이 박락되는 것을 막기 위해 표면에 아교나 부레풀로 풀칠을 한다.

도8 <화각빗>, 조선시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목기에 화각판 붙이기

① 그림을 붙일 부분에 문양이 그려진 화각판을 순서대로 배열하여 붙이는데,
    아교 또는 부레풀칠한 화각판을 백골위에 인두질하여 붙인다. 화각판과 화각판 사이사이
    계선界線에는 붕어톱으로 홈을 판 후 쇠골(牛骨, 쇠뼈)을 깎아 감장嵌裝하여 틈을 메워서
    화각판이 박락하지 않도록 보강하는데 이는 화각 문양을 흰 선으로 돋보이게 하는 역할도 한다.
② 화각판을 다 붙인 다음에는 전체적으로 물수건이나 인두질하여 표면의 아교풀을 닦아낸다.
③ 화각판 각질 표면을 검환으로 갈기질하여 더 고르게 다듬고 다시 사포질하여 매끈하게 다듬는다.
    예전에는 상어피로 사포질하여 곱게 갈아냈다.
④ 표면을 연마하여 광택을 낸다.
    연마도구로는 상어피 외에 숯돌과 갈기숯, 속새, 토분土粉, 녹각분鹿角粉, 진간장 등을 사용한다.
⑤ 윤을 더 내기 위해서 녹각분을 녹피鹿皮나 면포綿布에 찍어가면서 곱게 문지른다.

도9 <화각함>,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각장에 그려진 민화도상

화각공예품에 그려진 그림의 소재를 살펴보면 민화와도 상통하는 도상이 자주 등장한다. 주로 십장생 도안을 비롯하여 그 부분적인 소재인 쌍록문(한 쌍의 사슴그림), 쌍학문(한 쌍의 학 그림), 쌍봉문(한 쌍의 봉황 그림)을 비롯해 신선도, 무속도, 까치와 호랑이, 기구동자도(騎龜童子圖, 거북을 탄 동자 그림) 등을 볼 수 있다. 그 외에 고대 신앙적 요소로서 일월상日月象을 표현하기도 했다. 일월상 그림은 계수나무 아래에서 약방아를 찧고 있는 토끼와 두꺼비의 이야기를 그린 월궁그림[月宮圖]으로 일찍이 고구려 고분 벽화에 등장한 예가 있어 이 같은 전통도상이 민속 신앙을 통해 오랫동안 전해져왔음을 알 수 있다.



임영주 | 한-명품미술관장

홍익대학교에서 목칠학과를 전공하고 동국대학교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 전문위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회장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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