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주 관장의 한국문양사 ⑫ 나전칠기

한국 칠기 공예에 나타나는 의장 문양의 소재를 살펴볼 때, 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한국 미술에 나타나는 상징적 문양들의 소재는 대부분 자연적 취향에서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으며 우리 민족의 전통성과 풍토성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글 임영주 (한-명품미술관 관장)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청


우리나라의 옻칠공예는 이미 청동기시대부터 활용되었다. 신라시대에는 칠기를 제작하는 《칠전漆典》이 있었고, 통일신라시대 이래로 당唐의 나전 기술이 들어오면서 크게 발전하게 되었다. 유물로는 전 가야지방에서 출토된 <나전화문동경>(지름 18.5cm, 통일신라시대)이 있다. 이 당풍唐風의 거울이 전하는 예로 보아 나전칠기공예품이 이미 신라에 전해졌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출토 정황이 분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제작 수법이 고려 전기의 것과는 다르고, 당시 8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일본 정창원正倉院에 소장된 <나전거울[螺鈿鏡]>(지름 39.5cm, 8세기경)과 중국에서 출토된 당나라 때의 나전거울(전 낙양 출토, 북경 국립 역사 박물관 소장)과도 같은 제작 수법을 나타내고 있어서 신라의 작품으로 단정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따라서 당에서 유입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가야 지방에서 출토되었다는 당나라 양식의 청동 나전경의 뒷면에는 중앙부의 끈을 꿰는 꼭지鈕를 중심으로 자개로 붙인 구슬무늬珠紋가 둘려졌고, 또 그 둘레에는 조개껍질의 표면을 갈아 타원형의 구멍을 뚫은 모양을 이용한 3개의 화문을 구성하여 다시 그 둘레에 작은 조개껍질을 둘러서 안쪽 구획을 구성하였다. 바깥 구역에도 같은 수법으로 이루어진 보상화문이 서로 대칭으로 구성되고 그 사이에 질주하는 사자 1쌍 역시 대칭으로 배치되었으며 주변에는 새와 나비 등이 보인다. 자개 무늬의 표면은 가는 선각의 모조毛彫로 세세하게 표현되었으며, 다른 모든 공간은 청옥靑玉(터키석) 조각을 감장하고 옻칠을 전체 표면에 씌워 일정하게 갈아 다듬어서 평면에 무늬만 살아나게 의장하였다. 이러한 기법을 ‘평탈기법平脫技法’이라 하는데, 이 기법은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동원東垣 이홍근李洪根 선생의 수집품 중 <청동금은장식 평탈나전거울>(지름 18.2cm, 8∼9세기)의 예에서도 볼 수 있으나, 이 역시 당나라 동경唐鏡에서 모방되었을 것이라는 확증이 크다. 이와 똑같은 거울이 중국 당대 유물에서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러한 칠기 공예 기법이 뒷날 고려시대 나전칠기의 발달에 영향을 끼친 것은 자명한 일이라 하겠다. 나전 의장술과 독특한 무늬의 구성 등은 통일신라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동안 창안된 고려의 독자적인 양식을 보여 준다. 의장 재료로 구리줄[銅線]을 꼬아 사용했거나, 거북 등껍질[龜甲鈿]을 사용했던 것은 고대의 중국, 일본 등지에서 공통적으로 유행하던 수법이다.
한국 칠기의 특징적인 기법은 신라시대 이후의 칠화 기법에서 옻칠 표면에 자개를 박아 장식하는 나전상감기법螺鈿象嵌技法으로 발전된 것으로 생각된다.

도2 <꽃 동물 무늬 붙인 옻칠거울>, 통일신라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수한 옻과 영롱한 자개가 어우러진 우리나라 나전 칠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의 칠기공예 유물을 통해 살펴볼 때 일찍부터 옻칠과 채색 안료가 발달했음을 알 수 있다. 옻漆은 옻나무에서 나는 진이다. 처음 나오는 것은 회색이나 물기를 없애면 짙은 갈색을 띤다. 예부터 금속, 목재, 종이, 천 등 여러 가지 물건의 표면에 바르는 원료로 쓰였는데, 이 칠을 바르면 금속의 녹을 방지하거나 목재의 충해와 습기, 눈비와 바람 등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다. 따라서 귀한 물건과 건축물 등 의장 도료로도 사용된다. 이 옻나무 즙을 정제整齊해서 생칠을 만들고 여기에 암채岩彩와 배합하여 갖가지 빛깔의 물감을 만들어 건축이나 공예품에 문양을 그린 것을 ‘채화칠기彩畫漆器’라 한다. 또한 칠기에 조개껍질 패각貝殼이나 대모玳瑁(거북 등갑)·상아象牙·호박琥珀·보석寶石 따위를 얇게 갈아 여러 가지 무늬를 오려낸 무늬를 기물 표면에 박아 넣어 아름답게 꾸민 것을 넓은 의미로 ‘나전칠기螺鈿漆器’라 한다. 금·은판을 오려 붙인 것은 별도로 ‘평탈칠기平脫漆器’라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청록빛을 띤 영롱한 빛깔이 나는 남해산 전복껍질을 많이 사용한다. 패각이 이처럼 아름다운 빛깔을 내는 이유는 탄산칼슘의 무색투명한 결정이 주성분인 까닭에 그것이 빛을 받으면 프리즘과 같은 색광 현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나전칠기가 제작된 곳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일본·버마·타이 등 동남아시아 여러 나라를 포함한 아시아 일원이지만 우리나라와 중국에서 특히 나전칠기가 발달된 이유는 옻의 품질이 우수해 정밀한 공예품에 사용하기 적합하기 때문이다. 동남아 지역 등 해외의 옻에는 수분이 많고 점성이 약한데 비해 삼한사온의 기후를 띤 우리나라에서는 점성이 높은 옻을 채취할 수 있다.

(위에서부터) 도3-1 <나전향상>, 고려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도3-2 《조선고적도보》에 실린 <나전향상>, Ⓒ 국립문화재연구소

고려초기 회화풍의 문양에서 점차 자개에 활용하기 좋은 문양으로 변화

나전 칠기의 재료가 되는 자개를 만드는 방법에 따라 무늬의 표현 기법이 달라진다. 덩굴무늬와 같이 길고 자유로운 곡선을 이루는 부분은 금속선金屬線을 이용하고 작은 자개편을 이용하여 조밀한 화문을 구성하는 나전 칠기 수법은 12세기 중엽에 발생된 청자 상감 기법이나, 그 이전에 발달한 것으로 추정되는 은입사銀入絲 등 금속 공예 기법에서의 선적으로 된 무늬구성 등은 고려 공예의 특색이라 할 수 있다. 12세기 중엽 이전에는 초화수금문草花水禽紋 등 회화적 문양 구성과 들국화의 작은 단위 무늬를 질서정연하게 연속 배치하고, ‘S’자 형식의 덩굴로 연결하여 사방연속무늬 등이 특징적으로 나타난다. 그 이후에는 모란·국화·초화 당초무늬가 밀집돼 구성되는 정제된 연속무늬가 특색을 이루게 된다.
고려 고분에서 출토된 것이라고 하는 <고려나전향상>은 11세기∼12세기초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목제로 골격을 만들고 그 위에 모시껍질로 씌워 만들어 옻칠한 이른바 목심저피木心苧被의 칠기이다. (도3-1, 도3-2) 무늬는 상자의 뚜껑과 상자 외부 네 면에 나타난다. 수양버들과 단풍나무, 그리고 크고 작은 초화가 우거지고 그 아래 잔잔한 물 위에 많은 물새들이 노닐며 수목의 사이와 하늘에는 크고 작은 새들이 이리저리 나는 모습의 매우 사실적인 풍경화적 문양이 펼쳐진다. 이 문양은 아주 작고 가느다란 자개편으로 이루어졌는데, 수목의 줄기와 가지에 이르기까지 섬세하게 처리되고 있다. 또한 초목의 잎사귀 등에는 금채金彩를 이용한 묘금描金이 첨가되어 더욱 화려한 양상을 띠고 있다. 이러한 장식 기법은 당시에 넓고 긴 자개 재료를 얻을 수 없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덮개의 네 측면에는 국화 당초문과 모란 당초문이 상하에 각각 띠 모양帶狀을 이루어 장식되었고, 상자의 각 측면에도 상, 하 주연에 ‘X’자 모양의 대상 무늬가 상감되어 있다.
일본 동경 국립 박물관이 소장한 <국 당초문 나전 경상>(12세기 중엽)에는 덮개를 비롯하여 상자 네 측면에 모두 국화무늬 즉 입국무늬[立菊紋]로 구성했고, 모든 주연에‘X’자형 대상 무늬를 둘러 장식했다. 입국무늬는 국화를 중심으로 사방에 잎이 붙은 모양이며, 이러한 단위 문양이 빗격자상斜格子狀으로 사방 연속무늬를 이루어 전면을 장식한 것이다. 12세기 중엽의 상감청자에 유행되고 있는 특징적인 문양이어서 흥미롭다. 이러한 문양은 12세기 말엽부터 전개되어 덩굴무늬, 즉 당초문 형식으로 복잡한 양상을 띠게 된다. 8엽으로 이루어진 작은 국화를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하여서 그 화문을 중심으로 작은 잎사귀가 다닥다닥 붙은 ‘S’자형 덩굴로 연속 전개시켜 사방 연속 국 당초문대를 구성하는 매우 정교하며 복잡한 의장을 나타낸다. 그 예로 일본 소재 <나전대모칠기염주합螺鈿玳瑁漆器念珠盒>(13세기초, 높이 45cm, 지름 124cm, 일본소재)와 <나전칠기국당초문경상螺鈿漆器菊唐草紋經箱>(13세기 중엽, 일본 동경 국립 박물관 소장) 등을 볼 수 있다. 그러한 단위적인 밀집 배치 무늬는 고려인들의 호화스러운 취향에 맞추어 여러 방면에서 공통적으로 성행되었던 문양이었던 것 같다.
현존하는 나전 칠기의 예가 그다지 많지 않아 분명히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나, 이러한 몇 가지 예로 보아서 고려 초에는 통일신라기부터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는 초화수금문계草花水禽紋系 무늬, 즉 회화풍繪畵風의 문양이 쓰이다가 당시 나전의 재료인 자개의 좁고 작은 면을 이용하기에 편리한, 이른바 자개 무늬의 조합組合에 필요한 도안이 점차 유행한 것으로 보고 있다. 또한 이러한 문양이 도자기에 유행된 것도 비슷한 이유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무늬를 도장처럼 눌러 새김하여 무늬를 연속 구성하는 시문 기법은 선조線彫 등으로 나타내는 회화적인 소재에 비해 훨씬 간단하면서도 명쾌한 무늬 효과를 띤다.

도4 <나전 칠 포도 무늬 서류함>,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초기에는 불교문, 후기에는 길상문 유행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조개껍질[貝殼]의 둥근 면을 갈아냄으로써 얻어지는 면적이 넓은 자개를 이용하였으므로, 자개 무늬가 커지게 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도1, 도4, 도5) 조선시대 칠기의 의장 문양은 대개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양식이 달라지고, 다시 조선시대 말기에 또 다른 양상을 띤다. 15∼16세기를 전기, 17∼18세기는 중기, 19세기 이후를 말기로 구분할 수 있다.
조선 전기의 나전 칠기는 고려의 귀족들의 호상好尙에 따른 지극히 세밀한 무늬 표현의 양식에서 벗어나서 어느 정도 대중적인 취향에 맞추어 의장되었다. 또한 장식의 표현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문양 형식에 적지 않은 변화를 주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자연히 고려시대의 의장무늬의 영향이 여전히 나타나며, 불교적인 취향의 보상화문을 비롯하여 모란·국화·연꽃무늬를 주제로 연속 전개시킨 당초문계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덩굴의 잎사귀는 고려 시대의 양상처럼 촘촘하고 극밀화되지 않고, 사실적인 표현으로 듬성듬성 배치했다. 모란·국화·연꽃무늬도 정면형, 측면형 등을 자유롭게 배치하여 전개시킴으로써 한층 소박한 멋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대칭적 특성의 시메트리한 문양 구성이라든가 앞 시대의 특징이 남아 있고, 또 불교적인 문양 소재가 주로 쓰이는 것으로 미뤄보아 초기의 나전 칠기는 주로 불교 관련 기물이 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대로 대중화된 기물이 제작되기 시작한 시기는 아마도 중기 이후의 일이라 생각된다.
17∼18세기의 나전 칠기 의장 요소에는 꽃과 새를 비롯하여 포도무늬·쌍학무늬·매화와 새무늬 그리고 사군자 무늬 등 귀족적인 취향의 무늬가 주로 나타나는데, 그러한 양상은 비단 나전 칠기에서 뿐만 아니라 초기 청화백자靑華白磁 등에 크게 유행되어 당시 선비들의 유교관이 크게 반영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길상吉祥을 뜻하는 각종 문자도안인 ‘수壽’, ‘복福’, ‘강康’, ‘녕寧’이나 ‘희喜’자 문양 등이 점차 성행하고, 이른바 한국적인 문양의 특성이 본격화되는 추세가 나타나는 시기다. 이는 공예뿐 아니라 회화와 건축建築 등에 전반적으로 나타나는 공통인 특성이라 할 수 있다.


도5 <나전 칠기 호랑이 무늬 베갯모>,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다시 말기에 내려오면 고고하고 격조 높은 정신적 내용이 오히려 형식화되고 난해해져가는 경향을 볼 수 있으나, 그러한 추세는 19세기 즈음하여 서구적인 영향을 크게 받은 청대淸代의 화려한 미술 경향에서 크게 자극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기물 전체에 여백을 주지 않고 가득히 무늬를 채우는 장식은 도자기의 의장 문양과도 유사하다. 그러나 산수풍경을 비롯하여 십장생무늬·석류무늬·호랑이무늬·구름과 용무늬·구름과 봉황무늬·구름과 학무늬 등의 동 식물무늬 소재들은 우리 민족의 자연관, 행복관을 반영하는 민중화적, 또는 민화적 문양 요소이다. 물론 그러한 문양 소재는 조선 시대 중기의 모든 미술에서 유행을 보았던 의장 소재들이 지속 발전된 것이며 나전 칠기가 귀족적인 데에서 점차 대중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 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이상과 같이 한국 칠기 공예에 나타나는 의장 문양의 소재를 살펴볼 때, 고대로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한국 미술에 나타나는 상징적 문양들의 소재는 대부분 자연적 취향에서 이루어졌음을 볼 수 있으며 우리 민족의 전통성과 풍토성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국 시대 이래로 다양하게 발전되어 온 우리 칠화공예漆畵工藝는 나전 칠기를 비롯하여 화각 공예華角工藝 등 동양 칠기 공예 중에서도 독창적이라 말할 수 있는 독특한 기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그 의장에 있어서도 민예적 특성을 뚜렷하게 반영시키고 있다.


임영주 | 한-명품미술관장

홍익대학교에서 목칠학과를 전공하고 동국대학교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 전문위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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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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