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주 관장의 한국문양사 ⑪ 황금보다 빛나는 칠기물

우리 고대 칠채 문화는 고분벽화를 비롯하여 고분 출토품과 깊은 연관성을
보이는 것으로 미뤄보아 그 시작이 고대 중국에서 비롯되었다고는 하지만
삼국시대, 특히 불교공예 및 불상조각 부문에서 독창적인 수준으로 발전했다.

글 임영주(한-명품미술관 관장) 사진 국립경주박물관, 국립공주박물관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칠기공예 유물을 살펴보면 일찍부터 옻칠과 채색 안료가 발달하여 유행했음을 알 수 있다. 옻漆은 옻나무에서 나는 진인데 처음 나오는 것은 회색이나 물기를 없애면 짙은 갈색으로 된다. 예부터 금속, 목재, 종이, 천 등 여러 가지 물건의 표면에 바르는 원료로 쓰였다. 옻칠을 하면 금속의 녹을 방지하거나 목재의 충해와 습기, 눈비와 바람 등을 막아주는 효과가 있어 귀한 물건과 건축물 등의 의장 도료로도 사용된다.
우리 고대 칠기류에 옻칠된 색상이나 문양은 낙랑 고분에서 출토된 중국계 칠기들과 중국 장사長沙에서 출토된 칠기류와도 비슷하다.(도1) 내면에는 주칠朱漆, 외면에는 흑칠黑漆을 한 점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칠기 중 외면에 검정칠 바탕에 붉은 칠로 그린 문양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 그려진 그림과 연관하여 볼 수 있다.

(왼쪽) 도1 채협총(채문칠권통, 칠제벼루, 채문합), 3-4세기경, 평남대동군출토
(오른쪽) 도2-1 어룡문이 그려진 부분

백제 회화의 진수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목제두침, 족좌 등에서 발견되는 각종 양식은 백제 문화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백제 미술에 나타나는 주요 문양의 유형을 살펴보면 대체로 고구려, 신라의 유물에 비해서 불교적인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문화적 성격은 중국 남조南朝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채화 문양에서도 인동문양, 초화문양, 연꽃문양, 비천문양, 서조문, 어룡문, 서봉문, 서룡문, 귀갑문 등이 주로 나타난다. 우선 백제적인 성격이 가장 두드러지는 인동문, 초화문, 연화문의 형식을 살펴본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무령왕비 베개(도2)에서는 전면에 주칠을 하고 주연의 윤곽을 따라 금판으로 띠를 돌리고, 다시 가느다란 금띠를 내측에 둘렀다. 내부에는 귀갑형의 망상문이, 변두리에는 반半귀갑형이 새겨졌다. 각 구획 안에는 용, 봉황, 어룡 등 동물문양 계통의 소재와 인동 연화문, 4판 화문 등이 각각 그려졌다. 이 두침의 양측면에도 초화문으로 추정되는 문양이 그려졌으나 심하게 부식되어 판별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U자형으로 머리를 놓았던 부분의 양옆에는 목제 채색 봉황두형이 올려져 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여기에 나타나는 의장 요소다. 귀갑형 구획 안에 그려진 백색, 붉은색, 검정색 등 채색과 금니로 그려 넣은 비천상, 서조문, 어룡문, 연화문, 인동문, 사판화문 등은 그리 많지 않은 백제의 화적畵蹟을 보완해 주는 자료이다. 이 가운데 비천상은 범종梵鐘의 비천상과 매우 비슷하다. 무릎을 꿇어 공양하고 있는 모습으로, 천 자락이 휘날리고 구름 위에 떠 있는 자태는 매우 발전된 양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비천상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도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그 양식에서는 중국 서위시대의 돈황 285굴 남벽 천정화와 6세기말 수대隋代의 감숙성 맥적사 석굴사원에서 그 연원을 찾아볼 수 있다.
이 목침에서 가장 특이하다 할 수 있는 것은 어룡형 문양(도2-1)으로, 이 어형魚形도 입에 인동초를 물고 꼬리는 위로 치켜든 모습이며 그 묘사가 매우 세밀하다. 이상과 같이 비천문을 비롯하여 인동 연화문, 봉황문, 어룡문 그 밖에 각종 서상적인 무늬가 무덤 주인공의 두침이나 족좌 등에 그려져서 장식된 것은 천상계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비천은 낙천樂天을 뜻하는 것이니 허공을 날며 음악을 하고, 하늘 꽃을 흩날리기도 하는 등 즐거운 풍경의 천상 경계를 나타낸다고 한다. 이 속에는 여러 종류의 서상적인 동물 형상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모습은 중국 상고上古 신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도3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무령왕의 발받침, 백제, 국립공주박물관 소장



여기에서의 어룡 모양은 ≪산해경山海經≫에 등장하는 소어蘇魚라고 하는 물고기 형상을 나타낸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 물고기는 잉어같이 생겼으나 닭의 다리를 달고 있다고 한다. 같은 형상은 고구려 고분 벽화 중에도 나타난다. 덕흥리 벽화 고분에서는 소어가 날개가 돋아나 날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며, 안악 제1호분에서는 아가미 부분에 날개가 돋고 다리가 앞가슴에 달린 물고기의 모습이 보인다. 이러한 괴이한 물고기 형상과 괴수怪獸들은 사람들에게 이득利得을 주는 길상동물로 전해진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무령왕 발받침(도3)에서도 역시 귀갑문을 금박 띠로 둘러서 전후면과 양측면을 장식했는데, 귀갑문이 망상으로 연결된 부분에는 둥근 자리에 영락이 1개가 매달린 소형의 6엽 꽃장식이 붙어 있다. 이 화형 장식은 꽃잎에 금못을 박아 금판대를 고정, 부착시키고 있으며 귀갑문을 구획한 내면에는 각각 1개의 연화 장식 금구를 붙였다. 하단이 심하게 부식되어 채화의 형상은 분명하게 나타나지 않지만 중앙부에는 W자 모양으로 파내 두 발을 올려놓을 수 있도록 했으며 전면에 흑칠을 했다. 여기에 나타나는 귀갑문 형식은 고구려 고분 벽화 중 귀갑총의 벽면에 그려진 것이 천왕지신총 주실 북벽의 묘주도墓主圖 등에서도 나타난다. 두 고구려 고분의 귀갑문 속에는 부채꼴의 측면형 연화가 안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신라 식이총飾履塚(5~6세기)의 금동식이(청동에 금도금한 의장용 신발)에서도 이러한 귀갑문 형식이 의장되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귀갑문의 연결점에 연화 장식 무늬가 1개씩 구성된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형식은 5~6세기경 운강 제17동석굴의 현실 동벽에 새겨진 8각 석주의 장식 문양 중에서 처음으로 나타나고 있다.


도4 무령왕비 발받침, 백제, 국립공주박물관 소장



무령왕비 발받침(도4)에서는 전면에 주칠을 입히고 그 위에 두침의 경우와 같이 금박띠를 주연 윤곽을 따라 돌렸으며 내면에 흑백색 등으로 새털 같은 구름 모양을 가득하게 그려 넣었다. W자형으로 파인 두침의 양쪽 상부에는 화판에 점이 1개씩 들어 있는 연화문이 있는데, 이 역시 고구려 벽화에서 나타나는 연화문 형식과 같다. 여기에 그려진 새털구름 모양은 끝이 뭉실하게 와상을 이룬 것으로 자세히 보면 유운문이 인동문 형식으로 된 초화문으로 고구려 벽화에서 나타나는 연화문 형식과 같다. 이러한 화병화나 화분 모양은 고구려의 쌍영총 전실 천정 받침의 초화 그림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일찍이 중국에 수출된 신라칠기물

우리나라 칠기에 관한 역사적인 기록과 유물은 그다지 많이 전해지고 있지 않지만, 중국의 몇몇 기록에는 ‘신라칠新羅漆’에 관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도종의陶宗儀가 쓴 ≪철경록輟耕錄≫에서는 ‘흑칠 바탕에 각침刻針으로 산수죽석화, 화죽영모화, 누대와 가옥그림, 인물고사화를 그린 후에 신라칠을 한다’고 적혀있으며, ≪계림지鷄林志≫에서는 ‘고려의 황칠은 섬에서 생산된다. 6월에 번읍藩邑에서 채취하는데 온종일 폭일이면 곧 건조해서 생산량이 적다. 절강사람들은 이것을 신라칠新羅漆이라 한다’고 말하고 있어 신라칠은 본래 백제의 어느 섬에서 산출된다고 기록하였다. 여기서 ‘어느 섬’이란 완도莞島를 말하는 것이니 ≪해동역사海東繹史≫의 기록을 보면 ‘백제 서남해 중에 세 개의 섬이 있고, 이곳에 황칠수黃漆樹가 있는데 큰 것은 소종수小棕樹와 같다. 6월에 그 즙을 채취한다. 칠기물은 황금과 같으며 그 빛은 사람의 눈길을 끈다’라고 했다, 보충 설명으로 ‘황칠은 지금의 강진 가리포도에서 난다. 옛날에는 완도라 하였는데, 우리나라의 한 섬이다. 오직 이 섬에서만 황칠이 난다’고 적혔다. 이러한 기록을 통해 볼 때 고대에는 황칠이 백제에서 산출되었음을 알 수 있고, 그 원산지가 가리포도로서 지금의 전남 강진 완도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칠은 중국에서 신라칠이라고 불렸으며, 신라칠의 품질이 매우 높았으므로 중국으로 수출 또는 공납했던 것이다. 이 신라칠의 우수한 작품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금관총 칠기편이라든가 천마총, 경주 98호 고분에서 출토된 칠기와 채화판 등에서 당시의 화적을 보여 주고 있다. 한국의 칠에 관한 내용은 송나라 사람인 서긍徐兢이 쓴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서도 다음과 같이 자세히 기록되고 있다. ‘나주에서 백부자 황칠이 나는데, 다 토공품이다.’ 공장연대조供張燕臺條에는 ‘단칠로 장식했는데, 날로 도금 장정이 더해갔고, 홍라보위가 더해 갔다’고 했다. 그 외에도 공장供張의 단칠조丹漆組와 흑칠조黑漆組에서도 단칠 흑칠에 대한 기사가 나온다. 이러한 기록을 종합해 볼 때, 고려시대의 나전 칠기는 국내 유명지에서 생산했던 것에서 비롯되며, 삼국시대에는 칠공예가 중국에 공납품으로 보내졌다는 사실로 미뤄보아 매우 우수한 칠공품이 생산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신라 시대의 유적에 나타나는 칠화 공예로는 경주 98호분에서 출토된 칠화편(5~6세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천마총에서 출토된 장니천마도(5~6세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서조당초문채화판(5~6세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금관총에서 출토된 칠기 채화편, 천마총에서 출토된 기마인물도 채화판(5~6세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등이 전해지고 있다.


도5 천마총에서 출토된 장니천마도, 신라(5세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경주 98호분 칠화편은 기면에 흑칠을 입히고, 바탕면에 주색朱色으로 윤곽을 돌렸다. 이 칠기편은 아마도 합盒인 것 같은데, 외면의 상단에는 소와 말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표현되었고 하단에는 또 한 마리의 소가 표현되었다. 이러한 가축을 그린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며 특히 사실적인 동물 그림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찾아볼 수 있는 우마도牛馬圖와 비슷하여 주목된다. 중국 칠기에서는 내부에 주칠을, 외부에 흑칠을 입힌 칠기가 이미 주周시대부터 발달하였다고 하나 신라의 경우 흑칠 위에 주칠로 그림을 그리는 특수한 기법이 보인다. 이 그림에는 소의 몸체나 눈에 황칠로 묘사한 흔적이 있다. 이 칠화가 고분 벽화의 그림 소재와 유사한 것으로 보아 이 역시 비슷한 성격을 지닌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장니천마도(도5)는 무덤 내부의 목곽 안 동쪽에 놓여 있던 부장품 수장궤 속에서 나왔다. 백화수피(白樺樹皮, 자작나무 껍질)로 만든 장니의 표면에 그려져 있는 매우 환상적이면서도 회화적인 필치를 보여 준다. 천마도가 그려진 장니는 얇은 자작나무 껍질을 여러 겹으로 겹치고, 그 위에 가로 세로 각 14줄이 마름모꼴로 누빈 흔적이 보인다. 둘레에는 가죽 또는 단을 돌렸는데, 그 주연에는 보상화문 형식의 인동 당초문대를 두르고, 장니의 중앙부에는 백마가 크게 배치되었다.
주연부의 인동 당초문대는 주, 흑, 백, 녹색 등 채식으로 그려졌는데 보상화문의 화판은 3판화로 반쯤 펼쳐진 측면 형식이다. 화판의 밑에는 소용돌이 모양의 꽃받침이 둘러싸고 있다. 이러한 단위單位 문양은 상하로 서로 어긋나게 옆으로 연속시켜서 당초문 형식을 이루고 있다. 꽃과 덩굴의 내부는 녹색으로 채색하고, 주연에는 주색으로 윤곽을 돌렸으며 모퉁이에는 특이한 화문이 배치, 구성되었다. 천마도는 천공天空을 비상하는 백마의 그림이다. 목덜미에는 힘찬 갈기가 뒤로 뻗쳤고 꼬리털은 위로 휘날리고 있다. 네 다리는 질주하는 자세로 운동감이 넘치며 네 다리의 겨드랑이에서는 1줄기의 익모가 와상으로 날리고 있다. 몸의 부분, 부분에는 손톱 모양의 반점이 돋아있다. 입에서 뻗쳐 나온 긴 가닥은 언뜻 혀를 내민 것 같으나 거센 기운, 즉 정기精氣가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동물은 용마龍馬 형상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된다.


(왼쪽) 도6 백화수피제 기마인물문 채화판, 신라(5세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오른쪽) 도6-1 도6에 그려진 기마인물문



이 천마도에는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주목되는 점이 있다. 첫째, 여기 그림의 주제화가 되는 천마의 형상인데 이 그림은 만주 집안현에 있는 무용총의 천정 벽화에 그려진 신수神獸와 유사한 형식이다. 둘째, 인동 당초문도 그 간고簡古한 형상에서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나는 형식과 같은 유형이라 하겠다. 셋째, 이 그림 전체의 묘사기법, 표현 등도 오래 전의 스키타이 문화적 성격이라든가 서방계 문화에서 연원한 것이라 생각된다. 넷째, 경주 미추왕릉 지구에서 발견된, 이른바 신구형토기神龜形土器와 유사한 형식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여러 가지의 요소는 결국 당시의 부장 풍습과 신앙적인 면을 말하여 주는 것이라 볼 수 있다.
기마인물도 채화판(도6) 역시 자작나무 껍질을 부채꼴로 8장을 잇대어 도넛형의 원판圓板을 만든 모자 차양帽子遮陽이다. 내부연內周緣과 외주연外周緣에 가죽띠 같은 것으로 테두리를 했다. 내주연의 문양은 단연 연판문대가 빙 둘러졌고, 각 부채꼴의 판마다 구획을 지어 8구로 만들어 각 구마다 질주하는 기마 인물들을 사이사이에 그렸다. 바탕에 주칠을 입힌 다음 윤곽을 먹선墨線으로 그리고 백갈색 등의 유채油彩로 표현하고 말은 백색과 갈색을 교대하여 그렸다. 말과 기마 인물의 표현이라든가 묵선으로 윤곽을 그린 기법 등은 고구려 무용총 주실 서벽 수렵도에서의 표현 방식과 유사하다.(도6-1) 이러한 백마를 탄 인물상의 그림은 천마총의 천마도天馬圖와도 연관하여 볼 수 있는데, 묘주의 승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채화의 서조문은 대개 하늘새[天鳥]를 의미한 것으로 추정된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서조당초문 채화판(도7)은 앞서 기마 인물 채화판과같이 자작나무 껍질로 된 것으로, 6장의 부채꼴 판을 엇대서 6구로 구성했다. 채화판의 앞뒤에는 채화가 그려졌는데, 앞면에는 안쪽 주연에 기마 인물 채화판의 경우와 같이 단엽 연화판을 돌렸다. 내면의 각 구에는 주작과 서조를 교대로 한 수首씩 그려 넣었으며 뒷면에는 주연에 연판문이 없이 묵선으로 윤곽을 두르고 그 내면에는 당초문이 연속무늬를 이루도록 꽉 차게 그렸다. 앞면에 그려진 주작 서조문은 황색과 주색으로 채색하고 묵선으로 형태를 묘사했는데, 주작에는 머리와 꼬리에 하트형의 깃털이 달려 있다. 서조는 마치 쥐와 같은 동물 형상의 머리를 나타낸다.


도7 백화수피제 서조문 채화판, 신라,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주작도는 고구려 강서군 우현리 중묘 현실 남벽의 주작도와 유사하며, 남벽의 천정 받침에서는 이와 같은 서조가 표현된다. 이 서조의 형상은 중국 신화에서의 여러 괴상한 조류鳥類의 형상 중에 나타나고 있는 모습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뒷면의 당초문은 등덩굴처럼 S자 모양으로 규칙적인 연속무늬를 이룬다. 각 줄기 끝에는 초롱꽃 같은 다이아몬드 모양의 열매가 달렸다. 이 당초문 형식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어떤 당초 형식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전개 형식이라 하겠다. 이와 비슷한 형식은 금령총에서 출토된 채화판에서 나타나는데, 그 당초문에서는 당초 덩굴의 끝에 붙은 꽃 모양이 버드나무잎 모양柳葉形인 점이 다르다. 이 밖에 경주 식이총에서 출토된 채화 칠기편에서도 주, 황, 녹, 백색 등으로 흑칠 바탕에 초화문과 당초문을 비롯한 새 무늬가 나타난다.
이와 같은 형식은 금관총에서 출토된 채화칠기편에서도 그려지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당초문, 연화 외에 직선으로 교차된 문양, 톱니문양 따위의 기하학적 무늬가 나타나고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와 직접적인 연관을 주는 문양 형식으로 화염문 형식이 나타나는 칠기가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 고대 칠채 문화는 지금까지 전하는 유물 자료로 보아서는 그 시작이 고대 중국에서 비롯되었다고는 하지만 삼국시대에 특히 불교공예 및 불상조각 등에 독창적인 수작으로 발전했다. 일본 나라 시대 정창원正倉院 유물에서 우리 삼국시대 칠기의 전래품을 찾아볼 때 한국 고대 칠화가 일본의 칠기 발달에 지대한 영향을 준 점도 알 수 있다.


임영주 | 한-명품미술관장

홍익대학교에서 목칠학과를 전공하고 동국대학교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 전문위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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