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주 관장의 한국문양사 ⑩ 고구려 고분벽화

복식은 각 개인의 개성과 품격을 나타내며 사회집단 내 소속감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고분벽화를 비롯한 고대 풍속 그림과 그 인물상의 복식은 우리 민족의 얼이 담겨 있어서 민족의 연대감과 긍지를 일깨우는 귀중한 역할을 한다.
– 글 임영주 (한-명품미술관 관장) 사진 동북아역사재단


고구려의 벽화 고분은 초기의 수도였던 통구(通溝, 현재 중국 길림성 집안현) 지방을 중심으로 한 압록강 유역과 5세기초경 옮긴 수도인 평양을 중심으로 대동강 유역에 분포되어 있는데, 지금까지 약 50여 기基가 밝혀진 바 있다. 이 벽화 고분을 통해 당시의 무덤 축조 양식은 물론이려니와 우리나라의 미술이 외국과의 문화 교류를 통하여 어떠한 발전을 가져왔고, 당시의 문물제도와 규모는 어떠하였으며 정치, 경제, 종교, 문화와 사회적 성격은 무엇이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당시의 복잡한 사회적, 문화적 구조에 있어서 주제와 양식은 외부적인 요소들에 의해서 서로 결합된다. 주제와 양식은 종교적 사상에 의존하고 있는 고정된 상징과 결속되어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는 한국 고대 회화가 어떠한 외부의 영향 아래서 외적 예술 형식을 어떻게 성공적으로 흡수하였고, 완성하게 되었는가를 보여주며 당시 고구려의 격조 있는 문화와 예술을 보여주는 유일한 유산으로서 가치가 크다 하겠다. 고분 벽화가 그려진 시기는 고구려가 국가적 체제를 거의 완비하면서 그 세력이 북쪽으로는 송화강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요하遼河를 넘었으며 남으로는 아산牙山과 삼척三陟을 연결하는 지역까지 진출하였던, 이른바 전성기에 해당하는 4세기부터 7세기 중엽에 이르는 시기였다.

도1 덕흥리고분 단면



도2 강서대묘에 그려진 백호도



당시 중국의 정세가 육조 시대에 수隋, 당唐에 이르는 혼란기였기 때문에 고구려는 비교적 대등한 위치에서 교류하는 입장이었으므로 정치, 종교,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비등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또 유교, 불교의 2대 종가宗家가 같이 수용되어 있어서 그 시대 제반 미술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과 같이 고분 벽화에서도 도교적인 요소와 불교적인 요소, 그리고 유교적인 요소가 혼용되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무덤에 그려진 벽화는 중국 후한後漢, 위魏, 진晋 시대의 벽화 고분의 조형 양식을 받아들이긴 했지만 그림의 내용으로 보아 우리나라 고대의 시조신화始祖神話나 성화說話와도 많이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그려진 장식 문양의 내용은 당시의 생활 신앙의 배경을 강하게 묘사하고 있다. 예컨대 영수靈獸, 영조靈鳥, 사신四神 등을 비롯하여 해와 달, 성신星辰, 천신天神, 지신地神, 교사문交蛇紋, 기린문麒麟紋, 인동당초문忍冬唐草紋 등은 도교적인 배경 아래서 이루어졌다. 이러한 벽화의 그림은 대개 천정이나 천정 받침에 의장된 장식적인 문양과 현실玄室 벽면 등에 그려진 당시의 생활사, 수렵, 무용, 연회 장면 등을 그린 회화적인 그림 두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그림들은 시대에 따른 분묘 구조의 변천에 따라서 문양이나 그림의 소재가 달라지고 양식을 달리한다. 이러한 각종 그림에서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중국 분묘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이 대부분이지만, 다만 모방에 그치지 않고 민족 전통의 토착 문화와 융화함으로써 나름대로의 조형적 세계를 이루고자 했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가령, 무용총 전실 동벽에 그려진 수렵도는 낙랑樂浪 유적에서 발견된 한나라 때의 동제금상감통銅製金象嵌筒의 문양과 그림 소재나 전개 형식이 유사하지만, 표현에 있어서는 도식적이고 완벽성을 띠고 있어 중국적 개념에서 벗어나 완만한 선과 사실적인 묘사 등 한국적인 특성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고구려 벽화 고분에서 뿐만 아니라 삼국시대의 조형 미술 전반에서도 다분히 나타나고 있다.

(위) 도3 강서대묘에 그려진 청룡도 / (아래) 도4 안악3호분에 그려진 묘주의 초상

고구려 고분 벽화의 내용

벽화의 내용은 크게 인물풍속화, 사신도, 장식 문양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인물풍속화는 묘주가 생전에 생활하던 환경을 재현하고자 한 것으로 내실 광경, 주인공 내외의 좌상, 의장대의 행렬, 무용과 주악의 연회 장면, 사냥 장면, 전투 장면, 손님 접견하는 모습, 성곽城郭, 누각樓閣, 건물도 등의 그림이다.
둘째, 사신도는 청룡, 백호, 현무, 주작의 4방위신을 그린 것으로 방위신은 각각 동, 서, 남, 북에 배치돼 우주를 진무하고 보호하는 상상적 동물형상이다. 이 사신도는 결국 주인공의 특정한 공간을 수호하기 위한 신이다. 대개 후기 고분에서 유행한 그림이다.
셋째, 무덤의 벽면이나 천정, 그리고 각종 구조물에 그려진 장식 문양은 천정부에 그려진 28개의 성좌星座, 일월상日月像, 천정받침석에 그려진 일월, 성신, 신수神樹, 산악山岳, 연화, 구름, 봉황, 기린, 서조, 서수, 천신, 비천 등과 그 밖의 공간에 그려진 각종 당초문, 화염문, 빗격자문, 동심원문 등 다양하며 다채로운 장식 문양을 볼 수 있다. 이렇게 다양한 그림은 다시 두 가지 요소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도교적인 것이요, 또 하나는 불교적인 요소다. 즉, 사신도를 비롯하여 일월성신도, 신선 교사도, 봉황, 기린, 귀면鬼面, 괴수怪獸 등은 한 시대와 육조 시대의 도교사상에서 비롯된 문양이고 연화문, 화염문, 비천문, 인동당초문, 동심원문, 귀갑문 등은 주인공이 불교신앙에 귀의했음을 보여 주는 문양이다.

도6 안악3호분에 그려진 호위무사들의 모습

고구려 고분 벽화에 쓰인 기법과 연대 분류

벽화의 그림은 석벽면에 회灰를 바르고, 회칠이 채 마르기 전에 흑, 황토, 녹청, 적색, 자색 등의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른바 후레스코(fresco)기법이 적용되고, 윤곽을 먹선으로 그린 뒤 채색한 기법도 볼 수 있다. 녹청綠靑, 군청群靑, 자토紫土, 호분胡粉, 황토黃土 등 석채石彩로 그려진 이 그림들은 우선 목탄 등으로 스케치를 한 다음에 채색하는 구륵법鉤勒法이 사용된 매우 발전된 형식도 보이고, 직접 채색을 써서 그린 백묘白描 기법도 나타난다. 이렇듯 묘실의 내부에 다채로운 벽화를 그리게 된 것은 아마도 당시 사람들의 영혼 불멸사상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 사람들은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영원히 남아서 존재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타나는 그림의 내용을 살펴보면 산악과 천신, 지신, 그리고 각종 천상계의 서조, 서수 등이 그려지고 동, 서, 남, 북에 해와 달과 나타낸 천상도天上圖 등으로 당시의 우주관을 엿볼 수 있다.
고구려 벽화 고분은 대개 전, 중, 후 3기로 분류된다. 전기는 4∼5세기 초로 추정되는 고분이며,(도1) 주로 인물 풍속도가 그려졌는데, 여기에서는 중국계 화공들이 귀화하여 그렸을 것이라 생각되는 그림을 상당수 찾아볼 수 있다. 5∼6세기 초의 벽화고분에서는 인물 풍속도외에 사신도가 절충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후기에 속하는 6세기 후반부터 7세기초에 이르는 고분에서는 사신도가 주를 이룬다. (도2, 도3)
이러한 그림과 문양은 4세기∼6세기까지는 도교적인 요소보다 불교적인 요소가 더 짙고, 다시 6세기부터는 불교적인 요소와 도교적인 요소가 거의 같이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전기 벽화의 인물 행렬, 수렵 장면, 차마車馬를 비롯한 풍속 그림과 각종 도교적인 요소는 한나라 때의 벽화 고분의 전통이며, 연화를 비롯한 불교적인 문양 요소는 육조 시대를 통한 서역적인 장식 문양 요소라 할 것이다. 여기에서의 장식 문양 요소는 주제그림에 대한 부수적인 양식으로 식물문, 동물문, 상서로움을 나타내는 각종 문양, 수목문, 산악문 등이다.

도7 안악3호분에 그려진 어차고의 모습

생전의 영화로운 삶을 재현하다

고구려 4∼5세기 초에 나타나는 인물풍속화 고분 속 그림은 묘주가 생전에 생활하던 환경을 재현한 것으로, 죽은 자의 삶 중 기념할 만한 일과 풍요로움을 무덤 안에 그려서 그들의 공적功績 생활을 기념하고 또한 내세에도 이와 같은 영화로운 삶을 누리기를 기원하는 마음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림에서는 무덤 주인공이나 그의 부인, 그리고 후궁들과 남녀시종들의 시중드는 모습과 춤과 노래, 놀이를 즐기며 연회를 베푸는 장면, 대규모 행차장면이 펼쳐진다.
① 안악3호분 고구려 4세기 중엽(357년)에 조성된 황해도 안악의 인물풍속도 벽화고분 안악 3호분에서는 주인공 부부의 초상이 그려졌는데, 장막을 두른 평상 위에 앉아서 많은 시종들로부터 정사를 보고받는 모습이 그려졌다. 주인공은 크게 그리고 시종들은 작게 표현하여 신분의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고대 동양 회화의 원근법이 드러난다. 주인공은 머리에 검은색 내관內冠과 외관外冠인 백라관白羅冠을 쓰고 있으며 오른손에는 주미선麈尾扇을 들고 있다. (도4) 주인공 부인의 초상은 풍만하고 후덕한 모습인데, 화려한 무늬가 베풀어진 장막 속에서 주인을 향해 반측면으로 앉아있다. 아름다운 화문단으로 수놓은 의상과 머리장식이 돋보인다. (도5) 그 앞에 시중들고 있는 세 시종의 모습은 역시 부인보다 작게 묘사되었다. 전실 남벽에는 호위무사들의 모습이 그려졌는데 긴 도포에 바지를 입고 손에는 무기인 도끼를 들고 나열해 있다.(도6)
어차고御車庫에는 화려하게 장식된 어차 두 대가 보인다.(도7) 부엌에는 세 명의 주방 궁녀가 음식을 장만하고 한편에서는 음식을 나르는 분주한 모습이 보인다. 왼쪽에 굴뚝이 표현된 아궁이에는 시루가 얹혀졌다. 용두레 우물에 용두레 두레박으로 물을 긷는 궁녀들이 그려졌으며, 우물 위에는 ‘정井’자가 쓰여 있고 궁녀 위에는 관직명인 ‘아광阿光’이 쓰여졌다.(도8) 동쪽 측실 동편 벽면에는 부엌의 모습이 보이고, 무엇보다도 전실 동쪽 곁 북벽에 그려진 푸줏간에는 갓 사냥해서 잡아온 노루와 돼지 등의 고기가 쇠갈고리에 걸려있다. 고구려 궁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라 하겠다.
② 덕흥리 고분 덕흥리고분(408년)은 평안남도 남포시 강서구에 있는 무덤으로 408년에 조성된 것이다. 이 벽화고분은 궁륭식穹窿式(doume) 천정으로 묵서명문墨書名文을 통해 영락永樂 18년에 사망한 유주자사幽州刺使 진鎭의 묘임이 밝혀져 매우 주목된다.(도9) 쌍영총(5세기 후반) 전실과 현실의 천정은 이른바 ‘궁륭평행삼각穹窿平行三角고임식’이라 불리어지는 것으로 그 양식은 일찍이 그리스 신전건축에서 유래됐다.(도10)
특히 이 무덤에 쓰여진 600여자의 묵서명에는 관직명을 비롯하여 각 장면에 대한 설명을 써놓아 고구려의 사회상을 알려준다. 벽화의 내용도 묘실에 그려진 각종 문양을 비롯하여 주인공의 생활상, 신앙생활, 인물상, 행렬도, 천상세계 등 다양하게 표현되어 고구려인의 문화와 풍습 및 사상을 이해할 수 있다.
③ 수산리고분 평안남도 남포시 강서에 있는 수산리고분은 5세기경에 조성된 벽화고분으로 1971년에 발굴되었다. 수산리고분은 힘이 있고 간결하면서도 고구려 화풍이 생생히 표현되었을 뿐만 아니라 섬세하고 우아하게 표현된 인물상들이 매우 흥미롭다.(도11) 색동 주름치마를 입은 우아한 복장의 여성상은 일본 다카마스고분[高松塚]의 여인도에서도 볼 수 있어서 당시 일본과 정치적 문화적 관계를 짐작케 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아름다운 여인상을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수산리고분에 그려진 여인상들이야말로 가장 아름답다고 볼 수 있다.
(도12) 화장한 얼굴과 아름답게 꾸민 머리, 긴 저고리에 주름치마를 입은 우아한 자태는 인물화 표현의 원숙한 경지를 보여준다. 특히 뒤에서 일산日傘을 받쳐 든 시녀 앞에서 훨씬 크게 표현된 묘주 부인상은 홍색 단을 댄 저고리에 색동주름치마를 입고 있는 고귀한 자태를 유감없이 보여주는데, 붉은 연지를 얼굴에 찍은 아름다운 모습은 고구려 여인을 상상하기에 손색이 없을 것이다.
④ 쌍영총 기원전 고대 그리스 신전의 건축 양식이 우리나라까지 전해온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특히 평안남도 남포시 용강군 5세기경에 조성된 쌍영총은 전실과 현실 사이에 독특하게 이집트식 팔각의 쌍기둥이 세워져서 쌍영총雙楹塚이라 이름 붙여졌다. 그 팔각기둥은 주초柱礎에 복련伏蓮, 주두柱頭에는 앙련仰蓮으로 꾸며졌으며 기둥 몸체에는 쌍용雙龍이 트림하며 하늘로 오르고 있는 장면이 그려졌다. 벽화의 중심 주제는 생활 풍속과 사신四神이다. 연도 동서벽에는 많은 인물이 그려져서 당시의 풍속과 복식服飾을 연구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묘실 서쪽 벽에는 행렬도가 그려졌는데 주인공 부부가 여러 시종을 거느리고 가는 행렬이다. 나들이를 나선 이 행렬은 그 정황으로 생각해 볼 때 아마도 주인공 부부가 법당法堂으로 불공 드리러 가는 모습으로 생각된다. 그 이유는 현실 동쪽벽에 그려진 행렬 그림 때문이다. 앞쪽 맨 앞에 향촉을 머리위에 받쳐 든 시녀侍女가 앞장서고 뒤로는 붉은 가사袈裟를 두르고 석장錫杖을 든 승려, 한 명의 시녀가 귀부인 앞에서 길을 인도하고 있다. 주인공 귀부인은 검은 웃옷에 주름진 치마를 입은 매우 고귀한 자태로 묘사됐다. 여기에서도 승려를 조금 크게 나타내고 귀부인은 더 크게 그렸는데 시녀들은 아주 작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위) 도8 안악3호분에 그려진 용두레 우물 / (아래) 도9 덕흥리고분 앞칸 북벽에 그려진 묘주의 초상화



도10 그리스 카아랄라(Karalar) 1세기 중반 무덤의 귀접이천장에



(위) 도11 수산리고분 서벽에 그려진 벽화 전체 모습 / (아래) 도12 수산리고분벽화에 그려진 여인들의 행렬

중국 기록과 고분벽화로 살펴본 당대의 복식

중국 기록을 통해 고구려 복식을 살펴보면 초기에는 수繡와 금錦으로 장식하고 대가주부大加主簿는 뒤가 없는 책幘을 쓰고 소가小加는 절풍변折風弁을 썼다고 한다. 귀인의 관은 골소다骨蘇多라 하여 자라紫羅로 만들고 금은으로 장식하였으며 의복으로는 큰 소매의 삼衫에 대구고大口袴를 입고 피대皮帶를 띠고 황혁리黃革履를 신었다고 한다. 이러한 기록과 고분벽화로 당시 의복을 상고해 볼 때 다음과 같다.

도13 고구려 고분벽화에 보이는 여러 모양의
새 깃털 모양 관모

관冠은 관인은 절풍折風이 대표적인 관모이고 귀인은 여기에 다시 보관寶冠을 썼다. 고구려인의 관모에서 특별한 특징은 절풍에 새깃鳥羽을 꽂은 것이다. (도13)
고대 시베리아인들 사이에는 수목樹木, 초화草花, 동물형, 녹각鹿角, 조우鳥羽 등 ‘샤먼적’ 의의를 가진 두관頭冠이 사용되고 있었으며 서기 7세기경까지 중앙아시아 및 화북華北, 한반도에 유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절풍은 위로 솟아있고 밑으로 넓게 퍼진 고깔 형태의 관모인데 절풍건折風巾 · 소골蘇骨이라 했고 《남제서南齊書》에는 귀인과 대관인大官人 · 관인들이 썼다고 기록됐다. 《삼국지三國志》위지, 《후한서後漢書》, 《양서 梁書》, 《통전 通典》등에는 고구려 관인이 절풍을 썼다고 나와있다. 《북사北史》에는 고구려인들은 모두 머리에 고깔[弁]과 같은 형태의 절풍을 썼는데, 사인士人들이 쓰는 것은 새깃 2개를 꽂고, 귀인이 쓰는 것은 붉은 비단紫羅으로 만들어 금은 장식을 하여 소골이라 했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 벽화고분 감신총, 개마총, 무용총, 쌍영총 등에 보이는 절풍을 형태적으로 구별해보면 다양한 특징이 나타난다. 부인은 소박한 차림으로 건괵巾幗을 한 것이 특징이다. 의복은 남녀 다 같이 길게 엉덩이까지 내려온 저고리를 걸치고 그 아래에 바지를 입었다. 바지는 귀인일수록 아랫부리가 넓은 대구고大口袴를 입었다. 그 위에 포를 겹쳐 입었는데 이러한 의복의 섶, 단, 소맷부리에는 선이라고 하는 유색 천을 달았다. 의복 중에는 합임포合袵袍의 제도가 있는데 이것은 중앙아시아의 튜닉(tunic)의 영향 같기도 하다. 띠는 관인이나 귀인은 은대銀帶 또는 금구혁대金釦革帶, 백위대白韋帶, 백피소대白皮小帶, 소피대素皮帶, 자라대紫羅帶 등 다양하다. 신은 화靴, 이履 등이 있는데 기록에는 황혁리黃革履, 적피리赤皮履, 오피리烏皮履 등이 보인다. 여복女服은 남자와 같이 바지, 저고리, 포가 기본이고 색동치마와 잔주름치마 등 치마裳도 많이 입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고구려 인물풍속도들은 중국 회화사에서 빠질 수 없는 주요 유물인 동진시대東晉時代 고개지(顧愷之, 344-406)가 그린 것으로 알려진 대영박물관 소장 《여사잠도女史箴圖》와 북경 고궁박물관의 《열녀인지도列女仁智圖》와 비견되는 중요한 유물이다.


임영주 | 한-명품미술관장

홍익대학교에서 목칠학과를 전공하고 동국대학교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 전문위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회장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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