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주 관장의 한국문양사 ⑨ 고대 복식 의장문양, 관모에 숨겨진 비밀

한국 관모冠帽에 나타나는 여러 양식의 기원을 샤머니즘적인 우주관과 연상시켜
예니세이강 너머 랩족의 제단祭壇에서 찾거나 시베리아 동북방의 녹각
무관巫冠을 금관의 원형이라 보는 견해도 있다. 이번 시간에는 삼국시대의
관모를 중심으로 고대 문양을 살펴보도록 한다.

글·자료 임영주 (한-명품미술관 관장)


삼국시대의 공예는 크게 고분 출토품과 유적 전래품으로 나뉜다. 여기에 나타나는 의장意匠적 특성은 투작透作기법, 선조線彫기법, 상감象嵌기법, 타출打出기법, 압찰押察기법으로 분류된다. 투작 문양의 소재는 크게 식물문양과 동물문양 계열로 구분할 수 있다. 식물문은 대개 인동문忍冬紋과 그 변형 형식을 포함해 초화문, 연화문 등을 표현한 것이고 동물문양으로는 용·봉 무늬를 비롯하여 거북무늬, 우리 고대 민족의 태양 상징인 삼족오三足烏, 도식화된 물고기무늬魚紋 등을 말할 수 있다.

(왼쪽) 도1 한대 무량사석각 괴운문 / (오른쪽) 도2 낙랑 채협총 채화칠협



이 투작무늬들은 평면에 작업된 것이므로 고분의 그림이나 칠기 등의 채화彩畵와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중국 전국 시대에서 한대에 이르는 시기에 나타나는 기룡문夔龍紋, 기봉문蘷鳳紋의 전개 형식과 비교해 볼 때 더욱 명확해진다. 일례로, 중국 한나라 때 무량사 화상석각畵像石刻에 새겨진 괴운문(怪雲紋, 신성한 기운이 감돌게 장식한 구름무늬)(도1)과 평양의 낙랑 채협총彩篋塚에서 출토된 채화칠협 속 운용문(雲龍文, 구름과 용이 결합된 문양) (도2)을 보면 사실적으로 표현된 용머리에 몸체는 크고 작은 C자형의 연결 곡선으로 이뤄진 운기문(구름문양)으로 이뤄졌다. 신라시대 금공투작안장금구의 괴운용문怪雲龍紋 등 삼국시대 문양에 등장하는 용 또는 운용문은 이러한 양식에서 기원한 것으로 추정된다.(도3)

(왼쪽) 도3 전 경북 고령출토 금동투조안장 부분, 신라 5세기 / (오른쪽) 도5 고구려 벽화고분 천왕지신총 조두괴운문

한나라의 문양과 유사한 고구려의 투작 문양

고구려 벽화고분인 안악 제3호분(동수묘冬壽墓)·용강대묘·삼실총·천왕지신총·강서중묘 등에 등장하는 괴이한 구름문양은 C자형의 크고 작은 형식이 결합하여 S자형을 띤다. 이는 낙랑 채협총 칠기의 문양과 매우 비슷하다. 이와 가장 유사한 것은 안악 3호분 전실의 상부 받침석과 천왕지신총에 그려진 문양이다.(도4, 도5) S자형으로 파상을 이룬 구름문양 띠에 간간이 혹 같은 돌기가 붙어있고, 중심부는 환상環狀으로 엮였으며 호랑이가 구름 줄기에서 교차되는 부분을 입으로 물고 있는 모양이 사실적으로 표현됐다. 환문총 현실 북벽에 그려진 괴운문도 용 문양을 구름 형태로 단순화시킨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이는 다시 삼국시대 안장금구의 투작 문양의 운용문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도4 고구려 벽화고분 안악 3호분 천정받침석에 나타난 수두괴운문



훼룡, 기룡의 형태에서 네 다리와 용각龍角, 꼬리 부분 등이 구름 모양으로 장식화되고 용과 호랑이, 새 머리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된 한대의 구름 문양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는 더욱 장식적으로 나타난다. 새 모양을 구름에 결합시킨 예로 후한시대 무량사석각에 나타나는 조두괴운문鳥頭怪雲紋을 들 수 있다.
이러한 괴운문 형상은 돌기가 뭉실뭉실하게 표현된 S자형 구름의 머리 부분에 새 머리, 또는 호랑이 머리가 붙어있는 모양새다. 고구려 벽화고분 중에 진파리 제1호분 현실 동벽의 청룡도 주위에 그려진 조운문도 새의 형상과 구름을 결합시킨 예이며 천왕지신총 주실 북벽에 그려진 운문대에서도 운두에 결합된 새의 머리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고구려 투작 의장 문양에서는 핵심적인 무늬를 중심으로 여러 서상적인 동물문과 유운문(流雲文, 아름다운 물결모양)이 나타난다.

고구려와 큰 차이를 보이는 신라 투작문

신라의 투조 공예는 관모·과대·요패 장식·말 안장장식 등을 들 수 있으며 고구려의 투작 의장과는 양식적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그 차이로는 첫째, 고식古式 동물 형상이 비교적 사실적으로 남아있는 고구려계 운용문과 달리, 신라의 투작문양에서는 머리 부분과 몸체, 사지四肢와 꼬리의 형태가 거의 같은 굵기의 당초문으로 나타난다.
둘째, 전지적(剪紙的, 무늬를 가위로 오려낸 것) 기법을 응용하여 서로 상칭적相稱的 투조 무늬가 나타난다. 이러한 특징들이 고구려, 백제 미술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요소는 대개 신라 미술의 특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요소이다.

삼국시대 관모의 다양한 형식

삼국시대의 고분에서 출토된 관모冠帽의 형식이 북방 스키타이 문화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일찍이 주장되어 왔다. 삼국시대 관모의 시원은 남러시아 <노브체르카스크(NOVOCHERKASSAK), 1~2세기)>, 시베리아 등지에서 출토된 금관과 샤먼의 모자, 관식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나무와 뿔난 사슴 등 사실적인 표현은 삼국 시대의 관모에서는 많이 단순화, 도안화되었다.(도6) 반면에 불꽃火焰 모양의 고구려 관식은 돈황석굴 등 서역벽화의 불교적 영향을 받은 것이 분명하다.(도7)




(왼쪽) 도7 고구려 인동문금동관 / (오른쪽) 도8 금동투조일월용본문두침, 고구려 5세기



① 고구려
고구려의 관식으로 진파리 제1호분 석실의 연도에서 출토되었다는 금동투각일월용봉문 두침(도8)은 비행기의 뒷날개처럼 생긴 투각된 금동판 2개를 맞붙여 베갯모를 이루고 있다. 지금은 베갯모의 한쪽 면만 볼 수 있는데, 그 면을 보면 화염문에 둘려싸인 태양을 의미하는 삼족오三足烏 장식이 투조되고 있음을 볼 때 한 쪽은 달을 상징하는 옥토끼玉兎와 두꺼비가 들어있는 월상月像이 새겨졌다. 구슬무늬가 둘려진 이중의 원곽 안에 배치됐으며, 하부의 양편에는 용이 각각 1마리씩 투조되었다. 여기에 나타나는 용의 형상은 그 주변에 휘날리는 구름무늬와 같이 한漢식의 구름무늬가 엿보이면서도 유연한 곡선은 역시 육조六朝 시대의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또한 이러한 양식은 삼국 시대 초기 불상의 광배에서 볼 수 있는 화염문 형식과도 연결된다.
고구려 유물인 인동문금동관(5세기)에서는 인동무늬가 투조된 입식이 대륜 위에 병풍처럼 둘려져 펼쳐진 모양을 볼 수 있다. 그 양상은 고구려 고분벽화중 강서 우현리 중묘의 천정 받침석에 그려진 인동보상당초문(도9), 삼국시대의 금동보살상과 일본 아스까飛鳥시대의 금동보살상金銅菩薩像 등에서 이러한 보관寶冠을 머리에 쓴 모습을 볼 수 있다. 중앙부를 포함한 5개의 입화식立花飾은 불꽃 모양으로 위로 뻗쳐 올라간 곱팽이 모양의 반팔메트가 좌우 결합된 화염 모양이다. 이 문양은 통구 제5호분, 제17호분의 사신도 주위에 그려진 목엽문에 구성된 화염문양, 쌍영총의 인물이 앉은 전각의 용마루에 표현된 화염문, 매산리 사신총의 화염문 등과 연관된다.

(왼쪽 위) 도9 강서 우현리중묘 보상인동당초문
(왼쪽 가운데) 도10 나주 반남면 고분 출토 백제 금동관
(왼쪽 아래) 도11 공주 무령왕릉 출토 왕, 왕비 금관식, 백제 5세기
(오른쪽) 도12 일본 법륭사 천개천인불상, 7세기



② 백제
백제의 금공 장식 무늬도 동물문양 소재로는 용·봉황문양이 나타나고, 식물문 소재로서는 인동문·연화문 등 육조시대 미술의 영향으로 생각되는 요소가 대부분이다. 백제 금동관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는 나주 반남면 신촌리羅州潘南面新村里 9호분 옹관甕棺에서 출토된 초화형 금동관(도10)의 경우 외관과 내관으로 구성됐다. 이 금동관의 입식(立飾, 관의 둥근 밑동 부분 위에 세운 장식) 3개는 얇은 동판을 오려 만든 초화형草花形이다. 이 초화형은 모란이나 백합 같은 외형을 보이나, 심엽형의 팔메트엽이 변형된 형식으로 봐야 할 것이다. 심엽형 인동문 형식은 송산리 1호분에서 출토한 과대銙帶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러한 형식은 신라 유물, 고구려 양식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인동당초문을 좌우 상칭으로 투조하여 구성한 뒤 연꽃을 결합시킨 백제 특유의 형식이다. 그러한 예는 공주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 왕비의 금관식(도11)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관식 무늬는 인동초를 화염문 형식으로 전개시킨 것으로 연화좌(蓮花座, 여래나 보살이 앉는 연꽃 모양의 대좌)와 결합돼 불교적 양식이 짙게 드러난다. 왕의 관식은 투조 무늬가 3단으로 구성되었는데, 중앙의 중심부에는 7엽의 복판 연화좌 위에 화병이 있고. 연꽃 양옆에 팔메트엽이 둘러싼 인동 연화가 정물화靜物畵처럼 표현됐다. 고구려 벽화고분에서는 우현리 중묘 등에서 나타나는 인동보상당초문과 유사하다. 이러한 인동 연화 투작 문양은 7세기 이후 일본의 불교 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법륭사 석가여래상 천개천인상(7세기)에서 유사한 양식을 찾아 볼 수 있다.(도12)

③ 신라
고신라시대의 보관은 지금까지 경주 일대의 신라 고분에서 출토된 미술 공예 중 가장 특징적인 양식을 나타낸다.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신라만의 독특한 관형은 고구려와 백제는 물론, 이웃 중국이나 일본에도 없는 형태이다.




신라 금관 양식의 특징은 나뭇가지 또는 사슴뿔 모양이라 말하는 소위 出자형 입식인 입화식이다. 현재 남아 있는 금관을 보면 전면적으로 얇게 두드려 만든 금관을 이용했다. 出자형 입식은 북방 시베리아 또는 스키타이 문화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경주 서봉총 출토 신라시대 금관의 조형鳥形 또는 우익형羽翼形, 비상형飛翔形 등과 천마총의 조우형鳥羽形, 조익형鳥翼形, 나비형蝶形 등 조류를 상징하는 금구 장식은 북방 원시 종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신라 관식에서 볼 수 있는 수지형樹枝形·녹각형鹿角形 입식은 토착신앙인 샤머니즘의 전통적 양식인 出자형 입식을 계승한 것으로 추정된다.(도13) 금관총 금관을 비롯하여 경주 노서동에서 발견된 서봉총瑞鳳冢 금관, 금령총金鈴塚 금관, 경주 98호 고분 금관, 천마총天馬塚 금관 등은 出자형 금관의 대표적인 예이다. 금동관으로는 양산 부부총夫婦塚 출토품 등을 들 수 있다. 이 신라 관형의 형식을 살펴보면, 황금판을 얇게 두드려 펴서 머리띠를 만들고, 出자형의 입화 장식과 녹각형의 입식이 부착되어 외관을 이루는데, 대륜과 입식에는 영락과 곡옥이 달려 있다. 내관에는 조우형, 조익형의 모양에 당초문·물고기 비늘무늬魚鱗紋·卍자무늬·번개무늬雷紋 등이 투조되었다. 出자형 입식은 대개 3단형과 4단형이 있다. 서봉총·금관총·경주 98호분·경주 황남대총 출토품 등은 3단 형식이고, 천마총과 금령총 금관은 4단 형식이다.
금관총 금관(도14)은 내, 외관이 갖추어져 거의 완형을 이룬다. 내관은 새의 날개 모양으로 바닥면에 깃털 무늬가 타출되었고, 격자형 능형 卍자형의 뇌문을 투조하여 삼각의 책幘을 만들었다. 전체적으로 금판을 투조하여 무늬를 넣고 영락(瓔珞,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을 달아 장식했다. 새 날개모양 내관은 새를 숭상한다든가 영혼과 관련지어 생각하는 북방계 고대 신앙과 연관된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가 작고 여러 가지 수식이나 곡옥 등의 장식이 없어 약간 빈약한 감을 준다.
천마총 금관도 역시 4단 형식이며, 전면에 입식 3개를 세웠으며, 후면 양측에는 녹각형 입식을 세웠다. 경주 98호 분 금관은 입식이 3단 형식이며, 대륜의 전면과 좌우측면에 입식을 세웠다. 좌우측에 태환식太環飾 6개가 대상對相으로 병렬되어 있으며, 대륜의 상하 주연에 타출된 물결모양 점선문대가 둘러졌고 화려한 곡옥이 품격을 높이고 있다. 대륜의 좌우측에는 2조의 화려한 수식이 붙어있으며, 금제태환이식과 작은 영락이 끈으로 연결되었다. 그 끝단에는 날개가 3개로 이루어진 나뭇잎장식이 연계되었다. 내부에는 다시 관모가 장치되는데, 2장의 금동판을 합하여 만든 것이다. 이 관모의 정면에는 새의 깃 모양 장식이 붙어있고, 내면에는 비단을 발랐던 흔적이 있어 투식 문양을 돋보이게 의도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령高靈출토로 전하는 가야 금관(호암 박물관 소장)은 금띠를 맞대어서 금사로 꿰매고, 거기에 같은 간격으로 4개의 초화형 입식을 세운 것이다. 대륜에는 위아래 부분에 각각 타출 점열로 평행대를 구획하고, 그 내부에 능형菱形띠를 나타내고 있다. 입식은 상단에 보주형寶珠形의 연 봉오리를 장식한 좌우 각 3엽의 초화형이고, 밑부분에는 2개의 삼각형이 뚫려져 단조로움을 덜고 있다. 그 형식은 경주에서 출토된 금관들의 형식과 완연히 달라 보인다. 관의 중앙부에 도안화된 1단 형식의 수지형 입식을 세우고, 그 좌우에 그보다 약간 작은 입식을 세웠다. 후면에는 다른 신라 금관에서 볼 수 있는 녹각형 입식이 없다. 각 입식과 대륜에는 작은 원형의 영락이 1줄의 금사로 수십 개가 연결되어 있다. 특히, 각 입식에는 다른 금관에서 곡옥이 매달리는 위치에, 끝이 뾰족한 원형 영락이 4개씩 달려 있다. 이 금관은 매우 작아서 소아용小兒用이라 생각된다.

(왼쪽) 도14 경주 금관총 금관과 내관 / (오른쪽) 도15 경북 고령 지산동 출토 금동관, 가야 5세기



경북 고령군 지산동 제32호분 석실에서 발견된 금동관(도15)은 좁은 테의 대륜 위에 언뜻 보기에 불상 광배형의 손바닥 크기의 판판한 입식판을 세워 만들어진 것이다. 좌우에 대칭으로 붙인 입식으로 出자형 금관을 제작한듯하며, 전체적으로 단조로우면서도 세련된 의장이다. 보주형의 양볼 밑에는 새의 부리 모양으로 돌기가 밑을 향하고, 몸체의 어깨 부분에서도 이에 대응하여 같은 모양의 돌기가 위로 돋았다. 이러한 의장 형식은 그리스계 식물문이 스키타이를 통해 중국 문화권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금제 및 금동제 관형 외에도 조우형, 조익형 관식이 있다. 특이한 것은 봉황모양 금제관식(도16), 무령왕릉출토 금제 제비모양비녀, 천마총에서 발견된 새 날개 모양의 금제관식(도17, 도18, 도19)이다. 새가 날개를 활짝 펼쳤을 때의 모양과, 나비가 날개를 펼친 모양 두 가지 양식으로 조우형 관식에는 전면에 당초문을 투조하고 원형의 영락이 매달려있다. 금제 나비모양의 관식에는 날개와 몸체의 상단부에 심엽형心葉形 투공 무늬가 대칭되며 머리 부분 중심에는 상하로 심엽형과 능형 투공 무늬가 뚫려있다.

도16 경주 신라고분 출토 금동제봉황관식



(왼쪽) 도17 무령왕릉출토 왕비 제비모양금제뒤꽂이 / (오른쪽) 도19 경주 천마총 출토 새모양 금제관식

관모 장식, 북방문화나 샤머니즘 문화와 연관된 것으로 추정

한국 관모에 나타나는 여러 양식들을 샤머니즘적인 우주관과 연상시켜 예니세이강 너머 랩족의 제단祭壇과 연관 짓기도 하고, 시베리아 동북방의 녹각 무관巫冠을 금관의 원형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예니세이강 지역의 오스티악족의 무관과 에넷족의 Tay무관, 부리야르 무당의 관 등이 우리 신라의 관모 형식과 비슷하며 Tay관에서의 山자형 토형과 오스티아 무관의 녹각형을 합치면, 신라 금관의 기본형이 된다고 보는 것이다. 앞서 말한 고령군 지산동 제32호분 석실 발견 수목형 금동장식관(도15)은 이러한 고대 서아지방西亞地方의 관 계통과 연결된다고 생각되는데, 실제로 시베리아 예니세이 지방의 샤먼 모자 가운데 녹각과 조우 장식이 달려있는 것이 있다. 이미 헨째(Hentze) 교수가 지적했다시피 신라 금관의 조형적 기원은 이러한 시베리아 민족들의 관으로 추정되기에 내관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의 관은 북방민족의 양식으로 추정된다. 또 샤먼의 머리에 장식된 숫사슴뿔(Stag horn)은 고대 Turk족의 숫사슴제(祭)와 관련된 것으로 숫사슴제는 수렵 유목 민족의 전형적인 의례라 한다.
우리 금관의 경우 경주 교동에서 출토된 금관(도13-1)과 나주 신촌리羅州新村里 9호분에서 출토된 금동관은 세 그루의 수목형 입식을 갖추었으며, 호암 미술관 소장 초화형 금관의 경우에도 초화형은 수목형이 변형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여러 수지형樹枝形 세움장식의 끝 양쪽에 세워진 입식의 뒷부분에 하나씩 입식을 세우면 곧 금관총과 서봉총·양산 부부총·금관총의 금관 모양이다.
사모예드의 샤먼은 사자死者들의 세계를 여행할 때 곰을 타고 가는 것으로 믿고 이러한 믿음을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하는데, 이때 곰의 등에 올라탄 샤먼의 그림에는 머리 꼭대기와 두 어깨에 각기 사슴뿔이 그려져 있음을 보아서 머리에 녹각관을 쓴 경우 샤먼의 상으로 보았다. 한편, 고대 켈트족의 여러 동물신 중 하나인 Cernunnos는 사슴신鹿神으로 그의 머리에도 사슴뿔이 높게 솟아 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신라 금관의 出자 형식을 나뭇가지 모양樹形으로 보고 양옆의 입식은 녹각형으로 본다면, 出자 모양은 우리 고대 신화에 등장하는 신단수神檀樹의 관념과 같이 쓰였을 가능성도 있다. 이와 더불어 주목되는 것은 금관 장식과 새 모양 장식과의 연관성이다. 우리나라 고대 관식에 유난히 새 모양의 관식이 많은 이유는 당시 조류숭배사상 때문일 것으로 생각된다.


임영주 | 한-명품미술관장

홍익대학교에서 목칠학과를 전공하고 동국대학교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 전문위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회장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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