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주 관장의 한국문양사 ⑧ 보상화문

상상의 꽃인 보상화의 ‘보寶’는 진귀함을 뜻한다.
천상계를 상징하는 보상화문은 이상화되고 예술적으로 가공돼
보는 이로 하여금 부유하고 화려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고구려벽화에서부터 조선의 단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모습으로 피어난 보상화문에 대해 살펴보자.

글 임영주 (한-명품미술관 관장)


고대 그리스 미술과 연관된 보화문

우리는 흔히 존귀한 꽃을 이르러 보화寶華라 한다. 보화는 상상의 꽃이다. 보상화문寶相華紋은 이상화되고 예술적으로 가공된 꽃무늬로 보는 이로 하여금 풍만하고 부유하고 화려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현실주의와 낭만주의가 혼합된 문양이라 할 수 있다. 보상화문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미술과 연관된다. 그리스 미술은 넓은 의미로 해석하면 선사시대 기원전 2,000년기의 크레타와 미케네의 미술을 가리키며 일반적으로는 아르카이크기 이후 헬레니스티크기 말기까지의 미술을 말한다. 그리스 코린트식 원형주두圓形柱頭의 덩굴장식으로 아칸서스(acanthus) 무늬, 흔히 연꽃이라 부르는 로터스(lotus) 양식과 인동덩굴이라 하는 허니서클(honeysuckle)무늬가 있는데 이 문양들은 보상당초문의 구성 요소이다. (도1, 도2)

(왼쪽) 도1 그리스 코린트식 건축의 아칸서스당초와 화문으로 이루어진 보상당초문의 원리, 5세기 중반, 마라자 사원
(오른쪽) 도2 그리스 아테네신전 Propylaca문 장식무늬, 기원전 12세기경



덩굴무늬인 당초문은 고대 이집트에서 발생하여 그리스에서 완성됐으며 북아프리카,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 페르시아 등 로마어를 사용하는 여러 나라와 인도, 중국, 한국, 일본 등 광범위한 지역에서 당초문을 다양하게 사용했다. 당초문은 발생지역에 따라서 그리스의 안테미온(Anthemion)계와 아라비아의 아라베스크(Arabesque)계로 구분할 수 있다. 안테미온계의 당초문은 벽화로터스 당초, 팔메트 당초, 아칸서스가 있으며 다같이 고대 그리스 식물 문양에 기원한다. 이중 팔메트 당초문 계통은 우리나라에서는 고구려 고분 벽화의 장식 무늬로서 나타나는 당초문인데, 인동 당초문의 모체라 할 수 있다. 이 문양은 BC 4세기에 알렉산더 대왕의 동정東征과 더불어 동방에 전래되어 페르시아의 사산(Sassan) 왕조에 와서 보상 당초문으로 발전했다. 이후 중국에 전래되어 불교문화의 융성과 더불어 더욱 새로운 장식 문양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한국에서도 고대 불교미술 양식의 하나로 다채로운 양상을 띠게 되었다. 아라베스크 당초문은 통일 신라를 전후하여 사라센과 비잔틴식 당초 형식이 전래됨으로써 와전류瓦塼類를 비롯한 건축물과 금속 공예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다. 금속 공예로는 불구佛具, 불기佛器 등에 많이 나타나며, 보상화로 발전하게 된다.

(왼쪽) 도3 돈황 103굴 천정벽화 / (오른쪽) 도4 돈황 159굴 벽화로터스



도5 강서 우현리중묘에 그려진 고구려 고분벽화, 6세기미술


고구려벽화에도 등장한 보상화문

돈황敦煌은 중국의 불교 문호門戶로 서역과의 교통 요지이다. 석굴사石窟寺 불교유적은 벽화와 소상(塑像, 정제한 점토로 만든 형상)이 유명한데, 여기에는 간다라 말기의 양식과 함께 그리스건축 미술의 영향이 역역함을 볼 수 있다. 이 문화는 중국 당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우리나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도3, 도4)
국내에서 보상화문은 이른바 당나라 풍이라는 의미인 당화唐花라는 이름으로 유행했는데, 8세기 중엽 통일신라기에 와서 우리나라만의 독창적 양식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러나 고구려 고분벽화 중 우현리중묘, 대묘 등의 현실 천정받침석 벽화, 환문총 현실 주형도柱形圖에서 이미 돈황 맥적산 석굴사원에서의 보상화문이 그려진 것을 보아 훨씬 오래전부터 국내에 보상화문이 전파됐음을 알 수 있다.(도5) 고려시대 12세기 중엽에는 불교 미술 전반은 물론 나전 칠기와 상감 청자 등에서도 보화문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도자기는 송자宋磁, 원자元磁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가야 지방에서 출토되었다고 전하는 다수의 금제 장식품은 신라시대의 금공 미술의 면모를 보여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금공품들은 어떤 장신구의 테두리에 붙였던 것으로 보이는 금제테와, 금사로 만든 산 모양, 능화형菱花形, 방형方形, 사판화四瓣花 등의 소형 장식품과 수엽형樹葉形, 새날개형, 국화형, 보상화형 등에 대모玳瑁를 감장하거나 칠漆을 감입嵌入한 각종 세공 장식품이다.
동원東垣 이홍근李洪根의 수집품 중 하나인 동제 거울은 배면 내구에 흑칠을 두껍게 입힌 다음 표면에 금은판을 오려 무늬를 붙이고 표면을 고르게 마연한 평탈 기법으로 제작된 것으로 여기에 보상화문, 서화문, 봉황문, 서금문 등의 무늬를 볼 수 있다. 이 나전 거울의 무늬와 기법이 중국 당경唐鏡이 일본 정창원正倉院에 소장되어 있는 나전경과 동일하다. 이러한 나전 장식 기법은 8∼9세기를 즈음하여 중국, 한국, 일본 등에서 유행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도6, 도7, 도8)

(왼쪽) 도6 <보상화문8능화경>, 일본 정창원 소장
(오른쪽) 도7 <평탈나전복채보상화문8능경>, 8세기경, 일본 정창원보고 소장, 이홍근 수집품 가운데 동제거울과 흡사한 유물이다



(왼쪽) 도8 털로 짠 양탄자인 화전花氈, 당대唐代 7세기, 일본 정창원 소장
(오른쪽) 도9 선림원종의 보상화문 당좌, 통일신라


통일신라기에 독창적인 양식으로 발전

도10 《대방광불화엄경》 표지의 보상당초문
754-755년작

보상화문 형식의 연화문은 통일신라기의 모든 미술에서 보이는 연화 양식으로 범종의 당좌(종을 칠 때에 망치가 늘 닿는 자리)를 비롯하여 금고金鼓 등의 금공품, 와당(기와의 마구리. 막새나 내림새의 끝에 둥글게 모양을 낸 부분)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보상화문 형식에서는 4엽 화문도 나타나는데, 이는 고구려 와당의 4엽문과 유사하여 그 형식에서 보상화문으로 변화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신라 와당의 또 한 가지 특징은 와당 주연에 좁은 연주문대가 대부분 돌려졌다는 것으로 간혹 주연에 초화 무늬를 장식하여 좀 더 화려한 양상을 띤 것도 있다. (도9)
통일신라기 말기에는 좀 더 도식화되는 경향이 보이지만 화판을 묶어주는 꽃받침(단청 용어로는 묶음이라 함)이 단순한 소용돌이 모양으로 전개되고, 덩굴 줄기도 소용돌이(단청용어로는 곱팽이라 함) 모양으로 도안화되고 있다. 통일신라시대 보상화문은 꽃잎에 의하여 단엽형식과 복엽형식으로 분류되며, 고신라 막새기와 연화문와당 문양형식에 팔메트엽을 가미한 하트모양의 8엽 꽃무늬 형식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꽃무늬는 경주 흥륜사 집터와 임해전터 등에서 발굴된 막새기와에서 볼 수 있다.
754-755년경 제작된 신라 경전으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 표지에 금니金尼로 그려진 보상당초문은 우리나라 자료로서는 가장 오래된 그림일 것이다. (도10)
성덕 대왕 신종의 당좌撞座는 능화형菱花形의 자방을 중심으로 꽃술이 둘려진 복판중엽複瓣重葉의 8엽 연화가 형성되었다. 화판 안에는 화문 장식이 화려하게 구성되어 통일 신라기의 전형적인 보상화문을 이루며, 이러한 문양은 같은 시기의 신라 와당과 전塼에서 주로 나타나는 형상이다.
와당은 통일신라기부터는 전혀 색다른 독자적인 양식을 보이고 있다. 단엽 팔메트(半팔메트)를 좌우 상칭相稱시켜서 화판을 이루는데, 이때는 대개 8엽 형식이 주류를 이룬다. 그 내엽은 판엽이 쌍을 이룬 활판 연화로서 중방부中房部 주위를 두르고 있다. (도11)
신라의 문양전은 주로 보상화문이나 연화문이 나타나는데, 통일 신라의 화려한 불교문화를 반영하듯 문양이 조각품처럼 매우 섬세하고 아름답다. 일례로 경주 안압지雁鴨池에서 발견된 전을 들 수 있다. 방형, 장방형, 삼각형 등의 여러 종류로 그 문양은 연화문을 비롯하여 보상화문, 쌍록문, 보상당초문 등으로 화려하다. 네 모퉁이에 보상 당초문을 장식하여 이 전을 좌우상하에 연속시키면 화려한 사방 연속무늬가 이루어지도록 구상했다. (도12, 도13)
조선시대 청화백자로서 명대明代 초기의 경덕진요에서 영향을 받은 백자청화보상당초문반 (조선시대 15세기. 일본 Ataka콜렉션)과 백자청화보상당초문항아리(조선시대 15세기. 일본 개인소장)는 보상화문이 지닌 종교적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도14, 도15)

도11 보상화문 전돌, 통일신라시대



(왼쪽) 도12 보상화문 전돌, 통일신라시대
(오른쪽) 도13 보상화문 전돌을 연속시켜 놓은 문양



(왼쪽) 도14 <백자청화보상당초문반>, 조선시대 15세기, 일본 Ataka 콜렉션
(오른쪽) 도15 <백자청화보상당초문항아리>, 조선시대 15세기, 일본 개인소장

단청 속 다양한 보상화문

단청에서는 각종 머리초 양식에서 보상화문의 양식이 도입된다. (도16, 도17, 도18) 연화머리초는 연꽃과 석류石榴· 녹화綠花(당초)등이 복합적으로 조합된 문양이다. 연화머리초는 속녹화를 꽃받침으로 하여 만개한 부채꼴 연꽃 위에 석류와 항아리라는 원형 무늬를 결합된 석류동이라는 것을 배치했다. 좌우 둘레에는 주화朱花를 절충하고 그 둘레에 곱팽이(소용돌이 무늬, 덩굴의 변형)를 두 겹으로 장식했다.
주화머리초라는 것은 머리초 온 바탕에 4엽의 꽃무늬(4판화)를 주문양으로 그린 것을 말하는데, 주로 조선시대 궁궐의 침전寢殿, 향교 건축 등에 시문된다.
녹화머리초는 소용돌이 모양의 당초, 즉 곱팽이를 좌우 대칭으로 배치 구성한 것이다. 여기에서 곱팽이 위에 꽃잎이 반전되어 덮인 형상을 번엽이라 한다. 이것은 그리스 건축장식의 코린트식 이파리 끝이 돌돌 말려들어간 모양에서 변천된 것이다.
파련화波蓮花는 코린트 양식의 팔메트엽으로 구성된 형식으로 이 무늬 역시 고대 그리스 장식법에서 비롯된 꽃무늬라 할 수 있다. (도19, 도20)
또한 여의두문如意頭紋이라는 꽃무늬도 팔메트 양식의 변형으로 동양 고래의 문양에서는 구름모양雲形에서 비롯된 문양이다. (도21)
또 한국 고건축의 부재, 부연, 서까래, 보, 도리, 평방, 창방, 사래, 추녀, 첨차 등의 끝 마구리 뺄목문양에는 천하태평을 기원하는 태평화 도안이 들어간다. (도22, 도23, 도24) 이 마구리에 들어가는 보상화문은 그리스 건축에서 전해진 성화聖畵 양식의 하나로 전해져 오는 매우 귀한 문양이라는 점에서 특히 주목된다.


(왼쪽) 도17 조선시대 궁궐단청의 국화반자초
(오른쪽) 도18 조선시대단청. 경복궁 대량초 장구머리초의 웅화



(왼쪽) 도19 조선시대 궁궐단청의 파련화 반자초 / (오른쪽) 도20 단청 파련화 형식 보상화문



도21 단청 여의두문 형식 보상화문



도22, 도23, 도24 태평화



임영주 | 한-명품미술관장

홍익대학교에서 목칠학과를 전공하고 동국대학교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 전문위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회장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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