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주 관장의 한국문양사 ⑦ 연화문

연꽃은 고대 문명권을 중심으로 종교와 지역을 막론하고 성스러운 꽃으로 여겨졌다.
이번 시간에는 연화문의 기원부터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연화문 등에 대해 알아보도록 한다.

글 임영주 (한-명품미술관 관장)


연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고대로부터 ‘하늘 꽃’ 즉, 천상의 꽃을 상징해왔다(도1). 우리가 흔히 연화문蓮花紋이라 부르는 무늬는 둥근 꽃 모양[團花] 즉 로젯트 형식(도2, 도3)과 부채살 꽃모양[扇花]](도4), 봉오리를 오므린 모양의 연봉오리 모양[연뢰蓮蕾](도5), 로젯트꽃이 비스듬히 위로 향한 모양의 앙연仰蓮(도6), 밑을 향해 엎어진 모양의 복련伏蓮(도7) 모양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연화는 이집트, 그리스, 메소포타미아, 인도 등 고대 문명권을 중심으로 신화와 종교에서도 나타나고 있는데, 이와 같은 신화와 종교와 불교에서의 연화는 공통된 상징을 나타낸다. 연꽃은 대개 물과 관계가 깊으므로, 문명이 발달한 여러 문명발생 지역에서 신앙적 특징을 지닌다. 더러운 진흙에서 피어나지만 꽃잎이 더럽게 물들지 않고 항상 깨끗하며, 연꽃이 필 때부터 연밥蓮實이 생겨 이러한 요인이 상징적인 꽃으로 숭앙받도록 한 것 같다.

(왼쪽) 도2 앗시리아 로제트 문양, 기원전 9세기 후기 / (오른쪽) 도3 정면형 로제트 문양



(왼쪽) 도4 선화 / (오른쪽)도5 이집트 건축 주두(기둥 위를 장식하며 공포를 받치는 넓적하고 네모진 나무)의 연뢰문



(왼쪽) 도6 양련 / (오른쪽) 도7 복련

연화문의 기원

그렇다면 연화문의 기원은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 고대 식물 장식법의 발전을 설명한 바 있는 미국의 미술사학자 W. G Goodyear는 《로터스의 수법(Grammer of the lotus)》에서 고대 이집트의 연화문(도8) 장식의 변천 과정을 설명했다.

도8 로더스꽃과 꽃봉오리(고대 이집트)

연화문의 기원을 동양에 두고 있으며, 장식 문양으로 발전한 원동력은 태양 숭배 사상에서 기인한 것이라 주장한다. B.C 2900∼2750년 조상彫像에 통일 이집트의 상징인 파피루스나 연화가 새겨진 왕좌가 나타나고 있음을 볼 때, 이집트에서는 적어도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에 이미 국가의 상징, 즉 상대上代 이집트의 표상으로 연화가 쓰여졌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인도 쪽을 보면, B.C 1500년경에 침입자 아리아(Arya) 민족에 의하여 만들어졌다는 브라만교 성전 《리그베다(Rig Veda)》가 만들어지기 이전에 이미 백연화가 선주민先住民 사이에 신격화되었고, 지모신地母神의 성격으로 찬양받았다는 독일 고고학자 짐머(Zimmer)의 주장으로 미루어 보아 인도에서도 훨씬 이전에 연화에 대한 신앙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고대 이집트의 유적과 기록에서 나타나는 것과는 달리, 인도에서는 신화를 통하여 나타나는 것 이외에는 발생 시원을 찾아보기 힘들며 베다문화시대 이후에 이르러서야 힌두교와 불교에서 비로소 연꽃이 사상적 상징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인도에서 연꽃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고대 인도 종교 경전인 《리그베다》이며, 여기에서는 인간의 심장을 8엽 연화에 비유하고 있다. 또한, 인도 최고의 문헌인 ≪Brahadaranyaka-Upanisad≫에서는 연꽃을 마음에 비유했다고 한다. 고대 이집트와 인도에서의 연꽃에 대한 상징성을 비교적 보면 몇 가지 공통되는 점이 있다.
물, 태양과의 관계다.
로터스는 지중해 지역에서 분포하는 망우수(忘憂樹, 그 열매를 먹으면 황홀경에 들어가 속세의 시름을 잊는다고 함)라 하는데 이 문양을 서양건축에서는 연꽃문양으로 부른다. 망우화(연꽃)의 열매를 먹으면 세상의 모든 시름을 잊고 열락悅樂의 세계에 들어간다는 그리스 신화는 이집트에서부터 전해 오는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며, 그 사상은 동양 불교 사상과도 연관된다. 이것을 Nun이라고 했는데, 물속에 연화가 있고, 연화 위에 태양신만이 산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태양신은 머리 위에 연화를 올려놓기도 하고, 때로는 연화 위에 머리만 올려놓은 모습을 그려놓기도 했다. 연꽃과 태양신을 연관시킨 이유는 태양이 동쪽에서 뜰 때 연꽃잎도 피고, 서쪽으로 지면 연꽃잎도 오므리는 것에서 착상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태양이 떠오르는 것과 같이, 연꽃이 재생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태양과 연꽃과의 관련성은 중국 고대 사상에도 나타난다. 한나라 때의 화상석에 나타나는 일·월상 그림에서도 해를 상징하는 세발 까마귀(삼족오三足烏)와 달을 상징하는 두꺼비(섬여蟾蜍)가 들어 있는 원의 둘레에 8엽 연화가 나타나는데 이 역시 고대 인도에서의 전법륜轉法輪 등 원형圓形에서 유래됐다.
B.C. 900년경에 성립되었다고 하는 범서(梵書, 브라흐미 문자로 기록된 글) ≪Taitiriya Brahmana≫에 의하면 ‘창조주 Prajapati가 우주를 창조하려 하였을 때 최초에 물만 있고, 그 위에 청련靑蓮의 잎이 떠있었다. 거기서 창조주가 이 연잎이 무엇에 의해서 지탱되고 있는지를 조사하기 위해 수퇘지의 형상으로 바뀌어 물속으로 들어가 물 아래서 땅에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땅을 조각조각으로 해서 물의 표면에 띄우고, 이것을 푸른 연꽃의 잎 위에 넓혀서 여기에 비로소 세계가 성립되었다’고 한다. 이 역시 이집트의 세계관과 일치함을 발견할 수 있다.

도9 <석가모니 탄생도>, 10~13세기경 네팔

연화문의 변천 및 전파

이집트의 연화문은 고대 이집트의 신전인 아부심벨(Abusimbel, BC 1375∼1205) 열주列柱 등에서 볼 수 있다. 이집트의 벽화, 건축 등에서의 연화 문양은 신화적인 요소와 함께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에 전래되었다.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의 신화에서 금성金星을 신격화한 ‘아침의 여신’은 손에 연꽃을 든 여신의 모습이 중국, 한국의 불교 미술에서의 비천 선녀飛天仙女의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연화는 쿠산(Kusan)왕조(A.D.1세기경) 때부터 본격적으로 양식화, 문양화되기 시작한다. 일례로, 쿠산왕조의 옥원玉垣 석각문石刻紋에 나타난 연화문은 대개 원형으로 단순화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자방을 중심으로 원의 점증 반복으로 통일성 있는 변화를 나타내고 있으며, 원의 사이사이에 동일한 형태의 반원형의 연필을 반복시켜 리듬이 있고 질서를 보인다. B.C. 3세기경으로 간주되는 부드가야(Budda Gaya)의 연화인어문蓮華人魚紋 석각石刻에서는 자방을 중심으로 그 둘레에 사실적인 인어문을 장식하고 외주에는 반원 형식의 연화문을 장식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보다 양식화된 것으로 바르하트(Barhat)의 B.C. 2세기경의 유물을 들 수 있다. 중국에 중앙아시아를 통하여 불교가 전래된 때는 후한 명제(明帝, 58-75) 때 연화 양식이 함께 전해졌다고 추정된다. 이 때의 연화문은 거의 정면 형식인 만개화(滿開花, 활짝 핀 꽃) 형식이 대부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화는 진흙에 물들지 않고, 청정미묘淸淨微妙하며 상락아정常樂我淨이라 하여 불교에서는 무상無相을 상징하는 꽃이라 했다. 연화가 아쇼카왕 석주石柱에 상징적 형태로 나타난 이래로, 불교 미술에서는 연꽃이 사상적으로나 조형적으로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그리스의 신상神像 조각의 영향을 크게 받은 간다라 지방의 불상은 중국을 비롯하여 한국과 일본의 고대 불상 양식의 근간根幹을 이루었다(도9).
불전佛典에서 연화좌에 대한 상징적 이유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물어 말하기를, 제좌諸座 에 좌할 수 있을진대 왜 연꽃이냐? 답하기를, 상床은 세계 백의白衣의 법좌法座이며, 연화는 유연하고 맑아 신통력을 나타내어 능히 그 위에 좌할 수 있고…연화는 묘법을 장엄하게 하는 좌이며 또 제화諸華는 개소皆小하여 이 화華처럼 향이 청정하고 큰 것은 없다’라고 하였으며, ‘중생의 복덕 인연력으로 하여 시방十方에서 바람이 불고, 상대 상충하여 능히 대수大水를 지志하고…화華 중에 사람이 있어 결가부좌한다. 이 사람 또한 무량無量의 광명이 있어서 이름 지어 범천왕梵天王이라 한다…이 범천왕은 연꽃 위에 좌하고…육바라밀六波羅密을 설한다’고 했다.

(왼쪽) 도10 고구려벽화고분 쌍영총 연화형 주두, 5세기후반
(오른쪽) 도10-1 고구려벽화고분 쌍영총 쌍기둥 투시도, 5세기 후반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불교와 연꽃

① 고구려의 연화문
삼국 중 가장 이른 시기에 불교를 받아들였던 고구려는 위치로 보아서 중국과 인접하여 여러 외래 문물을 수용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도10, 도10-1). 고구려에 처음으로 불교가 들어온 것으로 추정되는 372년 당시에는 중국에 불교가 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고구려 불상 대좌의 연화문은 모두가 단판 복연문單瓣 伏蓮紋으로, 둥근 모양에 판단瓣端이 날카로운 것이 특징이다. 또한 화판은 무문無紋으로 매우 중후한 느낌을 준다. 이 특성은 전시대를 통하여 동위東魏와 북제北齊의 양식을 수용, 고구려화한 양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6세기 이전의 불상으로서 그 당시 대좌의 귀중한 자료가 되는 연가 7년명 금동 여래 입상(延嘉七年銘金銅如來立像, 539년(기미년), 국보 119호,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은 둥근 연꽃무늬 대좌 위에 직립한 여래 입상이며, 연판의 가운데가 둥글게 굴곡 되어 볼륨을 주고, 끝이 뾰족하게 반전된 버선코 모양이다(도11).

(왼쪽) 도11 <연가칠년명 금동여래입상>, 고구려, 기미년(539),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른쪽 위) 도12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은제탁잔 뚜껑 연꽃문양, 백제, 5세기
(오른쪽 아래) 도13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백제 와당



② 백제의 연화문
백제의 무령왕릉 출토품 중에는 왕비의 목침 가까이에서 발견되었다는 은탁 동잔銀托銅盞이 있어 외형의 아름다움이나 표면에 세각細刻된 음각 문양 등에서 백제인의 조형적 재질과 안목, 그리고 백제 문화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도12, 도13). 뚜껑 꼭지와 둘레에는 연판문을 새긴 연화형 금동판이 붙어 꼭지 바탕장식을 이룬다. 탁잔은 주연에 톱니무늬가 있고, 받침 주위에는 2조의 선을 둘러 그 안에 여러 줄의 종선縱線을 그어 엽맥을, 판근瓣根에는 2줄의 고사리 모양의 꽃술이 새겨졌다. 이러한 연화문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나는 연화문 형식이라든가 와당 등의 형식과 유사한데 특히 삼실총, 쌍영총, 연화총 등의 연화 형식과 같다.
초기 백제 미술에서는 약간의 한대계漢代系의 요소를 비롯하여 고구려적인 성격도 보이지만, 한성고지漢城故地에서는 북위적北魏的 영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규암면 외리의 절터에서 발견된 문양전紋樣塼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연화문전 주연周緣에 거치문鋸齒紋 형식의 작은 꽃술에 둘러싸인 커다란 자방子方을 중심으로 10개의 연화판이 돌려졌고, 다시 그 화판 사이사이에 간엽間葉이 있다.

도14 석굴암 본존불 후광의 연꽃문양, 통일신라, 8세기



③ 신라와 고려의 연화문

도15 <청자상감연지수금문편호>, 고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신라의 연화문 와당은 그 두 나라의 영향을 적지 않게 받았으나 통일신라시대부터는 전혀 색다른 독자적인 양식을 보이고 있다(도14). 연판문은 5∼12엽까지 찾아볼 수 있으며, 그 가운데 6엽과 8엽은 가장 많이 쓰여졌던 기본적인 형식이다.
연화문은 대개 상감 청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연화문은 실제의 연꽃을 묘사한 것이 많은데, 화분에 핀 연꽃과 연당에 피어 있는 연꽃 사이로 물새가 있고 아래에는 물고기가 노니는 등 매우 민화적인 소재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연화문이 시문된 고려 도자의 유형은 수병, 매병, 물주전자, 잔, 화병, 항아리 등이다(도15, 도16). 12세기 말부터 13세기 초의 상감 청자에 그려진 연화문에서는 연지蓮池의 갈대밭과 연꽃 줄기 사이에 노니는 물오리와 물새들을 흑백 상감하여 서정적인 풍경을 묘사한 문양이 많이 등장한다. 청자 상감 연지 수금문 장경병(靑磁象嵌蓮池水禽紋長頸甁, 13세기, 국립 중앙 박물관), 청자 상감 연지 수금문 정병(靑磁象嵌蓮池水禽紋淨甁, 12세기말, 높이 31.0㎝, 미국 후리아 미술관)등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는데, 고려 시대의 청동 은입사 정병이나 나전 경상 등 불교와 관련된 기물에서 주로 나타나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당시 공예 미술에 있어서 귀족 사회의 불교적인 사조思潮가 크게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왼쪽) 도16 <청자양각연지문매병>, 고려, 11세기
(오른쪽) 도17 <분청사기철화연화문항아리>, 조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④ 조선의 연화문
고려 말 조선 초의 정치적인 변동과 종교적으로 불교가 쇠퇴하며 문화면에서는 새로운 장을 열게 되었다. 후일에 조선 도자의 표면에 청화 또는 철사鐵砂, 진사辰砂 등의 단일색의 문양이 그려진 것도 매우 주목되는 일이다.
18세기말부터 19세기의 백자에서는 민화풍의 산수문, 장생문, 어개문魚介紋, 문방구문, 연화문, 포도문 등이 주류를 이루어 시대적인 취향을 알 수 있는데, 특히 18세기 말엽부터 유행된 민화, 민예의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분청사기 상감 연판문 항아리(粉靑沙器象嵌蓮瓣紋壺, 15세기, 높이 15.5㎝, 국립 중앙 박물관)가 대표적인 예이다. 그 외에 분청사기 철화 연화문 항아리(粉靑沙器鐵畵蓮花紋壺, 16세기, 높이 27.3㎝, 국립중앙박물관)(도17), 분청사기 철화 연 당초문 병(粉靑沙器鐵畵蓮唐草紋甁, 16세기, 높이 30.3㎝, 개인 소장), 분청사기 철화 연 당초문 병(粉靑沙器鐵畵蓮唐草紋甁, 16세기, 높이 30㎝, 영남대학교 박물관)을 볼 수 있는데, 마치 어느 문인이 그린 수묵화처럼 단숨에 그린 듯 표현한 연꽃의 하엽, 그리고 당초 덩굴의 그림은 좌우 대칭으로 그려진 것 같으면서도 변화로움이 있다.

(왼쪽) 도18 <백자청화진사채연화문항아리>, 조선 18세기 전반
(오른쪽) 도19 <백자진사채연화문병>, 조선 18세기 전반



백토白土로 성형된 기면에 산화동으로 시문하여 백자 유약를 시유 번조하면 환원 상태에서 산화동이 환원되어 무늬가 붉게 나타나는 진사채辰砂彩 기법은 대개 초기 청화 백자와 함께 구워 내게 되었던 것으로 본다. 문양에 있어서는 명초의 18세기경에는 청화 백자에서와 같이 연화문, 산수 인물문 등의 민화풍이 주로 그려진다(도18, 도19).


임영주 | 한-명품미술관장

홍익대학교에서 목칠학과를 전공하고 동국대학교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 전문위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회장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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