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주 관장의 한국문양사 ⑤ 우리나라 옛 산경문
– 산수가 품은 유토피아

산수화山水畵는 산과 강 등 자연 경관을 소재로 그린 동양회화 4대 화문畵門 중 하나로서
산경화山景畵라고도 하며 인간의 자연관과 농경을 중심으로 생활을 영위해온 삶의 모습을 반영한다.
산수화는 산악山岳을 선인仙人과 진수珍獸가 사는 영적 세계로 보았던
선조들의 신선사상과도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

글 임영주 (한-명품미술관 관장)


고대 토기에 새겨진 산경문은 당시 사람들이 산악에 대해 지녔던 신앙과 숭경심을 드러낸다. 산악은 단순히 풍경이 아니라 우주의 천지 사방을 진위鎭慰하는 신성한 동물들과 선인의 세계를 의미한다, 우리나라에서 산수화가 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넓은 의미에서 삼국시대부터라 할 수 있다. 삼국시대에서도 4, 5세기경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산악이나 수목을 표현한 그림은 수렵 활동을 배경으로 그렸다. 중국 돈황敦煌 벽화 초기작에서는 간다라(Gandhara) 말기의 양식을 나타내는 산수도를 볼 수 있다(도1).

중국의 분묘 양식에 영향 받았으나 독창적 조형세계 이룬 고구려 산수화

4세기 중엽 이후 동굴사원에 조성된 산수화는 중국 육조시대六朝時代 미술에 영향을 주었고(도2),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도 그 양식이 나타난다. 고구려 고분벽화가 그려진 시기는 고구려가 국가적 체제를 거의 완비하고, 이른바 전성기에 해당하는 4세기부터 7세기 중엽에 이르는 시기였다. 당시 중국의 정세가 육조 시대에서 수隋, 당唐에 이르는 혼란기였기 때문에 고구려는 비교적 대등한 위치에서 교류할 수 있었으므로 정치, 종교, 문화 등 각 분야에서 비등한 성격을 지녔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유儒·불佛 2대 종가宗家가 같이 수용되어 그 시대 제반 미술과 같이 고분 벽화에서도 도교, 불교, 유교적인 요소가 혼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문양은 대개 천정이나 천정 받침에 의장된 장식적인 문양과 현실玄室 벽면 등에 그려진 당시의 생활 광경, 수렵 광경, 무용 광경, 연회 광경 등 회화적인 그림까지 두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그림들은 시대에 따른 분묘 구조의 변천에 따라서 문양이나 그림의 소재가 달라지고 양식을 달리 한다. 이러한 문양들은 대부분 중국 분묘 양식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모방에 그치지 않고 민족 전통의 토착문화와 융화함으로써 나름대로의 조형적 세계를 이루고자했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가령, 무용총舞踊塚 전실 동벽에 그려진 수렵도狩獵圖(도3)는 한대 화상문전畵像紋塼(도4) 낙랑樂浪 유적에서 발견된 한대漢代의 동제금상감통銅製金象嵌筒 등에서 유사한 표현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특성은 고구려벽화 고분뿐만 아니라 삼국시대 조형 미술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벽화의 그림은 석벽면石壁面에 회灰를 바르고 회칠이 채 마르기 전에 흑, 황토, 녹청, 적색, 자색 등의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이른바 후레스코(fresco)법이 쓰여지고 또한 윤곽을 묵선으로 그리고 난 다음 채색한 기법을 볼 수 있다. 녹청, 군청, 자토, 호분, 황토 등 다채로운 색채로 그려진 이 문양들은 목탄 등으로 스케치를 한 다음 채색한 구륵법鉤勒法과 필획으로 표현한 백묘白描방식으로도 그려졌다. 이렇듯 묘실의 내부에 다채로운 벽화를 그리게 된 것 이유는 당시의 영혼 불멸 사상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육신의 죽어도 영혼은 영원히 남아서 존재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림의 내용으로는 산악과 천신, 지신, 천상계의 각종 서조, 서수 등과 동, 서, 남, 북에 해와 달이 나타난 천상도天上圖 등이 있어 작품을 통해 당시의 우주관을 엿볼 수 있다.
고구려 벽화고분 강서대묘에 보이는 삼산형三山形의 산악 형태(도5)와 강서중묘 현실 현무도 배경에 그려진 산과 산 사이의 공간(도6), 신비스러운 꽃구름이 펼치는 신비경神秘境은 고구려인들의 산수관山水觀을 잘 반영한다.

양식적인 측면은 물론 조형성에서 독자적 미감 선보이는 백제 산경문

백제의 산경문은 고구려 고분벽화와 표현 방법 등에서차이가 난다. 백제의 금공 유물 중 용기류는 그다지 많이 남아 있지 않으나, 무령왕릉 출토품 중에는 매우 우수한 걸작들이 있다. 왕비의 머리 쪽 목침 가까이에서 발견되었다는 은탁 동잔(도7-1, 도7-2)은 외형의 아름다움이나 표면에 세각細刻된 음각 문양 등에서 백제인의 조형적 재질과 안목, 그리고 백제 문화의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는 작품이다. 뚜껑에는 주연에 2조의 선을 두르고, 그 안에 고사리 모양의 꽃술이 표현됐다. 상호 대칭을 이루는 네 곳에는 위로 솟은 산형山形을 새겼으며, 산 위에는 초화 등을 표현했다. 산골짜기 사이에는 새가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모습을 묘사했는데, 새의 형상은 무령왕릉 왕비 두침에 그려진 서조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부여 규암면 외리의 폐사지에서 발견된 일련의 문양전紋樣塼은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도8-1, 도8-2) 백제시대의 벽돌인 이 문양전은 정방형에 가까우며 일변一邊이 29㎝ 내외, 두께가 4㎝이다. 표면에는 산경문 등 8종의 무늬가 부조되었는데 산경문전은 문양 요소나 기법 등이 중국 남조南朝의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세 나라 가운데 두 나라를 훨씬 앞지를 정도로 발전된 문화적 수준을 보여 준다. 8종의 문양전 중에서 가장 우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는 이 산경문전은 백제 고지故地의 산세를 매우 부드럽고 유연하게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앞에는 강인지 바다인지 모를 물이 조용히 흐르고 뾰족뾰족한 바위가 높고 낮게 솟아 있으며, 그 뒤로는 삼산형三山形의 크고 작은 연봉蓮峯이 겹겹이 전개되어 장관을 이룬다. 둥그런 산정山頂에는 송림松林이 무성해 절경을 이룬다. 산 아래 중턱에 기와집 한 채가 있고 그 밑의 오른쪽에는 집을 향해 산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한 명이 보인다. 집은 절, 그 곳을 향해 산을 오르는 사람은 절의 승려임이 분명하다. 산 위의 좌우에는 뭉게구름이 조용히 흐르는데, 그 정경이 마치 심심深深한 산천 속 적막한 골짜기의 모습인 듯하다. 다른 어느 민족도, 더욱이 현대인의 안목으로는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백제인의 슬기로움을 엿볼 수 있다. 구름무늬라든가 산악 형식도 중국 한 대(B.C.2∼A.D.2세기)에 나타나고 있고, 고구려 고분 벽화 중 감신총(5∼6세기초), 무용총(5∼6세기초), 쌍영총(5∼6세기초), 강서대묘(6세기말∼7세기 전반) 등과 특히 내리 1호분(6세기말∼7세기 전반)의 현실 천정 벽화에서도 나타나고 있지만, 양식적인 면에서나 조형성으로 보아서 전혀 별개의 작의作意를 느낄 수 있다. 여기에서의 이미 한국적인 미학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문양전에서의 산형山形과 재료에 따른 기법상 다소 다르게 나타나고 있지만, 충남 공주군 송산리 백제 무령왕릉 출토 동탁은잔銅托銀盞에 새겨진 산악 그림(6세기 초)에서도 이러한 산형이 뚜렷이 나오고 있어서 백제인의 삼산사상三山思想, 또는 삼신사상三神思想과도 관련되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봉황산경문전鳳凰山景紋塼 역시 산경문의 일종이나 앞서의 것과는 다소 변화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서 약 ½의 하단에 산수풍경을 부조하고, 상단에는 중앙의 산봉山峯에 우뚝 서있는 신조神鳥와 그 주위에는 멀리 보이는 산과 구름, 그리고 보운문寶雲紋이 구성되었다. 근경의 산 앞에는 안개구름이 겹겹이 흐르고 산 중턱에는 산과 산 사이로 집이 두어 채 보이는데 이 역시 절이 분명하고, 집 앞에는 당간 지주幢竿支柱가 기단基壇 위에 우뚝 서있다. 앞산의 뒤편 송림 속에 약간 가려진 집은 누각으로 보이는데, 이는 백제 건축을 연구하는 큰 자료가 될 것이다. 산의 정상에는 봉황이 양 날개를 벌려 하늘을 향하고 정면을 향해 우뚝 서 있다.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 배경에 깔린 산암山岩의 형식인데, 이 또한 전한前漢 시대 영지문靈芝紋의 금수(錦繡, 2세기∼ B.C.북몽고 출토)와 한대의 낙랑 고분출토 금수 산악도〔金銀人絲銅管 부분, 1∼2세기, 평양 출토〕, 평양 낙랑고분 출토 금수산악도의 산경 문양(도9)과 화제畵題나 전개 형식이 유사하지만, 도식적인 표현이라든가 높은 완성도, 완만한 선과 사실적인 묘사 등에서 한국적인 특성을 보이고 있다. 또한 한대 인물화상경人物畵像鏡(도10)에서 이러한 고대 산경문 형식을 찾아볼 수 있다. 신라시대 산수 산경문은 1985년에 발견된 기미년 명 순흥 읍내리 고분벽화에서 살펴볼 수 있다. 통일신라시대 문양전에 나타난 누각산수문樓閣山水紋은 매우 신비롭고 경이롭다.(도11)

혼란스러웠던 무신 정권 시대, 은일사상과 뛰어난 회화성 담아낸 고려시대 산수화

고려시대에는 삼국시대나 통일신라시대와는 또 다르게 진정한 의미에서 산수화가 유행했다. 이 시대의 산수화는 중국 북송北宋 · 남송南宋 · 금金 · 원元 · 명明 등 중국 역대조와의 문화 유통을 통해 회화에 많은 영향을 받고 수용된 것으로 보이지만 남아있는 것이 거의 없다. 다만 성암고서박물관誠菴古書博物館과 일본 남선사南禪寺에 소장되어 있는 《어제비장전御製秘藏詮》의 목판화(도12)들이 고려 전기의 산수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여기에는 고원高遠 · 평원平遠 · 심원深遠이 고루 표현되었고 여러 가지 모양의 산악과 나무들의 모습이 나타나 고도로 발달된 산수화의 일면을 보여준다.
고려시대 산수도 문양은 불교공예품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정병淨甁은 수병水甁의 용도에 따른 별칭이며 범어로 세장경細長頸 즉, 가늘고 긴 목을 가진 물그릇을 의미한다. 이 밖에 경전에서는 천수관음사십수千手觀音四十手 중 지물持物의 하나라 하였으며, ≪다라니집경陀羅尼集經≫에는 ‘좌상 위에 대범천大梵天을 안치하여 좌수左手에 군지君持를 들게 한다’고 했다. 이러한 정병은 불상이나 불화의 보살상菩薩像의 지물로 나타나고 있다. 예컨대, 정병, 수병, 감로병, 보병 등의 기물을 소지한 불상은 미륵보살과 관음보살 등 그 대개가 보살상으로서, 그들의 법력法力의 시현示現이라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있는 청동은입사포류수금문정병靑銅銀入絲蒲柳水禽紋淨甁(도13)은 아름답고 고요한 고려시대 산수의 경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갈대가 우거진 강변의 언덕에 큰 버드나무가 서 있고, 잔잔한 물결 위에는 작은 조각배를 탄 인물이 유유히 헤험치는 오리들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겨 있다. 갈대숲과 멀리 보이는 산 위로 철새들이 줄지어 날고, 버드나무 주위에도 퍼드득 날아오르는 물새들이 보인다. 정병 동체의 문양은 이른바 포류노안문蒲柳蘆雁紋이 상감되었는데, 표현이 매우 사실적이며 회화적이다. 물 가운데 작은 언덕위로 석암石岩이 있고, 초화가 우거졌다. 갈대와 연꽃 등이 피었으며, 언덕 위와 물 위에 노니는 물새 한 쌍이 있다. 이러한 그림 소재를 건축, 분묘의 장식 문양으로 사용한 예는 중국 한漢 시대의 화상석畵像石이나 수렵문전狩獵紋塼 등에서 찾아볼 수 있긴 하지만, 순수한 공예 의장으로 나타나는 것은 고려 문화의 특색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문양이기 이전에 일종의 풍경도風景圖의 성격이 짙으며, 고려의 독자적인 발상이라 할 수 있다.
강가에 버드나무 등을 배경으로 물새들이 헤엄치거나 나는 모습을 묘사한 포류수금문蒲柳水禽文이나 위로수금문葦蘆水禽文 등이 이렇게 도자기를 비롯하여 나전칠기, 금동기물에까지 성행했던 이유는 당시 무신정권 아래 혼란스러운 시대적 배경 속에서 문신들이 귀향해 은일한 삶을 살고자 했던 분위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문양 소재를 일컬어 수향문水鄕紋이라 하지만 강변의 농촌과 촌락의 풍경, 실존 동식물을 주제로 한 소재는 문양이라기보다는 이상적으로 사실화한 점경적點景的인 요소가 더 짙었다.
조선 후기에 유행했던 전형적인 산수화풍의 문양으로 청화백자 항아리에 그려진 산경그림 중 대표적인 것이 소상팔경瀟湘八景 그림이다. 이 그림은 중국 호남성 동정호洞庭湖의 남쪽 소상瀟湘 지방에 있는 여덟 가지 아름다운 승경勝景을 그린 그림으로 이때에는 사능형四菱形이나 원곽圓廓 안에 산경그림을 그려 넣어 공예미적인 취향을 곁들이는 것이 유행했다. (도14~17)


임영주 | 한-명품미술관장

홍익대학교에서 목칠학과를 전공하고 동국대학교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 전문위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회장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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