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주 관장의 한국문양사 ④하늘부터 땅까지 온 우주가 깃든 그림

옛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우주와 자연에 대한 경외의 마음을 바탕으로 자연 속
모든 현상과 사물의 모양을 상징체계로 나타내며 주술적 의례를 지내고, 소원성취를 기원했다.
이번 호에서는 하늘, 땅, 우주가 품은 깊은 뜻을 상징한 문양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한다.

글 임영주 (한-명품미술관 관장)


태양 숭배 문화

이집트나 인도 등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와 일본 등 세계곳곳에 널리 퍼져 있는 신앙 중 하나로 해와 달, 별을 신격화하여 숭배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태곳적 사람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며 우주 공간은 팔방八方으로 생각했다(도1). 우주의 혼돈과 미궁은 평면상의 나선형으로 나타냈다. 나선은 순환循環을 의미하는 상징이기도 했으며 때로는 수레바퀴를 나타내기도 했다.

밝음을 신으로 섬기던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마치 달걀을 반 쪼개놓은 모양인 밑이 둥근 이른바 반란형半卵形 질그릇을 만들어 사용했는데 이 질그릇들은 주로 움집 가운데에서 발견된다. 대체로 이 그릇의 표면에 빗살 같은 도구로 기하학적 무늬를 새겨 넣었으므로 이른바 빗살무늬 질그릇이라 불려진다. 예나 지금이나 무늬가 베풀어지는 기물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즉 이러한 질그릇의 용도는 일반 생활에 사용된 것이 아니라 주로 하늘의 신神에게 바치는 신성한 신주단지였던 것이다. 빗살무늬 질그릇들은 신에게 바칠 귀한 음식을 담아 두는 매우 신성한 제기이기 때문에 일반인들이나 짐승의 손이 쉽게 닿지 않도록 대들보에 높이 매달아 놓게 마련이었다. 대들보에 매달린 빗살무늬 질그릇을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그 빗살무늬가 바로 태양무늬임을 알 수 있다(도2-1, 도2-2). 빗살무늬 질그릇은 대륙 북방지역인 시베리아·러시아·핀란드·스웨덴·노르웨이·만주 그리고 우리나라 등지에서 출토하는 북방계 문화유산이다. 빗살무늬는 대개 번개와 빗줄기를 상징하는 것으로 대체로 풍요를 기원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한 태양 상징무늬는 그 후에 청동기시대에 이르러 바위그림에도 나타난다. 암각그림에 새겨진 동심원상과 울주 천전리 암각그림에 보이는 동심상(도8, 9 참조)등과 각종 청동 의기儀器에서도 같은 무늬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고, 그 전통은 삼국시대 질그릇을 거쳐 고려, 조선시대 막새기와 와당, 떡살 등 민속품에 이르기까지 은연중에 이어져 온다(도3).
여기에 새겨진 원이나 동심원은 태양, 곧 태양신을 표현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시베리아나 몽골, 중국 등에 분포하는 바위 새김그림에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이 얼굴 모습은 태양신을 나타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해님, 달님의 모습은 원이나 동심원 같은 기하학적인 도상으로 그려지기도 하고, 태양을 숭상했던 어느 지역에서는 태양을 연꽃이나 국화 모양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인면人面으로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집트 연꽃, 신라시대 인면와당(도4), 경북 경주 황룡사지에서 출토된 치미鴟尾(도5)에서는 해·달·별을 의인화하여 나타낸 인면이 매우 해학적으로 표현된 것을 볼 수 있다. 태양 숭배 신앙 이집트나 인도 등을 비롯하여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태양을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원시종교의 일종으로 거석유적巨石遺蹟은 세계의 넓은 지역에 걸쳐서 산재되어 있다. 이러한 거석문화를 가리켜 태양거석문화太陽巨石文化라 부른다(도6).

천체에 대한 신비감 그림에 드러나

인도·인도지나 반도·동인도 제도 등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신석기시대에서 이른바 청동기와 석기가 같이 나타나는 이른바 금석병용시대金石倂用時代에 걸쳐 이루어진 고인돌에는 천판 밑바닥에 최초의 천문도天文圖라 할 수 있는 별자리 그림이 새겨진 예도 볼 수 있다.
고구려 고분벽화 가운데 각저총角抵塚 현실 천정에 그려진 일월상과 별자리 그림(도7)에서는 고대인의 천문에 관한 신앙을 보여준다. 각저총의 별자리는 북극성을 중심으로 투영법을 써서 남두육성과 북두칠성 및 28수를 방향에 맞게 그렸다. 이렇게 발전된 천문기술이 이 시기에 그림으로 그려진 것은 세계에 고구려가 가장 앞서는 것이다. 북두칠성은 예로부터 방향을 가리키는 길잡이별로 여겨졌다. 그래서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북두칠성을 일·월·화·수·목·금·토의 정수라고 간주하여 이 별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고 수명장수, 소원성취, 자녀성장, 평안무사를 비는 대상으로 삼아 빌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신앙의 발생은 천체에 대하여 신비감을 가졌던 원시 인류가 세상에 광명과 환희를 주는 태양을 성스럽게 보면서부터다. 또한 병사病死의 원인이 되는 병귀病鬼를 태양의 밝은 빛으로 쫓을 수 있다고 믿는 생활신앙에서 기원한다고도 할 수 있다. 한편, 태양을 조상으로 보는 신앙도 성행했다. 예컨대 사막지대 오리엔트의 여러 민족들은 대규모의 태양 숭배 의례를 통해 태양과 군주를 동일시했다. 그 외 태양을 신격화하여 숭배하는 민족들로는 고대 이집트의 라(Ra)·아멘(Amen) 따위를 예를 들 수 있다.
동일한 시기에 암벽에 해·달·별·산·나무·사람·새·번개·구름 등의 그림을 새긴 암각그림〔岩刻畵〕에서도 태양신앙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고대에도 그러한 유물이 있다. 신라 선각무늬 질그릇에 새겨진 일월성수日月星宿 그림은 그러한 천문에 관한 신앙관을 반영하는 것이다.
태양문화 유적에서 나타나는 태양과 달, 별 등의 도상은 점點·원圓·동심원상同心圓狀 외에 로터스〔花形〕 형식과 인면人面 등으로 표현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청동기시대의 청동기靑銅器·동경銅鏡 등에 새겨진 원의 형태는 대개 태양을 상징(sun-mark)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고대 동경銅鏡은 태양을 상징한 것이다(도8). 거울은 원래 물체의 형상을 비추어 보는 기물이지만, 고대인에게는 모든 물상을 반영한 마력魔力을 지닌 것으로서 매우 신성시되었다. 중국 고대에는 청동 수화경靑銅水火鏡이라 부르는 오목 거울이 있어서, 태양의 빛을 한 초점에 모아 쑥艾에 비추어 불을 잡고 불을 일으키는 기구로 사용하였다는 진晋시대의 문헌 《고금주古今注》의 기록으로 보아, 처음에는 발화도구의 일종으로 사용되었던 것 같다. 또 원시 사회에서는 태양신앙과 관련된 일종의 주술적인 의식기구로 쓰여졌을 것으로 보인다. 청동거울 뒷면의 무늬가 선이 가늘고 세밀하게 조식된 것은 세선무늬거울(세문경)이라 부르고, 선이 굵고 거친 것은 굵은 선 무늬 거울〔조문경粗紋鏡〕이라 부른다.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에서는 해마다 문열림文熱林에서 일월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또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경주지방에서 설날에 해와 달의 신에게 제사를 지냈다고 했다. 우리나라에 전해오는 무속에서는 일월신이 옥황천존과 마찬가지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믿고 있으며, 특히 부부에게 좋은 금슬을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매우 귀했던 비단, 직녀 설화에도 등장

직물은 추위와 해충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생태적인 기능을 위해 발명되기도 했지만, 인간이 신체를 꾸미고자 하는 본능과 상징성을 내포한 문화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직물은 예부터 주로 여성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도9). 고대 사회에서 비단緋緞은 매우 귀한 직물로 여겨졌다. 궁궐에는 천상계天上界에 있는 직녀궁織女宮과 같이 비단을 짜는 별궁으로 직녀궁이 있어서 주로 하늘에 바쳐지는 비단을 짜는 일을 했다고 하는데 우리 전설 가운데 널리 전해지고 있는 〈견우·직녀〉 설화도 유명하지만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하는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의 설화는 우리나라의 해와 달 신앙을 잘 말해주는 것이다.

신라 8대 임금인 아달라阿達羅 이사금 때의 일이다.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라는 젊은 부부가 살았다. 어느날 아침, 세오녀가 부엌에서 아침식사를 준비를 하고 있는 동안 연오랑은 바닷가로 미역을 뜯으러 나왔다. 연오랑은 여러 가지 해초들이 너울거리는 바다 속을 들여다보며 미역을 찾았다. 그 때 앞에 보이는 자그마한 바위가 있는데 연오랑은 신을 벗어놓고 힘껏 뛰어 건넜다. 연오랑이 그 바위에 뛰어 올랐을 때 이상하게도 연오랑이 딛고 서 있는 바위가 꿈틀하고 움직이더니 바위는 연오랑을 실은 채 둥실 둥실 해 뜨는 쪽으로 떠나고 있었다. 세오녀는 집에서 아침상을 차려놓고 남편 연오랑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잠깐 나간 연오랑은 얼른 돌아오지 않았다.
세오녀는 이상하게 여겨 찾아 나섰다. 모래 벌에는 연오랑이 밟고 지나간 발자국은 있는데 연오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언뜻 눈에 띈 것은 바위 위에 나란히 놓여있는 신발이었다. 틀림없이 연오랑이 신고 다니던 신발이었다. 세오녀도 연오랑이 벗어놓은 신발 옆에 가지런히 신을 벗어놓고 힘껏 뛰어 저편 바위에 올랐다. 세오녀가 바위에 오르자 이상하게 그 바위도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둥실둥실 동쪽으로 떠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어 신라의 동해안東海岸에 살던 정다운 부부 연오랑과 세오녀는 신라 땅에 신발만 나란히 벗어놓고 동쪽으로, 동쪽으로 떠내려갔다. 연오랑을 실은 바위가 흐르고 흘러 다다른 곳은 일본 서쪽 해안이었다. 일본 사람들은 서쪽나라에서 바위를 타고 온 귀한 손님을 두렵게 여겨 엎드려 절하며 왕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세오녀는 그 나라의 왕비가 되었다. 신라의 한 갯마을에 신을 벗어놓고 온 부부가 일본을 다스리게 되니 일본은 평화롭고 광명에 찬 나라가 되었으나, 신라에는 반대로 무서운 어둠이 왔다. 연오랑과 세오녀가 떠난 다음부터 해도 뜨지 않고 달도 뜨지 않았다. 밝음이 없어지니 귀신들과 도적들이 날뛰는 세상이 되었다. 이럴 때에 나라 일을 점치는 일관日官이 말했다. ‘이는 해의 정기精氣와 달의 정기가 이때까지는 우리나라의 동해안에 살고 있었는데 지금 두 분이 다 일본으로 가 버렸기 때문에 이러한 괴변이 생긴 것입니다’라 하였다. 신라의 왕 아달라阿達羅 이사금은 곧 사신을 일본으로 보내어 연오랑과 세오녀를 다시 신라로 돌아와 줄 것을 청했다. 연오랑은 ‘내가 이 나라에 온 것은 하늘이 시킨 것이니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여기 나의 아내 세오녀가 짠 비단이 있으니 이것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라. 그리하면 해와 달이 다시 나타날 것이다’라 하였다. 사신이 비단을 가지고 돌아와서 이사금께 바치니 아사달 이사금은 동해 바닷가에 제단祭壇을 쌓고 그 비단을 올리고 하늘에 정성껏 제사를 지냈다. 그제서야 동해에 붉은 해가 솟아오르고 뒤이어 둥근 달이 떠올랐다. 이렇게 기도를 드려 새로운 광명을 맞이한 곳을 영일迎日 또는 도기야都祈野라 하였으니 지금 경상북도 영일군迎日郡 오천면烏川面 도구동都邱洞이 그곳이다.

조선시대 민화에 일월부상도日月扶桑圖(도10)가 전해진다. ‘부상扶桑’은 동쪽바다 해 뜨는 곳에 있다는 상상의 신성한 나무 또는 그곳을 말하는데 혹 ‘함지咸池’라고도 하고, 부상국은 옛날에 일본을 달리 부르는 명칭이기도 한데 신라의 세오녀와 연오랑의 설화와 연관되리라 추정된다. 옛 전설에 전해지는 부상목은 뽕나무로서 고대에는 뽕잎을 먹고 자란 누에가 명주실을 뽑아 천을 짜는 나무라 하여 신성하게 여겨왔다.

하늘의 정기를 담아낸 일월도

고구려 유물로서 금동투각일상문 베개 마구리 장식[金銅透刻日像紋退枕裝飾](도11) 고구려 6세기경에 그려진 벽화고분 쌍영총雙楹塚 천정 벽화의 일·월상무늬 등 신라시대 월상무늬 와당과 신라시대 질그릇 뚜껑에 새겨진 태양새 무늬는 우리 고대의 태양신앙을 잘 말해준다(도12).

그밖에 각종 유물과 고분 벽화, 또 조선조 민화에는 해는 둥근 원안에 삼족오라고 불리 우는 다리가 셋 달린 새가 1마리 들어있고, 달은 섬여(蟾蜍, 두꺼비)가 표현되어 있는데 (도13) 이러한 도상은 ≪회남자淮南子≫에서 전하는 ‘日中有 鳥而月中有蟾蜍’라 한 것과 ≪춘추春秋≫ ≪원명포元命苞≫에서 ‘日中有三足烏而月中有蟾蜍’라는 말과 일치하고 있다. 신화에서는 화기火氣의 정精은 태양이 되었고, 수기水氣는 달이 되었으며 일월의 넘친 정이 성신星辰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므로 해는 양陽의 주인이며, 달은 음陰의 본本이라 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표현된 일월형상 그림은 인물풍속화가 주요 주제로 그려진 5〜6세기 초 이후 7세기경까지 시기에 그려졌던 것으로 인물풍속과 함께 사신도四神圖가 나타난다. 가장 초기 벽화고분인 안악3호분·각저총·개마총·연화총·무용총·쌍영총·매산리4신총·대안리고분·약수리고분·통구제17호분 등에 그려졌다.(도14)
삼족오는 닭이 이상화理想化된 것으로 생각되는데, ≪회남자≫에서 ‘일출日出할 때 천계(天鷄,하늘 닭)가 울면 천하의 닭이 모두 따라 울었다’고 했다. 이 천계는 금조金鳥, 금계金鷄, 적조赤鳥 등으로 표현되었다. 이 금계, 금조 등은 천天의 사상을 의미하고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서 동명설화東明說話의 계자鷄子, 알지설화閼智說話의 금성백계金城白鷄, 수로설화首露說話의 자완금란紫緩金卵 등이 모두 이와 유사한 사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 일월상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요堯 임금 때에 10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떠올라 온 누리에 불이 타오르듯 열을 비추어 멸망의 위기에 놓여 있을 때, 요 임금의 청원으로 9개의 태양을 활로 쏘아 떨어뜨려 세상을 바로 잡은 예羿가 천제天帝의 노여움을 사서 천상에 올라가기 위하여 곤륜산에 있는 서왕모西王母에게 불로불사약不老不死藥을 청하여 얻어 왔는데, 항아姮娥가 무녀巫女의 꼬임에 빠져 이 불사약을 혼자 먹고 그 벌罰이 두려워 달로 도망갔다. 거기에서 항아는 월신月神의 노여움을 받아 두꺼비〔섬여蟾蜍〕로 탈바꿈을 하게 되어 월정月精이 되었다.

이 전설에서 항아가 살고 있는 곳을 월궁전月宮殿 혹은 항궁恒宮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한, 월상月象에는 두꺼비라 표현된 것이 있는가 하면, 두꺼비와 함께 토끼가 등장하는 것이 있다. 이 토끼의 형상은 대개 7세기 이후부터 나타나게 되는데 계수나무 아래에서 토끼가 약방아를 찧고, 그 옆에 두꺼비가 엎드려 있거나 춤을 추고 있는 듯한 모습의 해학적인 광경이다.(도15)
조선시대 궁중에서 다양하게 전해지는 일월곤륜도日月崑崙圖(도16)는 병풍처럼 둘러 쳐진 일월오악日月五嶽을 배경으로 바위 위에 낙낙 장송이 솟아있고 그 아래 창해蒼海가 넘실거리는 풍경그림이다. 중국에 있는 곤륜산은 하늘과 통하는 천하제일 명산이라 전해져 오는 신령스런 영산靈山이라 했다. 동이민족東夷民族의 신화에 의하면 이 산은 우리 민족의 발상지로 전해져 오고 있는 백산白山 혹은 태백太白이다. 한민족의 시조인 단군왕검은 할아버지인 천제, 즉 태양의 신이 그 손자인 단군을 세상에 내려보낼 때 가장 먼저 태양의 정기精氣가 닿을 수 있는 곳을 물색했다. 이 산을 태백산이라고도 하고 뜻으로 보아 곤륜산이라고도 한다. 그러므로 일월곤륜도란 하늘의 천제가 세상에 정기를 내려보내 모든 인간에게 널리 이롭게 한다는 이른바 홍익인간의 뜻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궁궐내의 용상 뒤쪽에 설치되었던 이 그림에는 해·달을 비롯하여 장수를 상징하는 우람한 산과 창파蒼波, 폭포와 소나무, 바위 등이 더불어 그려져서 나라가 만세동안 이어지길 염원하고 있다.


임영주 | 한-명품미술관장

홍익대학교에서 목칠학과를 전공하고 동국대학교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 전문위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회장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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