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주 관장의 한국문양사 ② 북방 기마민족의 기상을 담은 수렵도

인류 고대 회화나 조각의 주요 소재는 사냥으로 사냥감, 사냥방법 등이 그려졌다. 이는 국내외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발견할 수 있는 그림으로, 국경을 불문하고 생활 문화적 공통성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예외가 아닌데 청동기 시대 탄생한 수렵도는 조선 시대로 넘어오며 인기 화목 중 하나인 호렵도로 자리 잡게 된다.


지난 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미술작품은 사냥그림에서 시작된다. 현존하는 사냥그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수 만 년 전, 구석기시대 후기인 오리냐크 기期의 것이다. 바이칼 호반湖畔에서 서쪽에 북스페인의 칸타브리아 지방과 북쪽 시칠리아섬까지 널리 분포되어 있는 선각線刻 바위그림과 채색그림, 그리고 부조浮彫와 조각들은 대개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이것을 제작한 사람들은 수렵채집민이다. 따라서 그들의 회화나 조각은 본질적으로 사냥그림이다. 여기에는 자연현상이나 산수 초목을 표현하려는 시도를 전혀 볼 수 없다. 소재는 오직 수렵 활동에만 집중됐으며, 그림 속 관심과 주제는 그들이 포획하고자 했던 동물과 사냥 방식에 국한돼 있다.

청동기시대 그림으로 살펴보는 수렵 문화

수렵 그림은 원시시대 수렵경제 생활을 반영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청동기시대의 동물무늬 청동견갑動物紋靑銅肩甲에 새겨진 화살 맞은 사슴 문양(도1)과 울주 반구대盤龜臺의 바위새김 그림이 가장 오래됐다. 청동기시대 바위새김그림에서 나타나는 동물, 인물 등의 표현 요소는 청동기시대의 각종 의기儀器에도 나타나며 그 맥락은 고신라시대古新羅時代 토기로부터 이어져 내려온다. 흥미롭게도 선각무늬가 새겨진 토기에서 이 같은 상형을 찾아 볼 수 있는데, 토기감(土器坩, 굽이 높고 목이 긴 토기항아리), 고배(高杯, 굽이 높은 술잔)에는 어깨 부분에 선각으로 별자리와 더불어 사냥하는 인물 형상, 그리고 청용·백호·현무·주작 등 사신四神이 추상적으로 음각陰刻되어 신비감을 더한다. (도2, 도3)
수렵 장면을 그린 무늬는 고대 왕조에서 신神이나 왕자가 사냥하는 장면을 간결하고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왕권의 문양을 뜻하기도 한다. 기원전 27세기 이전에 메소포타미아 남동부에 위치하며 세계 최고의 문명으로 일컬어졌던 수메르(Sumer)의 아카드 왕조시대(B.C. 2350경〜 B.C.2150경) 유물을 비롯해 루리스탄 청동기 문화, 아카이메네스 왕조, 스키타이, 사르마타이, 사산왕조 페르시아 등 이란계 민족이 남긴 유물에서도 수렵 문양을 볼 수 있다.

특히 사산왕조의 은쟁반이나 직물 장식문양(도4)에서 매우 발달했는데, 기마인물이 마상馬上에서 활을 당겨 사자를 쏘고 있는 장면 등이 표현되었다. 이러한 수렵그림 및 문양은 서아시아로부터 영향을 받아 중국 춘국 전국시대 말기 이후의 금속공예품인 수렵무늬구리거울[狩獵紋銅鏡], 화상석畵像石, 전(塼, 벽돌), 견직물絹織物 등에서도 나타난다. 우리나라에도 중국 길림성 통구通溝에의 집안(輯安, 集安)에 있는 고구려 벽화고분인 무용총(5세기 말〜6세기)과 덕흥리벽화고분, 약수리벽화고분, 장천1호분 등에서 그와 유사한 사냥 그림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무용총의 현실 서쪽 벽에 그려진 수렵도는 고분벽화 사냥그림 가운데 가장 환상적이면서도 약동적이라는 측면에서 세계적인 고대 회화작품으로 평가 받을 만하다. (도5) 고구려 무사들의 사냥 풍경을 기교 없이 표현했으며 산맥 윗부분의 사슴사냥 장면과 아랫부분의 호랑이 사냥 장면을 분리시켜 계선界線의 효과를 내면서도 아랫부분에는 사슴 사냥의 그림이 오른쪽으로 연결된다. 사냥꾼이 말을 타고 뒤돌아 활을 쏘는 모습은 매우 드라마틱해 긴장감을 느끼게 하며, 사냥개 두 마리의 동작이나 동물들의 전체적인 움직임도 잘 묘사됐다. 여기에 추상적인 조운雕雲이 둥실 떠올라 그림에 신비감을 더한다. 이 같은 사냥그림은 속도감과 박진감이 넘치는 북방 기마민족의 기상을 여실히 보여준다.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한 통일신라시대 무늬전돌 <문양전紋樣塼>(도6)에서도 수렵 문양을 찾을 수 있다.

수렵도에서 호렵도로 이어져

회화로는 고려시대 공민왕이 그렸다고 전하는 <음산대렵도陰山大獵圖>(도7)가 전하고, 이제현의 <기마도강도騎馬渡江圖> 등이 있어서 이 시대에 귀족계층의 수렵문화가 유행했고, 수렵풍속이 근세까지 왕조를 통해 이어졌음을 알 수 있어 매우 흥미롭다. 수렵풍속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졌는데 주요 작품으로 1744년 김두량金斗樑과, 김덕하金德廈 부자가 합작한 <추동전원행렵승회도秋冬田園行獵勝會圖>를 빼놓을 수 없다.
조선 후기에 많이 그려진 호렵도虎獵圖는 유목민족인 우리 민족이 즐기던 수렵 그림이 변천된 것으로 볼 수 있다.(도8) 여기에는 외란을 많이 겪었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호인들의 대륙적 기상을 장려하고, 가내 후손들에게서 무관武官이 많이 배출되기를 염원하는 뜻도 내포되어 있다. 특히 조선 초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호인胡人들의 포악성을 경계하고 재난을 막아내는 벽사용 그림으로써 호렵도가 유행했다.


글 임영주 (한-명품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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