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주 관장의 한국문양사 ① 선사시대 암각화에 나타난 우주관

한국 그림은 이미 고대에서부터 두드러진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회화를 비롯해 공예·건축 등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단순미單純美, 간소미簡素美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또한 선조들이 남긴 유물의 무늬나 그림, 조각을 보면 단순히 상상의 세계에 몰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의 방식과 종교의식,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과학에 이르기까지도 내적인 실재를 추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한국 회화를 이해하기 위한 단초는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이번 달부터 다양한 유물과 사료를 바탕으로 한국 문양사의 궤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고대 한국 도안의 추상성은 기계적이거나 형태의 왜곡에서 나온 것이라기보다 단순화와 생략, 그리고 자연의 법칙으로부터 비롯된다. 오늘날의 화가들이 새로운 것, 깜짝 놀랄만한 것을 얻으려고 애를 쓰지만 고대 선조 예술가들은 옛것, 혹은 오랜 삶의 경험에서 그림의 소재를 찾았기에 그렇듯 순수하고 자연주의적인 작품을 만들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선조들은 해와 달 그리고 삼태성, 북두칠성 등 무수한 별이 인간의 화신化神이자 조상으로서 우리 삶을 보호하고 이끈다고 믿었다. 그래서 항아리에 우주를 담았다. 해와 달과 많은 별들은 꽃으로 비유하고 구름과 바람은 꽃 덩굴로 나타내거나 용, 난봉鸞鳳으로 나타냈다. 꽃구름을 헤치고 천화天花를 흩날리며 천공을 나르는 천인天人들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바위에 우주를 새기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여러 신神과 함께 살면서 활을 쏘며 들짐승 사냥도 하고 배를 타고 고기잡이도 한다. 삼신산三神山에 장송長松들과 기암奇巖은 우리의 강산을 나타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한국인의 조상은 이러한 신세계를 동경하여 왔고 그들의 삶은 항상 우주 속에 있으므로 그들의 시와 예술 또한 항상 내세來世를 바라봤다.

선사시대 암각화를 통해 살펴보는 우리 그림의 시원

모든 회화는 장식무늬에서 시작된다. 인류가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온 장식무늬는 일상에 필요한 물건을 제작할 때 수반되는 작업과정에서의 예술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기하학적 문양의 기원은 신석기시대 빗살무늬토기에서 전래된 전통의 계승이라 보는 견해도 있고, 빗살무늬토기의 문양과 청동기에서의 선 무늬, 번개무늬, 삼각형무늬 등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는 있을지라도 실제 문양의 형태나 문화 자체에서, 또 문양이 지니는 내용이나 제작 동기에서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한국 그림의 시원을 어디에 두어야 할 것인가?
1970~1972년에 걸쳐 경북 울주와 고령에서 발견된 암각벽화는 적어도 청동기 시대 이전에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다양하게 펼쳐진 선각과 그림들은 약 8m에 이르는, 이른바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다. 그 중에는 무엇을 의미한 것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도시적인 도형도 상당수 있으나 각종 야생 짐승과 수렵 장면, 어렵 장면 등은 그 시대의 경제생활과 신앙적 배경을 잘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그림들이 회화성을 강하게 띠고 있기 때문에 단순한 문양이라 할 수는 없겠으나, 선사시대의 생활 용구나 의기에 나타나는 문양 요소와 일치하는 것이 많아 당시 인류의 의식 구조와 미적 가치관을 어느 정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암각화의 유형과 문양 요소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암각화에 나타나는 다양한 문양들

양전동 암각화(경북 고령군 개진면 전동 소재)는 1970년에 발견된 것으로, 비교적 판판한 사암砂岩으로 이루어진 암벽에 4개의 동심원상 문양과 ‘十’자형 문양, 방형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심원 무늬는 굵은 음각선이 3겹 새겨져 있으며, 이를 중심으로 마름모꼴의 방형 격자문이 망상으로 연속된다. 이러한 기하학적 문양의 의미와 용도는 명확히 알 수 없으나 동심원문은 태양을, 망상의 격자문은 당시의 우주관이나 어렵생활과 관계된 주술적인 그림으로 미루어 짐작하고 있다. 즉, 다른 농경 사회에서의 태양숭배 신앙처럼 풍요를 기원하리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천전리 암각화(경남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소재)의 벽면 위쪽에는 동심원상과 마름모꼴의 선각 문양이 있고, 하단에는 방형 선곽 안에 기명記銘이 새겨져 있으며 남녀 인물상, 동물 형상, 기마행렬, 배 등의 그림이 있다. 여기에서의 기명은 간지干支, 연호年號, 인명人名, 사명寺名 등이 있어 신라 시대의 것으로 판명되었으며 그 외 문양들은 또 다른 앞선 시대, 즉 선사 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짐작된다. 기하학적 무늬들은 신석기 시대의 작품으로 간주하여 볼 수 있으나, 각종 동물 그림들은 청동기 시대의 암각화에서와 같이 돌이나 뼈를 뾰족하게 갈아서 새긴 것으로 매우 생동감 있게 표현되어 있다. 이 암벽의 중앙부 왼쪽 상단에 그려진 동심원상도 역시 태양을 상징하는 원시 신앙과 결부되는 것으로 생각되며, 또 그 하단에 그려진 인면人面에서 그러한 신앙 요소를 짐작해볼 수 있다.

지역과 시대를 초월한 사냥 예술

반구대 암각화는 1971년 12월에 발견된 것으로, 높이 약 2m, 폭 약 8m에 걸친 거대한 수성암에 예리한 도구로 새겨진 마애 조각磨崖彫刻이다. 여기에서는 달리는 사슴, 호랑이, 늑대, 멧돼지, 곰, 토끼, 여우, 거북 등 산짐승과 울타리에 갇힌 개와 염소 등의 짐승, 물을 뿜어내는 고래, 상어, 물개와 각종 물고기 등 바다 동물이 새겨졌고 당시의 경제생활상과 신앙관을 짐작케 하는 다양한 인물상과 인면 등 초보적인 수법으로 그려진 150여점의 그림이 파노라마를 이루고 있다. 이 문양들은 암반을 뾰족한 도구로 쪼아서 새긴 점각법 또는 고타법으로 표현됐는데, 그 형식이 청동기 시대의 여러 유물에서 나타나는 의장 수법과 동일한 양상을 띠고 있어서 이 역시 청동기 시대로 추정된다.
그러나 어느 학자는 소위 렌트겐 양식이 북유럽의 고식 신석기 암각화의 그것과 통한다는 점과, 흑룡 강변黑龍江의 암각화가 역시 신석기 시대라는 점에서, 울주 암각화의 연대의 상한은 신석기 시대 중기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그림의 내용을 살펴보면 단순한 사냥 그림이나 고기잡이 광경이 아닌 신성한 제전을 암시하고 있으며, 무한한 신비감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그려진 산짐승 등의 묘사에 있어서도, 형상은 매우 사실적이나 그 내부의 세부적인 표현 형식에 있어서는 추상적인 선묘線描로 나타나고 있다. 단순하게 추상적인 것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뭔가 생명감을 불어 넣어주는 독특한 묘사법을 보인다는 것이다. 즉, 짐승이나 물고기의 갈비뼈 혹은 골격을 표현하고 있다든지, 배가 불룩하게 묘사되어 마치 잉태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나타냈다든지, 또는 고래그림 가운데 큰 고래의 등 위에 작은 고래를 또 한 마리 겹쳐 그려 동물 세계의 생리를 표현하고자 한 사실 등에서 당시 인류의 생리학적 사고와 신앙적 요소를 추측할 수 있다. 이러한 여러 그림을 통하여 원시 사회에 있어서의 생산과 수확, 그리고 번식을 기원하는 신앙적 요소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으니, 남근男根을 표현한 인물상 등이 그것을 증명한다.

이 암각화가 언제, 무엇을 위하여 제작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림의 내용으로 보아 시베리아, 스칸디나비아, 레굔 마리티나(Region Maritina), 중앙아시아 등지의 암각화와 연결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원시시대의 동물 그림은 그 유명한 북스페인의 후기 구석기 시대 유적인 후랑코 칸다브리아(Framco-Cantabria) 동굴 벽화와 알타미라(Altamira) 동굴 벽화 야생의 소, 돼지, 순록, 물고기 등의 그림과 비교해 볼 때 당시 수렵경제에서 기인된 주술적 또는 원시 신앙적 요소로 생각된다. 문명대 교수는 이러한 그림 내용은 북유럽이나 시베리아의 신석기 시대 사냥 예술(hunting art)과 직결되는 내용이라 지적한 바 있다.

세계 곳곳에 분포된 암각화

이 암각화에서 볼 수 있는 동물의 골격을 표현한 추상적인 선은 일본 오꾸라 컬렉션인 동물문 새김기법과 같은 수법을 보여 주고 있다. 신라 토기 가운데 동물무늬목긴항아리(動物紋長頸, 5~6세기)에 선각된 말과 사슴 문양에서도 그러한 전통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에 손발을 벌린 인물과 얼굴만 그로테스크하게 그린 인면 등은 매우 인상적이라 하겠는데, 이는 소련 등지에서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큰 암벽에 예리한 정釘으로 그림을 새긴 이들의 솜씨는 멀리 북유럽과 시베리아의 선사유적에서도 발견되는 암각화와 비교해봤을 때 내용이나 새김 수법 등에서 매우 유사하다. 사실 암각화는 세계 곳곳에 분포돼 있다. 유럽에서는 노르웨이,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지역에서부터 스페인 남부까지, 동쪽으로는 시베리아를 거쳐 아시아를 가로질러서 러시아의 연해주 지역, 중국 대륙, 북미 캐나다에서 남미 브라질, 태평양 남쪽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의 여러 섬들에서 암각화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암각화들은 풍산豐産을 비는 고대인들의 소망을 반영한 주술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신석기 시대에 이미 조형적 기틀을 형성한 한국 회화의 근원적 요소와도 연결돼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일본 오꾸라小倉 수장품인 청동기시대 청동 동물문 견갑肩甲에는 윗부분에 꼬리가 긴 호랑이와 하단에 화살을 맞은 큰뿔사슴이 새겨졌다. 이 그림 역시 반구대 암각화와 마찬가지로 시베리아 수렵인들의 숭록사상, 수렵풍속, 신앙적 요소를 드러낸다고 볼 수 있다.



글 임영주 (한-명품미술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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