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주의 한국문양사 ㉓ 한땀 한땀, 우주의 본리 철학 수놓아 만든 보자기

조각보, 조선시대, 견,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조각보자기는 옷을 짓고 난 뒤 남은 자투리 헝겊 한 조각까지도 알뜰히 쓰고자 한 선조들의 검소함과 남다른 미감에서 비롯된 작품이다. 너른 보자기 안에 행복을 듬뿍 담아 만든 전통 보자기문화를 살펴본다.

글 임영주 (한-명품 미술관 관장)


예전 생활 물품 중에 요즘의 패션만큼이나 화려하면서도 풍부한 의미를 지닌 물건이 있다면 바로 보자기일 것이다. 보자기는 물건을 싸기 위해 사용하는 천 포대기를 지칭한다. 선조들은 생활 습속이나 양식, 의식에 맞게 보자기 문화를 발달시키며 점차 다양한 용도와 기교를 구사하게 되었고 독특한 보자기 문화를 만들었다.
대한제국 말기에는 상방사尙房司라는 관청이 있어서 궁궐 안에서 필요로 하는 수용물품需用物品을 관장하고 복지직조服地織造 등을 담당했다. 이곳에서는 임금이 사용하는 물건을 비롯하여 각 기관에서 필요한 여러 종류의 보자기도 만들었다. 1752년 영조 임금 때에 왕실 일가의 의대·일용품·의물 등을 조달하는 일을 맡았던 상의원尙衣院에서는 궁중의복과 관계된 서적 《상방정례尙方定例》를 편찬했는데, 이 책 3권에서는 궁중에서 사용하던 보자기에 관한 내용이 상세히 설명돼 있다.
그 외 조선시대에 보자기에 얽힌 기록이 다수 전해진다. 일례로, 태종 대 전사재감이란 벼슬을 하는 이진李震이란 자가 입경하면서 황색보자기를 들고 왔을 때의 일이다. 당시 황색은 중국 황제만이 사용할 수 있는 색이라 하여 일반 물품에 사용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사헌부 하리 김을지 등이 이를 빼앗으려 했으나 빼앗지 못해 처벌 받았다는 내용이다. 예종 대에는 서인庶人에게 홍염紅染을 한 옷과 보자기를 사용하는 것을 금한다는 금령禁令을 내린 예도 있다.


(좌) 각색조각보 상보床褓, 조선시대 / (우) 식지食紙, 조선시대, 종이,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보자기 보’는 ‘복’과 상통, 보자기로 복락 기원

우리나라에서 보자기 문화가 발달하게 된 주요 원인은 몇 가지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삼국시대부터 발달한 등짐장수 즉, 보부상褓負商이 활발히 활동했기 때문이라든가 임진왜란·병자호란 등 나라가 위급할 당시 식량과 전쟁 물자를 조달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보자기에 물건을 싸는 것이 복을 싸는 것과 같다고 보아 혼례식날 보자기에 혼수를 챙겨가던 혼례문화나 헌옷까지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사용하려는 검약정신도 한몫했을 것이다.
보자기는 한자의 보자褓子에서 비롯되었는데, ‘보자기 보褓’는 ‘복福’과 뜻이 상통하는 것으로 보았다. 특히 수보繡褓는 주로 혼례용으로 사용되던 보자기이다. 각종 무늬가 수놓아져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복락을 기원하는 등 뜻깊은 의미가 깃들어 있다.
왕가나 귀족사회는 물론 서민계층에서도 각종 모양과 양식의 보자기를 만들어 사용했다. 특히 상류사회의 보자기는 다양하고 독특한 것이 많은데, 예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 보자기는 사용되는 사회 계층과 구조, 색상, 재료, 문양 등에 따라 매우 넓고 다양하게 분류할 수 있다. 우선 사용계층에 따라 민간에서 쓰이는 보자기인 ‘민보民褓’와 궁에서 쓰이는 ‘궁보宮褓’로 구분된다. 구조에 따라서는 홑겹의 홑보, 안감과 겉감 두 겹으로 된 겹보, 솜을 안에 두어 만든 솜보, 조각천들을 이어 만든 조각보, 한땀 한땀 바느질하여 아름다운 자수무늬를 수놓아 만든 수보繡褓, 기름종이로 만든 식지보食紙褓, 누벼서 만든 누비보 등이 있다. 만든 재료에 따라 사보紗褓, 명주보明紬褓, 항라보亢羅褓, 모시보 등이 있으며 색상에 따라 이름 붙인 것으로는 청보靑褓, 홍보紅褓, 청홍보靑紅褓, 오색보五色褓, 연두보軟豆褓, 아청보鴉靑褓 등이 있다.


상보床褓, 조선시대, 견,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현대 추상화 방불케 하는 조각보의 아름다움

천조각이 지닌 생김새를 최대한 이용해 만든 조각보자기는 옷을 짓고 난 뒤 남은 자투리 헝겊 한 조각조차도 버리지 않고 알뜰히 쓰려는 선조들의 지혜와 탁월한 미감에서 탄생된 작품이다. 조각보는 각양각색의 무늬와 색감을 자랑한다. 무늬의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구성의 조화, 다채로움에서 옛 전통문화의 미학을 엿볼 수 있다. 실제로 조각보의 추상적 구성 방식은 우리 옛 건축의 창살무늬나 담장무늬에서 찾아볼 수 있고, 가구의 공간 구성과 일치하는 점도 많다. 조각보의 재료로는 모시와 삼베, 갖가지 비단조각 등이 주를 이룬다. 한 가지 종류로 만들어진 것도 있고, 두 가지 이상의 여러 종류와 빛깔로 만든 것도 보인다. 삼베나 모시, 사紗, 라羅 따위의 견직물로 만들어진 것은 대부분 홑으로 꾸며져 여름 이불 대용으로도 쓰이기도 하였다. 조각보의 문양 구성은 대략적으로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다.


(좌) 모시조각보, 조선시대 / (우) 삼베홍색 조각보, 조선시대



① 바둑판 구성
같은 크기의 정방형이 모여 이루어진 형식이다. 같은 크기의 네모꼴이 사방연속무늬를 이루며 과감한 색상 대비를 통해 단조로움을 탈피했다.

② 정正자형 구성
역시 같은 크기의 정방형이 모인 형태이지만 조각천의 색상을 ‘正’자와 같은 형식으로 배치했다.

③ 사선형斜線形 구성
이등변 삼각형이 질서 정연하게 모여서 사선을 이루도록 배치되었다.

④ 격자살문형 구성
이등변삼각형이 두 개 혹은 네 개가 모여 다이아몬드 형, 즉 문창살의 격자살 무늬를 이루도록 만들었다.

⑤ 이등변삼각형 구성
조각보 중에서 가장 단조로운 구성이다. 이등변삼각형
4개가 모인 모양이다. 네 귀퉁이의 색상을 보색으로 대비시켜 포인트를 주었다.

⑥ 회回자문 구성
중앙의 네모꼴을 중심으로 중심원이 퍼져나가듯 점층적으로 확대되어 나가는 모양이다. 한칸 한칸의 색상을 달리 한 것이 마치 색동옷 같은 느낌을 주는데, 기본 구성은 회문回紋을 나타낸다. 회문은 우주의 본리인 ‘시작도 끝도 없이 영원한 것’, 즉 ‘무시무종無始無終’을 상징한다.

⑦ 자유분할형(몬드리안형) 구성
지극히 평면적인 것 같으면서도 깊은 공간감이 느껴진다. 현대적인 아름다움을 엿볼 수 있다.

⑧ 바람개비형 구성
보자기의 중앙이 우물[井]자가 이루어지도록 조각천의 색과 면을 안배하거나 바람개비가 돌아가듯 회전하는 양상으로 조각천을 이어붙였다.

⑨ 소용돌이 꽃모양 구성
중앙부의 밭[田]자 모양의 구획 안에 화문을 중심으로 장방형의 띠가 회전하는 양상으로 배열된 형식이다.

⑩ 띠살문 구성
다양한 방형들이 옆으로 모여서 조화를 이룬다.

⑪ 자유 구성
크기, 모양, 색상이 각양각색인 수십 개의 천조각들이 산만하지 않으면서도 전체적으로 자유롭게 조화된 모습이다. 현대적인 추상미가 느껴진다.


(좌) 수화문樹花紋 수보자기, 조선시대 / (우) 수화문樹花紋 수보자기, 조선시대



(좌) 조각보, 조선시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 (우) 여의문 조각보, 조선시대


나무와 꽃을 수놓아 만든 수보자기

수보자기[繡褓]의 문양은 나무와 꽃을 주제로 삼은 것이 특징이다. 나무와 꽃무늬의 구성을 자세히 보면 한자의 목숨 수 ‘壽’자를 상형화한 것이 특징인데 자세히 보면 우주목宇宙木을 상징하는 것 같다. ‘희喜’, ‘복福’ 글자가 상형화된 것도 보인다. 그밖에 석류, 천도, 불수감 등 과실果實 문양과 원앙鴛鴦, 학鶴 등 새 무늬, 그리고 길상문자吉相文字 등이 곁들여진다.
수보와 조각보의 색상은 주로 오방색五方色인 청靑, 적赤, 황黃, 백白, 흑黑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음양의 조화로서 제액초복除厄招福 즉 ‘재앙을 없애고 복을 부른다’는 민간 신앙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임영주 | 한-명품미술관장

홍익대학교에서 목칠학과를 전공하고 동국대학교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 전문위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회장이다.


이번 호를 끝으로 2020년 2월부터 2년 간 연재한 <임영주의 한국문양사> 연재를 마칩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전통문양에 대해 상세히 알려주신 임영주 관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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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One comment on “임영주의 한국문양사 ㉓ 한땀 한땀, 우주의 본리 철학 수놓아 만든 보자기

  1. 안녕하세요. 윗글에 나온 조각보, 조선시대, 국립민속박물관 소장주 작품위사지진을 혹시 받을 수 있을까해서 연락을 드립나다. 저는 미국에서 조각보 작품을 준비 중인데요. 공모전에 이 조각보를 재현한 작품을 준비하려고 합니다. 한국에 있다면 찾아가 볼 수 있겠는데 는여기에 나온 작품명으로는 사진 조차 찾기 어려울듯하여 혹시 선명한 사진을 받아볼 수 있을까 연락을 드립니다.

    사진이 없으시더라도 작품명으로 검색이 가능하다면 도움이될만한 정보가 없을까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양재현 올림

    jay. veenstr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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