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주의 한국문양사 ㉒ 조선왕조의 유교적 표장,表章 보補와 흉배胸背

도3 거북흉배, 광복이후, 섬유-견,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관리들은 흉배를 부착한 관복을 착용함으로써 유교적 덕목인 효·제·충·신·예·의·염·치를 되새기고 치국평천하를 염원했다. 흉배에 담긴 길상 문양은 관리들의 품계뿐 아니라 조선이 지향하는 국가 비전까지 아름답게 표현한 종합예술이었던 셈이다.
글 임영주 (한-명품 미술관 관장)


옛 왕조시대의 관복제도에서 관리들의 조복朝服 앞가슴과 등에 붙여 가식加飾하여 품위를 표시하였던 표장表章을 일컬어서 흉배라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흉배 장식이 제도적으로 법문화된 것은 《경국대전經國大典》(1485)에서였다. 이전의 흉배 양식은 중국 명나라의 양식을 산발적으로 답습하며 만들어진 것이므로 양식상 중국 것과 혼돈하기 쉽다. 세종 28년(1446)에 흉배 제정에 관한 논의가 있었는데, 사치를 억제하고 검박儉朴을 위하여 보류하자는 영의정 황희의 의견이 있어 해당 제도가 실현되진 못하였다. 그 후 단종 2년(1454)에 비로소 당상관堂上官(1품에서 3품까지) 이상 문무관文武官의 흉배 격식 제도가 제정되었다. 이는 명나라 홍무체제洪武體制를 따른 것이지만 명나라의 왕국이등체강원칙王國二等遞降原則에 따라서 3품 흉배가 1품으로 정해졌다.
연산군 11년(1505)에 이르러 나라에서는 1품에서 9품까지 관료 전체의 흉배 제도를 제정하게 된다. 이때 흉배의 무늬 도안 등이 비로소 명나라 제도에서 벗어나서 국풍화國風化되기 시작했으니 특히 주목할 만하다. 조선시대 문관 1품 흉배 무늬는 공작, 2품은 운안(雲雁, 구름 속을 나는 기러기), 3품은 백한(白鷳, 꿩과에 속하는 새로서 꼬리가 길며 아름답고 우아하다)이었으며, 무관 1품과 2품은 호표(虎豹, 범과 표범), 3품은 웅비(熊羆, 곰)였다. 왕실의 대군大君은 기린, 왕자군은 백택白澤, 대사헌大司憲은 해치獬豸, 도통사는 사자獅子무늬 등이었다. 문무백관의 조복 단령포에 다는 흉배는 땅을 상징하여 네모지며 그 품계에 따라 각종 서수瑞獸, 서조瑞鳥가 수놓아졌다. 이후로는 필히 흉배를 착용하고 관가에 출입하라고 하였다 .
왕과 왕세자王世子의 곤룡포崑龍袍에 다는 흉배는 특별히 보補라 한다. 가슴·등을 포함하여 양 어깨에도 달았다.(도1) 임금의 곤룡포에 달린 보의 경우 흔히 용보龍補라 하는데, 하늘을 상징하는 둥근 원 안에 용이 트림하고 있는 모양을 수놓았다. 그 용을 단용(團龍, 둥근 용) 혹은 반용(蟠龍, 서리어 있는 용)이라 부른다. 왕보에는 오조룡五爪龍, 왕세자의 경우는 사조룡四爪龍을 수놓았다. 당고 조묘 벽화에 초당대初唐代 당 고조 이현이 용보를 착용한 모습(도2)으로 미뤄보아 왕보의 제도는 이미 당대에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도1 영조어진, 대한제국, 섬유-견,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품계에 따라 흉배 무늬 달라

흉배 무늬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면 주제가 되는 무늬와 품계는 서로 연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중기 무신 이성윤(1570-1620) 기러기흉배와 조선 중기 문신 윤효전(1563-1619) 공작흉배에서 보는 바와 같이 조선 중기 흉배에서는 사실적인 모란꽃과 하늘에 유유히 흐르는 구름이 배경인 경우가 많다. 무신 흉배의 경우 기러기 한 쌍, 문신 흉배에는 공작새 무늬를 수놓았다. 앞서 언급했듯 16세기 후반에는 구름무늬가 배경을 이루는 예가 많다. 특히 조선 중기 문신의 공작흉배에서처럼 조선조 중기 흉배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배경이 되는 무늬의 주류를 이루어온 구름무늬는 시대적 변천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조선 중기 문신 임장(1568-1619) 백한흉배를 예로 들면, 15세기 세종조 무렵의 흉배에 나타난 구름무늬는 고려 12-13세기경 상감청자에 나타나는 서운무늬瑞雲紋와 유사한 작은 구름무늬였으며, 16세기 말 선조 때부터는 큰 꽃무늬 형식으로 길게 가로지른 뭉게구름 형식이다. 조선 중기 문신 이시방(1594-1660) 기러기흉배에 수놓인 문양은 모란꽃 바탕에 번개무늬雷紋를 깔아 매우 도안화 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선 중기 무신 박유명(1582-1640)의 범(호랑이)흉배와 조선 후기 무신 쌍호흉배에서 보는 바와 같이 15, 16세기의 흉배에서는 각각의 무늬를 크게 표현한 것이 특징이다. 또 배경과 주 무늬가 거의 대칭을 이루며 흉배면의 좌우를 나누어서 다루어지고, 회화적이면서도 사실적인 표현이 주를 이룬다. 조선 영조대 문신 박문수(1691-1756) 쌍학흉배 조선 중, 후기 문신 김유(1653-1719) 쌍학흉배는 도식화 된 구름무늬를 배경으로 화면 가득히 크게 쌍운학을 배치하고 있다. 조선 후기 정조대 문신 유언호(1730-1796)의 초상에 그려진 쌍학흉배는 당시 단청의 색감처럼 화려하고 도식적인 여의구름如意雲이 돋보인다.
다음으로는 흉배 속 문양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도2 당 고조 이현초상, 초당대, 벽화

신귀神龜(거북) (도3)

신귀흉배의 주요 유물로는 조선 대원군 이하응의 신귀(거북) 흉배를 들 수 있다. 옛 문헌에서 거북은 하도낙서河圖洛書 전설로 유명하다. 중국 고대 하나라의 우왕이 홍수를 다스릴 때 낙수라는 강에서 거북이 나왔는데, 이 거북의 등에 45개의 점으로 이루어진 아홉 개의 무늬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점으로 된 무늬가 뒤에 팔괘와 정치에서 강조하는 도덕적 덕목의 아홉 가지 원칙인 홍범구주洪範九疇의 근원이 되었다고 한다. 거북은 개충介蟲(딱딱한 등껍질을 지닌 동물)의 우두머리로 여겨졌다. 등껍질은 갑옷을 상징하므로 대체로 무관에 어울린다. 옛 사람들은 거북이 주술적 효능을 지니고 있다고 믿어 껍질을 구워 갈라지는 모양을 보고 미래의 길흉을 점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사방신四方神의 하나인 현무玄武로서 북방을 수호하는 방위신으로 숭앙되기도 했으며 달의 화신, 수성, 천지 음양의 상징으로 보기도 했다. 또한 다른 동물보다 수명이 긴 생태적 속성 때문에 불사不死의 상징으로 널리 인식되었다. 거북 무늬에서는 거북이 입으로 상서로운 기운을 내뿜고 있는 모습이 많다.

(좌) 도4 백택흉배, 광복이후, 섬유-견,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우) 도5 단학문 흉배, 조선시대, 섬유,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백택白澤 (도4)

백택은 옛 상상상想像上의 신수神獸이다. 사자와 유사하게 생겼으며 사람의 말을 하고 만물의 모든 뜻을 알아내고, 유덕한 임금의 치세에 나타난다고 한다. 중국 명조 때 귀위의 복장에 부착된 백택보白澤補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고려조와 조선조에 사용된 의장기문양의 하나로서 삼각형의 깃발에 그려졌다.

도6 쌍학흉배, 조선시대, 섬유-견,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운학雲鶴 (도5, 도6)

백학은 우리 전설 속에서 봉황 다음으로 이름 높은 새이다. 학은 모든 날짐승의 우두머리로서 구름과 같이 그려지는데, 이러한 무늬를 운학이라 한다. 한 마리를 그려놓은 단학單鶴무늬도 있지만 쌍을 이룬 쌍학雙鶴무늬가 많다. 오래된 학 그림으로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볼 수 있는 승학신선도乘鶴神仙圖를 들 수 있는데, 신선이 학을 타고 날아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러한 그림은 도자기 그림이나 사찰 벽화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학은 문학文學의 상징이므로 조선 문관의 관복에 흉배로 나타난다. 쌍학흉배는 당상관 이상만 착용할 수 있었다

도7 백한흉배, 광복이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백한白鷴 (도7)

백한은 꿩과에 속하는 새로 꼬리가 길고 우아하다. 문관 3품이 백한흉배를 착용하였다. 조선 중기 문신 임장(1568-1619) 초상에 그려진 백한흉배가 대표적이다. 수컷은 등이 희며 ‘v’자 모양으로 검은 색 얼룩무늬 있고 배는 검으며 검붉은색의 긴 도가머리가 있다. 눈의 가장자리와 볏은 진빨강이며 다리는 분홍색에 며느리발톱이 크다. 부리는 파랑색이다.

웅비熊羆

맹수인 곰은 명산에 살며 겨울에는 칩거한다. 힘이 세어 무관을 상징하므로 무관 3품의 흉배에 나타난다. 단군신화에서 환인의 아들 환웅이 하늘에서 이 세상에 내려와 태백산의 신단수神檀樹 아래에서 세상을 다스릴 때 사람이 되고자 하던 곰과 호랑이에게 쑥 한줌과 마늘 스무 쪽을 주면서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말도록 하였는데, 호랑이는 이것을 못 참고, 곰은 참아내어 웅녀가 되었는데 환웅과 결혼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를 단군이라 하였다.

공작孔雀

조선 중기 문신 윤효전(1563-1619) 초상에 나타는 공작흉배를 보면 오사모烏紗帽와 흑단령黑團領을 착용하고 문관 1품관이 착용하는 공작흉배에 서대犀帶를 두른 모습이다. 흉배를 살펴보면 위쪽으로는 오색구름이 흐르고 아래에는 모란꽃을 배경으로 번개무늬가 깔려서 서상적인 분위기 속에 공작새 한 쌍이 춤을 추는 풍경이다. 공작은 꿩과에 속하는 매우 화려한 새이다. 긴 깃털이 있고 꽁지를 펴면 큰 부채 같으며 둥글고 오색이 찬란하다. 문금文禽이라고도 한다.

도8 쌍호흉배, 조선시대, 사직-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호표虎豹 (도8)

조선 중기 무신 박유명(1582-1640)의 초상화에 그려진 범(호랑이)흉배를 보면, 정사공신靖社功臣 3등에 녹훈된 당시의 관복 차림을 알 수 있다. 17세기의 전형적인 공신상 모습을 보여주는데 호랑이 흉배를 부착한 무관 초상인 점이 주목된다. 위에 물 흐르는 듯한 오색구름을 바탕으로 아래에는 화사한 모란꽃송이가 피어 있고, 그 한가운데 호랑이 한 마리가 앉아서 잔뜩 위엄을 나타내며 앞쪽을 주시하고 있는 모습이다. 호피의 줄무늬는 호랑이고 머리의 점반 무늬는 표범인 호표의 모습이다.

해치獬豸 (도9)

해치는 해태의 원말이다. 해타海駝라고도 하는데, 옳고 그름과 선악을 가릴 줄 안다고 하는 상상의 짐승이다. 모습은 사자와 비슷하나 머리 가운데 뿔 하나가 있다고 한다. 주로 궁중에 장식물로 많이 나타나는 짐승인데 중국에서는 이 짐승을 본 떠서 해태관이라 하는 법관法官의 관冠을 만들었다. 조선조에는 대사헌大司憲의 흉배에 쓰였다.

(좌) 도9 해치흉배, 광복이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우) 도10 운안흉배, 광복이후, 섬유-견,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운안 雲雁 (도10)

기러기가 수놓인 흉배는 조선 중기 무신 이성윤(1570-1620)의 초상화 등에서 볼 수 있다. 문·무관 2품이 착용하였는데, 흉배에서 구름은 산천의 기운이며 기러기는 양기陽氣를 따르는 새로서 거취의 의리를 알고 질서를 어기지 않는다는 뜻을 지닌다. 이밖에 문관의 흉배로서 연작練雀흉배, 계칙鸂鷘흉배 등이 있다.


임영주 | 한-명품미술관장

홍익대학교에서 목칠학과를 전공하고 동국대학교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 전문위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회장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