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주의 한국문양사 ㉑ 금빛보다 찬란한 소망을 아로새기다

도6 조끼,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금박 무늬에는 자손의 번영과 부귀영화, 입신양명, 백년해로 등 유교문화를 배경으로 현세의 소망을 이루고자 한 염원이 담겼다. 특히 조선시대 궁중의상에 베풀어진 금박무늬는 화려함과 장엄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글 임영주 (한-명품 미술관 관장)


옛 궁중 예복의 정수는 옷감의 아름다움과 색채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금박무늬를 통해 궁중의 지체를 구별하고 우아하고 화려한 효과를 나타내었다. 금박은 금金에 약간의 은銀을 섞어서 두드려 얇게 만든 것이다. 그것을 옷감에 무늬로 찍어내기 위해서 결이 단단한 밤나무나 대추나무 등의 나무판대기에 무늬를 새겨 만든 금박본을 이용한다. 금박판에 접착제를 바르고 옷감에 찍은 다음에 그 위에 금·은 박지나 금·은 가루를 놓고 솜방망이로 두드리면 아름답고 화사한 금박무늬가 찍혀 나온다. 금박 무늬는 운룡무늬雲龍紋·서운무늬瑞雲紋·봉황무늬鳳凰紋·만세백복무늬萬歲百福紋 등 다양하다. 금박을 찍는 옷감의 종류로는 사沙·초綃·나羅·능綾·단緞 등이 있으며 이러한 비단으로 지은 복식으로는 원삼圓衫 ·당의唐衣·치마·저고리·댕기 등이 있다.

도1 쌍영총 벽화(고구려 고분) 인물도에서 금박무늬 저고리 입은 여인의 모습

금박을 다루는 기관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조선시대에는 상의원尙衣院을 비롯하여 도다익장, 부금장, 금전지장, 니금장 등 금박을 다루는 여러 기관이 있었다고 한다. 직물에 금박을 올리는 장인은 도다익장과 부금장이다. 도다익이란 금을 찍어 무늬를 올리는 일을 말하였다. 《악학궤범樂學軌範》 권2.에는 도다익장에 대해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여기女妓 100인이 모두 단장丹粧하고 수화首花, 칠보잠七寶蠶,
금차金叉를 머리에 꽂고 보로 보로甫와 홍대紅帶를 두른다.
모두 금박의 화문을 찍는데 [印金花紋] 속칭 도다익都多益이라 한다.

도다익은 도다락都多落, 또는 도토락으로 언해되기도 하였다. 우리 전통 의상에 있어서 금은 호사스럽고 고귀함을 상징한다. 의상에 금박을 넣어 장식한 문화는 쌍영총(6세기) 벽화(도1) 등 고구려 고분벽화에 등장하는 궁중 여인들의 인물행렬도에서도 발견된다. 고려시대 문헌 속 금선직성용봉안복金線織成龍鳳鞍幞, 금은선직성계금金銀線織成罽錦, 직금의織金衣, 직금단織金段, 금선金線, 금단의金金段, 금단金段 등의 기록을 통해 금박을 비롯하여 자수, 직금, 소금, 화금, 첩금 등 금을 이용한 장식기법을 사용하였던 관영공장 중 장야서掌冶署 소속이 있었음 알 수 있다.

도2 황원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복식에 사용된 금박문

원삼은 조선초 명나라에서 들어온 장삼長衫, 즉 장배자長褙子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왕비 이하 내·외명부들의 궁중 여성의 예복 중 하나이다(도2). 원삼이란 앞깃이 둥근 데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옆이 터져 있는 것이 특징이며 무릎을 덮는 길이에 앞길은 짧고 뒷길은 길다. 앞여밈은 합임合袵이라 하여 섶이 없이 서로 맞대어진 모양인데 양 옆길이 절개되어 있다. 금박무늬는 어깨와 소매, 앞·뒷길에 찍는다. 원비·세자빈·세손빈은 소례복으로, 대군부인 이하 상궁과 관직자 부인은 대례복으로 입었다. 그 색은 직위에 따라 차이가 있었는데, 황후는 황원삼, 왕비는 홍원삼, 비빈은 자적원삼, 공주와 옹주, 사대부 반가부녀는 초록원삼을 입었다. 겨울에는 단을 입고, 여름에는 사를 사용하였다. 황원삼에는 용무늬 금박무늬를 넣은 대란大襴치마, 홍원삼에는 봉황무늬의 대란치마, 녹원삼에는 화문華紋을 넣은 대란치마를 입는다.
당의란 조선 시대 간이예복으로 평복 위에 입는 소례복小禮服의 일종이다(도3). 궁중에서는 평상복으로 입었다고 한다. 당의는 조선시대에 예禮를 갖추어야 할 때에 입는 여자용 상복常服으로, 조선 초기 명나라에서 전래된 단배자短背子가 배자 저고리로 변했다가 다시 당의와 같은 모양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당의는 당나라의 유속으로 명나라때 전래되었으므로 이 옷의 명칭도 ‘당의唐衣’라 부르게 된 것으로 여겨진다. 당의엔 좁은 소매가 달리고 길이는 무릎 정도다. 옆은 트였으며 두 앞자락이 서로 겹쳐지고, 초록색 비단 거죽에 자주색 겉고름과 안고름을 달았다. 겉고름과 안고름 등에 꽃무늬를 금박하고 박쥐(편복蝙蝠) 또는 수복壽福 등의 글자를 금직金織 또는 금박으로 새겼다. 민간에서는 직금(織金, 남빛 바탕에 은실이나 금실로 봉황과 꽃의 무늬를 섞어 짠 직물)과 부금(付金, 금박으로 문양을 찍음)이 허용되지 않았다.
부금의 위치는 무늬판에 큰 영향을 미친다. 당의에 무늬를 놓는 무늬판은 원삼용 무늬판과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의 나무판자에 무늬를 조각한 것이다. 어깨에 부금하는 무늬는 아래쪽에만 선을 둘러 앞길과 뒷길의 무늬가 서로 연결되도록 하였다. 또한 당의의 길 아래 도련의 둥근 형태에 따라 무늬판도 같게 제작하였다.
저고리와 함께 입는 여자의 하의를 치마라 한다. 옛 문헌에는 상裳 또는 군裙이라 하였는데, 사도세자의 빈嬪 혜경궁 홍씨의 《한중만록閑中漫錄》에 ‘문단文緞치마’라는 단어가 등장해 이를 치마라 일컬어 왔던 것을 알 수 있다. 조선 시대에는 평상복으로 짧은 치마·긴치마와 예복용으로 스란膝襴치마·대란大襴치마로 구분해 착용했다.
스란치마(도4)는 스란(치맛단에 금박을 박아 선을 두른 것) 단을 한 단, 대란치마는 두 단을 더한 것이다. 치마에는 석류무늬石榴紋·도화무늬桃花紋·포도동자무늬葡萄童子紋 등 각종 화훼무늬와 과실무늬果實紋를 놓아 오곡풍수五穀豊收, 부귀, 장수, 다자多子와 다남多男 등을 기원했다. 봉황무늬를 부금하여 왕가의 권위를 표시하기도 하였다.

(위) 도3 영친왕비가 착용한 당의,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도류(桃柳, 석류, 복숭아)와 꽃문양 있는 연두색 단에 수복壽福 두 글자를 부금하였다.
(아래) 도4 영친왕비가 착용했던 스란치마,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겉감 바탕은 남색에 모란문이 있는 겹치마로 스란단에는 마주보는 봉황, 구름 문양을 부금하였다

조선시대 여인 머리 장식에 쓰인 금박문

댕기는 땋은 머리끝에 드리는 천으로 만든 장식의 일종이다. 한자로는 당지唐只라 쓴다. 궁중 의식 예장용으로 떠구지(‘떠받치는 비녀’라는 뜻, 궁중에서 예복을 입을 때 어여머리 위에 얹는 나비모양 장식) 댕기는 비妃·빈嬪이 큰머리(떠구지 머리)에 사용하였던 자주빛으로 별도로 꾸미는 무늬는 없다. 도투락댕기는 큰댕기 또는 주렴珠簾이라고도 한다(도5). 예장하였을 때의 뒷댕기로 검은 자줏빛 비단으로 만든다. 보통 댕기보다 넓으며 길이는 치마 길이보다 약간 짧고 두 갈래로 되어 겉으로는 화려한 금박무늬를 베풀었다. 윗부분은 석웅황石雄黃·밀화蜜花·금패錦貝로 만든 매미 다섯 마리를 달아 두 갈래진 댕기를 연결해 주었다.
드림댕기라는 것은 혼례복에서 뒷댕기인 도투락댕기와 짝을 이루는 앞댕기이다. 다른 예복에서는 뒷댕기 없이 이 드림댕기만을 착용하는데, 검은 자줏빛 비단에 금박을 놓았다. 갈라진 양쪽 끝에는 진주·산호주 등의 장식을 하였다. 일반용 댕기는 처녀들이 장식하는 제비부리댕기에 때로는 금박을 하기도 한다.

도5 도투락댕기,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도7 왕손이 돌 때 착용하던 복건,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조끼, 쓰개 등에 두루 쓰인 금박문

그밖에 금박은 예복을 착용할 때 썼던 여성용 예모禮帽의 일종인 화관花冠이라든가 족두리에 장식되었고, 조끼에도 다양한 금박무늬가 베풀어졌다(도6).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 중에 대한제국때 이구 왕자가 착용하였던 것으로 전해지는 조끼를 보면 다양한 금박무늬 장식이 보인다. 조끼의 가장자리에는 꽃무늬 금박을 두르고 양쪽으로 수壽·복福 문자와 초화무늬, 불로초화병 무늬를 배치하였다. 그 아래에는 육매화점무늬를 두고 오른쪽에는 ‘부여수富如壽’, 왼쪽에는 ‘수여산壽如山’의 문자무늬를 부금하였다. 또 다른 조끼에는 수·복 문자 대신 ‘수복강녕壽福康寧’의 길상 문구를 부금하여 오래도록 다복하게 살라는 축원을 담았다.
복건幅巾이란 옛 풍속에서 도복道服에 갖추어서 머리에 쓰는 쓰개의 한 가지인데, 검은 헝겊으로 위는 둥글고 삐죽하게 만들어 뒤에 넓은 자락이 길게 늘어지고 양 옆에 끈이 있어서 뒤로 둘러매도록 만든 것이다(도7). 복건 혹은 흑건이라 부른다. 예전에 왕자가 돌복으로 착용하였다고 하는데, 근래에는 일반 어린이가 돌날 착용한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전해지는 복건을 보면, 정면 이마 부분에는 박쥐무늬와 초화무늬, 수복강녕의 길상문자가 금박으로 새겨지고, 그 양쪽으로 봉황무늬·화문·오호무늬五胡蘆紋가 배치되었다. 그 아래에는 수·복자 무늬를 반복하였고 뒤쪽에는 두 줄의 단쌍봉무늬團雙鳳紋을 새겨놓았다. 복건의 가장자리와 끈에는 화문과 단수무늬團壽紋·박쥐무늬·영지연하무늬靈芝蓮花紋 등 많은 길상문이 베풀어졌다.
남바위는 겨울철 방한용으로 머리에 쓰던 것으로 이마와 귀, 목덜미를 모두 덮어 써서 추위를 막는 모자의 일종이다(도8). 위에는 구멍이 뚫렸으며 앞쪽은 이마를 덮고 뒤쪽은 귀와 목과 등을 내리덮게 만든 것이다. 예전에는 남녀노소 없이 모두 착용하였다. 남바위에는 꽃무늬가 금박으로 새겨진 붉은 색의 끈을 달았는데 쓰개 부분에는 수·복 문자와 학·봉황 등의 무늬를 부금하였다. 이와 유사한 것으로 조바위가 있는데 주로 여성들이 사용하는 방한모이다. 남바위, 아얌과 비슷하다.
굴레는 아이들의 방한 또는 장식용으로 사용되었던 쓰개의 한가지이다. 돌부터 다섯 살까지 남녀 어린이가 모두 착용하였다. 여자아이들이 쓰는 굴레에는 수·복 길상문자와 더불어 박쥐, 석류, 불로초 등의 금박문을 넣어 부유하게 오래 살기를 기원했다. 그밖에도 금박무늬가 쓰여진 것으로는 귀주머니도 있다(도9). 양쪽에 귀가 나오게 된 주머니로서, 네모지게 지어서 아가리 쪽으로 절반을 세 골로 접어 만들었다. 여기에도 주로 수·복 길상문자와 박쥐무늬, 불로초가 꽂힌 화병무늬가 부금되었다.

(왼쪽부터) 도8 남바위, 광복이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 도9 귀주머니,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임영주 | 한-명품미술관장

홍익대학교에서 목칠학과를 전공하고 동국대학교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 전문위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회장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