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주의 한국문양사 ⑯ 태양 닮고 하늘 담은 , 銅鏡동경

동경은 처음에 발화도구 및 주술적인 의식기구로 발전한 것으로 추측된다.
동경에는 제작 동기, 제작 연대, 만들게 된 연유 등이 새겨진 명문이 있어 중요한 사료로 활용할 수 있으며 장수, 번영을 축원하고 상징하는 문양도 새겨져 시대의 신앙적 배경 또한 짐작해볼 수 있다.

글 임영주 (한-명품 미술관 관장)


<고려사高麗史> 세가世家 권1 태조太祖 조에는 고려 건국에 관한 설화에 얽힌 내용이 나온다.

“정명貞明 4년 3월 당나라 상인商人 왕창근王昌瑾이 시중市中에 나갔다가 어느 괴이한 거사 한 사람을 만나 그가 가지고 있는 옛 거울[古鏡]을 쌀 2말을 주고 바꿨다. 그 거울 면에 가늘게 새긴 글자가 있어 태봉泰封의 궁예弓裔에게 바쳤더니, 궁예는 거울에 적힌 명문을 풀어 오라고 하였다. 대략 읽어 보니 ‘삼수중三水中 사유하四維下 상제上帝가 아들을 진한辰漢 마한馬韓에 내려 보내어 먼저 닭을 잡고 뒤에 오리[鴨]를 칠 것이다. 사년巳年 안에 두 용이 나타나 한 용은 청목靑木 속에 몸을 감추고, 한 용은 흑금黑金 동쪽에 형상을 나타낼 것이다. 혹은 성함을 보이기도 하고 혹은 쇠함을 보이기도 하여 성하고 쇠함은 나쁜 진재塵滓를 없앨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궁예가 이를 문인文人들에게 해석하라고 하여 의미를 살펴보니 ‘송악군 사람 용龍자 이름을 가진 사람이 왕이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문인들은 궁예가 노할 것을 염려하여 거짓으로 내용을 꾸며 말했다. 그 후 예언대로 왕건王建이 왕으로 추대 받았다.”

옛날 봉건시대에는 거울을 마치 옥새玉璽처럼 하늘에서 내려준 왕권王權의 표징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고대의 청동거울은 시대에 따라 형태와 특징을 달리하여 나타난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유물을 통해 종류를 살펴보면 청동거울, 백동거울, 철제거울, 석제거울, 유리거울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인류가 최초로 거울을 만들어 사용한 시기는 아마도 청동기시대를 넘어서진 않을 것으로 추정한다. 중국 고대에는 청동수화경靑銅水火鏡이 있어서 그것으로 태양빛을 받아 쑥에 비춰 불을 일으켰다고 하니 거울은 처음에 발화도구發火道具로 시작됐으리라 추측한다. 또한 원시 사회에서는 일종의 주술적인 의식기구로 발전했을 것이다. 동경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서아시아의 수사(Susa) 유적지인 엘람(Elam)의 B.C.3000년 이전의 문화층에서 발견된 것이 있고, 코카서스 지방에서는 B.C.6∼7세기경 스키타이식 거울이 발견돼 거울의 서방 전래설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왼쪽부터) 도1 <청동오령경靑銅五鈴鏡>, 삼국시대 / 도2 <청동수엽경靑銅樹葉鏡>, 삼국시대

문화적 배경에 따라 동경의 형태와 양식 다양하게 나타나

우리나라 유물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거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청동기시대 유물이다(도1~도3). 이 거울 가운데 끈을 꿰는 꼭지[紐]가 2~3개 달렸고, 거친 줄무늬가 새겨진 이른바 ‘다뉴조문경多紐粗紋鏡’, ‘다뉴기하문경多紐幾何紋鏡’이라 불리는 것과 잔줄무늬가 새겨졌고 꼭지가 여러 개 있는 ‘다뉴세문경多紐細紋鏡’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 구리거울의 이름에 ‘다뉴’가 들어간 것은 중국식 구리거울과는 달리 거울의 뒷면에 끈을 꿰어 달아 맬 수 있게 된 꼭지가 2∼3개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로 경주 입실리와 평남 대동군 대보면 반천리의 유적에서 청동 기물과 함께 출토되었다는 기하학적인 잔줄무늬가 있는 거울, 전남 화순에서 출토된 잔줄무늬거울 등이 있다. 이러한 잔줄무늬의 거울은 서남 만주, 한국, 일본 서부에서만 발견되는 특수한 거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평남, 황해, 충남, 전남, 경남, 경북 등지에서 10여개가 발견됐으며 동경을 구워 내던 납석제 용범蠟石製鎔(거푸집) 1개가 발견되었다.
삼국시대 이후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거울은 대개 중국 한漢, 당唐, 송宋, 원元 나라 때의 영향을 계속 받아 오면서 발전했기 때문에 대개가 중국적인 문양 요소와 형식을 보여준다. 더욱이 고려 시대의 금속 공예는 신라시대의 뛰어난 전통을 이어받아 우수한 금공 기법과 주조기술鑄造技術이 매우 발전된 단계에 있었던 것을 볼 수 있다(도4).
지금까지 전해지는 거울 중에는 고려의 독자적인 무늬와 시문 기법으로 만들어진 매우 우수한 작품도 다수 남아 있다. 이는 한국 미술의 특성과 한국 금속 공예의 발전 과정상의 시대적 특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러한 고려 동경의 양식에 따른 특성과 외래문화의 영향, 그 밑바탕에 흐르는 사회 및 시대적 사조를 살펴 볼 때 고려 동경은 일찍이 중국 거울을 모형으로 하거나 모방하여 제작되었고, 나중에는 일본 청동거울의 영향을 받기도 하여 그 형태와 양식이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거울들이 화장용으로 쓰였던 것은 BC 1000년으로 소급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에는 청동으로 만든 둥근 판에 손잡이가 달린 것에 불과하였다. 그것이 다시 외국에서 전래된 영향을 받아 다양한 무늬를 넣어 꾸며지고 하나의 공예품으로 완성된 것은 중국 전국시대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궁녀들이 이를 애용했으나 본래는 의식용으로 제작됐을 것이다.

(왼쪽부터) 도3 <청동다뉴세문경靑銅多紐細紋鏡>, 청동기시대 / 도5 <청동운문경靑銅雲紋鏡>, 중국 전국시대

우리나라 동경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왕망경

중국에서는 전국시대의 동경에서 대다수가 둥근 모양으로 평면상에 투조(透彫, 맞뚫림 조각)하였거나 금은으로 상감한 문양과 채색으로 그린 채화문彩畵紋도 나타난다(도5), (도6). 전국시대 동경은 초楚 나라의 거울이 대표적이다. 진秦 시대의 거울에서는 평면적으로 무한히 전개되는 바탕 문양 위에 도철문(饕餮紋, 도깨비 문양)이나 초보적인 반용(蟠龍, 몸을 서리고 있는 용) 등 개별적인 동물문과 기하학적 무늬를 복합시킨 방법이 사용됐다. 종류로는 둥근 거울[圓鏡], 네모 거울[方鏡] 등으로 무늬를 투조한 것 등이 있다.
한대漢代에 와서는 전국 시대의 동경이 통합 정리되면서 질이 좋은 백동원경白銅圓鏡이 나타난다. 거울 면경면鏡面은 약간 볼록하고 거울 뒷면과 꼭지를 중심으로 동심원상同心圓狀을 몇 단으로 구분하여 그 안에 문양을 나타내는데, 이러한 양식은 고려 동경에서도 다소 나타난다(도7). 한식경은 시대적으로 보아서 전한시대 동경前漢鏡, 왕망시대 동경王莽鏡, 후한시대 동경後漢鏡으로 구분된다.


(왼쪽부터) 도6 <청동오산경靑銅五山鏡>, 중국 전국시대 / 도7 <청동주수경靑銅走獸鏡>, 중국 한대



우리나라 북방의 낙랑樂浪 옛 땅이라 하는 곳에서는 백동으로 만들어진 매우 아름답고 정교한 거울이 발견된 바 있다. 여기서는 용무늬, 새무늬, 동물무늬, 그리고 안쪽으로 새긴 꽃무늬가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특히 왕망의 거섭원년居攝元年(서기 6년)의 기명記銘이 있어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전한시대의 거울은 산악무늬[山岳紋], 신선무늬, 반리무늬[蟠螭紋]와 고식古式 거울과 방격규뉴경方格規鏡(뉴 주위에 방격 무늬를 두르고, 그 사방에 T자 모양, 밖 둘레의 가까운 사방에 L자 모양, 그 사이에 V자 모양을 배치한 기하학적 도형이 장식되었음), 동심원상으로 거울 후면을 구분하고 명문을 배치한 세밀한 동경, 8개의 둥근 꽃잎모양을 배치하고 간소한 문양을 넣은 것 등을 볼 수 있다. 이러한 T자, L자, V자 모양의 거울은 우리나라 삼국 시대의 고분 출토품 중에서 간혹 찾아볼 수 있다. 중국 전래품으로도 볼 수 있으며, 고려경에서도 간혹 이러한 형식을 모방한 거울이 있다.
우리나라 동경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왕망경이라 할 수 있는데, 왕망경에는 청룡·백호·주작·현무 등 네 동물 형상을 둘러 나타낸 이른바 수대경獸帶鏡이라 부르는 청동거울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후한 시대의 거울에서는 사신문 대신에 신수神獸, 신선을 도드라지게 부조浮彫한 거울이 있다. 수당 시대에는 앞 시대의 한나라 때 거울에서 기본을 이루었으나 문양은 서방西方에서 유래된 화려하고 생생한 분위기가 넘치는 것으로 발전되고 있고, 그 영향은 통일신라시대부터 시작하여 고려시대 중기 미술의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수나라 때는 짧은 기간이었으나 서쪽으로는 아무르(Amur) 강 유역에까지 세력이 이어졌고, 남쪽으로는 인도차이나(Indo-China) 반도의 숲 마을을 토벌하고 멀리 적토국赤土國까지 손을 뻗쳐 해외 문물의 교류가 왕성하였다. 당나라 왕조는 이러한 문화를 이어받아 적극적인 정책으로 서역西域을 통한 동서 문화의 교류를 이룩했다. 이러한 경로로 동경에는 중국 남북조南北朝 시대에 불교 미술을 따라 서역에서 전래된 포도당초문이라든가 보상화문寶相華紋 또는 단화문(團華紋, 원 안에 문양을 넣은 것, 서방 전래의 팔메트를 배치한 것)이 사신四神, 해수海獸 등과 결합돼 매우 화려한 문양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도8). 당나라 때 거울은 원형, 방형, 8능형(八稜形, 여덟잎 꽃모양), 6화형, 8화형 등 다양한 형식을 볼 수 있다
(도9). 이러한 흐름은 고려경에서도 많이 나타난다. 당시 융성하였던 불교 사상과 이를 배경으로 한 귀족 사회의 번영에서 많은 공예품의 수요가 급증하여 동경도 상당수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왼쪽부터) 도8 <청동사신경靑銅四神鏡>, 중국 수대/ 도9 <월궁고사경月宮故事鏡>, 중국 당대
도10 <보리수문경菩提樹紋鏡>, 고려시대



(왼쪽부터) 도11 <봉문동경鳳紋銅鏡>, 고려시대 / 도12 <위로수금눈동경葦蘆水禽紋銅鏡>, 고려시대
도13 <동제 쌍봉 무늬 네모 거울>, 고려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시대부터 한국적인 미술양식 보여

우리나라에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은 전혀 나타나지 않고, 당나라에서 전래된 것으로 보이는 몇 점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이해할 수 없다. 고려시대에 와서는 그 유품이 적지 않게 남아 있어서 비록 외래문화의 영향은 많이 보이는데, 시대적인 특징이 뚜렷하고 이른바 한국적인 특성의 미술 양식이 이로부터 시작한다(도10~도13). 동경에는 간혹 제작 동기라든가 제작 연대 또는 만들게 된 연유 등이 새겨진 명문이 있어 중요한 사료로 활용되기도 한다. 장수, 번영, 태평, 화목을 축원하고 상징하는 문양도 새겨져 그 시대의 신앙적 배경 또한 짐작해볼 수 있다. 한나라 때 거울에서는 ‘누구의 장수와 번영을 위하여’라는 축원문을 새겨 넣은 것과 어느 유명한 고대 설화와 전설 속의 인물이나 시구를 새겨 넣은 것도 있다. 동경은 특히 불교에서 사용되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데, 실로 동경에 나타나는 문양의 요소를 살펴보면 불교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도14). 당시의 도참사상圖讒思想과도 많은 연관성을 갖는다.
<고려도경高麗圖經>에서는 동경은 금속 세공에 속하여 장야서掌冶署의 단야서鍛冶署에서 관장하였다고 한다. <고려사> 권77 지志31백관百官 2장야서조掌冶署條에 보면, 여기에서는 거울 만드는 장인을 비롯하여 은장銀匠, 생철장生鐵匠, 백동장白銅匠 등이 예속되어 나라에 필요한 각종 기물을 만들어냈다고 기록돼 있다. 이 관서의 역원役員으로는 영令 2명(종6품), 승丞 2명(정8품), 사史 4명, 기관記官 3명, 산사算士 1명 등이 있어 장인을 다스렸다고 한다.
고려 동경은 그 형태에 있어 원형이 가장 많고, 단뉴(꼭지가 1개 달린 것) 형식이 주류를 이룬다. 간혹 쌍으로 달린 것, 세 개가 달린 것도 있으나 극히 드물다. 원형 이외에도 정방형, 장방형, 8화형八花形, 8능형, 8각형, 6화형, 4능형, 보주모양, 보운모양[寶雲形], 정형[鼎形, 중국 고대 솥모양], 종형鐘形, 병모양[甁形] 등의 다양한 모양이 있으며 그것은 걸어 둘 수 있게 만들어진 현경縣鏡과 손잡이가 달린 병경柄鏡으로 구분된다.
여기에 나타나는 무늬는 대개 동물문, 식물문, 산경문, 기하학문, 문자문 계통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동물무늬로는 사신四神(사수四獸라고도 함)을 비롯하여 용, 학, 봉황, 잉어, 앵무 등이 있고 식물무늬에는 국화, 파초, 갈대, 포도, 초화 및 당초 등이 있다. 인물문, 산경문으로는 옛 인물 이야기와 상상적인 세계를 나타낸 것으로서 허유세이경許由洗耳鏡, 불상거울, 선인거울仙人鏡 등이 있다.


(왼쪽부터) 도14 <음각관음보살문경감陰刻觀音菩薩紋鏡鑑>, 고려시대
도15 <철제은입사동경걸이[鐵製銀入絲鏡臺]>, 조선시대



문자문양계 거울에는 오행사상五行思想, 도교사상과 연관되는 것으로 수귀부락모사壽貴富樂母事, 수산복해壽山福海, 천왕일월天王日月, 위선최락爲善最樂, 복과 장수, 부귀를 염원하는 뜻에서 가상귀부家常貴富, 천추만세千秋萬歲, 장명귀부長命貴富, 부귀장명富貴長命, 수귀부壽貴富 등의 종교적 사유를 표현한다. 고려경에 새겨진 명문을 살펴보면 바깥 구역에 관명官名 혹은 가명家名의 명문구절名文句節을 넣어 새긴 것이 있는데 고려국조高麗國造, 사경공가四京工家, 사경승적삭조四京僧精朔造, 동경순원장東京巡院匠 등을 볼 수 있다.

임영주 | 한-명품미술관장

홍익대학교에서 목칠학과를 전공하고 동국대학교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 전문위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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