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주의 한국문양사 ⑮ 그리스와 이어진 한반도 금속문화

우리나라 금속조각의 역사는 기원전 5~6세기 경 시베리아-오르도스-만주로 이어지는 청동기문화로부터 시작된다. 청동기시대에는 철기시대에 앞서 이미 구리와 주석을 합금하여 청동기를 주조하는 기술이 이집트 그리스 등 지중해문화와 황하문화권으로부터 발생하여 전 세계적으로 파급된 상황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베리아 남단의 오르도스와 미누신스크의 청동기 문화가 북만주 지방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글 임영주 (한-명품 미술관 관장)


북방미술의 영향을 엿볼 수 있는 청동기시대 금속공예

남러시아 코카서스 지역의 기마민족이었던 스키타이는 기원전 6세기경부터 독특한 금속문화를 형성하고 있었다. 스키타이는 토나카이(tonakai 순록)나 말 따위의 동물 모티프를 금·은· 청동 따위의 재료로 주금鑄金하거나 조금彫金하고, 멀리 아시리아나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받은 복합적인 동물 형상의 도형을 창조하였다.
국내 청동기시대 동물조각의 대표적인 유물로는 경북 영천 금호면 어은동에서 발견된 청동혁대장식虎形帶鉤(도1)을 들 수 있다. 독특한 호랑이 형상과 말 형상이 새겨진 유물에서 앞서 언급한 북방미술의 영향을 감지할 수 있다.
중국 북방의 은殷나라 주周나라 때 이미 고도의 청동기 문화를 형성하고 있었고 그 맥을 이은 전국시대와 한漢나라의 금속 문화는 마침 서역을 통해 전해진 페르시아나 그리스와 교류를 통하여 새로운 금속문화로 발전할 수 있었다. 북방문화의 철기문화가 도래한 시기 가야伽耶 문화권에서 출토된 철제은상감고리자루큰칼(도2)은 부족국가로서의 위엄을 보여준다.

(왼쪽) 도1 <호랑이형상 청동제혁대장식>, 초기철기시대 (기원전 3세기경
(오른쪽) 도2 철제은상감고리자루큰칼에 새겨진 훼룡문, 신라시대 (5세기)

페르시아·스키타이 문화 흔적이 발견되는 삼국시대 금속공예

신라의 금속공예기술은 한국적인 원형 그대로의 전통을 지녔다. 아울러 4세기경에는 불교문화가 들어오면서 인도나 중동 등지의 불교기물이 들어오고 우리나라에서도 성행되어 금속조각 기술이 급속히 발전하게 되었다. 삼국시대의 금속제품으로 관冠과 관식冠飾을 비롯하여 귀걸이, 팔찌, 반지 관대冠帶, 요패腰佩, 목걸이, 보검寶劍 등과 마구馬具와 관련된 금속장식등과 불상佛象을 비롯하여 향로, 사리장치, 금은세공품 등 우수한 금속조각이 전해진다(도3).
삼국시대 큰칼太刀 · 손잡이칼刀子 등의 패검佩劒에서는 다채롭고 풍부한 의장 요소를 찾아 볼 수 있다. 이러한 패도류는 실제로 전장戰場에서 쓰이는 무기와는 달리 순전히 장식용 또는 의식에 쓰이던 의장용儀仗用의 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의장 문양에 대해서 특기할 만한 것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왼쪽) 도3 <은제타출 귀갑·인물·동물문배> 신라시대 5세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 (오른쪽) 도3-1 도3 부분



도4 <경주 계림로 보검>, 신라시대,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보물 제635호



경주 미추왕릉 지구의 계림로 14호분에서 출토된 보검(도4)은 1973년 각종 마구류와 금제 귀면 장식, 청동 용기 등 일괄 유물과 함께 출토된 것이다. 지금까지 삼국시대의 고분에서 환두태도 등 여러 종류의 칼이 출토되었으나, 이 보검은 형태와 의장 문양이 매우 이채롭다. 여기에 나타나는 누금세공기법鏤金細工技法 등도 전례 없이 뛰어나다. 이 칼은 피장자被葬者의 허리 부분에서 출토되었다. 철로 만든 칼과 칼집은 부식되어 없어지고, 금제 장식만 화려하게 남아 있다. 칼의 자루 끝 부분은 마치 골무 형태로 씌운 듯하며, 중앙에 둥근 홍마노紅瑪瑙를 상감하고 둘레에 S자형 연속 파상문이 금사로 장식되었다. 여백에는 홍마노를 장식하였고, 그 외의 부분에는 누금 장식으로 꾸몄다. 자루부분과 검신劒身 부분에는 덩굴처럼 홍마노를 늘어놓고, 그 주위를 금립金粒(금방울)으로 감쌌다. 나머지 것은 칼집에 속하는 장식인데, 중앙에 달린 넙적한 장식판에는 장방형의 구간을 짓고, 3개의 원에 둥근 파형 무늬를 넣었으며 다시 이 속에 작은 원형 장식을 했다. 이 파형 무늬 둘레의 공간에도 홍마노를 감장嵌裝(음각해서 넣어 장식하는 것)했다. 칼의 끝 부분은 사다리꼴 모양으로 한 쪽 끝에 반원형의 장식판이 있는데, 사다리꼴 모양은 3개의 구획을 지어 홍마노를 감장하였고, 기타 수법은 동일하다. 이러한 보검 의장 요소나 세공 기법은 신라시대의 유물에서 처음 나타나는 것이며, 페르시아 계통의 미술 요소와 관련 있다고 생각된다.
가야 지방인 고령 고어동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투조안구金銅透彫鞍具 전륜과 후륜의(그림5) 투작 문양은 스키타이 미술의 영향을 받았음을 말해준다. 전후륜前後輪의 문양이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안구의 중앙부를 중심으로 좌우 상칭을 이룬 문양은 언뜻 보아서 마치 고구려 환문총의 괴운문대怪雲紋帶와 유사한 양식을 보여주는데 이 역시 스키타이적인 문화요소를 말해준다. 여기에 투작된 무늬에서는 도식화된 용두龍頭와 S자 모양으로 구부러진 목에서 꼬리에 이르는 곡선, 톱니무늬鋸齒紋의 발톱이 표현된 사지四肢가 완연하게 나타난 6마리의 용이 중심을 향하여 안배되었다. 좌우 양쪽에 모두 12마리의 용형이 투조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사이사이를 유운문으로 연결시켰다. 여기에서는 용각龍角을 비롯하여 용두와 네 다리의 톱니모양이 중국 한漢과 고구려 벽화로 이어지는 용 문양 형식과 거의 비슷하게 나타난다.
근년에 부여 어느 절터에서 발견된 이른바 백제대향로百濟大香爐(도6)는 백제시대 금공미술의 정수라 할 만하다. 이 향로의 외형은 전설 속에서 신선이 산다는 박산博山의 형태에 《산해경山海經》에서 기록된 기이한 짐승들과 기화요초琪花瑤草, 그 사이사이에 조각된 주악 신선들의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향로 뚜껑 정수리에 조각된 봉황의 아름다운 자태는 백제 세공미를 여실히 보여준다.


도6 <백제대향로>, 백제시대,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국보 제287호


서역미술 및 불교미술의 정취가 깃든 통일신라시대 금속공예

통일신라시대의 미술은 삼국시대 미술에서의 고졸古拙함에서 탈출하여, 보다 세련된 아름다움을 선보인다. 신라 궁중미술의 한 예로, 경주 안압지에서 출토된 금동당초문등촉가위(도7)는 당초문의 유연한 곡선, 내면에 새겨 베풀어진 당초문, 그 사이에 새겨진 어안문魚眼紋(혹은 어자문魚子紋이라 한다)에서 그리스미술부터 페르시아미술까지 이어지는 서역미술의 정취를 엿보게 한다. 이 가위는 등잔불을 끌 때 심지를 자르는 데 쓰였으며, 심지의 불똥이 떨어지지 않도록 고안된 것이다. 가윗날 부분에 반원통형 모양의 판이 붙어있어 서로 맞물렸을 때 원통 모양이 된다. 이 가위의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사실 용도보다는 손잡이의 의장 양식이다. 손잡이의 형태는 인동 당초문의 덩굴 모양을 따라 만들어졌는데, 내부에는 유려한 당초문이 모각毛刻(머리카락처럼 가늘게 조각된 것)되었고, 당초문 이외의 나머지 바탕 면에는 이른바 어안문魚眼紋이 새겨졌다. 어안문 혹은 어자문 기법이란 작은 원권圓圈을 잔잔하게 새겨서 장식하는 독특한 기법인데, 끝이 뾰족하게 원통형으로 새긴 첨정(尖釘뾰족한 정)을 두드려 새기는 기법이다. 이러한 세공 기법은 페르시아와 같은 서역미술의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준다. 중국에서는 당대唐代에 유행했고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 이후에 성행되었다. 고려 시대 금동품에도 많이 쓰였다. 이러한 시문 기법과 문양은 특히 불교 공예에서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그 기법이 불교 미술의 유입과 함께 전래 되었다고 생각된다.

(왼쪽) 도7 <경주안압지출토 등촉심지 가위鋏> 8세기,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오른쪽 위) 도8 <은제봉황장식연화형주자 및 승반> 고려시대 (11세기), 보스턴박물관 소장
(오른쪽 아래) 도11 <은입사 화로 및 수로>, 조선시대 (19세기)

호화롭고 정교한 고려시대 금속공예

고려시대의 금속공예는 삼국시대 조각예술이 그대로 전해진 듯하다. 특히 고려시대 금속조각품 중 대표적인 유물로, 미국 보스톤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은제주전자와 승반(도8)을 들 수 있다. 몸체는 대나무를 옆으로 연결한 듯 표면에 굴곡을 이루었고, 목과 손잡이와 뚜껑꼭지 등이 균형을 이룬다. 손잡이와 꼭지에는 대나무 마디를 새겼고 뚜껑에는 복련伏蓮(연꽃잎이 아래로 향한 모양)과 앙련仰蓮(연꽃잎이 위로 향한 모양)이 호화롭게 3단으로 육각肉刻되거나 오려붙여진 모양이다. 맨 꼭대기의 손잡이에는 봉황이 조각됐다. 이 작은 조각품은 상상력을 초월할 만큼 놀라운 조각솜씨를 보여준다. 몸에 음각 꽃무늬花紋를 베풀고 주전자의 몸체와 같이 굴곡을 이루며 입상笠狀도 몸의 굴곡을 따라 꽃모양으로 되었다.

(왼쪽) 도9 <철제은입사 철퇴> 조선시대 (19세기),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보물 제1444호
(오른쪽) 도10 <철제은입사인참사검·삼인검> 조선시대 (19세기)

친근하면서도 품위 있는 조선시대 금속공예

조선시대에 와서는 불교가 쇠퇴하고 예술인과 장인에 대한 천시사상이 만연해져 금옥조각예술문화가 상당히 쇠퇴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중과 사대부계층의 기호에 맞춘 자수품, 각종 가구 문화가 발달했고 철제은입사기법 등이 발전하여 민예적인 금속공예품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는 금속공예를 담당하는 국가기관도 있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 공전에 도련장擣鍊匠·은장銀匠·금박장金箔匠·입사장入絲匠·사금장絲金匠·두석장豆錫匠·주장鑄匠·유장鍮匠·침장針匠·경장鏡匠 등의 명칭이 등장하여 당시 다양한 공장이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 금속공예의 재료로 주로 사용되는 원소는 백금·금·은·구리·쇠·주석·납·아연·알미늄 등 수십 종에 불과하다. 금속공예에 주어지는 주된 기술은 금속을 열로 융해하고 그것을 구하는 반대의 주형鑄型에 들어붓고 냉각시켜 기물모양의 반대 형태로 굳혀서 만드는 주조鑄造와 금속의 전연성展延性을 이용하여서 쇠망치로 때려 늘리거나 구부려 성형하는 단금鍛金과 금속의 표면을 쇠끌로 새기거나 구멍을 뚫거나 요철凹凸을 만들거나 오목한 부분에 다른 금속을 상안象眼(상감象嵌)하여 표면을 장식하는 조금기법彫金技法으로 대별할 수 있다.
조선 왕궁에서 전해오는 독특한 유물인 철제은입사귀면문철퇴(도9)는 도둑이나 귀신을 제압하는 위력을 지닌 의장용 병기이다. 여기에 베풀어진 무늬만 보아도 매우 위압적이면서도 해학적諧謔的이다. 짧은 자루 끝에 무거운 쇳덩어리를 달아서 그 무게로 적에게 타격을 가하는 무기이다. 손잡이와 몽둥이 끝에는 섬세한 은입사 기법으로 화문花紋과 귀면鬼面을 새겨 넣었다. 이 귀면은 아마도 우리 고대 전설로 전하는 치우천황蚩尤天皇의 형상을 의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궁중 보물인 인참사검과 삼인검(도10)은 ‘악한 기운을 끊고 제앙을 막는다’는 의미를 지닌 벽사용 궁중병기이다. 호랑이를 뜻하는 인월寅月·인일寅日·인시寅時 에 만들어졌다는 의미를 지녔다. 검의 몸체 한쪽에는 ‘사인참사검四寅斬蛇劍’이라 은입사기법으로 새겼고 다른 한쪽에는 북두칠성北斗七星을 금선으로 입사하였다.
조선시대의 민속공예품으로서 매우 정겹고 친근하면서도 사대부가의 정서를 물씬 풍기는 철제은입사 화로火爐·수로手爐(손화로) 등을 들 수 있다(도11). 소박하면서도 근엄한 자태가 조선조 때의 선비문화를 반영한다고 하겠다.

임영주 | 한-명품미술관장


홍익대학교에서 목칠학과를 전공하고 동국대학교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 전문위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회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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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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