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주의 한국문양사 ⑭ 온 우주 수호하는 열두 신장

본래 십이지상은 중국에서 유래된 도교사상에서 나타났지만, 후에 불교적인 미술 양식과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 십이지상은 중국 부장 제도에서 영향을 받았으나 갑옷을 입은 신장상이나 춤을 추는 십이지상 도상은 신라의 순수 창작물이라 하겠다. 우리나라에서 십이지상 둘레돌을 능묘 주위에 둘러 세우는 형식은 신라에서 처음으로 나타났으며 이후 고려시대 고분벽화, 동경, 불탑, 조선시대 무속화 등으로 이어진다.

글 임영주 (한-명품 미술관 관장)


동·서양을 막론하고 미래를 향한 호기심은 대단했다. 이러한 호기심은 모든 자연 현상부터 우주의 운행에 이르기까지 여러 방면에서의 연구나 상상으로 이어졌다. 아라비아, 바빌로니아, 인도 등지에서는 아주 오랜 옛날부터 별에게 신비한 힘이 있다고 하여 존숭하는 신앙과 의례가 행하여졌다. 서양에서는 일찍이 천구를 여러 개의 구역으로 구분해놓고 여기에 신, 동물, 또는 어떤 사물 등을 대치시켜 미래를 점치는 점성술이 생겨났다. 이러한 점성술로부터 갈라티아(Galatia)의 전설이라든가 그리스 로마신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일본 등 동양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고대로부터 십이지라 하여 각종 동물을 상징화, 신격화하였다.
동양 고대 분묘나 부장품 가운데 나타나는 사신도에서 청룡, 백호, 주작, 현무 등 4가지 동물형상으로 4방위와 시간, 사계절 등을 상징화한 것은 그러한 점성술과 관련이 깊다. 천문학의 시초는 점성과 관계가 있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일식, 월식, 살별, 신성, 별똥 등의 현상과 땅 위에서 일어나는 대사건이 서로 관련됐다고 믿었다. 하늘의 별로 점치는 점성술이 생겨나자 정치나, 군사의 의례, 농사에 있어서의 길흉 등은 점성술로 알아보았다. 이는 천변 점성술이라 하여 고대 중국에서도 성행한 것으로 십이지나 사신 등은 모두 그러한 사상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십이간지를 정리한 사람은 중국의 황제 때 대요라고 하는데, 오행에 의해 간지를 만들어서 갑甲, 을乙, 병丙, 정丁, 무戊, 기己, 경庚, 신辛, 임壬, 계癸를 일명으로 하여 십간 또는 천간이라 하고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는 월명으로 하여 십이지라 했다.


(왼쪽) 도2 <십이지문동경>, 수대隋代(6세기) / (오른쪽) 도3 <십이지문동경>, 고려시대(10세기)


중국 도교사상에서 유래된 십이지상, 후에 불교 미술과 결합

이 십이지를 오행에 대입해 보면 갑을과 인묘는 목木, 병정과 사오는 화火, 경신과 신유는 금金, 임계와 해자는 수水, 무기와 진술축미는 토土가 된다. 오행의 방위 또한 십이지와 연관된다. 자-정북, 묘-정동, 오-정남, 유-정서를 뜻한다. 따라서 십이지상은 각 방위를 담당하는 짐승의 형상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른바 수인신상이라 하여 얼굴은 쥐, 소, 범,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 등의 형상이며 몸은 사람의 형태이다. 이러한 형상은 고대 왕가의 능묘 둘레에 세운 호석이라든가 고분벽화에 그려지고, 통일신라시대 및 고려시대 불탑 등에도 조각돼 있다. 《대방등대집경》 제23권에 의하면 12수란 남섬부주의 사방 여러 섬에 살고 있다는 12종의 짐승을 말한다. 이들은 각각 보살의 화신으로서 1년 12달에 걸쳐 서로 교대하면서 밤낮으로 사람이 사는 세상과 하늘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교화 활동을 펼친다고 한다. 이처럼 열두 짐승을 신격화시킨 것은 중국 은나라, 의인화하여 조각상으로 나타낸 것은 당나라 때로 추정한다. 중국 장사시 남문외 황토령에 위치한 토갱수혈전실묘에서 발견된 십이지석 조각이 만들어진 시기는 당나라가 건국된 지 약 100년
후로 신라의 성덕왕대부터 경덕왕대에 이르는 8세기경의 통일 신라 초기에 해당된다. 이때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십이지상이 능묘(陵墓, 임금과 왕비의 무덤)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예로 경주 김유신묘에서의 십이지상 호석과 벽화에 그려진 예로 신덕왕릉 무덤현실의 그림을 들 수 있다.
분묘(墳墓, 송장이나 유골을 땅에 묻어 놓은 곳)에 나타나는 십이지상은 평복이나 무장을 한 무복 차림의 형상이다. 대개 무기를 오른손에 쥐고 있어 무덤의 주인공을 수호하기 위해 부장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이러한 자세는 불교에서의 사천왕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김유신묘에 등장한 십이지상은 중국 당대의 십이지 도상과 마찬가지로 무기를 들지 않은 평복 차림으로 표현됐다.
본래 십이지상은 중국에서 유래된 도교사상에서 나타났지만, 후에 불교적인 미술 양식과 결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 십이지상은 중국의 명기(明器, 무덤에 부장되었던 기물) 등의 부장 제도에서 영향을 받았으나 갑옷을 입은 신장상이나 춤을 추는 십이지상 도상은 신라의 순수 창작물이라 하겠다. 표현 양식 등이 불교적인 것으로 보아 중국의 십이지상과는 다소 다른 관념에서 창안되었기 때문이다. 신라시대 고분에서 발견된 십이지상은 중국 당나라 능묘에서 공례하는 자세의 십이지상에 비해 동적으로 표현돼 수호신으로서의 성격이 부각되고, 위엄과 위세가 강조됐다. 같은 시기에 2종의 양식을 나타낸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도4 <십이지신도>, 조선시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시대에 따라 십이지상도 계속 변화해

우리나라에서 십이지상 둘레돌을 능묘 주위에 둘러 세우는 형식은 신라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통일 신라기 능묘에 나타난 십이지상 둘레돌은 크게 환조(둥글게 입체적으로 조각한 것)와 부조(도드러지게 입체적으로 조각한 것) 두 가지 형식으로 분류할 수 있다. 수수인신상(머리는 동물형상이고 몸체는 사람의 형상)에서는 몸은 무인복과 평복차림의 두 가지 모습이다. 이러한 특성은 고려시대까지 이어지며 고려시대 이후 고분벽화, 동경, 불탑 등에서 더욱 다양한 양상을 관찰할 수 있다.
고분벽화에서는 문관상의 인신상이 등장하고, 관모에 십이지가 장식된 형식이 보인다. 관모 위에 동물의 두상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독특한 형식인데, 이러한 것은 개풍군 수락암동의 석실분에서 볼 수 있다. 석실분에는 회칠을 한 무덤 벽면에 성신도(별자리 그림)와 십이지상이 그려졌다. 통일신라시대에 내려와서는 몸 전체가 동물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의상을 걸치고 춤추는 형상이라든가 문관상 또는 이러한 형상을 혼성시킨 탈춤도 나타나게 된다.
통일신라시대의 십이지상을 형식면에서 살펴보면 무복상과 평복상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자세로 분류해보면 좌상과 입상, 그리고 도무상으로 이른바 수무족도(손을 흔들며 춤을 추는)하는 형상 세 가지 형식이 있다. 좌상의 형상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납석제 오상(말 형상)과 사상(뱀 형상)이 있다. 능의 주위에 나타나는 십이지상은 모두 입상이다. 춤추는 형상은 주로 탑과 석등에서 나타나는데, 대표적인 양식은 경북 경주시 월성군 감산사지에서 발견된 수미단교리의 석등기단, 무장사 아미타여래상사적비 및 귀부(비석을 등에 얹은 돌거북)의 장방형 비좌 등에서 볼 수 있다. 조선시대 말엽에는 동물의 전신에 의복을 입힌 형상이 무속화로 나타나고, 불교 행사에서도 이러한 십이지상이 쓰였다. 이렇듯, 십이지상도 시대에 따라 변화를 거듭했다. 각 시대의 유교, 불교, 도교 등 각 종교들의 성쇠가 여기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왼쪽) 도5 김요신묘에서 발견된 <곱돌제십이지돼지상>,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오른쪽) 도6 <성덕왕릉 십이지상>, 통일신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능묘부터 사찰까지

우리나라에서 십이지상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경주 김유신묘(경주시 충효동)와 괘릉에서 출토된 유물이다. 이어서 효소왕릉, 성덕왕릉, 신문왕릉, 그리고 흥덕왕대까지 등장해오다 이후 일시 단절되었지만 고려시대에는 고분 벽화에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능묘 주위에 둘려진 십이지상 조각은 괘릉 등에서와 같이 호석 앞면에 직접 조각된 것이 있고, 성덕왕릉에서의 유물처럼 호석과 십이지상석이 따로 설치된 것도 있다. 후자의 경우 호석이 넘어가지 않도록 삼각형의 받침석을 받치고, 그 사이에 따로 환조(한 덩어리의 재료에서 물체의 모양 전부를 조각해 내는 일)한 십이지상석을 세웠다.


① 김유신묘 십이지상
김유신묘 십이지상(도5)은 평면 부조 방식으로 작업되었지만, 조각 솜씨가 매우 완숙한 경지에 있고 자태가 유려하여 통일 신라기의 조각 중에서도 뛰어난 작품이라 하겠다. 머리형상은 동물의 측면 형상으로 실감나게 묘사되었고 신체의 경우 사람의 형상이 거의 정면의 모습으로 표현됐다. 이러한 반측면적인 조각 형상은 고대 그리스 조각의 표현법이다. 신체에 걸친 의상을 표현한 방식도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주름이나 천의에서의 양식과 비슷하다. 신체의 비례도 매우 우수하다.


② 신문왕릉 십이지상
경주시 구황리에 위치한 신문왕릉의 십이지상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지금은 망덕사 동편에 왕릉지가 있어 신문왕릉이라 불리어지고 있으나,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기록으로 본다면 이 왕릉은 효소왕릉이라는 주장도 있다. 신문왕릉지는 황실의 사찰로 알려진 황복사지의 근처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황복사지에는 금당지(법당이 있는 자리)로 생각되는 건물 기단부에서 십이지상 조각이 무질서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신문왕릉 십이지 호석으로 추정되는 조각물은 김유신묘라 전하는 왕릉이나 흥덕왕릉 등의 호석보다 훨씬 완전하고, 우수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새겨진 십이지상은 평복 차림의 측면 입상인데, 수두의 표현이 김유신묘 십이지상과 비슷하고 몸체의 의상도 흡사한 양식이다. 모두 오른쪽을 바라보며 서있는 이 형상들은 각기 오른손에 도끼와 보검 등의 무기류를 수직으로 들고 있으며 왼손에도 여의주 또는 어떤 불구를 들고 있다. 옷자락의 부드러운 선이나 옷매무새 등이 아주 정연하고 조각 솜씨도 뛰어나다.


③ 성덕왕릉 십이지상
성덕왕릉 호석의 구조는 독립된 십이지상이 호석 사이에 배치돼 매우 독특한 배열을 이루고 있다. 이 무덤에는 또한 2개의 문인석과 4마리의 석사자가 있고, 정남방에는 비석대인 귀부(龜趺,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가 있는 것을 보아 통일신라시대에 있어서의 획기적인 왕릉 형식을 취하고 있어 흥미롭다. 여기의 십이지상은 오상을 정남에 두고 일정한 간격으로 둘렀다. 이 십이지상들은 원숭이 형상신상과 닭 형상만이 완전하게 남아 있는데, 특히 조형미가 뛰어나고 당당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머리 부분에 비해 몸체가 풍성하고, 목은 거의 없다고 할 정도로 체구가 건장하다(도6).


(왼쪽) 도7-1 경북경주 신라 경덕왕릉 십이지상 (말) Ⓒ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도7-2 경북경주 신라 경덕왕릉 십이지상 (뱀) Ⓒ 국립중앙박물관



④ 경덕왕릉 십이지상
경덕왕릉의 십이지상들도 역시 사천왕상의 복장을 하고 있다. 갑주를 복잡하게 표현한 것과 강한 부조가 특히 그러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신체의 표현, 갑주에 나타나는 문양은 형식화되고 조잡한 느낌도 있다. 전체적으로 네모난 방형석판의 내부에 구획된 곽에 꽉 차게 몸을 맞추어 넣으려는 의도가 보인다. 십이지상은 저마다의 무기를 손에 쥐고 있다. 양 형상은 양 손으로 칼을 잡았다. 칼은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 부분으로 대각선으로 세우고 있고, 얼굴은 약간 반측면이 되게 왼쪽으로 돌리고 있다. 말 형상은 오른손으로 긴 칼의 손잡이를 잡았는데, 칼끝은 오른발 옆으로 내리고, 왼손은 어깨부분으로 올리고 있다. 얼굴을 정면으로 두고 있는 것은 다른 십이지상의 말 형상과 같다. 양발 밑에는 천의 자락이 나부끼며 위를 향하고 있다(도7-1). 뱀 형상은 오른손에 여의봉으로 보이는 무기를 잡았는데, 그 여의봉의 하단이 허리춤에 끼워져 있는 모습이다. 왼손은 주먹을 불끈 쥐고 복부 앞에 놓여 있다(도7-2).


⑤ 능지탑 십이지상
능지탑의 십이지상의 말 형상은 거의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이지만, 그 밖에는 대체로 측면형을 보이고 있다. 갑옷에 있는 갑 무늬의 표현이나 형상들의 표정이 매우 강렬한 것과, 무기를 들고 있는 자세가 비교적 리얼하게 표현된 것은 사천왕상의 형식과 비슷하다. 신상이 삼지창을 빗겨 쥔 모습이나 손에 화염형 보주가 들려 있는 모습이 그 예다. 역시 경덕왕릉의 것과 사각곽에 꽉 차게 조식한 것으로, 천의 자락을 표현도 매우 상징적이다.


(왼쪽) 도8-1 경북경주 구정리 방형분 십이지상 (뱀) Ⓒ 국립중앙박물관
(오른쪽) 도8-2 경북경주 구정리 방형분 십이지상 (호랑이) Ⓒ 국립중앙박물관



⑥ 구정리 방형분 십이지상
구정리 방형분의 십이지상의 경우 호석 자체가 작아서 사각곽 안에 새겨진 신상이 짤막하고 짜임새있게 제작되었으나 다른 왕릉의 십이지상에 비해 웅대한 맛은 적다. 신장은 짧게 표현된 반면 몸체의 폭은 넓어서 몸집에 비해 머리가 너무 크게 표현된 점도 특징적이다. 몸에는 신장의 갑주가 세세하게 묘사되었고, 옷자락이나 천의 표현도 대체로 충실하게 되어 있으나 너무 작은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복잡한 감을 준다(도8-1), (도8-2).

임영주 | 한-명품미술관장

홍익대학교에서 목칠학과를 전공하고
동국대학교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했다.
문화재관리국 문화재 전문위원,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사)한국무형문화예술교류협회 회장이다.


저자에 관하여

월간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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